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중도 · 방편설 - 말변사

제행무상/ 일체유심조/ 명색/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고집멸도와 무고집멸도 - 붓다의 메세지 요지/ 진리와 통찰

일념법진원 2014. 10. 30. 08:03

불경의 사구게 해석으로써 이미 여러차례 방편설로써 설명된 내용들이다.

다만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 의해서 우상숭배사상으로 전락되면서 서로 다른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으나... 모두 일맥상통하는 말이기 때문에 간략히나마 그 뜻을 전하려 한다. 

 

사실.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며 또한 하나가 모든 법이다 는 말이 있듯이, 사실 불경의 내용들 중에서 단 한구절만 올바르게 이해 하므로써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본 뜻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에 '제목의 구절들에 대한 해석으로써 더 자세히 설명하려는 것이다.

 

 

사실 제행무상이라는 말은, 인생무상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써, 세상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이며, 반복 순환되는 것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항상할 수 없다는 뜻이다. 즉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뜻이며, 다만 깨달아 아는 앎, 즉 진리만이 변함없이 영원한 것이다는 말이다.

 

 

사실 진리라는 말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으나...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의 앎이 진리이다. 여기서 '진리'라는 말은 진실된 앎으로써 죽는 날까지 변할 수 없는 앎을 이르는 말이다. 인간들의 모든 앎들은.... 종교에 세뇌된 자들이 이러 저리 다른 종교를 찾아다니거나, 신을 찾아다니거나, 영혼이 있다고 알기 때문에, 혼란스럽지만... 또는, 이리저리, 다른 명상센타들을 찾아 다니며... 이것이 참이다, 거짓이다, 라며... 혼돈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일념을 깨달아 아는 올바른 앎, 분명한 앎은... 신은 신이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 부처는 부처가 아니다, 영혼은 영혼이 아니다,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 는 앎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주장 따위에 동요되지 않는 앎이며, 여느 인간들의 언술이 뛰어난 말재간들 따위에도 절대로 흔들림이 없는, 마음의 동요가 있을 수 없는 올바른 앎을 이르는 말이다.

 

더 나아가 설령, 불치병에 걸리더라도... 도가의 단식법과 도가의 약식법으로써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 앎으로써, 모든 고통의 원인과 치유 방법에 대해서 까지도 아는 올바른 앎이기 때문에 진리이며, 진실된 앎이라고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마음 또한 본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분명한 앎으로써... 그 길, 진리를 목적으로 하는 삶이니...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모두 채워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모두 버려질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제행무상이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일체유심조' 라는 말이며, 12연기법의 '명색'이라는 말이다. 왜, 재행무상이냐 하면, 일체유심조의 설명과 같이... 세상천지만물이 마음으로부터 지어서 생겨난 것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이기 때문이다. 사실. 제행무상이라는 말의 '무상'이라는 말은, '無常'으로써 '항상할 수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 할 수 있지만... 이 또한 마음에 의해서 창조된 것들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本無' 라는 말과 같이 '본래없는 것'이라는 뜻으로써의 '본래무일물'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그렇다면, 본래 없는 것이며, 고통 또한 본래 없는 것인데, 왜 있는 것인가? 에 대한 부연설명이 '12 연기법'이며,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어린아이가 말을 배움으로써 아는 '앎'에 의해서 고통을 겪는것이다. 라고 설명한 바와 같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절대로 납득할 수 없는 말이... 앎, 즉 '지식이 있기 때문에 고통을 겪는것이다'는 말이다. 그 지식에 대해서 '앎식' 자의 '識'으로 표현된 것이다(불경이라는 잡서에는...)  그리고 그 '識'... 즉 인간들의 앎이 올바른 앎, 즉 진리가 아니라, '名色' 이다,는 말이 석가모니 가르침의 핵심이며, 12 연기법의 요지이다. 

 

사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이 '명색' 이라는 낱말의 뜻에 대해서 이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석가모니를 우상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사실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앎이며, 보편타당한 앎이며,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길을 가다거 건널목에 파란신호등이 켜지면, 건너가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상식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소리와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에서의 '소리와 형상'이라는 말이... '명과 색'이라는 말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며,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소리와 형상" = "'명색"] 이다. 

한글로 해석할 때, '소리' 와  '형상' 이며... 한자로써의 표기가 '이름 명' 자와 '빛 색' 자이기 때문이다.  

 

사실. 금강경 사구게에 대한 설명과 같이.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라는 말에서의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라는 말 또한 '명색'이라는 말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여기서 '이음성구아' 라는 말은... '음성이나, 소리' 라는 말로써 '이름 名' 자와 같은 뜻이며, '약이색견아'라는 말에서의 '色' 이라는 글자의 뜻 또한... '명색'이 '色' 이라는 글자와 같은 뜻이라고 설명한 바와 같이... 인간들의 모든 앎(識)이... '이름과 형상과의 동일시'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는 말이다. 

 

 

인간의 모든 앎, 지식은... 말, 말, 말, 언어로써 이루어져 있는 것들이며, 말을 아는 것이다. 지식이라는 말을 아는 것이며, 앎이라는 말을 아는 것이며, 뜻이라는 말을 아는 것이며, 의미라는 말을 아는 것이며, '이름'이라는 말을 아는 것이며, '형상'이라는 말을 아는 것이며, 지능이라는 말, 지식이라는 말, 영혼이라는 말, 절대자라는 말, 천국이라는 말, 지옥이라는 말, 삶이라는 말, 죽음이라는 말, 말, 말들을 아는 것이다.

 

그 뜻 또한 말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말변사라고 설명한 바와 같다.

별이 있다는 말을 아는 것이며, 달이 있다는 말을 아는 것이며, 이와 같이 '사과가 있다'고 아는 앎과 같이... 부처가 있다고 알며, 하나님이 있다고 알며, 영혼이 있다고 알며, 고통이 있다고 알며, 죽음이 있다고 안다. 그 '있다고 아는 것'들에 대해서 '앎식' 자로써 '識' 으로 표현된 것이며, 그 識 이... 올바른 앎이 아니라... '명색'의 동일시로써 아는 것이라는 설명이.... 12 연기법이라고 설명한 바와 같다. 

 

 

사실. 이런 말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도 있으며, 석가모니의 말로 전해지는 '식' 과 '명색의 동일시'로 설명하는 방법이 있다. 둘 다 설명하려 한다.

 

사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은(물론 예수의 말 또한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이지만...) '고집멸도'로 표현된 것과 같이... 모든 고통을 멸하는 도리가 있다고 했으며, 또한 '고통이 본래 없기 때문에 고통을 소멸하는 방법도 없다'는 뜻으로써 '무고집멸도' 라고 했다.

 

왜, 고통이 있는가에 대해서 '명색'으로 설명한 것이며, 명색의 동일시가 고통의 원인이기 때문에...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착각에서 깨어난다면, 깨달아 알게 된다면.... 고통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고집멸도' 라고 한 것이다. '본래무일물'이라는 말이며, 부처 또한 본래 없는 것이라는 말로써... 말변사라는 말이며, 말로 지어진 것들일 뿐, 사실적인 것은, 실재로 존재하는 것은 모두 본래 없다는 말이며, '인간의 관념으로써만 세상이 있는 것일뿐, 그대가 죽는다면, 그대가 없다면... 본래 없는 것이다/ 는 말이다. 

 

 

사실. '명색의 동일시'라는 말...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에게는 싱거운 말이며,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또한 '도가'의 '화원'의 일념법 강좌에서 설명하는 말들이...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강좌이며, 언어의 상대성'에 대한 강좌로써... 지식으로써도 이해는 가능한 것이지만, 듣되 올바르게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도가를 방문했던 일부 지성체들은... 여전히 우이독경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참고해야 할 말 하나는.... 말이나 소... 등의 축생들에게는 '명색의 동일시'로써 아는 앎, 지식, 말이 없다는 것이며, 오직 인간들만의 모든 앎, 지식... 들이 '명색의 동일시'이며, 그 착각에 의해서 삶과 죽음의 고통을 겪는다는 뜻이며,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다는 말이다. 

 

 

논리적인 설명으로써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인간들의 '내가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주체다는 앎, 지식이 착각이다/는 말이다. 사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인생의 유일한 길(道)라고 단정 짓는 까닭은, '내가 생각한다, 내생각이다'는 앎(識)이 착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깨달아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내가 생각할 수 있으며, 내생각이며, 내가 생각하는 주체라면... '내가 신 이다, 내가 절대자/다..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며, '내가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며, 나는 항상 기쁘다' 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나는 고통이 아니라, 항상 즐겁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만... '내생각이며, 내가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내가 자유의지가 있다'면... 내가 내 키를 늘릴 수도 있어야 하며, 내가 늙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하며, 내가 병들지 않을 수도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통념, 관념, 지식에 의해서... 내가 사람이다, 라고 단정짓는 것이며, 내가 죽는다'라고 단정 짓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의지' 라는 말이 있으나, 자유의지가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만약에 그대가... '나는 항상, 끊임없이, 영원히... 나는 기쁘다' 라는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고통이라는 생각이 없다면.... 고통을 해결해야 할 필요 조차도 없는 것이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 또한 사리지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석가모니가 깨닫고 난 후에 처음으로 했다는 말이... '별은 별이 아니다' 라는 말이라고 전해진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절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기 때문에... 부처의 제자라는 상을 내는 머리깎은 중생들의 '법거량'이나, '선문답'이라는 말재간, 언술을 겨루는 말로 오해 하는 것이지만...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비유이며, 사례이다.

 

'별은 별이 아니다' 는 말은...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콩은 콩이 아니다, 부처는 부처가 아니다, 삶은 삶이 아니다,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영혼은 영혼이 아니다, 신은 신이 아니다, 귀신은 귀신이 아니다, 더 나아가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등의 '인간의 모든 앎은, '識'은... 식이 아니다' 는 말, 말, 말들이다.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는 말과 '별은 별이 아니다'는 말에 대해서는 이미 수차례 설명된 말이며, 12 연기법의 해석을 통해서도 자세히 설명되었으며, 책에도 자세히 설명되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고... 다만 말이나 소... 등의 축생들에게는 '명색'을 동일시 하지 않음에 대해서 설명함으로써 마감하자. 

 

이 또한 이미 설명한 바 있는 사례인데, '공 두' 자가 쓰여진 '종이'와 '진짜 콩'이 있을때.... '콩이라는 글자'와 먹을 수 있는 '콩'은... 이름과 형상, 즉 '명'과 '색'이다/는 말이 '명색'의 뜻이며, 명색이 동일시라고 설명한 바와 같다. 콩을 즐겨먹는 '말(馬)은... '콩이라는 글자'를 콩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콩이라는 말을 모르지만... '진짜 콩'을 먹는다는 비유와 같다.

 

사실 지식은... "종이에 '콩'이라고 쓴 글씨(콩이라는 말)" = '먹는 콩' ... 을 동일시 하는 것이지만... 콩이라는 말과 콩은 다른 것이다,는 말이다. 진짜 콩(色)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며, 먹을 수 있는 것이지만... '콩'이라는 말, 낱말, 이름(名)은 '그것(色)'과 같은 것이 아니며, '이름' 과 '물질'은 동일한 것이 아니라, 별개의 것이며, 둘이라는 뜻이며, 다른 것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육체가 나다'라는 앎, 조차도... '육체=나' 라는 방식으로써의 '명색의 동일시'로써 올바른 앎이 아니라, 착각이다/는 말이다. 어린아이에게는..... 육체가 나다, 아니다... 는 등의 분별된 말이 없었다는 뜻이며, 삶과 죽음이라는 말 또한 본래 있던 것이 아니라...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착각이라는 말이니, 어찌 인간의 관념이나 통념이나, 지식 따위로써 이해 할 수 있겠는가?

 

 

인간세상에는 '진리'라는 말과 '통찰'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들의 모든 언어, 말, 지식으로써의 모든 자기주장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일 수 없다. 

하지만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의 '명색'이라는 말의 뜻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지식을 초월한 진리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모든 앎이 '명색의 동일시에 대하 착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기 때문이며, 이는 '진리'를 이해 하는 앎으로써, 올바른 앎이며, 참된 이치이며, 인간세상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진실된 앎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식을 초월한 앎이니, 진리이다.

 

사실 온전한 '진리'는 '통찰'이다. 

왜, 진리에 대해서 '완전한 진리, 또는 불완전한 진리' 라는 방식으로 분별하느냐 하면,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인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이해 하는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과라는 글씨를 쓴 종이, 이름(名)] 과... [사과라는 과일(色)] 은...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수차례 반복 설명하거나, 스스로 자세히 관찰하므로써도 지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에 대해서 지식이라고 한다. 반면에...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스스로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는, 단순히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는 말이나, 또는 '별은 별이 아니다'는 말에 대해서... '당연한 말이지... '라는 방식으로써의 이해 하는 앎이다. 빨강신호등과 파란 신호등을 분별하는 분별과 같이... 당연한 것이며, 보편타당한 앎이기 때문에 진실된 앎이다.

 

 

지식으로써의 '명색' 이라는 낱말의 뜻에 대한 이해는, "아, 내가 몰랐던 이런 지식도 있구나" 라는 방식으로써의 또 다른 지식으로써 남들과 겨루기 위한 수단이거나, 법거량이나 선문답과 같은 말재간들이 아닐 수 없으머,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 의해서 '경전'나부랭이들이 쓰여진 것과 같이... 우상숭배사상으로 왜곡되어,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며, 서로가 옳다고 주먹질을 해대거나, 전쟁을 일삼아야만 하는 짓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또 다른 지식으로써, 자기를 주장해야만 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지식으로써의 이해는 쓸모 없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명색의 동일시'에 대하여... 지식으로써라도 이해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약에 그 지식으로써 진리의 길을 갈 수 있는 바탕이 확립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진리의 길을 갈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지식 또한 가치 있는 앎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지식은 무용지물이지만, 올바른 앎일 때에는 진리와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에... 무용지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일념을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의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이해는, 지식을 초월한 앎으로써 지혜이며, '별은 별이 아니다'는 분명한 앎으로써... 더 나아가 '나는 나가 아니다, 마음은 본래 나가 아니다'는 앎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앎이기 때문에 '통찰'은 아니지만... 통찰의 바탕이 확립된 진정한 앎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앎인 것이며, 더 나아가... 무위자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앎인 것이다. 

 

 

사실. 우주 만상 만물, 그리고 자아가 있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진리, 도, 깨달음'은 '없는 것'이며, 다만, 통찰의 지혜로써, 진실된 말로 표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진실된 말들 중에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있으며, '예수의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말이 있으며, 석가모니의 '고집멸도와 무고집별도' 라는 말이 있으며, 또한 이곳의 모든 말들이 그러하며, 본래 말(언어)이 없던 것이었기 때문에 방편설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일념명상의 집 도가'는, 그곳이 어디이든 간에, 이사람이 존재하는 동안 머무는 곳이다. 

그 머무는 곳이 어디이든 '일념명상의 집 도가'는 이사람이 존재하는 동안만큼은 '일념명상의 집 도가' 로 이름 지어질 것이다.  

다만, 이사람이 어디에 존재하든, 그 존재에는 항상 분명한 원칙이 있다.

그 원칙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사람의 존재에 의해서, 그것이 누구든지간에 물질적이거나 심적으로 고통을 감내하게 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사람의 존재에 굳이 이유가 있다면, 어디에 머물든지간에 통찰의 지혜를 널리 전함으로써 사람마다의 근기에 따라 크거나 작거나, 이익을 얻게 하기 위한 목적이 유일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태어나기를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듯, 그대의 삶과 죽음 또한 그러하다. 

지식을 초월한 올바른 앎일때, 그때 비로소 행복, 자유,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지식은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워서 아는 앎이며.

지식을 초월한 앎은 그대가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이다.

그 법이 곧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다.  

 

지식으로써의 앎은 삶과 죽음의 고통이 있는 앎이며.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에는 '삶과 죽음의 고통이 없다는 앎이다.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