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중도 · 방편설 - 말변사

순수의식. 우주의식. 무의식. 잠재의식/ 마음과 지식의 관계 - 인류의 총체적 무지와 진리. [진리론]

일념법진원 2014. 11. 19. 07:28

지식은 진리를 모른다.

지식은 진리가 아니다.

지식은, 지식이 진리가 결코 진리일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만큼은 분명히 이해 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을 주장한다.

 

진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식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허구적인 것이며 미신이다.

사실. 마음은 지식이다.

지식이 없는 마음은 없다.

 

마음은 지식으로써 구성된 것이며, 지식은 말을 배우는 것으로써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문명은 배웠던 말들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써 역시 허구적인 것이다.

 

인간은 마음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마음이 사실적인 것이다'는 근거는 없다.

 

마음은 사실적인 것 같지만, 지식의 범주 이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식이란,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부터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웠던 말, 말, 말들이며, 그 말들의 뜻 또한 다른 말들로 구성된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순수의식이라는 말이나, 우주의식이라는 말이나, 잠재의식이라는 말이나, 무의식이라는 말은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이며, 지식이다. 마음이 있다는 말도 지식에 속하는 말이며, 마음이 없다는 말 또한 지식에 속하는 말이다.

 

 

사실. 마음이 있다는 말도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워서 아는 말이며, 순수의식, 우주의식, 잠재의식... 등의 말, 말, 말들 역시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워서 아는 말에 불과한 말이며, 마음이 아프다는 말, 자존심이 있다는 말들 또한 누군가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워서 아는 앎이며, 그 모든 앎들 역시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워서 아는 지식들이다.

 

그리고 그 모든 지식들은... 그대가 기억할 수 없는 생각들과 기억할 수 있는 생각들로써 구성된 것들이며, 단지 뇌세포라는 말로 표현되는, 기억세포에 저장된 생각들이며, 단편적인 소리들이며, 그 소리들에 다른 소리들로써 뜻을 부여한 낱말들이며, 낱말들의 조합에 불과한 것들... 그것들에 대해서 '마음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그 생각세포의 유기적인 작용에 대해서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욱 더 중요한 사실 하나는. 

그대를 구성하는 '자존심'이라는 마음 또한 '언어'로 구성된 것이며,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웠던 지식들 중 하나라는 것이며, 그 또한 '마음'이라는 단순한 소리에 대해서 다른 소리들로써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오류는... 그 마음이라는 것이 사실적인 것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나하면, 인간들의 마음이라는 것이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말, 말, 말로써 구성된 것이며, 더 나아가 그 바탕이 '신'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학이든, 과학이든, 미신이든... 모든 지식들은, 아니 인간들의 '내가 사람이다'는 앎 조차도 근거가 없는 말, 말, 말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언어, 즉 지식의 첫 출발점은 [내가 있다] 는 말과, [우리는 사람이다]는 말이다. 

 

 

만약에 '내가 있다'는 말이나 또는 '우리는 사람이다' 라는 말이 없다면... 다른 말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지식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이며, 마음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지식의 첫 출발, 즉 시작은 '내가 존재한다'는 말, 말, 말에서 시작된 것이다는 말이다. 만약에 최초의 인간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최초의 인간에 의해서 말, 말, 말이 시작된 것이며, 그 최초의 말, 말, 말이... '내가 있다' 는 말이다.

 

 

사실. '내가 있다'는 말... 그 말이 근거가 없는 말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사실. 사실이라는 말은. '일 사' 자와 '과실 실'자로 구성된 말이다. 예를 든다면 '과실'이라는 말과 같이 사실적으로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이라는 말, 말, 말로 표현된다. 

 

그런데, 인간은 생명의 비밀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이다. 

최초에 아담과 이브가 있었으며, 하나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피조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 인간 지식의 출발점이며, 끝이 없는 것이 지식이다. 이 나라에는 '단군신화'가 있으며, 그 단군이 인간의 시작이며, 지식의 시작이다. 그리고 홍익인간이라는 말에 대해서 사실적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하나님이라는 말이 없었다면, 단군신화가 없었다면... 그런 말들이 없었다면, 과연 인간의 기원은 무엇이며, 지식의 기원은 무엇겠는가? 

 

사실. 인류의 지식은 '신화(神話)'에 바탕을 둔 것이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신' 또한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 영혼, 성령, 불성, 단군신화, 하나님' 등은... 말, 말, 말들로써 존재하는 것일 뿐, 과실과 같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생각속에서의 상상물질들이라는 것이다. 그대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든, 생각이 일어나든... 그 생각들 또한... 기억세포에 저장된 언어들로써 구성된 허구적인 것들이 아닐 수 없는 것들이다. 

 

 

인간은 누구나 지식에 집착한다. 

뭔가 새로운 지식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며, 자신의 지식으로써는 결코 행복이나, 평화, 자유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지식이라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지식은 항상 이미 기억세포에 저장된 과거의 생각에 바탕을 둔 생각들의 범주 이내에서만 상상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미래를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그 미래 또한 이미 지난 기억세포에 저장된 생각들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는 생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신을 믿는 것도 지식이며, 종교를 믿는 것도 지식이며, 지식을 믿는 것도 지식이며, 자신의 마음을 믿는 것도 지식이며, 타인들의 말을 믿는 것도 지식이다. 그리고 그 모든 지식의 근원은 '단군신화거나, 하나님의 말씀이거나, 부처님의 말씀이거나, 신의 뜻이거나, 하늘의 뜻' 이라는 말, 말, 말들이다. 

 

 

사실. 순수의식이라는 말도 지식이며, 우주의식이나, 잠재의식, 무의식이라는 말 또한 지식이며, 지식이라는 말 또한 지식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지식'이라는 말 또한 근거가 없는 말이라는 것이다. '지식'이라는 말에서의 '知'는 '알 지' 자이며, '識'이라는 말 또한 앎 식' 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육하원칙이라는 법칙으로써 '지식'이라는 말이 어떤 연유에 의해서 창조된 말인지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

 

 

육하원칙이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라는 방식으로써의 논리적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또 다른 말이다. 그렇다면, 지식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알게된 것일까? 

그렇다. 그대가 어린아이시절부터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운 것들이 말, 말, 말이며, 그 말을 인식하는 것에 대해서 '지식'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니. 결국 지식이라는 앎은, 다른 것이 아니라... 말, 말, 말에 대한 앎을 이르는 말, 말, 말이다. 결론적으로 본다면... 인간은 말, 말, 말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며, 말, 말, 말에 의해서 지식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며, 말, 말, 말에 의해서 행위되어 지는 것이며, 말, 말, 말에 의해서 삶이라는 말을 아는 것이며, 말, 말, 말에 의해서 '고통'이라는 말을 아는 것이며, 말, 말, 말에 의해서 죽음이라는 말을 아는 것이며, 말, 말,말들을 사실적인 것이라는 앎에 의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며, 말, 말, 말이 모든 것이며, 말, 말, 말이 모든 것의 기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식은 결국 신화에 바탕을 둔 언어로 이루어진 것이며,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다. 인간은 그 말, 말, 말들 속에서 삶과 죽음... 고통과 슬픔, 환상을 사실적인냥 경험하는 것이다. 지식은 그토록 무모한 것이다. 해답이 없기 때문이며, 말로서 다른 말들을 지어 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의 근원에는 지식이 없으며, 오직 '신'만이 있는 것이지만, 신 또한 지식으로써만, 언어로써만 있는 것이다. 

 

 

이렇듯 근거가 분명치 않은 지식이 있기 때문에 근거가 분명히 있는 '진리'가 있는 것이다. 

지식은 '언어가 본래 있는 것' 이다는 가정하에서 창조된 것들로써 해답이 없는 것이며, 진리란 '본래 언어가 없는 것'이라는 앎으로써의 분명한 해답이 있는 것이다. 

 

지식은 신화에 바탕을 두고 '내가 있다, 사람이 있다'는 가정하에서 창조된 환상이며, 진리는 '신'이 본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바탕을 둔 앎으로써의 사실적인 앎이라는 것이다. 

 

 

지식은 상대적인 언어로써 절대적인 앎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 주장하는 허구적인 것이며, 진리는 상대적인 앎이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의 사실적인 앎이라는 것이다. 

 

 

지식은 선과 악을 분별하며, 나와 너를 분별하며,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삶과 죽음, 아름답고 추함, 인간과 자연, 자아의식과 우주의식을 분별하는 앎으로써 무위자연의 원리에 대해서 무지한 앎이며, 진리는 나와 너, 선함과 악함, 삶과 죽음, 크고 작음, 아름다움과 추함의 분별심이 사라진 앎으로써 무위자연의 자유를 아는 앎을 이르는 말이다. 

 

 

그대가, 아니 인간들이 진정한 행복이나, 자유, 평화를 누릴 수 없는 까닭은 자신의 마음(=지식)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이라는 착각에서 깨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근거 없는 지식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이라는 방식으로 세뇌 당했기 때문이다. 

 

진리를 이해 한다는 것은, 이와 같이 자신의 마음(=지식)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것이다. 육하원칙이라는 법칙에 의거하여 논리적인 사고로써 이해가 가능한 것이 진리이다. 

 

 

'마음이 있다'는 말과 '마음이 없다'는 말은 상대적인 말이다. 

'마음이 있다'는 주장과 '마음이 없다'는 주장 또한 절대적인 앎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상대적인 앎에 대해서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있다'는 주장이나 '없다'는 주장은 논리적일 수 없다. 상대적인 것에 대한 주장이기 때문에 편견이며, 단견이며, 소견이라고 하는 것이다. 

 

신, 영혼, 절대자가 있다는 주장 또한 그러하며, 없다는 주장 또한 편견이며, 단견이며, 소견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앎에 대해서 올바른 앎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며,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절대적인 앎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곳의 모든 말들이 그러하며, 예수와 소크라테스, 석가모니와 노자... 등의 말들 또한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대해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무위자연의 원리에 바탕을 둔 말이며, 진리이며, 방편설들이다. 

 

 

이런 말들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어야만 '도'와 인연있는 사람이며, 도가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사람이며, 더 나아가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삶과 죽음의 한계를 넘어서는 검증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인연있는자여,

그대에게 영원한 자유와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