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신비스러운 것이 인간들의 마음이다.
언술이 뛰어난 자들은 이제 깨달음에 대해서까지도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사실 '깨달음'이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진리'이다. 그리고 진리란, 원리를 이해 하는 앎을 이르는 말이다. 인간이 인간의 기원을 모르기 때문에, 우주의 기원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관념으로써 '진리, 깨달음, 도' 라는 말은 '신, 절대자, 유일자' 와 같은 뜻으로 이해 될 수밖에 없는 말이다.
그리고 사실. '언술이 뛰어난 자'라는 말은, '내가 사람이다'는 지성체의 말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진리체'들의 말이다. 예수가 인간들을 '어린 양'으로 비유하면서 했던 말이 '나의 말을 옮기는 자가 '그리스도의 적'이다, 는 방식으로 표현했던 말이다. 석가모니의 한글로 표현된 말은... '이원성이나 다양성의 앎으로써는 '도, 깨달음'에 대해서 '알음알이를 두지말라' 는 방식으로써 예수의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일 따름이다.
사실. 원리를 깨달아 아는 앎이 '진리'이다. [인간의 지식으로써의 해석이 이와 같다]
사실. '진리'와 한글로 표현되는 '깨달음'은 같은 뜻이며, '도가도비상도'라는 말로 표현되는 '도' 라는 말 또한 같은 뜻이다.
사실. '진리체'라는 말은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일 것이다.
인간은 지성체이며, 지성체는 이원성,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써, 언어로써 존재하는 동물이다. 반면에 '진리체'는 이원성의 한계를 벗어난 물체라는 뜻이다. '나는 사람도 아니다'는 석가모니의 말과 같이... 이것이다, 저것이다. 있다. 없다... 등의 이원성이나 다양성의 허구적인 언어의 한계를 벗어난 인물이기 때문에 '진리체'라고 한다.
인간은, 지성체는 이런 '진리체'에 대해서 '화신불, 법신불, 성령, 성부, 성자...' 등의 다양한 말들을 창조해 낸 것 같다.
'진리체'란 '나와 너'의 한계를 벗어난 인간을 뜻하는 말이며, 시간과 공간의 관념을 초월한 인간을 뜻하는 말이다. 그것을 증거하는 말이 있다면... 예수의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로써... 나와 너가 본래 둘이 아니다는 말이며, 석가모니의 '본래무일물'이라는 말이며... 더 나아가 '나는 용도 아니며, 신도 아니며, 부처도 아니며, 더 나아가 나는 사람도 아니다'는 말이다.
사실 생멸문이라는 말과 진여문이라는 말, 말, 말들.... 지성체들에 의해서 창조된 말이다.
이런이런. 국어사전에도 '진여'라는 낱말에 대한 설명이 있다.
진여 (불교) [眞如, tathata] 브리태니커
불교에서 궁극적 진리, 만물의 본체를 뜻하는 말. 여여(如如)·여실(如實)·여(如)라고도 한다. 변화하는 세계의 변화하지 않는 존재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을 말...
- 한글사전의 해석은 불교사전보다 더 가까운 설명이다.
- 우주만유의 보편한 본체라는 말과 현실적이며 평등무차별한 절대의 진리... 라는 말은 '진리체'라는 말로써 이해 한다면 말이다. 이와 같은 뜻에 대한 비유가 있다면... '너희가 마시는 포두주는 나의 피... 그리고 너희가 먹는 빵은 나의 몸이다, 는 예수의 말과 같은 뜻이다. 하지만... 그도 옳은 말이지만, 지적으로 이해하려 한다면... 우주의 원리를 이해 하는 앎, 인간생명체의 원리를 이라는 앎.... 이라는 말이 올바른 말이며, 적절한 표현이다.
- '평등무차별한 절대의 진리'라는 말 또한 옳은 표현이다. 진리체들에게는 분별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나 짐승이나, 벌래... 등의 무리들이나... 모두 똑 같은 중생무리들이기 때문이며, 삶과 죽음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것이 말, 말, 말들... 상대적인 언어 속에서만 있는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이기 때문에 '진리체'라는 말, 말,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 그들의 존재는 그져 존재 자체이다.
- 삶과 죽음이 없다. 더 나아가 내가 사람이라는 생각도 없으며, 내가 짐승이라는 생각도 없으며, 내가 우주라는 생각도 없으며, 내가 신, 영혼이라는 생각도 없으며, 내가 자연이라는 관념... 등의 고정된 관념이 없다는 말이며, 더 나아가 내가 진리라는 생각도 없다는 말이다.
- 다만... 그들 또한 전생과 미래생을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에... 인간들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인간은 삶과 죽음이 있다고 알기 때문에] 두려움과 고통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그릇된 앎이며,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여러가지 비유, 방편설들로써 널리 알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 그들, 진리체들은 자신을 위해서는 더이상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할일 다 해 마쳤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이던가. 소위 '대적광'이라는 집단에 소속된 여인들이 이곳을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횡설수설 자신들의 과거의 경험에 대해서 깨달음을 인정해 달라는 식이었다. 다른 정신나간자들에게 세뇌당하다 보니... 나도 깨달았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그 여인들 또한 마음수련이라는 곳에서 수년동안이나 헤매다가... 결국 다른 곳에서 또 다시...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게 세뇌 당하는 중이었다.
상관없는 일이다.
아무렴 어떠한가?
스스로 깨달았다고 생각하든 말든 그것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 스스로 평온함으로 삶 자체를 즐길 수 있다면... 무슨 상관이겠는가말이다. 만약에 스스로 깨달음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얻었다면 왜 다른 곳들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겠는가? 왜, 종교들에 이끌려 다니거나, 명상집단들의 언술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겠는가말이다.
세간에 '이것이 깨달음이다' 라는 책들과 또는 깨달음이 이것이다는 등의 깨달음에 대한 책들 까지도 많고도 많은 것 같다. 심지어 '깨달음은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으니, 말해 부엇하겠는가만은.
사실 인간세상이 참으로 기이하고 신비스럽기만 하다.
심지어 언술이 뛰어난... '소요-라즈니쉬'라는 중생의 말재간들에 대해서 까지도 깨달음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문명발전에 따른 현시대 인간들의 삶의 고뇌가 그만큼 더 깊어진 탓인 것 같다.
'영혼은 과학이 밝힐 것이다'고 말할 수 있는 자라면... 언술이 뛰어난 자다. 왜냐하면... 영혼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이곳의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설명과 같이... 언어라는 것들이 모두 상대적인 것들이며, 근거없는 주장들일 뿐, 사실적인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모든 주장들.... 상대적인 주장들... 모두 모두가 근거 없는 낭설들이기 때문이다.
인간들... 언제부터... 왜, 깨달음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일까?
아마도...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대, 몸을 바삐 움직이지 않으면 먹을꺼리조차 구하기 힘겨웠던 시대를 살던 사람들... 그들의 삶에서는 도, 깨달음... 등의 말, 말, 말들... 정신나간자들의 헛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먹고 살만 하니... 깨달음, 도, 진리.... 라는 것도 심심풀이삼아, 취미삼아서... 복권에 당첨되듯이, 또는 혹시, 우연히... 어쩌다 실수해서... 얻고 싶은 것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허헛. 참... 우스운 일이다.
그도 아니라면... 먹을꺼리가 부족했던 문명과 상관 없던 시대보다도, 현 시대의 아귀다툼과 같은 삶에서 지치거나... 또는 정신적인 고통이 더 힘겹다 보니, 그것을 찾고 싶은 것일까?
'대도무문'이라는데...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 이라는데...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다면... 여래를 볼 수 없다는데, 대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허긴. 그런 인격체, 지성체를 초월했던 인물들이 있었으니. 찾오봄직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인간의 역사를 온통 다 뒤져 보더라도... 인간세상에 진리체가 있었다면... 오직 예수와 석가모니 밖엔 없었는데... 그들의 말은 이미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 의해서 그 자취가 사라져 찾을 수 없는데, 이미 우상숭배사상으로 왜곡되면서 '우상의 대상, 신으로, 불성으로, 성령으로... 둔갑된 것인데, 그래서 우주 어디엔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즌데... 어디에 있는 것일까?
허헛 망상이다.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들이 우주자연계에서는 유일하게 인간동물들만의 무한한 어리석음인 것 같다. 차라리 자연상태에 있었더라면... 더 편안하겠지만, 자연상태에서 벗어난 인간무리들의 무명에 바탕을 둔 무지는 뛰어난 언술들만 늘어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서로로부터 끝없는, 끊임없는 갈등과 다툼만을 양산해 내는 것 같다. 인간류의 역사라는 것들 모두가...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한 전쟁들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전쟁들은 이어지고 있다.
인간드의 삶을 위한 경쟁, 투쟁들이 그러하며... 지구촌 곳곳에 벌어지는 살육전들이 그러하다.
참으로 신비스러운 것은. 이젠 깨달음에 대해서 까지도 '이것이 깨달음이다, 저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이런 것이다' 는 등의 책들까지도 무수히도 많은 세상이라는 것이다. 노자는 그것에 대해서 '도' 라고 이름 지었으며, 신비의 문이라고 했다는데...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 이라고 했다는데. 그런데... 깨달음이 있다고 주절거리는 자들은 대체 무엇을 안다고 떠드는 것일까?
깨달음이 있다, 없다는 말,말, 말들... 그 자체가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며, 분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조차 불가능한 것일까?
만약에 깨달음이 있다는 말과 깨달음이 없다는 말이 분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조차 할 수 없는 자들이라면... 그런 자들은 인간세상의 지식수준으로 보더라도 가장 낮은 단계의 무식한 자들이이다. 옛말에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자들에 속하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노자의 도관'에 대해서 조차 이해 할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앎에 대한 높고 낮음은 학문의 높고 낮음을 이르는 말일 것이며, 소위 고급 지식이라면... 대학을 나오거나 박사과정을 거친 정도일텐데, 그렇다면... 최소한 노자의 말이나 장자의 말들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가 가능할 수 있을텐데... 그런 자들이 깨달음에 대해서 언어로 단정짓겠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 가장 무식한 자들라고 아니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노자의 도덕경에는... 수많은 비유들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말들이 '분별'에 대한 어리석음에 대한 비유들이다.
그들의 가르침에 대한 대략의 요지는 언어가 상대적인 것이라는 말이며, 분별로써 이루어진 언어는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는 언어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결론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 또한 그러하다.
마음은 분별심이기 때문에 그 분별심에서 벗어나라는 가르침이 요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고집멸도'라는 말로써 '고통이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법 또한 본래 없다'는 말이 요지이다. 이 말은 또한 '고통이라는 말, 말, 말이 있기 때문에 고통이 있는 것'이라는 말로써 '언어가 본래 있던 것이 아니다'는 뜻이다.
말, 말, 말을 모르던 어린아이들에게는 고통이라는생각, 느낌, 관념, 마음이 없으며, 자연상태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 또한 그런 감정, 느낌, 생각, 마음 등의 말,말,말이 없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가 있다면, 무위자연의 자유라고 하는 것이며, 인간을 제외한 모든 것들의 행위에 대해서 무위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말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는 '내가 사람이다, 내가 존재한다'는 분별이 없다. 이런 말에 대한 인간의 생각은.... 그러면 어린아이를 바늘로 찌르면.... 그 아이는 통증을 모른다는 것입니까. 라는 방식으로 묻는다.
그 아이에게는 '내가 아이'라는 생각이 없다. 아프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반응이다. 인간은 그런 사건들에 대해서 기억하므로써 고통을 겪겠지만... 아이에게는 그런 관념이나 고정관념이 없다는 뜻이며... 자연계의 생명체들, 유기체들 모두가 그렇다는 뜻이다. 오직, '내가 사람이다'는 인간들만이 '내가 사람이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삶과 죽음 등의 고통을 겼는 것이다.
그런데,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이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이것이다'는 등의 뛰어난 말재간으로써 깨달음마져도 '있다, 없다'라고 분별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주의 근원에는 우주가 없다.
인간의 기원에는 인간이 없다.
언어의 기원에는 언어가 없다.
마음 안에는 마음이 없다.
'깨달음이 있다'는 말도 올바른 앎이 아니다.
'깨달음이 없다'는 말도 올바른 앎이 아니다.
깨달음은 깨달음이 아니다, 라고 알아야만 올바른 앎이다.
해탈은 해탈이 아니다는 앎이 올바른 앎이다.
마음은 마음이 아니다는 앎이 올바른 앎이다.
느낌은 느낌이 아니다는 앎이 올바른 앎이다.
감정은 감정이 아니다는 앎이 올바른 앎이다.
더 나아가. 나는 나가 아니다는 앎이 올바른 앎이다.
도, 진리, 원리, 깨달음, 득도를 하고 싶다면 포기해라. 그것은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언어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라. '언어가 없는 상태'라는 말 또한 말, 말, 말이며, 상대적이지 않을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하지만 동전이 없다면... 양면이 없는 것이며, '동전'이라는 말이 사라진다. 없다. '깨달음, 도' 또한 이와 같이 '본래 없는 것'이라는 말, 말,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변사' 라고 하는 것이다.
다만, 그대가 마음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 방법을 알고 싶다면... 그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따름이다.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유일한 방법이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남들의 마음의 표현인 남들의 지식 따위들, 남들의 말, 말, 말들 따위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닐 일이 아니라, 그대 자신이 내면에 묻고 물어서, 그대 자신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이 열려야만 한다.
도, 깨달음, 진리... 그런 것들은, 그대 자신의 밖을 향했던 마음이 내면의 평화를 경험할때, 그때 비로소 그 길... 깨달음, 도, 진리... 라는 말, 말, 말의 뜻에 대해서 이해가 다가오는 것이며, 그때 비로소 '진리의 길'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것이 마음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진리. 도. 깨달음... '그것'은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념, 잡념, 망념, 집념, 관념, 고장관념, 이상, 사상, 사념... 등의 모든 생각들 속에 가려져, 묻혀 있는 것으로써 '드러나 볼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념(念)' 자는 '생각할 념' 자이며, '상(想) 자 역시 '생각할 상' 자로써... 한글로써는 단순한 '생각'이라는 말이다. '사유(思惟)' 라는 말 또한 '생각할 사' '생각할 유' 자로써 '생각을 생각함'이라는 뜻이다.
그대의. 인간들의....
'내가 있다'는 생각도 그대의 기억세포에 저장된 '하나의 생각'이며,
'내가 없다'는 생각 또한 그러하다.
'내가 사람이다'는 생각도, 그대의 기억세포에 저장된 '한조각의 생각이며,
'내가 사람이 아니다'는 생각 또한 그러하다.
'내가 여자라는 생각, 내가 남자라는 생각 또한 그러하다.
'깨달음, 진리, 득도... 등의 말, 말, 말들 또한 경험에 바탕을 둔 각각의 낱말들이 기억세포에 저장된 것들이다. 그 기억된 생각들... 모두의 바탕에 있는 것. 그런 모든 말, 말, 말들, 각각의 생각, 생각, 생각들... 그 모든 생각들이 '일념명상법'으로써... 모두 사라졌을때, 그때 드라나는 '앎'이 있다.
'그것'에 대해서 소위 '깨달음, 진리, 득도....' 등의 말, 말, 말들로써 표현되는 것이다.
'그것'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의 기원이다.
'그것'에 대해서 '원리를 이해 하는 진리'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들은 '진리체가 아니라 '지성체'들의 설명이다. 지성체들의 생각이다, 지성체들의 말, 말, 말이다.
인간류의 역사라는 기록을 보니.
석가모니와 예수... 그 둘만이 지성체에서 온전한 진리체로써 진리로 거듭나 다시 태어나, 존재했던 인물들이다. 노자, 장자를 비롯하여 소크라테스 등은 지성체들이지만, 지성을 초월하여 올바른 앎을 전했던 인물들이며, 기타 이곳에 설명되는 다수의 인물들 또한 진리체는 아니지만... '도'의 방편설들로써는 '진리체'들의 가르침으로 본다면 손색이 없는 올바른 앎을 전했던 인물들이다.
굳이 오직 그들 둘에 대해서만, 명색이 '진리체'라고 하는 까닭은, 오직 그들만이 '인간의 고통의 원인에 대해서 [순수의식의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는 과정의 앎(識)] 분명히 설명했기 때문이며, 고통을 소멸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분명히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 방법이 '일념명상법'이다. 그들만이 유일하게 인간의 모든 고통의 원인과 그 고통을 소멸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오직 그들만이 시간여행으로써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시절'의 그곳에 다녀왔던 인물들이기 때문이며, 인간의 기원과 우주의 원리에 대해서 올바르게 아는 '진리'와 하나된 '진리체'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런 글들로써 무엇을 이해 할 수 있겠는가?
그대의 생각과 무엇이 다르며, 어떤 오류가 있는가?
이런 글들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다면,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일 것이며, 옳은 견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근기 인물일 것이며, 반신반의 한다면... 중근기 중생이며, 마이동풍격이거나, 우이독경과 같다면... 짐승보다 더 뛰어날 것이 없는 하근기 중생이다.
이 글의 요지는.
'도, 깨달음' 을 구하려는 자가 가장 어리석은 자이며, "깨달음, 도" 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안다, 모른다, 있다, 없다' 라는 방식으로 분별하거나... 지식으로써 잘난체 하는 자들이라면 인간으로써는 쓸모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무용지물이 아니라, 무용지물이라는 말이 첫째이며.
둘째는.
말도 안되는...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그것(깨달음)'에 대해서 말재간을 부릴 일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평화,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는 다른 것을 구하기 위해서 애쓸 일이 아니라, 우선, 자신의 마음이 왜, 편안하지 못한 것인지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말이며,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라는 말이다.
사실. 인간세상의 역사이래, 현시대만큼 '도, 깨달음'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었던 인물들이 많았던 시대는 없었다. 그만큼 지적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물질문명의 발전으로써 인간 삶이 그 이전의 삶들보다 더 힘겹기 때문일 것이다.
'도, 깨달음, 진리'란... 마음 밖의 세상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 자신의 고장관념으로 굳게 닫혀진 마음 안에 본래 있던 것이다. 깨달음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 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귀하고 귀한 인연있는 이들만의 몫이다.
삶이 있다면, 그 삶은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죽음을 경험할 수 없는 한, 누구나 인생의 초보자이다. 그대 자신이 스스로, 어린아이들이나, 그대의 자식들과 같이, 또는 그대의 이웃들과 같이.. 서로 서로가... 더 나아가 인간들 모두가.. "우리는 다 같이 인생의 초보자다"는 앎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면, 어찌 다툼이나 눈쟁이 있을 수 있겠는가?
서로가 삶의 지혜를 배우는 자들로써 존재한다면... 그런 삶이 가치 있는 삶인 것이며, 더 나아가 삶과 죽음의 한계를 넘어서는 검증된 삶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인연있는이들... 그대가 이해 하는 만큼, 댓글들로써... 그대의 이웃들에게 올바른 앎을 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올바른 앎의 시작이며... 이웃에게, 길을 모르는 이들에게... 올바른 길을 알리는 밝은 불빛을 비추는 일이니... 가치 있는 삶을 실천하는 일이 아니 아니겠는가?
인연있는이여, 그대에게 영원한 자유와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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