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중도 · 방편설 - 말변사

고집멸도/ 무고집멸도/ 십이연기법/ 명색/ 말변사/ 일체유심조 - 석가모니 가르침의 전체 요악서/ 사자의 서

일념법진원 2014. 10. 18. 05:33

사실 인간 지식의 한계, 지식의 무지는 '지식이 왜 끝이 없는줄도 모른다는 것 뿐만이 아니라, 지식이 가장 높다는 현시대 까지도 기원전 6 세기에 쓰여 졌다는 석가모니의 말들에 대해서 어느 한구절도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허긴 그렇기 때문에 석가모니를 우상숭배의 대상으로 여길 수밖에 없겠지만,

그러니.어찌 인간들의 지식에 대해서 무한한 어리석음이라고 아니 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어찌 생각하시는가? 

그렇지 아니한가? 

 

석가모니도 사람으로 태어났으며, 예수 또한 그러하며, 소크라테스도 그러하며, 노자 또한 그러하다. 사실 지금 이사람의 글들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말이 모두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설명되었으니, 이제 석가모니의 모든 가르침의 요점에 대해서 간략하게 요약 설명하려 한다. 

 

사실 예수의 가르침 또한 같은 맥락이라고 이해 한다면,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이다.

 

한가지 더 모든 사람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깨달음에 대한 상식이다. 사실 세상에 깨달았다는 자들은 많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정의 할 수 있는 지식이 없다. 그 가장 기초적인 지식 하나만을 알더라도 언술이 뛰어난 자들의 말재간에 속아넘어가진 않겠기에 전하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인간이 무지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경험이전의 사고'에 대해서, 즉 무의식, 잠재의식, 순수의식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깨달음이란 '일념의 무념처'에서 사념이 모두 사라짐으로써 -인간(자아)의 최초의 한생각이 일었던 순간-으로의 시간여행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그 최초의 생각을 기억해 내는 것이 아니라, 일념의 무념처에서 드러나 아는 것이며, 육체가 나라는 사실이 사실이 아니라 몽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으로써 깨어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르게 '깨달아 아는 사람, 진리를 말하는 자의 언어는 '자아와 대상'이 없는 '분별없음'이 필수적인 것이며, 고통의 원인을 밝힘과 동시에 그 고통의 해결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의을 소멸하는 방법에 대해서 '수행법, 방법'이라고 한다.

 

그 비유를 든다면, 예수의 모든 가르침에 전제되어 있는 말인 '너희가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라는 말이며, 석가모니의 12연기법과 연관된 '비구여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니, 그것을 관찰하라'는 말이다. 본래 연기법은 무명의 행위로서 말을 배우는 것이며, 그 말, 말, 말에 의해서 고통이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고통을 소멸할 수 있으며... 결국, '나가 나가 아님'을 깨달아 앎으로써 '고통이 본래 없다'는 '무고집멸도'이다. 

 

사실. 죽은자에게 생각이 있을 수 없듯, 말을 배우기 이전의 어린아이에게는 '나와 너' 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면.... 올바르게 깨달은 자란, 오직 석가모니와 예수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며, 이곳의 모든 글들 또한 그들의 말과 똑 같다는 사실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요약서로써 소위 '깨달음'이... 아, 그런 것이구나, 라고 이해 할 수 있기를... 

깨달음을 주장하는 자들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들인지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기를...

 

 

도가의 '일념명상법 프로그램' 강좌를 통해서 '도가의 화원'으로부터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비유 설명과 '언어의 상대성'에 대한 설명을 듣거나,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말이 아니라, 이해가 가능한 말들이며, 일상에서의 실천으로 다툼이 없는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인간 지식으로써는 감히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말이 '말변사' 라는 말이다. '말변사' 라는 말은 '말로 변화된 세상'이라는 뜻이며, 사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한구절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바로 '말변사' 라는 말이다. 

 

사실 '말변사' 라는 말은. 죽은자의 입장에서 볼때, 나도 없으며 우주도 없다는 말로 이해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나' 라는 말이나, '우주' 라는 말 또한 말로 지어진 것일 뿐,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는 말이다. 

 

 

사실 불교라는 종교에 세뇌당한 광신자나 맹신자들은 '고집멸도' 라는 말에 대해서 사성제라며, 사성제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하근기 중생들의 지식으로 볼때에는 '진리'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진리'라는 말의 뜻 조차도 이해 할 수 없는 자들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상관 없는 일이다. 

 

 

사실 '고집멸도' 라는 말의 한자의 뜻 그대로를 본다면, '모든 고통을 소멸하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이런 단순한 말에 대해서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 라는 말을 창조한 것은 석가모니가 아니라 언술이 뛰어난 하근기 중생들에 의해서 창조된 헛소리들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사성제라는 말을 창조하고 나서 다시 8정도라는 말을 창조하고.... 그것이 진리라고 떠드는 것이다. 물론 석가모니의 주장이 아니라, 언술이 뛰어난 하근기 중생들이 우상숭배를 조장하기 위해서 창조된 말, 말, 말재간들 중의 하나이다. 육바라밀 수행이나 기타 불교라는 집단의 위빠사나, 관찰수행, 관법, 명상법, 간화선 등의 모든 수행법들 또한 이미 어긋난 방법이다.

 

 

'고집멸도'라는 말은 '모든 고통을 멸하는 道, 즉 길이며, 法, 방법이다. 그리고 '무고집멸도' 라는 말은 '모든 고통을 멸하는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만.... 사실 '무고집멸도' 라는 말의 본래의 뜻은, 모든 고통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통을 소멸하기 위한 방법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는 말이다. 

 

고통을 소멸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 고통 또한 본래 없는 것이다'는 말은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지식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고통의 원인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 고통을 소멸하는 방법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 있다. 그 고통의 원인에 대한 설명이 '12연기법'이다. 인간들은 이 12연기법에 대해서 그져,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는 방식으로 지멋대로 해석하는 것이며, 심지어 연기법으로 깨달음을 얻었노라고 주장하는 가장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까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생로병사를 비롯한 "모든 고통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서 창조된 말이 12연기법이다.

갓태어난 아이가 말을 배우고 익힘에 따라서 생겨나는 앎(識)이 고통의 원인이라는 말이다. 그 '識'은 한글로 앎이며, 앎은 다른 것이 아니라, 지성체라는 말로 표현되듯이 언어이며, 말이며, 모든 지식이 고통의 원인이라는 뜻이다. 

 

 

사실 12연기법이라는 말은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12연기법에 대해서 앞서 여러차례 설명한 바와 같이, 십이연기법은 인간이 태어나서 말을 배우는 것이며, 말을 배워서 말을 인식했기 때문에, 그 배웠던 말들에 대해서 사실적으로 여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모든 고통은 본래 있던 것이 아니라... 말, 말, 말이 있기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이라는 뜻이다. 

 

언젠가 어떤 중생으로부터, 한글로 번역된 '금강경'이든가??? 를 본적이 있는데... 고통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고통이 있다'는 방식으로 설명되어 있었다. 그렇다, 고통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고통을 사실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이런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면...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다. 사실 도가의 '화원'의 강의 내용중에는 이런 말에 대한 비유 설명이 있는데.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착각에 대한 비유 설명이다. 

 

그 강의 내용을 보면, 석가모니가 깨다음을 증거하는 최초의 한구절이 '별은 별이 아니다'는 말이며, 이와 같은 방식의 비유에 대해서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그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사과라는 과일의 이름으로써의 '사과'라는 글자, 이름(명색의 '名)은 향기도 없으며, 맛도 없으며, 모양도 없으니... 그 이름과 '과실'은 같은 것이 아니라, 분명히 다른 것이라는 설명이 그러하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요지는 그 첫째가 이와 같은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착각에에서 깨어나라'는 말이며,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으로써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나는 나가 아니다' 라는 말이며,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는 말, 말, 말들이다. 

 

 

사실 석가모니는 '무고집멸도' 라는 말로써... 고통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통을 소멸할 수 있는 방법 도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그 고통의 원인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면, 즉 어린아이가 말을 배워서 말을 알게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면... (물론 책에는 어린아이의 성장과정, 말을 배우는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으니... 생략하고). 이제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있는데.... 사실 불경이라는 잡서(雜서)에는 그런 사실적인 방법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왜, 인간세상의 경전이라는 책자들에 대해서 모두가 '잡서'들이라고 하는 가 하면, 고통의 원인은 설명되어 있는데, 그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은 모두 무시된채, 오직 우상숭배사상으로 전락되면서... 너희는 원래 죄인이니. 부처님, 하나님... 등의 신들에게 무릎꿇고 빌고 빌고, 기도하라는 방식으로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말 또한 그러하니...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무리들, 정신 차리라는 말이며, 제발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지 말라는 말이며, 그 터무니 없는 주장들로써 다투거나 대립하거나, 갈등을 빚거나,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헐뜻는 그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라는 뜻에서 셜명하는 것이다.

 

 

이곳의 글들에 대해서 지식으로써 이해가 불가능하듯이, 올바르게 깨달은 자들의 언어가 우상숭배사상으로 전락된 까닭은... 그드의 말, 말, 말은 죽은자의 입장에서 보는 말이기 때문이다. 너와 나라는 상대적인 관념을 떠난 말들이기 때문이다. 너와 나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바탕을 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은 같은 말이지만... 이해 할 수 없는 것이다.

 

 

불경에는 그런 기록이 없으나, 한글로 해석된 석가모니의 초기의 말을 보니. 너무나도 분명하게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설명되어 있었는데. 그 말이 '비구여...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다, 수상행식 또한 이와 같다, 그러니 그것을 관찰하라'는 말이다. 이런 말 또한 이곳 카페에 수차례 반복 설명된 내용이며, 일념법, 일념명상법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미 충분히 설명된 바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시 말하자면. 

일념법으로써 '일념의 무념처'에 이르름... 즉 모든 사념이 사라진 상태에 대해서 '삼매, 무상삼매' 라고 설명한 바와 같이. 그 무상삼매애서 비로소 '육체가 나라는 생각일 뿐... '이라는 알아차림이 일어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나는 사람도 아니며... '라는 설명과 같이... (생략) ... "육체가 나다, 나가 아니다"는 방식의  이분법적 사고(=단견, 소견, 편견)방식이 사라진 올바른 앎으로써, 스스로 천상천하유아독존이 된다는 뜻이며, 이름하여... 명색이 '부처'가 된다는 뜻이다. 전식자, 유일자, 절대자 등으로 표현되는...

 

그렇기 때문에 '고집멸도'가 있지만, 깨닫고 나면 '무고집멸도'로써 고통이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고통을 소멸하기 위한 법 또한 없다는 말이 '무고집멸도' 라는 말이며, 말변사 라는 말이다. 

 

 

사실. 그 경지에서는, 에고의 관념으로 본다면 '나의 죽음'이다. 

인간은 육체의 죽음에 대해서 '죽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실은 육체의 죽음 또한 죽음이겠지만... 사실은 육체가 '나라는 생각'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일 뿐, 사실 만상만물이 그러하듯이 육체 또한 근원에는 근본물질이 '없는 것' 이듯... 또는 죽어서 썩어 사라지면 또한 근본원인이 없듯이... 몸은 '나라는 생각'의 환상물질이기 때문에 '육체가 나'가 아니라는 말이며, 죽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나라는 생각' 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는 생각이 개입되지 않는다면, 순수한 물질이라고 설명한 것이며, 그 물질에는 근본원인이 될만한 원인인자가 없듯이... '본래 없는 것, 본 무, 본래무일물, 아무것도 없는 것의 완전함' 이다.  

 

 

'본래 나가 아닌 것'에 대해서 '나라는 착각'으로 살던 꿈에서 깨어남을 이르는 말이, 환생, 재생, 불생불멸, 극락, 왕생, 영원한 삶, 영생, 천국, 천상... 등의 무수히도 많은 말들로 표현된 것이다. 

 

 

사실 모든 물질들의 근원에는 근원인자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과학이라는 학문들 또한 이해는 가능한 말인 것 같다. 우주가 있으나... 근본원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우주를 비롯한 천지만상만물들 모두가 '인간의 관념, 마음(나라는 생각)에 의해서 창조된 환상물질'이라는 말이며, 이를 이해 할 수 없는 인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창조된 말이 '일체유심조' 라는 말이다. '일체유심조의 더 깊은 뜻'에 설명된 말들에 대한 부연설명이다.  

 

 

'고집멸도, 명색, 말변사' 라는 말들... 모두 말로 지어진 허상들이라는 뜻이다.    

 

요약하자면. 

 

12연기법은 고통의 원인에 대한 설명이다. (갓내어난 순수의식의 아이가 말을 배우는 과정이며, 말을 익함)을 뜻하는 말이다. 

 

무명. 행. 식.... 명색, 육입=육식... 촉 수 애 취 생 노 병 사... 등으로 연결되는데... 감각기관에 대한 識, 즉 앎을 이르는 말이다. (앞서 자세히 설명되었으니, 여기서는 생략한다) 

 

무명이 있기 때문에, 행이 있으며, 행이 있기 때문에 식(앎)이 생겨났다는 뜻이 아니라.... '앎이 없는 어린아이의 상태가 '무명'이며... 아이의 행위에 대해서 '행(다닐 行)'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 무명의 행위에서부터 '말을 배움에 대해서 식(앎 識)으로 표현된 것이다. 말을 인식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識(앎)이 곧, 다른 것이 아니라... '名色'이라는 말로써 '이름과 형상과의 동일시' 이다. '별은 별이 아니다,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 나는 나가 아니다'는 방식이다. 그런 과정에 따라서 '앎(말)'이 생겨난 것이며, 그 앎(識)이 곧 감각기관에 대한 인식이다.

'눈, 귀, 코, 혀, 신체의 촉감 등의 다섯가지 감각기관과 감각기관에 대한 인식(뜻 意)을 합하여 '육식(여섯가지의 앎)'으로 표현된 것이다.

 

 

예수의 '너희가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라는 말에 해당되는 말이다. 

 

사실. 인간세상에 이와 같이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에 대해서 인간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있다, 내가 사람이다'는 말을 배운것은 '기억할 수 없는 경험이다. 기억할 수 없는 경험에 대해서... 사실이 아닌 것에 대해서 주장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삶에 대해서 '경험의 오류'에서 비롯된 몽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경험이 올바른 앎이 아니라, 편견이며, 단견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가 사람이다,는 말은... 내가 사람이 아니다, 는 말과 상반되는 말이며, 상대적이며, 배치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착각이며, 원리가 전도된 몽상이라고 하는 까닭이다. 

 

 

이사람을 굳이 사람이라고 가정한다면... 이사람은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이 아니라, 경험이전의 사고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이다. 사실 인간세상의 유구한 역사 이래 그와 같은 사고방식을 경혐했던 유일한 인물이 있다면, 고타마 싯다르타와 예수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말에 대해서 다시 설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말이 곧 나의 말이며, 나의 말이 곧 그들의 말이기 때문이다.

다시 설명하는 까닭은 그들의 말, 마의 말이...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 의해서 변질되고 왜곡되어 그 자취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상숭배사상으로 전락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세상에서는 오직 나의 말 만이 진실된 말이며,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말들... 모든 말들에 대해서 말변사라고 하는 까닭은, 이 또한 말로 이루어진 것으로써 본래 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가, 이 법은 나의 법이 아니며, 내가 창안한 법도 아니라는 말 또한 본래 있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알게된 앎이기 때문이다. 

 

 

인간세상에 나와 똑같은 마음이 있다면, 오직 싯다르타와 예수이다.

노자와 장자, 소크라테스, 유지-크리슈나무르티, 지두-크리슈나무르티, '라마-마하리쉬, 헤르만 헷세, 까비르, 사라하, 상카라... 등은, 나의 말을 설명하는 자들로써 올바른 앎의 경지에 가까이 다가선 인물들의 말이며, 다소 어긋난 표현이 있으되, 올바른 앎을 전하는데 있어서는 손색이 없다. 

 

이곳 카페에는 일념을 끼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 있다. 그들의 앎 또한 위 나열된 인물들과 같이 올바른 앎을 전하는 전도사가 될 것이며, 자신의 삶을 진정한 평화로움으로 재창조할 수 있는 인물들이며, 더 나아가 나와 하나될 수 있을 것이다. 

 

인연있는자여, 그대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이곳은 그 길, 방법에 대해서 전하는 곳이다.

그대 또한 경험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대 마음의 실체를 보기 위한 유일항 방법이기 때문에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인연있는자, 그대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