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편의 '불멸론'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인간은 태어남을 경험할 수 없는 것이며, 죽음 또한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타인들로부터 그런 방식으로 듣고 배웠던 말, 말, 말들에 의해서 '자아'가 구성된 것이며, 자아가 경험하는 모든 고통은 근거 없는 지식이 원인이며,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오직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요지이다.
깨달아 아는 앎이란 일념의 무념처에서 '육체가 나다, 욱체가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분별심 즉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남을 이르는 말이며, 이에 대해서 해탈, 심해탈, 삼매, 니르바나... 등으로 표현된 것이며, 예수의 말 또한 "너희가 깨달아 아는'... '그 날, 너와 나와 하나님이 둘이 아니다'는 방식으로써 그런 사실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너' 라는 상대적인 관념이 사라지므로써 '이웃을 네몸처럼 사랑하라'는 말과 같이... 모두가 평평하게 화합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들의 말의 요점은.
인간들의 삶 자체가 서로간의 투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옥'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며,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 비로소 천국, 성령, 하나님 나라... 불국토, 불타, 도... 등으로 표현된 것이다. 또한 인간들의 삶 자체가 서로간의 아귀다툼으로써 지옥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삶은 투쟁이거나 전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결코 행복이나 자유, 평화를 누릴 수 없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차라리 그런 삶보다는 죽음이 더 낫다는 뜻 또한 포함된 말로써... 죽음 또한 두려운 것이 아니라, 깊은 잠과 같은 것이다' 는 말로써, 올바른 앎이라면,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니 오직 깨달아 아는 앎일때, 가치 있는 삶이라는 말이며, 그렇지 않다면 살아가야 할 가치도 없다는 말이다.
"진리론"
'眞理' 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아래와 같다.
명사
(1)
(2)
[철학] 언제나 누구에게나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인식의 내용.
(3)
[논리] 어떠한 명제가 사실과 일치하거나 논리의 법칙에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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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1) '우주의 근원적 원리' 라는 말과 (3) 어떠한 명제가 사실과 일치하거나 논리의 법칙에 맞음' 이라는 말은 참으로 옳은 표현이다.
사실. 진리란 원리를 이해 함을 이르는 말이며, 사실. 원리란 언어의 근원을 아는 앎이며, 이는 언어로 표현되는 모든 것들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앎이다.
사실. 인간은 생명이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한다고 여기지만, 생명의 비밀에 대해서 무지하며, 우주를 여행하지만 우주의 근원적 원리에 대해서 또한 무지하다. 만약에 우주의 근원적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면, 우주여행 따위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생명의 비밀을 찾겠다는 짓들 또한 해야 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사실 '우주의 근원적 원리'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며, 그 까닭은 언어는 절대적인 것들에 대해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를 이해 하는 앎으로써의 방편설들에 대해서 '진리' 또는 '진리의 말' 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원리(原理)' 라는 낱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이나 현상의 근본이 되는 이치" 이다.
옳은 표현이다.
사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사물이나 현상'의 근본원인을 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 나타난 것만을 볼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사고방식의 바탕이 '육체가 나다'라는 이분법적인, 상대적인 고정관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리를 깨닫는다는 것은 '육체가 나다'라는 고정관념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닫는 것이다.
인간은 '육체가 나다' 라는 앎(지식=말=마음=느낌)에 대해서 불변의 진리라고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육체가 나다'라는 말은 진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육체가 나다' 라는 인간의 고정관념은 "진리"라는 낱말의 사전적 의미 즉 '어떠한 명제가 사실과 일치하거나 논리의 법칙에 맞음'이라는 말과 같이... '논리의 법칙' 이라는 법칙에 맞아야 하지만, 논리적으로 만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육체가 나다' 라는 말(앎, 생각, 마음, 느낌, 사고방식)은, 논리의 법칙에 맞지 않는 말이다. 왜냐하면 '육체가 나다' 라는 말은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말과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의 생명공학이나, 과학, 등의 모든 학문과 학문에 바탕을 둔 모든 지식은 그렇기 때문에 모순이다.
올바른 앎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모든 주장들에 대해서 '올바른 앎이란 겨자씨 만큼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모든 주장들은... 그 바탕이 논리의 법칙에 맞지 않는 말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은 근거가 없는 말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답이 없는 것이다.
모든 질병이이라든지... 삶이든지, 죽음이든지.
인간 세상의 모든 면에서...
어떤 면에서도 말만 무성할 뿐, 해답은 없다.
원리를 이해 하는 진리란, 즉 '도를 깨달음'이란, 명색이 '붓다'란... 가령. 인간들의 사고방식으로써는 '내가 사람이다'는 말에 대해서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과 같이... 그들은 '나는 사람도 아니다' 라는 말에 대해서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나는 사람도 아니다'라는 말에 대해서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하겠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나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말도 안되는 소리로써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내가 사람이다'는 말,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내가 사람이 아니다'는 주장 또한 근거가 없는 말이며, 낭설이며, 헛소문과 같다. 논리의 법칙에도 맞지 않는 말이다. 왜냐하면 논리의 법칙이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라는 육하원칙에 어긋남이 없는 앎(말)이라야 하기 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아니, 인간들 누구나, '내가 사람이다' 라고 단정 짓는다.
그렇다면, 육하원칙이라는 법칙에 따러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그대의... '내가, 동물이 아니라, 신이 아니라, 단지 사람이다'는 말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되었으며, 왜 '내가 사람이다'라고 주장하는가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추적해 보라는 말이다. 설령, 내가 '신이다, 하나님이다, 부처다, 동물이다' 라고 생각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언제, 내가 사람이다, 라고 알게된 것인가?
어디서, 내가 사람이다, 라고 알게된 것인가?
어떻게, 내가 사람이다, 라고 알게된 것인가?
무엇을, '나다' 라고 알게된 것인가?
왜, '육체가 나다' 라고 알게된 것인가?
사실. 기억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대의 '내가 사람이다, 여자다, 남자다' 라는 앎(지식, 마음, 생각, 느낌, 감정 등)은... 그대가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부터(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워서 알게된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다른 근거는 없다.
사실. 그대의 모든 지식들 또한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내가 사람이다'는 말 자체가 올바른 앎이 아니며, 헛소문이며, 낭설이며, 미신이다. 그렇지 않은가?
'진리'란... 육체가 나다, 육체가 나가 아니다 는 상대적인 사고방식, 즉 분별심이 허구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을 이르는 말이다. '육체가 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므로써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하나 되는 것이며, 곧 "그것" 이다. 분명하고 명백한 것이지만, 상대적인 언어로 표현될 수 없기 때문에... "그것" 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사실은 '언어가 본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상상하지 말라. 왜냐하면... '언어가 없다'는 말 또한 또 다른 '언어' 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너희가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는 것이며,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고 한 것이다. 그 법에 대해서 유일한 '인생의 길' 이라고 한 것이며, '진리라고 한 것이며, '새생명'이라고 한 것이다. 인간의 단견, 편견, 소견인 사고방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런 편견이 사라진 '하늘의 입장'에서 보니, 인간들의 삶이 길잃은 어린 양새끼와 다르지 않더라, 는 말로써... 방편설을 들어, 가치 있는 삶, 검증된 삶을 살라... 는 말이 예수의 가르침의 요점이다.
'원리'는 설명될 수 없기 때문에, 언어로 표현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말은 모두 방편설이다.
이곳의 모든 글들이 그러하며, 인간들에게 나타나는 불치병이나 난치병들에 대한 원인과 치유원리 또한 그러하다.
'붓다' 즉 석가모니의 말들 또한 '예수'의 가르침과 동일하다.
'원리전도몽상에서 깨어나라'는 말이 그의 가르침이 왜곡되었으나, 불경에 기록으로 남겨진 요지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죽을 것이다'는 사고방식이 경험의 오류일 뿐, 허구적인 앎이라는 뜻이다. 12연기법의 설명과 같이.... 어린아이시절에 '내가 사람이다' 라고 알았던 앎'에 대해서 '원리가 전도된 몽상이다' 라는 방식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용도 아니며, 더 나아가 나는 사람도 아니다'는 방식으로 비유를 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가의 일념법 교육'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별은 별이 아니다,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나는 나가 아니다'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다, '육체는 나가 아니다' 그것을 '나라고 아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방식으로써, 자신의 '본래의 나, 즉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자아'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깨달아 알라는 가르침이다.
고통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識)이 원인이기 때문에, '소리와 형상' 즉 지식으로써는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방식으로 설명된 것이다. '아상, 인상, 수자상, 중생상'이 있으면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 그리고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라는 말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은 조금 다른 것 같다.
하지만, 결론은 같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의 요지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예수의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말과 같은 뜻이며, 석가모니의 '네 본래성품이 부처다'는 말과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단지 소크라테스의 남겨진 기록에서는 '어린아이시절...' 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 메뉴의 '성인들의 가르침의 요지' 에 설명된 바와 같이, 소크라테스의 진언들 또한 논리에 어긋남이 없는 말이다. 가령, '유일한 선은 앎(진리)이며, 유일한 악은 지식이다'는 말이 곧 원리를 이해 하는 올바른 앎에 바탕을 둔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는 '선과 악' 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만 올바른 앎이라는 말이다. 예수의 말 또한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방식, 즉 분별심에서 벗어나라'는 말이지만,... 성경에는 '선악과를 따먹음' 으로 해석되면서...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원죄' 라는 방식으로 해석된 것이니, 언술이 뛰어난 자들의, 인간들의 무한한 어리석음의 소치이다.
사실. 노자의 말들 또한 같은 맥락이다.
다만 소크라테스와 노자의 말이, 붓다와 예수의 말과 다른 점이 있다면, '도를 깨닫기 위한 방법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가령, 예수는 '하루종일 기도하여 진리로 거듭 태어나라'는 말이 요점이며, 석가모니의 말은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다, 그것을 관찰하라'는 방식으로써 '부처'를 이루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자'의 가르침의 핵심은 '도가도비상도' 라는 말로써... "그것" 즉 '道'는 '상대적인 언어로써는 표현될 수 없는 것' 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는 '언어가 본래 없는 것'이라는 말이니... 어차피 인간의 '내가 사람이다'는 상대적인 고정관념으로써는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말이지만, '중도' 라는 말로써 비유를 든 것이다.
인류의 역사이래 현시대까지의 인물들 중에서 '원리'를 깨닫고 그 원리에 바탕을 둔 진리를 설명했던 인물들의 가르침의 요지는... 자아의 관점에서 보는 이기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대상의 관점에서 자아를 보라는 말로 이해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상의 관점에서 본다는 또 다른 자아의 관점에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논란, 논쟁, 다툼, 투쟁만 따르는 것... 죽는 날까지 자기를 주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간세상이 평화로울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지식은 무턱대고 주장하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말도 안되는 원칙을 내세우게 된 것이다. 사실. '육체가 나다, 마음이 나다'라는 주장 또한 근거 없는 주장이다. 하지만, 다수결로 결정한다면... 그대들의 주장이 옳다. 하지만, 나는 인간들의 그런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써의 터무니 없는 주장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지식에 바탕을 둔 모든 주장들이 아무런 근거가 없는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성체(知成體)' 다.
지식으로 구성된 몸체라는 뜻이다.
반면에 그들은 '진리체(眞理體) 다.
지성체들의 존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욕망을 채우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 것이며, 결과적으로 본다면 죽음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것이며, 사소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진리체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목숨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며, 그것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진리론에 대해서 정리하자.
진리란 단순한 것이다.
사전적 의미를 보니.
[철학]은, 진리에 대해서 '누구에게나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인식의 내용'이라고 주장하지만... 무한한 어리석음의 소치이다. 왜냐하면... '내가 사람이다' 는 말은 누구에게나 표편적인 인식 내용이지만, 논리의 법칙에 맞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논리]는, '어떠한 명제가 사실과 일치하거나 논리의 법칙에 맞음' 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
진리란, 지극히 논리적이다.
반면에 인간지식은 비논리적이다.
논리적이지 않은 앎에 바탕을 두고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 인간세상의 모든 지식들이다.
인간들의 '육체가 나다, 내가 사람이다'는 말... 그 자체가 논리적이지 않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진정한 현시대의 지성이라면, 이런 글들로써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이 어떤 삶일까에 대해서 사유할만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럴 만큼의 지성도 갖추지 못했거나, 용기 조차도 없다면... 과연 살아가야할 만한 가치는 있는 것일까?
현세상에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일념명상의 집 '도가' 가 있다.
진정한 지성인이라면 누구에게나 항상 열려 있는 곳이다.
이사람이 존재하는 날까지는.
그대와 인류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다음편... '정의' 에 대한 '정의'
-일념수행자들, 그리고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 그대들의 소감, 느낌, 앎들... 댓글로 남겨야 한다.
왜나하면, 지금 그 길을 찾아 헤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줄기 밝은 빛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