구사론 제1품 게송 45-49 2015. 2. 25 오기열 초벌번역
*역자주; 한글은 남카스님의 티벳어본[The commentary by Chim Jampelyang, Ornament for Manifest Knowledge]을 번역한 것이며, 영문은 제1대 달라이라마 Gedun Drup’s Clarifying the Path to Liberation를 교재로, 2001년 남인도 대붕사원에서 강론한 게쉐 잠빠갸초의 해설이다.
[= ]안의 표기는 해당되는 한문번역어, 혹은 설명을 역자가 임의로 추가한 것이다.
[ ]안의 표기는 티벳어를 번역하면서 문장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자가 보충한 것이다.
밑줄친 부분은 미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단어만 번역한 것이다.
게송29-49 본송번역: 18계에 대한 ‘여러 측면의 상세한 분류[=제문분별諸門分別]’
བསྟན་ཡོད་འདིར་ནི་གཟུགས་གཅིག་པུ།
ཐོགས་དང་བཅས་པ་གཟུགས་ཅན་བཅུ།
ལུང་མ་བསྟན་བརྒྱད་དེ་དག་ཉིད།
གཟུགས་སྒྲ་མ་གཏོགས་གཞན་རྣམ་གསུམ།༢༩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여기서 오로지 색이며,
방해를 갖는 것은 색을 가진 10계이다.
그 중에서 무기는 8계로 그것들은
색과 성을 제외하며, 다른 것들은 3가지이다. 29
འདོད་ཁམས་གཏོགས་པ་ཐམས་ཅད་དོ།
གཟུགས་ཀྱི་ཁམས་ན་བཅུ་བཞི་འོ།
དྲི་དང་རོ་དང་སྣ་དང་ནི།
ལྕེ་ཡི་རྣམ་ཤེས་ཁམས་མ་གཏོགས།༣༠
욕계에 속하는 것은 모두이고
색계에는 14계로,
향계, 미계, 비식계, 설식계를
제외한 것이다. 30
གཟུགས་མེད་གཏོགས་པ་ཡིད་དང་ནི།
ཆོས་དང་ཡིད་ཀྱི་རྣམ་ཤེས་ཁམས།
དེ་གསུམ་ཟག་བཅས་ཟག་པ་མེད།
ལྷག་མ་རྣམས་ནི་ཟག་བཅས་སོ།༣༡
무색계에 속하는 것은
의계, 법계, 의식계로,
그 3가지는 유루, 무루이고
나머지들은 유루이다. 31
རྟོག་དང་དཔྱོད་དང་བཅས་པ་ནི།
རྣམ་པར་ཤེས་པའི་ཁམས་ལྔ་ཡིན།
ཐ་མ་གསུམ་ནི་རྣམ་གསུམ་མོ།
ལྷག་མ་རྣམས་ནི་གཉིས་ཀ་སྤངས།༣༢
분별과 분석을 가진 것은
5식계이다.
마지막 셋은 3가지이며,
나머지는 둘 다 제거된 것이다. 32
ངེས་པར་རྟོག་དང་རྗེས་དྲན་པའི།
རྣམ་པར་རྟོག་པས་རྣམ་མི་རྟོག
དེ་དག་ཡིད་ཀྱི་ཤེས་རབ་གཡེང་།
ཡིད་ཀྱི་དྲན་པ་ཐམས་ཅད་ཉིད།༣༢
확실하게 분별하는 분별과 기억하는 분별로
분별하지 않는 것이며,
그것들은 의식[=의意]의 산란된 지혜로
의식의 모든 기억하는 성품이다. 33
དམིགས་བཅས་སེམས་ཀྱི་ཁམས་བདུན་ནོ།
ཆོས་ཀྱི་ཕྱེད་ཀྱང་མ་ཟིན་དགུ
བརྒྱད་པོ་དེ་དག་རྣམས་དང་སྒྲ།
དགུ་པོ་གཞན་ནི་རྣམ་པ་གཉིས།༣༣
소연을 갖는 것은 7심계이며 법계의 절반도 그렇다.
[마음에 의해] 붙잡히지 않은 것은 9계로,
바로 위의 8계와 성계이다.
다른 9계는 두 가지이다. 34
རེག་བྱ་རྣམ་པ་གཉིས་ཡིན་ཏེ།
ལྷག་མ་གཟུགས་ཅན་དགུ་པོ་ནི།
འབྱུང་གྱུར་ཆོས་ཁམས་ཕྱོགས་གཅིག་ཀྱང་།
གཟུགས་ཅན་བཅུ་ནི་བསགས་པ་འོ།༣༥
접촉의 대상[=촉계]은 두 가지이며,
색을 갖는 나머지 9계는 사대에서 생겨난 것이다.
법계의 한 부분도 역시 그렇다.
색을 갖는 10계는 쌓인 것이다. 35
གཅོད་བྱེད་གཅད་པར་བྱ་བ་ཉིད།
ཕྱི་རོལ་གྱི་ནི་ཁམས་བཞི་ཡིན།
དེ་བཞིན་བསྲེག་བྱ་འཇལ་བྱེད་པའོ།
སྲེག་དང་གཞལ་ལ་མི་མཐུན་སྨྲ།༣༦
자르는 것과 잘려지는 것을 본성으로 하는 것은
외부의 4계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태워지는 것과 재는 것도 그렇다.
태우는 것과 재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상반되게 주장한다. 36
The very agents that cut and the objects to be cut
Are the four external constituents.
Likewise, they are the objects to be burned and the agents that weigh.
There are conflicting pronouncements regarding what burns and the weighed.
རྣམ་པར་སྨིན་ལས་བྱུང་བ་དང་།
རྒྱས་ལས་བྱུང་བ་ནང་གི་ལྔ།
སྒྲ་ནི་རྣམ་སྨིན་ལས་སྐྱེས་མིན།
རྒྱུ་མཐུན་ལས་བྱུང་རྣམ་སྨིན་སྐྱེས།
ཐོགས་པ་མེད་བརྒྱད་གཞན་རྣམ་གསུམ།༣༧
무르익음에서 생기는 것과
성장에서 생기는 것은 내부의 5계이다.
소리는 무르익음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유사한 원인에서 생겼으며 무르익음에서 생긴 것은
방해물 없는 8계이며 다른 것들은 세 가지이다. 37
The five inner are arisen from fruition
And arisen from development.
Sound is not produced from fruition;
Those arisen from similar causes and produced from fruition
Are the eight unobstructive. The others are of three types.
རྫས་དང་ལྡན་གཅིག་ཐ་མ་གསུམ།
སྐད་ཅིག་མ་སྟེ་མིག་དང་ནི།
རྣམ་ཤེས་ཁམས་དག་སོ་སོ་དང་།
ལྷན་ཅིག་ཏུ་ཡང་འཐོབ་པ་ཡོད།
실체를 지니는 것은 하나이다.
마지막 세 가지는 찰나이며
안계와 인식계는 각각 혹은
동시에 또한 얻음을 갖는다. 38
One possesses substance.
The last three
Are the instant.
The eye and
Consciousness constituents have individual and
Also simultaneous acquisition.
ནང་གི་བཅུ་གཉིས་གཟུགས་ལ་སོགས།
མ་གཏོགས་ཆོས་ཞེས་བྱ་བ་ནི།
རྟེན་པ་དང་བཅས་ལྷག་མ་ནི།
དེ་དག་མཚུངས་པ་དག་ཀྱང་ཡིན།
གང་ཞིག་རང་གི་ལས་མི་བྱེད།༣༩
내적인 것은 색 등을 제외한 12계다.
법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의지처와 함께한다.
나머지 또한 그것들과 비슷한 것들로
자신의 작용을 하지 않는 것이다.39
The internal are the twelve, excluding forms and so forth.
Those called “phenomena”
Are with reliance.
The remaining
Are also similar to that:
That which does not perform its respective function.
བཅུ་ནི་བསྒོམ་པས་སྤང་བྱ་ཡིན།
ལྔ་ཡང་ཐ་མ་གསུམ་རྣམ་གསུམ།
ཉོན་མོངས་ཅན་མིན་མཐོང་སྤངས་མིན།
གཟུགས་མིན་དྲུག་པ་མིན་སྐྱེས་མིན།༤༠
열은 수도로 제거되어야 하며
다섯 또한 그렇다. 마지막 셋은 세 가지이다.
번뇌를 갖지 않은 것은 견소단이 아니다.
색도, 제6식이 아닌 것에서 생긴 것도 [견소단이] 아니다.40
The ten are to be abandoned by meditation,
As well as the five. The last three are of three types.
The unafflicted are not objects of abandonment of the path of seeing,
Nor are forms, nor those produced from what is not the sixth.
མིག་དང་ཆོས་ཀྱི་ཁམས་ཕྱོགས་ནི།
ལྟ་བ་ཡིན་ཏེ་རྣམ་པ་བརྒྱད།
རྣམ་ཤེས་ལྔ་དང་མཚུངས་སྐྱེས་བློ།
ངེས་རྟོག་མེད་ཕྱིར་ལྟ་མ་ཡིན།༤༡
안계와 법계의 일부는
보는 것으로 8가지이다.
5식과 상응하여 생기는 각혜는
확실한 분별이 없으므로 보는 것이 아니다.41
The eye and a part of the phenomena constituent
Are views – the eight types;
The awarenesses produced in concomitance with the five consciousnesses
Are not views because they are not determining conceptualizations.
མིག་གིས་གཟུགས་རྣམས་མཐོང་རྟེན་བཅས།
དེ་ལ་བརྟེན་པའི་རྣམ་ཤེས་མིན།
གང་ཕྱིར་བར་དུ་ཆོད་པ་ཡི།
གཟུགས་ནི་མཐོང་བ་མིན་ཕྱིར་ལོ།༤༢
눈으로 색들을 본다, 의지처와 함께.
그것에 의지하는 식으로는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중간에 차단된
색은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42
Eyes see forms, those with reliance,
Not the consciousness supported on them.
Why is that? Because forms that are blocked
Are not seen – so it is claimed.
མིག་ནི་གཉིས་ཀ་དག་གིས་ཀྱང་།
མཐོང་སྟེ་གསལ་བར་མཐོང་ཕྱིར་རོ། ༤༣
མིག་དང་ཡིད་དང་རྣ་བ་ནི།
ཡུལ་དང་མ་ཕྲད་གསུམ་གཞན་དུ།
སྣ་ལ་སོགས་པ་གསུམ་གྱིས་ནི།
ཡུལ་ནི་མཉམ་པར་འཛིན་པར་འདོད། ༤༤
또한 두 개의 눈으로 보는데,
분명하게 보기 때문이다.43
안근과 이근과 의근은
대상과 만나지 않으며 셋은 다르다.
비근 등 셋은 대상을 동등하게
취한다고 주장한다. 44
Both eyes also see
Because of clearer sight.
The eye, mentality, and ear
Do not meet their objects; three are otherwise.
Three, the nose and so forth,
Are asserted to apprehend equal objects.
ཐ་མའི་རྟེན་འདས་ལྔ་རྣམས་ཀྱི།
དེ་དག་ལྷན་ཅིག་སྐྱེས་པའང་ཡིན།
དེ་དག་གྱུར་པས་འགྱུར་ཉིད་ཕྱིར།
རྟེན་ནི་མིག་ལ་སོགས་པ་ཡིན།༤༥
마지막[=제6식]의 의지처[=소의]는 과거[의 의근]이며,
5식의 그것들은 또한 [5식과] 동시에 생겨난 것이다.
그것들[=5근]이 변화하므로 [5식도]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5식의] 의지처는 안근 등이다. 45
The support of the last has passed;
Those of the five are also produced simultaneously.
The supports are the eyes and so forth
Because there is change due to a change in them.
དེ་ཕྱིར་མཐུན་མོང་མ་ཡིན་ཕྱིར།
དེ་དག་གིས་ནི་རྣམ་ཤེས་བསྟན།
ལུས་ལ་འོག་མའི་མིག་མ་ཡིན།
མིག་གི་གོང་མའི་གཟུགས་མ་ཡིན།་༤༦
그러므로 공통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들로 식을 보여준다.
몸에는 하지의 안근이 없다.
안근의 대상은 상지의 색이 아니다. 46
Therefore, because of being uncommon,
They present the consciousnesses.
A lower eye is not in a body.
Higher forms are not of an eye,
རྣམ་པར་ཤེས་པའང་དེ་ཡི་གཟུགས།
ལུས་ཀྱིའང་གཉིས་ཀ་ཐམས་ཅད་དུ།
རྣ་བའང་དེ་བཞིན་གསུམ་དག་ནི།
ཐམས་ཅད་རང་གི་ས་པ་ཉིད།་༤༧
안식 또한 [하지의 안근이 없다.]
그 색과 몸의 두 가지 또한 모두에 있다.
이근도 그와 같다.
셋은 모두 오로지 자신의 경지이다. 47
Nor is consciousness. [1.47a]
Its forms,
Also both of a body, are in all. [1.47ab]
The ear is also like that. For three,
All are just of their own levels. [1.47cd]
ལུས་ཀྱི་རྣམ་ཤེས་འོག་དང་ནི།
རང་གི་ས་ཡིད་མ་ངེས་ཏེ།
གཉིས་ཀྱི་རྣམ་ཤེས་ཕྱི་ཡི་ལྔ།
འདུས་མ་བྱས་ཆོས་རྟག་པ་འོ། ༤༨
신식은 하지이거나
자신의 경지이며, 의근은 미확정이다.
두 가지 식은 외부 5이다.
무위법은 항상하다. 48
The body consciousness is of a lower and its own level;
The mental is indefinite. [1.48ab]
Those by two consciousnesses are the five external. [1.48c]
The uncompounded phenomena are permanent. [1.48d]
ཆོས་ཀྱི་ཕྱེད་དང་གང་དག་ནི།
བཅུ་གཉིས་ནང་གིར་བཤད་དབང་པོ།༤༩
법의 절반과 내적인 것으로
설명한 열두 가지는 근이다. 49
Half the phenomena and
The twelve explained as internal are powers. [1.49ab]
ཆོས་མངོན་པའི་མཛོད་ཀྱི་ཚིག་ལེའུར་བྱས་པ་ལས།
ཁམས་བསྟན་པ་ཞེས་བྱ་བ་སྟེ་གནས་དང་པོའོ༎
<아비달마구사론송>에서
‘계를 설함’이라고 하는 첫번째 주제다.
From the Versified Treasury of Manifest Knowledge,
This is Chapter One: “Presentation of the Constituents.”
게송 45~49에 대한 해설
ཐ་མའི་རྟེན་འདས་ལྔ་རྣམས་ཀྱི།
དེ་དག་ལྷན་ཅིག་སྐྱེས་པའང་ཡིན།
དེ་དག་གྱུར་པས་འགྱུར་ཉིད་ཕྱིར།
རྟེན་ནི་མིག་ལ་སོགས་པ་ཡིན།༤༥
마지막[=제6식]의 의지처[=소의]는 과거[의 의근]이며,
5식의 그것들은 또한 [5식과] 동시에 생겨난 것이다.
그것들[=5근]이 변화하므로 [5식도]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5식의] 의지처는 안근 등이다. 45
The support of the last has passed;
Those of the five are also produced simultaneously.
The supports are the eyes and so forth
Because there is change due to a change in them.
“The last” is the mental consciousness. What is the support of the mental consciousness? It is the mental sense power. What is that mental sense power? It is any of the six consciousnesses that immediately preceded it. The Treasury of Manifest Knowledge says: “Any consciousness that is the immediate past of the six is mentality” (v. 1.17ab). In short, the support of the mental consciousness is a mentality that has passed at the time of the mental consciousness itself. The Chimzo commentary says that the support of the mental consciousness is an immediately proceeding consciousness that has just ceased. The supports of the five engaging consciousnesses are those present material sense powers that exist simultaneously with them. What is it that is produced simultaneously with an engaging consciousness? It is a transparent form that is a material sense power.
또한 그러한 계들 중에서 마지막인 의식계의 의지처[=소의所依]는 과거에 소멸한 바로 그때의 의근뿐이며, 안식계 등 5식계들의 의지처[=소의所依]는 ‘또한’ 안식 등의 그러한 5식들과 동시에 생긴 색을 가진 현재의 안근 등 5근이다. ‘또한’이라는 말은 과거의 의식이기도 하다는 말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주석에서, 바로 그 때문에 “안식의 의지처[=소의所依]로서 사물인 것은 또한 그것[=안식]의 등무간연의 사물이기도 한가?”라고 묻는다면, “[그 둘의 관계는] 4구*로서---“라고 설명했으므로,
5식의 모임[=རྣམ་ཤེས་ཚོགས་ལྔ།;5識身-즉, 5가지 식]에 관해서 [4구로 분별해 본다면], 색을 가진 5근은 5식의 의지처[=소의所依]인 사물이지만, 심과 심소가 아니므로 등무간연의 사물이 아니기 때문에, 제1구이며, 법계의 바로 과거 심소는 심과 심소를 생기게 하는 것들로, 마지막이 아닌 등무간이라고 설했으므로, 제2구이며, 바로 과거의 의근은 둘 다이므로[=안식의 의지처이면서 다음 찰나 의식의 등무간연이 되므로] 제3구이고, 색을 가진 5가지 외적인 계와 불상응인 법계들은 둘 다 아니므로 제4구이다.
&4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아비달마구사론> 103쪽 주123참조할 것[역자주]
The supports of the five engaging consciousnesses are also mentality. The terms “also” indicates that an immediately proceeding consciousness can also be the support of the five engaging consciousnesses. There are two types of empowering conditions: the common and the uncommon. A support is not pervaded by being an empowering condition, it can also be an immediate condition. Therefore, a preceding mentality can be the support that is the immediate condition of a sense consciousness. For example, if we close our eyes and then open them and look at Cristiana, in this case there is a mentality that first thinks to look at her after which she is seen, in this way the mentality is the immediate preceding condition or common condition for eye consciousness. Thus, there are both common and uncommon empowering conditions for each of the five engaging consciousnesses
QUESTION: Well then, is that which is the support of eye consciousness its similar immediate condition?
RESPONSE: With regard to that there are four possibilities:
1. an eye sense power is the support of eye consciousness but is not its immediate condition,
2. a mental factor, for instance, that arises prior to the eye consciousness is the immediate condition of the eye consciousness but is not its support,
3. a mentality that has passed at the time of the eye consciousness itself is both, and
4. a form, for instance, is neither.
The uncommon empowering condition of eye consciousness is the eye sense power, whereas its common empowering condition is an immediately preceding mentality which has passed at the time of the eye consciousness itself. The mental factors that existed prior to the eye consciousness are the immediate condition of the eye consciousness but are not its support. Why are they not its empowering condition? It is because they are not any of the six sense powers, such as the eye and so forth. The mental factors are not an eye sense power; they are also not a mental sense power because they are not mentality, that is, they are not a main mind.
의식[=제6식]에 관해서도 [4구로서 분별해 본다면], 이전의 의근은 의지처[=소의所依]와 그 것의 등무간연의 사물 둘 다이므로 제3구이며, 제2구와 제4구는 이전에 설명한 것과 같으나, 제1구는 없다. 왜냐하면 의식의 의지처[=소의所依]는 어떤 것이든 그것[=의식]의 등무간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The supports are the eyes and so forth
Because there is change due to a change in them. [1.45cd]
The supports of the engaging consciousnesses are the eyes and so forth because:
· the engaging consciousnesses become clear and unclear due to clear and unclear eyes and so forth, and
· the eye consciousness and so forth change due to a change in the eyes and so forth.
1안] 만일 안식 등이 의근과 안근 등 둘 다에 의지하기 때문에, 그리고 색 등에서도 생긴다면, 무엇 때문에 안식 등이라고 말하고, 색식 등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티벳어본 해석]
2안] 전5식은 대상[=경]과 감각기관[=근] 둘 다에서 생겨난다. 그럼에도 감각기관[=근]은 의지처로 확립하고 대상[=경]은 의지처로 확립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영문본 해석]
라고 묻는다면, 안근 등 그것들[=5근]의 변화에 따라 안식 등 식들[=5식]도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로움이나 해로움에 의해서 상응을 지니는 안락이나 고통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On the other hand, the objects are not the supports or empowering conditions because when there is a change in the object there is no change in the clarity of the consciousness; this happens only when there is a change in the sense powers.
그리고 석량론[=디그나가의 “집량론”에 대한 다르마끼르띠의 주석서]에서, “만일 멀리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 이쪽으로 와서 독수리에 의지하라”라고 설한 것처럼 독수리의 눈은 본래 맑고 밝아서 아주 멀리 떨어진 불분명한 모습에 대해서도 안식이 생긴다. [이러한 예는 안식의 청정함은 안근에 의존하며 대상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안근이 해를 입으면 생기는 안식은 고통과 상응하며, 반면에 안근이 이로움을 받으면 생기는 안식은 즐거움과 상응한다. 이것은 안근에 해로움을 주는 것은 안식에 고통의 느낌[=고수]을 유발하며, 안근에 이로움을 주는 것은 안식에 즐거운 느낌[=낙수]을 생기게 한다. 그러므로 안근의 변화로 인해 즉, 안근에 해롭거나 이롭게 함으로써 각각 안식에 고수나 낙수가 생겨난다.—영문본에서 역자 추가]
이근 등도 그와 같으므로,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못한 근에 의해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못한 근식으로 생기기 때문이다. 반면에 색 등 [의 대상들은] 변화에 의해 그러한 [대상을 인식하는] 식들이 변하는 것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안식 등의 의지처는 안근 등이다.
དེ་ཕྱིར་མཐུན་མོང་མ་ཡིན་ཕྱིར།
དེ་དག་གིས་ནི་རྣམ་ཤེས་བསྟན།
ལུས་ལ་འོག་མའི་མིག་མ་ཡིན།
མིག་གི་གོང་མའི་གཟུགས་མ་ཡིན། ༤༦
그러므로 공통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들로 식을 설명한 것이다.
[초선의] 몸에는 하지의 안근이 없다.
[하지의] 안근의 대상은 상지의 색이 아니다. 46
Therefore, because of being uncommon,
They present the consciousnesses. [1.46ab]
A lower eye is not in a body.
Higher forms are not of an eye, [1.46cd]
Nor is consciousness. [1.47a]
안식 등의 의지처는 오직 그러한 근들뿐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근들은 하나의 흐름과 여럿의 흐름에 의존하여 식을 생기게 하는 비공통의 원인이기 때문에 ‘안식이라고 하는 등’은 지배적 조건[=증상연]인 그러한 근들의 관점에서 식을 설명한 것으로, 북소리나 보리싹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색 등의 대상[과 의근과 의근-문맥상 삭제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역자주]은 안 등의 식과 의식 둘 다의 공통된 원인이기 때문에 그것들[=5경]에 의해서 [식을] 설명하지 않는다.
(색은 공통된 식의 원인이다. 안식과 의식 둘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안근은 오로지 안식을 권속으로 지니는 것이기 때문에 공통이 아니다. 색은 뿌드갈라의 공통된 식의 원인이다. 다수의 뿌드갈라의 안식과 의식을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안근은 오로지 하나의 흐름의 안식을 생기게 하기 때문이 공통이 아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디그나가의 <집량론>에서도 “공통되지 않은 원인이기 때문에 그것의 명칭을 근에 의해 붙였다.”라고 설했다.
또한 만일 어떤 몸에 머무르면서 눈으로 색을 보거나 귀 등으로 소리 등을 듣거나 할 때 몸과 눈 등과 색 등과 식들은 같은 경지인가 다른 경지인가? 묻는다면, 다른 것도 있고 같은 것도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몸에는’이라고 하는 등을 설했다. (욕계에 태어난 자가 자신의 경지의 눈으로[=자지의 안근으로] [자신의 경지의] 색을 본다면, 모두 자신의 경지이다. 욕계 중생이 제4선정의 눈으로 제2선정이나 제3선정의 색을 볼 때 넷이 모두 다르다.*1 다른 것에는 어떤 것도 결합할 수 있다. 넷이 모두 같은 경지인 것은 욕계와 초선정의 경지뿐이다. 그 이상에는 자신의 경지의 힘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의지처를 지닌 근[=동분의 근]이나 혹은 식만이 대상을 보는 것이라면 상지의 3선정은 근식이 현전하지 않을 경우 대상을 보지 못하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몸은 여기서 내부의 의지처로 인정한다.
*1.몸은 욕계에 속하고, 안근은 제4선정에, 색은 제2선정 혹은 제3선정에, 안식은 초선에 속하게 될 것이다.[역자주]
“A lower eye is not in a body” (v. 1.46c) means that someone who has the body of the first concentration, for example, does not have an eye of a lower level, the desire realm. “Higher forms are not of an eye” (v. 1.46d) means that an eye of a lower level cannot see a form of a higher level.
“Same level” means that the body and eye are of the same level, for example, the body of a desire realm being such as a human being and the eye of the desire realm. It also means that the form is of the desire realm, as is the eye consciousness that is produced in dependence on them. Thus, when a being with the body of the desire realm looks at a form of the desire realm with an eye of the desire realm, the eye consciousness that is produced is of also of the desire realm. Hence, in this case all four – the body, eye, form, and eye consciousness – are of the same level.
Similarly, when someone with a body of the first concentration who has an eye sense power of the first concentration looks at a form of the first concentration, the eye consciousness produced is also of the first concentration. Also in this case all four are of the same level.
In the case of someone with a body of the second concentration who has an eye sense power of the second concentration, in order to look at a form of the second concentration, he must manifest an eye consciousness of the first concentration. In this case, the four are not of the same level because the body, eye sense power, and form are of the second concentration, whereas the eye consciousness is of the first concentration.
ལུས་ལ་འོག་མའི་མིག་མ་ཡིན།
མིག་གི་གོང་མའི་གཟུགས་མ་ཡིན།
རྣམ་པར་ཤེས་པའང་
1안>[초선의] 몸에는 하지의 안근이 없다.
[하지의] 안근의 대상은 상지의 색이 아니다.
안식 또한 [하지의 안근이 없다.]
2안>몸에는 하지의 안근이 없다.
안근의 대상은 상지의 색이 아니다.
안식 또한 그 대상은 상지의 색이 아니다.
A lower eye is not in a body.
Higher forms are not of an eye, [1.46cd]
Nor is consciousness. [1.47a]
그에 대해 색을 지닌 안근 등 5근과 대상인 색, 성, 촉 셋은 욕계와 4가지 선정에 존재한다. 안식과 이식*과 신식 셋은 욕계와 초선의 경지에만 존재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제2선정 이상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향, 미와 비식, 설식은 오로지 욕계의 경지이다. 상지의 몸에는 하지의 눈이 의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경지에서 최상의 눈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지의 눈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경지에 태어난 몸[=소의신]은] 그 경지의 눈[=안근] 혹은 상지의 눈의 의지처이다.
*티벳어 སྣ་[코]는 རྣ་བ་[귀]로 수정되어야 문맥에 맞으므로 영문본을 참조하여 역자가 수정하여 번역한 것이다.[역자주]
*인식의 문제와 관련하여 3계 9지에서 몸, 근, 경, 식 네 가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유부에 의하면 욕계에는 18계가 전부 있지만, 색계 초선이상에는 향계, 미계와 비식계, 설식계가 없으며, 제2선이상 제4선에서는 안식계, 이식계, 신식계까지도 없고, 무색계에 이르면 15계가 없으며 오로지 마지막 3계 즉 의계, 의식계, 법계만이 남게 된다. 그런데 하지에 있더라도 상지를 인식할 수 있으며, 상지에서도 하지의 인식이 가능하다. 이 경우에 이 같은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상세 내용은 <아비달마구사론 1> 권오민 역주 105쪽 주125참조[역자주]
“Odors, tastes, and nose and tongue consciousnesses are only of the level of the desire realm,” that is, because there are no odors or tastes in the higher realms there are also no nose or tongue consciousnesses there. Because those of the second concentration and above do not survive by means of food – odors and tastes – there is no purpose to them existing there.
Because an eye of a higher level is supreme, a lower eye is not supported on a higher body. Therefore, a body is only the support of an eye of its own level or that of a higher level.
하지의 안근의 대상은 상지의 색이 아니다. 왜냐하면 상지의 색은 미세하므로 그것[=하지의 안근]이 그것[=상지의 색]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경지의 색과 낮은 경지의 색이 안근의 대상이다. (--)
상지의 안식은 또한 하지의 안근에 의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지의 최상의 식은 하지의 열등한 안근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낮은 경지의 식과 자신의 경지의 식은 그것에 의지한다. 그렇지만 낮은 경지의 식이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또한 욕계의 식이 초선의 안근에 의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초선에서 식은 수승함 지니므로[=དང་པོ་ན་རྣམ་ཤེས་གྱ་ནོམ་པ་ཡོད་པས་] [욕계의 안식은 초선의 안근에 의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2선정이상은 자신의 경지에 5문의 식[=전5식]이 없다는 관점에서 이러한 말로 설명한 것이다. 왜냐하면 제2선정이상은 색을 볼 경우 초선의 안식을 증득證得[=實現;現起]해야 하기 때문이다.[=མངོན་དུ་བྱེད་པའི་ཕྱིར་རོ།]
An eye consciousness of the desire realm is not supported on the eye of the first concentration because the eye consciousness of the first concentration is superior, due to which there is no purpose for a desire realm eye consciousness to be supported on the eye of the first concentration. Because the five engaging consciousnesses, that is, the consciousnesses of the five doors, do not exist in the second concentration and above, in order to view forms those of the second concentration and above need to manifest an eye consciousness of the first concentration. In other words, because they do not have an eye consciousness of their own level, in order to view forms they must manifest an eye consciousness of the first concentration.
QUESTION: Well then, in which levels does consciousness see form? Through being supported on which bodies, what levels of consciousness does it act as the support of and what levels of form does it see?
RESPONSE:
རྣམ་པར་ཤེས་པའང་དེ་ཡི་གཟུགས།
ལུས་ཀྱིའང་གཉིས་ཀ་ཐམས་ཅད་དུ།
རྣ་བའང་དེ་བཞིན་གསུམ་དག་ནི།
ཐམས་ཅད་རང་གི་ས་པ་ཉིད།
그 색과 몸의 두 가지 또한 모두에 있다.
이근도 그와 같다.
셋은 모두 오로지 자신의 경지이다.47
Its forms,
Also both of a body, are in all. [1.47ab]
그렇다면, <질문1> 식은 어느 경지의 색을 보며, <질문2> 어느 몸에 의지하여 어느 경지의 식의 의지처가 되고 [어느 경지의] 색을 보는가? 묻는다면, <질문1에 대한 답변으로> 안식은 모든 경지의 색을 본다. 즉, 자신의 경지와 하지와 상지의 색 모두를 본다. 98p
그것은 또한 무엇이 적절한지[=적절성]의 관점에서 말한 것이며
[=དེ་ཡང་ཅི་རིགས་ཀྱི་དབང་དུ་བྱས་པ་ཡིན་གྱི་ ;This, however, is from the point of view of propriety]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존재한다. 욕계의 안식으로는 오로지 자신의 경지의 색만 보며, 상지의 색을 보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수 겁의 대상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초선의 안식으로 자신의 경지와 낮은 경지와 높은 경지의 색을 본다는 관점에서 말한 것이다. (그것도 초선의 안식이 제4선정의 안근에 의지한다면, 5가지 모두의 색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승하고 열등한 대상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한다면, 허물이 없다. 상지의 의지처의 근은 수승하기 때문에 나쁜 사람이 수승한 국왕에 의지하여 훌륭한 행동을 성취하는 것과 같다.)
식으로 모든 경지에 속한 색을 볼 뿐만 아니라 <질문2에 대한 답변으로> 의지처인 몸[=소의신]의 색과 식 둘 모두를 모든 경지에서 볼 수 있고 [모든 경지에] 의지할 수 있다.
1. 이처럼 색에 관해서 말한다면, 욕계의 몸에 의지하여 자신의 경지와 (상지의 안근이 생겨 초선의 안식으로 본다면,) 상지의 색을 본다. 초선에서 제3선정까지[의 몸으로는] 자신의 경지와 하지와 상지의 색을 본다. 제4선정의 몸으로는 자신의 경지와 하지의 색을 모두 본다. 위에는 색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보는 의지처로 적절한 것은 욕계의 몸을 생각한 것이다.)
2. 식에 관해서 말한다면, 욕계의 몸에 의지하여 자신의 경지의 식과 초선의 식이 생긴다. 초선의 몸에는 오로지 자신의 경지의 식만 생긴다. 제2선 이상의 몸에는 오로지 하지인 초선의 식만 생긴다. 따라서 “몸의 두 가지 또한 모두에 있다”라고 말한 것도 ‘무엇이 적절한지[=적절성]의 관점에서 설한 것이다’라고 알아야 한다.
“Through being supported on a desire realm body, a consciousness of its own level and a consciousness of the first concentration are produced” refers to an eye consciousness seeing form of one with a desire realm body, and to one who, on the support of a desire realm body, achieves the clairvoyance of divine eye which is an eye consciousness of the first concentration seeing form. It is an eye consciousness of the first concentration because the clairvoyance of divine eye is included in the first concentration.
다른 근에 적용하는 측면에서 안근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 것처럼 이근에 대해서도 그와 같이 알아야 한다고 설했다.
ལུས་ལ་འོག་མའི་རྣ་བ་མིན།
རྣ་བའི་གོང་མའི་སྒྲ་མ་ཡིན།
རྣམ་པར་ཤེས་པའང་དེ་ཡི་སྒྲ།
ལུས་ཀྱིའང་གཉིས་ཀ་ཐམས་ཅད་དུ།
몸에는 하지의 이근이 없다.
이근의 대상은 상지의 성이 아니다.
이식 또한 그 대상은 상지의 성이 아니다.
그 성과 몸의 두 가지 또한 모두에 있다.
A lower ear is not in a body.
Higher sounds are not of an ear,
Nor is consciousness. Its sounds,
Also both of a body, are in all.
라고 상세하게 적용해야 한다.
비계와 설계와 신계 3가지의 대상과 식과 의지처인 몸[=소의신]은 모두 오로지 자신의 경지뿐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근과 만남을 취해야 하므로 차단되었거나 먼 거리의 대상을 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ལུས་ཀྱི་རྣམ་ཤེས་འོག་དང་ནི།
རང་གི་ས་ཡིད་མ་ངེས་ཏེ།
གཉིས་ཀྱི་རྣམ་ཤེས་ཕྱི་ཡི་ལྔ།
འདུས་མ་བྱས་ཆོས་རྟག་པ་འོ།
신식은 하지이거나
자신의 경지이며, 의계는 미확정이다.
두 가지 식은 외부 5이다.
무위법은 항상하다. 48
The body consciousness is of a lower and its own level;
The mental is indefinite. [1.48ab]
Those by two consciousnesses are the five external. [1.48c]
The uncompounded phenomena are permanent. [1.48d]
그처럼 일반적으로는 신[=몸]과 신근과 접촉 대상은 자신의 경지이지만, 신식은 제2선정에서 제4선정에 까지에서 생겨난 것들을 접촉대상으로 취하면, 하지인 초선의 경지에 속하고*1, 욕계와 초선에서 생기는 것들을 접촉대상으로 취하면, 오로지 각자 자신의 경지에 속한다. 99p
*1.제2선정 이상에서 태어나 초선의 신식을 빌려 상지의 접촉대상을 느낄 경우, 신식은 신근과 접촉대상보다 하지임[<아비달마구사론 1권> 권오민역주 108쪽 주132 참조-역자주]
의계와 법계와 의식계와 그 의지처인 몸은 경지가 확정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떤 경우에는 모두 동일하고 어떤 경우에는 동일하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5경지 모두의 몸에 적절하게 적용할 수 있다. 거기에서 4 가지가 모두 동일한 경지인 것은, 욕계의 몸에 욕계의 의근으로 욕계의 법을 소연한 욕계의 의식을 일으킨 것 따위이다. 동일하지 않은 경지인 것은, 욕계의 의선정에 들어가거나 욕계의 환술에서 벗어나면 의근은 욕계이지만, 의식은 해당하는 선정 위에서 아래로 생겨나면 의근은 상지이고 의식과 의지처는 하지이다. 아래에서 위로 생겨나면 반대가 된다. 법은 자신의 경지와 모든 경지와 경지에 속하지 않은 것 또한 대상으로 한다. 선한 선정은 존재하는 모든 대상이다. 라고 한 것과 무색계의 본 수행 선한 것들의 인식대상은 유루이며 하지가 아니다. 라고 특별한 것을 지니는 것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 yod dgu - everything that exists. all that exists, everything, all matter, whatever there is.
Here “their supporting bodies” refers to the physical body, whereas before it was said that the body is the interior of the sense powers. For example, when a superior of the desire realm takes a true cessation as an object, his body, mental sense power, mental consciousness, and the object are not of the same level. Why is that? The object, true cessation, is uncontaminated therefore it is not included in a level. His mental consciousness, which takes a true path as an object, is uncontaminated therefore it is not included in a level. His supporting body is of the level of the desire realm.
Those by two consciousnesses are the five external. [1.48c]
3. 둘로 알아야 할 것 등 3가지를 설명함.
또한 18계 중에서 두 가지 식으로 알아야 하는 것은 색에서 촉[=접촉대상]까지 외부의 5처뿐이다. 색은 안식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고 의식[=제6식]으로 알아야 하는 것 등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경에서도 “비구들이여! 색을 아는 식은 2 가지이다. 근에 의지하는 것과 의에 의지하는 것이다.”라고 설했다. 나머지 13계는 5문식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오로지 의식[=제6식] 하나로 알아야 하는 것으로 확립된다.
(브라흐만이 자성의 지배를 받아 눈 등 6근[=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 의근]과 여성[=여근]과 남성[=남근]과 생명[=명근]과 5가지 느낌[=낙근, 고근, 희근, 우근, 사근]과 믿음 등 5가지[=신근, 근근, 염근, 정근, 혜근]와 알지 못하는 것[=미지당지근]과 모든 것을 아는 것[=이지근] 등[=구지근] 3가지를 합해서 22가지 근을 설한 것에 대해 아비달마논사들은 소연과 함께 하기[=유소연이기] 때문에 의근을 명근 다음에 인용하지만*1, 경량부가 그처럼 한다면 6처를 확립한 것에 대해 공경하지 않게 될 것이므로 경에서 설한 대로 인용한 것이다.)
*1.유부아비달마에서는 전통적으로 22근을 설정함에 있어 무소연의 색법을 먼저 설하고, 그 다음에 의근이나 낙근, 희근 등 유소연의 심, 심소법을 설한다.[<아비달마구사론 1권> 권오민역주 110쪽 주134 발췌인용-역자주]
The uncompounded phenomena are permanent. [1.48d]
또한 18계 중에서 법계의 일부인 무위법*1은 찰나적인 것이 아니므로 항상한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것들은 유위이므로 무상한 것으로 알아야 한다.
*1. 무위법은 허공[space], 택멸[analytical cessations], 비택멸[non-analytical cessations]이다.[역자주]
또한 경에서, “근들을 안다면, 그러한 계들 중에서 근인 것은 몇이고, 근이 아닌 것은 몇인가?”라고 묻는다면,
ཆོས་ཀྱི་ཕྱེད་དང་གང་དག་ནི།
བཅུ་གཉིས་ནང་གིར་བཤད་དབང་པོ།༤༩
법의 절반과 내적인 것으로
설명한 열두 가지는 근이다.49
Half the phenomena and
The twelve explained as internal are powers. [1.49ab]
그러한 계들(브라흐만이 자성의 지배를 받아 경에서 눈 등 6근과 여근 남근 명근과 안락근 등 5근과 신근 등 5근과 무명과 일체를 아는 것 등 무루 3근을 합해서 22근을 설한 것)중에서, 법계의 절반-명근과 안락한 느낌 등 5근과 믿음 등 5근과 무루근 3부분을 합해서 14-과, 눈 등 내적인 것으로 설명한 계들(눈 등 5과 심계 7을 합해서) 12이 근이다. 왜냐하면 눈 등 5은 각각 5근이며 남근과 여근은 몸[=신근]의 내부에 포함되기 때문이며, 의근은 7심계와 3무루근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
그렇다면 나머지 법계의 절반과 색 등 5은 “근이 아닌 것”으로 확립된다.
*1. 영문본에는 “7심계와 3무루근은 의근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the seven constituents of mind and the three uncontaminated powers are part of the mental sense power]”로 되어 있으나 오역으로 보인다. 이는 권오민교수의 주135를 통해 지지된다.[역자주]
*1. 권오민교수의 주135—“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 이지근已知根, 구지근具知根을 3무루근이라 하며, 첫째는 견도의 무루지이고, 둘째는 수도의 무루지이며, 셋째는 소작이판所作已辦 즉 무학의 무루지이다. 그런데 이러한 3무루근은 의, 희, 락, 사, 신 등의 5근을 본질로 하며, 이 중 의근은 법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일부’라고 한 것이며, 나아가 뒤에서 그 일부가 의식에 포함된다고 설하고 있다.[<아비달마구사론 1권> 권오민역주 110쪽 주135 발췌인용-역자주]
Half the phenomena constituent, the six supporting constituents, and the six supported constituents are powers. Thus, twelve and a half constituents are powers. The remaining half of the phenomena constituent and the five, the form through tangible object constituents, are not powers because they do not act with respect to their objects.
ཆོས་མངོན་པའི་མཛོད་ཀྱི་ཚིག་ལེའུར་བྱས་པ་ལས།
ཁམས་བསྟན་པ་ཞེས་བྱ་བ་སྟེ་གནས་དང་པོའོ༎
<아비달마구사론송>에서
‘계를 설함’이라고 하는 첫번째 주제다.
From the Versified Treasury of Manifest Knowledge,
This is Chapter One: “Presentation of the Constitu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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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념수행법 등의 수행으로써 "생각의 작용" 즉 생각의 생멸현상을 사실 그대로 경험하지 못한다면... 식, 육식... 등으로 표현되는 감각기관의용이, 감각기관 스스로의 작용이 아니라, 생각에 의존하여 있다는 사실을 이해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위와 같이... 쓸모 없는 이야기들로써 망상만 늘어가는 것이다.
사실, 일념을 안다면... 육식이라는 말, 지극히 단순한 말이며...기초상식이지만, 생각의 원리를 모른다면... 위의 말들과 같이, 우이독경이며, 방언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허긴... 상관 없다.
그렇게 서로... 말재간들로써 쓸모 없는 언술이나 겨루다가 병들고, 늙어 죽기 위해서 사는 것들이... 중생이니...
올바른 앎이 없다면... 이토록 무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해... 일념을 공부하는이들 참고하라는 뜻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