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라는 낱말을 검색해 보니.
소위 구원이나 해탈로 표현되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말들이 왜곡되면서 생겨난 방편이며, 신화에 기반을 두고 생겨난 것들로써 그 또한 궁극의 목적은 절대자, 신과의 합일이라는 설명이다.
사실. 인간은 인간의 기원에 대한 무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아득한 옛날부터 현시대까지도 찾아 헤매고 있지만... 미신에 바탕을 둔 인류문명의 결과는 인류의 종말과 그리고 새로운 창조로써 생로병사와 같이 윤회하는 것이다. 현시대의 모든 종교들, 과학이나 의학 등의 모든 지식들이 미신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인간은 그런 사실에 대해서 망각한 것 같다.
그대의 모든 앎들, 지식들, 정보들.... 모두 미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새로운 지식이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아직도 인간의 기원이 무엇인지 이해 할 수 없는 무지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지식이.... 인간의 기원조차 알 수 없는 무지에 바탕을 둔 것들이기 때문이다.
뿌리없는 나무에 입파리만 무성한 것.... 인간류의 현실이다.
그대가 믿는 것들, 그것이 무엇이든... 미신이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인물들.... 현 세상에서 오직 그들만이 현명한 자들이며, 가치 있는 삶을 사는 인물들이다. 더 나아가 오직 그들만이 검증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인물들... 그들이 인간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들이다.
왜냐하면, 오직 그들만이 지식을 초월한 진리를 이해 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 조차 불가능한 인간들.... 가치 없는 삶을 사는 것이며, 쓸모 없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는 누구인가?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다면... 가치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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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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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산스크리트어: योग yóga)는 힌두교의 종교적 · 영적 수행 방법의 하나다. 산스크리트어 요가(Yóga)의 뜻은 다양한데 제어(Control)[1] · 합일(Union)[2] · 수단(Means) · 방편(Means)[2] 등의 의미가 있다. 힌두교에서는 "요가란 실천 생활 철학에 철저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힌두교의 정통 육파철학 중 하나인 요가 학파의 주요 경전인 《요가 수트라》의 제일 첫머리(정확히는 두 번째 구절)에서는 요가를 "마음의 작용(心作用 · Citta-Vṛtti)의 지멸(止滅 · Nirodha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3]
요가는 또한 인도에서 발생한 여러 종교의 믿음과 수행과도 관련이 있다.[4] 인도 밖에서 요가는 흔히 하타 요가의 아사나 수행(자세 취하기)이나 운동의 한 형태로 알고 있다. 최근 뉴욕에서는 요가가 크게 유행했다.[5][6]
우파니샤드, 《바가바드 기타》,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 《하타 요가 프라디피카》, 《시바 삼히타》 등의 힌두교 경전은 요가의 여러 측면을 기술하고 있다.
요가의 주요 분류로는 하타 요가 · 카르마 요가 · 즈나나 요가 · 박티 요가 · 라자 요가 등이 있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카르마 요가 · 즈나나 요가 · 박티 요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7] 박티 요가에 대한 최고의 힌두교 경전은 《바가바드 기타》와 《바가바타 푸라나》인데, 둘을 비교하면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박티가 보다 이론적으로 다루어져 있는 반면,《바가바타 푸라나》에서는 박티가 보다 실천적으로 다루어져 있다.[8] 라자 요가는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에 의해 확립되었다. 파탄잘리에 의해 성립된 요가 학파는 《요가 수트라》를 주요 경전으로 하고 라자 요가를 수행법으로 한다.
요가 - 목차
역사[편집]
인더스 계곡의 봉인[편집]
인더스 문명(기원전 약 3300-1700년)의 유적지에서 여러 봉인들은 사람이 요가나 명상 자세를 취하고 있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고고학자 그레고리 포셀은 "요가의 시초가 되는 제의적인 운동의 형태"라고 보며, 이에 대한 증거가 모이고 있다.[9] 그는 후기 하라파의 유적지에서 발견된 16개의 요기 조각에 대해 "제의적인 수양과 집중"이라고 말한다.[10] 이 형상은 요가 자세로 "신들과 인간 모두가 행했던" 것이라고 본다.[9]
이중 가장 잘 알려진 형태는 파슈파티 봉인(Paśupati 封印)으로,[11] 발견자인 존 마샬은 이것이 시바의 원형이라고 주장한다.[12] 현대의 많은 고고학 권위자들은 이 파슈파티(Paśupati: 동물의 왕)[13]가 시바나 루드라를 나타낸다고 본다.[14][15] 갤빈 플러드는 이것이 피상적인 결론이라고 말하면서, 파슈파티 봉인이 요가 자세로 앉아 있는 시바나 루드라 또는 요기의 형상인지 그냥 사람의 형상인지는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12][16]
요가 학파[편집]
개요[편집]
요가 학파(Yoga學派) 또는 요가파(Yoga派)는 요가 수행에 의해 모크샤(해탈)에 도달하는 것을 가르치는 학파로, 힌두교의 정통 육파철학 중 하나이다. 요가 학파의 근본 경전은 《요가 수트라》로, 힌두교 전통에 따르면 파탄잘리가 그 편찬자이다.그러나 《요가 수트라》가 현재와 같은 형태로 편찬된 것은 기원후 400∼450년경인 것으로 여겨진다.[17]
요가 학파의 철학에는 불교의 영향이 있다는 것도 인정되지만, 요가 학파의 철학은 삼키아 학파의 철학과 거의 동일하다.[18] 철학면에서 삼키아 학파와의 상이점으로는, 요가 학파에서는 절대자로서의 최고신을 인정한다는 것만이 거의 유일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요가 학파에서는 일상생활의 상대적인 동요를 초월한 곳에 절대 고요(絶對靜)의 신비적인 경지인 사마디(삼매)의 상태가 있으며, 이 사마디의 경지에 도달할 때 요가, 즉 절대자와의 합일이 실현된다고 생각하였다. 요가 학파에서는 이와 같은 수행을 요가라고 부르고, 그 수행을 행하는 사람을 요기(Yogi) 또는 요가행자(Yoga行者)라고 이르며 그 완성자를 무니(牟尼 · 聖者)라고 일컫는다. 이와 같은 사마디라는 신비적 경지는 다른 여러 힌두 학파의 해탈의 경지와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각 힌두 학파들이 모두 요가의 수행을 실천법으로써 사용하고 있다.[17]
라자 요가[편집]
요가 학파에 따르면 "요가"라는 낱말의 의미는 "마음의 통일을 이루는 것"으로 요가는 "마음의 작용(心作用 · 심작용)의 지멸(止滅)"이라고 규정짓고 있다.[19][3] 따라서 외부적인 속박을 떠남과 동시에 내부적인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19]
삼키아 학파와 요가 학파의 철학에 따르면, 마음의 작용(心作用 · 심작용)이란 푸루샤(神我 · Cosmic Spirit)가 프라크리티(自性 · Cosmic Substance)를 자기 자신으로 동일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삼키아 학파에 따르면 이러한 동일시가 있으면 우주와 현상이 전개되고("주관과 객관의 구별이 있는 상태") 이러한 동일시가 사라지면 우주와 현상이 해체되어 사라진다("주관과 객관의 구별이 없는 상태"). 이러한 우주적 전개와 해체의 과정을 설명하는 삼키아 학파의 철학을 개별적인 영혼에 적용한 것이 요가 학파의 철학이다.[18]
요가 학파에서는 요가 수행의 전제로 계율들, 즉 행하지 않아야 될 것들(① 야마)과 적극적으로 행하여야 할 것들(② 니야마)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이 두 범주의 계율을 바탕으로 하는 상태에서 다음의 실천적인 수행을 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한적하고 고요한 장소를 선택하여 좌정하되, 좌법(③ 아사나)에 쫓아 다리를 여미고 호흡(④ 프라나야마)을 가라앉게 하여 마음의 산란을 막아서, 5관(五官)을 제어(⑤ 프라챠하라)하여 5감(五感)의 유혹을 피하고, 다시 나아가 마음을 집중(⑥ 다라나와 ⑦ 디야나)시킨다. 그리하여 마침내 ⑧ 사마디(삼매 · 三昧 · 等持)에 도달한다.[19]
요가 학파에 따르면 사마디에도 천심(淺深)의 구별이 있어서 사비칼파 사마디(Savikalpa samādhi · 유상삼매 · 有想三昧)와 니르비칼파 사마디(Nirvikalpa samādhi · 무상삼매 · 無想三昧)로 나뉜다. 전자는 대상의 의식을 수반하는 사마디이며, 또한 아직은 대상에 속박되어 대상에 의해 제어되고 있고 또 심작용(心作用)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비자 사마디(Savija samādhi · 유종자삼매 · 有種子三昧)라고도 일컫는다. 그러나 니르비칼파 사마디에 들어가면 이미 대상의식(對象意識)을 수반하지 않고 대상에 속박되지 않으며, 그 경지에 있어서는 심작용(心作用)의 여력마저도 완전히 없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니르비자 사마디(Nirbija samādhi · 무종자삼매 · 無種子三昧)라고도 한다. 니르비칼파 사마디 또는 니르비자 사마디의 경지가 참된 요가이며 이 경지에서 푸루샤는 관조자로서 그 자체 속에 안주한다.[19]
후대에는 이와 같이 ① 야마 · ② 니야마 · ③ 아사나 · ④ 프라나야마 · ⑤ 프라챠하라 · ⑥ 다라나 · ⑦ 디야나 · ⑧ 사마디의 여덟 단계로 구성된 라자 요가(Raja Yoga: 왕의 요가 또는 요가의 왕도) 대신에, 곡예와 같은 무리한 육체적 수행을 행하는 하타 요가의 실천도 성행하였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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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관념은 오직 인간들에게만 있는 것일 뿐, 본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세상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관념으로 본다면.... 인간류가 역사를 기록하기 수천, 수만 세기 전부터 인간은 존재했으며, 현시대 한반도에 표범이나 코끼리가 없듯이... 인간 무리들 또한 희귀동물들과 같이 지구상 곳곳에 분포하고 있었으며.... 석가모니 이전에 과거 7 불이 있었다는 기록과 같이... 인간이 존재하는 한... 해탈, 구원... 등의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요가 또한 그들의 말이 왜곡되면서 신비로 조장되어 전해진 것들이다.
이런 글들 또한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만이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말일 것이며... 광신자나 맹신자들이라면... 여전히 우이독경과 같거나, 마이동풍격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인간은 아득한 옛날이나, 현시대나... 지식이라는 모든 앎들이 '미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대가 그대의 마음을 믿든, 지식을 믿든, 의학을 믿든, 과학을 믿든... 진리가 아니라면... 미신을 믿는 것이며, 무지몽매한 삶일 수밖에 없다.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죽는 날까지 자기 이외의 타인들과의 다툼, 경쟁, 투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며, 진정한 행복이나, 자유, 평화를 경험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요가(Yóga)의 뜻은 다양한데 제어(Control)[1] · 합일(Union)[2] · 수단(Means) · 방편(Means)[2] 등의 의미가 있다. 힌두교에서는 "요가란 실천 생활 철학에 철저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힌두교의 정통 육파철학 중 하나인 요가 학파의 주요 경전인 《요가 수트라》의 제일 첫머리(정확히는 두 번째 구절)에서는 요가를 "마음의 작용(心作用 · Citta-Vṛtti)의 지멸(止滅 · Nirodha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3]
'요가' 의 정의.
제어, 합일, 수단, 방편... 이며, "마음의 작용의 지멸"... 이다, 는 설명이다.
영원한 자유와 평화를 위한 방법이며...그 요점이, '마음의 작용의 지멸'이다, 는 말은.... 마음의 작용을 멈추게 한다는 뜻이다. 인간의 모든 앎이 마음이며, 그 모든 앎이 사실적인 것들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에 대해서 '해탈, 구원' 이며... 그런 앎에 대해서 원리를 이해 하는 '진리' 라고 설명한 바와 같다.
결국 인간들의 모든 고통은, 지식(앎 = 識)이 원인이며, 지식을 초월한 '진리'로써 자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모든 앎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기 때문에 서로 상충하는 것이며, 올바른 앎일 때, 그때 비로소 상대적인 언어가 필요하지만... 절대적인 앎으로써, 다툼이나, 갈등, 경쟁, 투쟁,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삶에 대해서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의 상대적인 동요를 초월한 곳에 절대 고요(絶對靜)의 신비적인 경지인 사마디(삼매)의 상태가 있으며, 이 사마디의 경지에 도달할 때 요가, 즉 절대자와의 합일이 실현된다고 생각하였다. 요가 학파에서는 이와 같은 수행을 요가라고 부르고, 그 수행을 행하는 사람을 요기(Yogi) 또는 요가행자(Yoga行者)라고 이르며 그 완성자를 무니(牟尼 · 聖者)라고 일컫는다. 이와 같은 사마디라는 신비적 경지는 다른 여러 힌두 학파의 해탈의 경지와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각 힌두 학파들이 모두 요가의 수행을 실천법으로써 사용하고 있다.[17]
상대적인 지식을 초월한 곳, 그리고 신비적인 경지의 삼매, 그리고 삼매에서 절대자와의 합일... 실현.
수행자를 '요기' 또는 '요가행자' 라고 하며... '완성자'를 '무니' 라고 한다는 말.... 그 지역의 언어지만... 석가모니의 '불타' 라는 말과 같은 뜻이며... 예수의 '하나님 말씀'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 상대적인 지식을 초월한 절대적인 앎, 양변을 떠난, 극과 극을 떠난, 그래서 '나와 너' 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사라진 앎을 이르는 말이며, 그렇기 때문에 '진리'라고 한다. 예수의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이 그 방편이며, '깨달음'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비유사례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편설... 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 라는 주체가 사실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파에 따르면 "요가"라는 낱말의 의미는 "마음의 통일을 이루는 것"으로 요가는 "마음의 작용(心作用 · 심작용)의 지멸(止滅)"이라고 규정짓고 있다.[19][3] 따라서 외부적인 속박을 떠남과 동시에 내부적인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19]
"라자-요가" 또한 같은 의미이다.
그 요점은 '마음의 작용의 지멸' 로써 마음이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닫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며, 방편이 '요가' 라는 말이다. 일념명상으로써 일념에 몰입된 상태에 대해서 '유상삼매'라고 설명한 바와 같이.... 생각의 휴식은, 외부적인 속박이라는 생각이 끊어진 상태이며, 동시에 마음이 동요될 수 없는 경지에 이름을 뜻하는 말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생각의 이치와 속성에 대해서 이해 한다면... 보편타당한 상식에 속하는 설명이다. 일념을 모른다면... 우이독경이나 다름 없는 말들이다. 소나 말, 개를 상대로 이야기 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며, 그와 같이 올바른 말에 대해서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 없는 인간들에 대해서... 길잃은 어린 양, 또는 '무리 중' 자로써의 '중생무리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먼저 한적하고 고요한 장소를 선택하여 좌정하되, 좌법(③ 아사나)에 쫓아 다리를 여미고 호흡(④ 프라나야마)을 가라앉게 하여 마음의 산란을 막아서, 5관(五官)을 제어(⑤ 프라챠하라)하여 5감(五感)의 유혹을 피하고, 다시 나아가 마음을 집중(⑥ 다라나와 ⑦ 디야나)시킨다. 그리하여 마침내 ⑧ 사마디(삼매 · 三昧 · 等持)에 도달한다.[19]
좌법... 머리깎은 중생들의 참선수행을 이르는 말이며.
호흡... 단전 호흡 등이 호흡방법을 이르는 말이며,
5관제어... 다섯가지 감각기관이 생각의 작용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며,
다라나, 다야나... 마음을 집중시킨다는 말은, 곧 일념명상법으로써 일념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사마디... 한자로 번역되면서 '삼매' 라는 말로 표현되는데... 이미 설명한 바 있으니, 생략하자.
요가 학파에 따르면 사마디에도 천심(淺深)의 구별이 있어서 사비칼파 사마디(Savikalpa samādhi · 유상삼매 · 有想三昧)와 니르비칼파 사마디(Nirvikalpa samādhi · 무상삼매 · 無想三昧)로 나뉜다. 전자는 대상의 의식을 수반하는 사마디이며, 또한 아직은 대상에 속박되어 대상에 의해 제어되고 있고 또 심작용(心作用)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비자 사마디(Savija samādhi · 유종자삼매 · 有種子三昧)라고도 일컫는다. 그러나 니르비칼파 사마디에 들어가면 이미 대상의식(對象意識)을 수반하지 않고 대상에 속박되지 않으며, 그 경지에 있어서는 심작용(心作用)의 여력마저도 완전히 없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니르비자 사마디(Nirbija samādhi · 무종자삼매 · 無種子三昧)라고도 한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말이다.
'유상삼매' 와 '무상삼매' 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되었으나, 요악하자면...
'일념수행자'가 일념문구에 집중한 상태에서 한시간이나 두시간, 또는 세시간 동안 산책길을 걸었다면... 걷는 동안에는... 내가 걷는다는 생각이 없으며, 무엇을 보았다는 생각이 없으며, 내가 행위자라는 생각이 없는 상태이다.
문득, '내가 이렇게 멀리 왔구나' 라고 알았다면... 걸었던 시간동안이 곧 '유상삼매' 라고 설명된 바와 같다. 더 나아가... 하루종일, 그리고 일주일이나 열흘이 지나더라도... 오직 그런 일념상태에 머무는 일에 대해서 '무상삼매'라고 설명했으며, 그때 비로소 모든 사념, 생각들이 사라짐으로써, 비로소 '육체가 나다'라는 생각이 경험의 오류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닫게 된다는 방식으로 설명된 책이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와 책 '비밀이 언어' 이다.
한가지 더 오해에 대해서 이해 해야 할 것이 있다.
'무상삼매'에서... '육체가 나가 아니다' 더 나아가 '나는 사람도 아니다' 라는 앎에 대해서 소위 '도를 깨달음' 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며, '심해탈, 해탈'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며, 그것에 대해서 '불타' 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들의 방편설들이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 의해서 우상숭배사상으로 왜곡되면서 '종교화' 된 것이다.
예수의 방편설과 석가모니의 방편설이 그러하다.
위의 '유종자 삼매' 라는 말과 '무종자 삼매' 라는 말은... 그들의 가르침이 아니라, 중생들의 견해이다.
유상삼매는... 인위적인 것으로써, 우물에 가라 않은 두레박에 비유를 든다면... 두레박이 우물에 가라 앉았으나, 끈이 달려 있어서 끌어 올리면, 인위적으로 끌려 올라오는 것과 같은 것이며, 무상삼매는 이미 인위가 떠난 무위의 경지로써 끈이 떨어진 두레박으로 비유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육체가 나가 아니며, 더 나아가 '나는 사람도 아니다'는 앎으로써의 '주체가 사라진 앎' 만이 남겨지기 때문이다.
만약에 '무종자 삼매' 가 있다면... 석가모니의 열반경 내용과 같다.
인간의 관념으로 본다면, '깨달은 자'에게도 죽음이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한 표횬이 '무종자 삼매' 이며... 본래 열반경의 내용이 그런 뜻에 대한 비유, 방편설이다.
열반경의 사구게에 대한 해석이 있으니, 참고할 수 있다. 다만, 그들에게는 삶과 죽음이 없다. 이분법적인 언어로써만 존재하는 것이 삶과 죽음이기 때문이다. "육체=나" 라는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착각으로써만 '삶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죽음이 있는 것'이다.
--- 명상, 요가, 요가명상, 명상요가, 그리고 기타 모든 '道'와 관련된 행위들, 각종 종교나부랭이들의 기도들... 부처를 보기 위해서도 아니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며,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도 아니며..... 단지, 그대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그것의 실체, 근본원인에 대해서 이해 하기 위한 방편들--- 이라는 사실... 그런 사실 하나만이라도 올바르게 이해 한다면, 그나마... 짐승보다는 조금 뛰어난 현명한 자에 속하겠지.
시간과 공간, 삶과 죽음, 고통과 두려움, 슬픔과 환상들... 오직 인간의 관념으로써만 존재하는 것이다.
언어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변사' 라는 말로써... 말, 말, 말로 지어진 세상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대의 모든 앎들 또한 그렇듯이...
진리의 길을 가라.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이다.
그대 마음의 근원을 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자유와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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