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한다.
하지만 그 '자유'라는 말에 구속된다.
사실은 자유라는 말과 구속이라는 말이 없는 상태가 있다면, 그것이 자유이다.
내멋대로, 내잘난 맛에 산다는 것들... 방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 자유로운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것들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위적인 것들에 대해서 벗어난다는 것은,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관념이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깨달아 알아야만 한다. '깨달아 알아야 하는 앎'이란....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웠던 모든 앎들, 말들로써 구성된 것이 '자아'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는 앎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사실 인간들의 모든 앎들이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웠던 것들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말에 대해서 조차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인간들의 지식이며, 자존심'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앎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빌려온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조차 납득할 수 없기 때문에... 광야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와 같은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세히 귀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는 말로 표현된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내가 생각한다, 내가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내생각이지만, 결코 그 생각들이 '내가 할 수 없는 생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진실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주체'라면.... 그대는. '내가 영혼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신, 절대자다' 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자유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며, 내가 부처다 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설령 '내가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머리에서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실. 일념법이라는 수행법이 있는데, 오직 그 방법에 대해서 '진리'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그 생각의 윤회를 끊어내기 위한 방법으로써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실. 마음 깊은 곳이라거나, 가슴깊이 새긴다는 말은 모두 지식으로써의 분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사람들의 지식은 이미, 지식을 초월한 지식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 절대자, 영혼, 귀신, 하나님, 부처님 등의 말들이... 공허한 말, 말, 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하는 앎이기 때문이다.
인간세상에서는 오직 그들만이, 그리고 상근기 인물들만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소리로 듣지 않고, 올바른 앎의 말로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사실.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지식에 대해서 머리, 뇌에서 수용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은 무척이나 어려운 말이다. 아니, 이해가 불가능한 말이다. 왜냐하면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지식의 최고지점에 이르게 되면... 그때, 일어나는 생각이 있는데.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생각이며, 이 또한 하나의 지식이다.
그때, 주먹을 들어 머리를 쥐어 밖는다.
그리고 외친다.
야 이 병신아... '육체가 나가 아니거든' 이라고.
이 말은...
지식으로써는 너무나도 분명히... '육체는 나가 아니다' 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는 하는데, 내가... 머리가... 이를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수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뿌리가 깊은 고정관념과 지식과의 마찰이며, 삶에 있어서의 마지막으로 남겨진 갈등이다.
그래서 다시 간다.
'육체가 나가 아니다'고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방식이며,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다.
'육체가 나다'는 생각도 '나'가 아니며,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생각 또한 '나'가 아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 라는 한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런 상태에 대해서 '일념의 무념처'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생각의 윤회가 끊어져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일념의 윤회가 지속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다 보면... '육체가 나다'는 생각도 '기억세포에 저장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각들 중 '하나의, 한조각의 생각'에 불과한 것이며,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생각 또한... 그 생각들 중의 '하나의 생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진정한 '앎'이 수면위로 드러나는 것이다.
'내가 있다, 내가 사람이다'는 생각이 허구라는...
사실이 아니라, 거짓말이라는...
'진리'가 아니라는...
이런 사실에 바탕을 둔 말들이...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요지라는 '반야심경'에 기록되어 있었다.
'공즉시색, 색즉시공... 불생불멸... 등이다. 12 연기법으로써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는 과정을 설명한 것으로 보아. 석가모니 또한 그런 경지를 경험했던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석가모니는 '생각'이 고통이라고 말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대신에 생각에 의해서 창조된 '말, 말, 말'들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고 설명한 것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별은 별이 아니다' 는 말을 비유로 들면서,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는 방식으로 설명했던 것 같다. '나는 나가 아니다, 나는 용도 아니며, 더 나아가 나는 사람도 아니다' 라는 방식으로...
사실. 예수의 말 또한 그러하다.
'너희가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라는 말과 함께, 몸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라고 했으며, 진실로 진실로 말하노니, 사람이 거듭남이 하나님 나라, 성령을 본다... 는 방식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육체가 나다, 아니다' 는 말이 올바른 앎이 아니라 분별이라고 하는 까닭은, '일념의 무념쳐'에서... 보는 것이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시절에,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알게되었던 '내가 있다, 내가 사람이다'는 말이... 사실적인 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본래 '나' 라는 것은... 상대적인 언어로 이름지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인간들이 주장하는 모든 지식들이 허구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본래 '내가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람이다'는 가정하에 창조된 상대적인 말, 말, 말들에 대해서 주장하는 것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시대의 최고급 지식이라면...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있다고 생각하든, 내가 없다고 생각하든... 한생각의 차이이며, 상대적인 말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설명하는 이유는, 그대 자신의 고정관념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있다'는 앎, 말과 함께 가공되어진 '자존심, 자존감'이라는 말이 사실적인 앎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타인들로부터 들었언 말들로써 '나를 구성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지적 이해만으로써도... 자기를 주장하는 일이나, 타인을 비방하는 일이 옳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는 가능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를 넘어선 앎을 원한다면, 일념법으로써 자신의 마음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사람들 모두가 이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면, 어찌 서로가 옳다는 주장 따위로써 고통을 자초하겠는가?
사람들 모두가... 이와 같이... '나는 나를 모른다'라고 아는 올바른 이해만으로써도... 작은 다툼이나, 사소한 모든 갈등은 사라질 수 있지 않겠는가?
서로가 서로에게, 아이가 어른에게, 어른이 어른들보다 더 순수한 아이들에게, 여자가 남자에게, 남자가 여자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동료가 동료에게, 보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서로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한다면, 어찌 다툼이나 갈등에서 빚어지는 논쟁이나 경쟁, 투쟁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아니한가?
그런 갈등이나, 다툼이 없다면, 최소한 '나는 본래 나가 아니다'는 올바른 지식의 앎만으로써도...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사실들... 굳이 광야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아니지 않은가?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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