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금 여기에 천국이 있다'고 했던 인물이 예수의 말이란다.
사실. 그 말이 예수의 말이라면, 사실, 올바른 앎이라면 항상 천국이라는 말이 예수가 하고자 했던 말의 핵심이다. 다만... 하루종일 기도(일념법명상)하여 깨어났을때, 그때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말이며, 사람이 거듭난다는 말이며, 너와 나와 하나님이 둘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말에 더 깊은 뜻이 있다면, 인간이 스스로 깨달아서 '너 자신을 알라'는 말과 같이 자신을 모른다면... 차라리 죽음이 삶보다는 더 낫다는 말이며, 자신이 무엇인지 이해 조차 불가능하다면 살아갈 가치도 없는 것이며, 그런 삶들... 인간이 인간이면서 인간들끼리 서로가 죽고 죽이는 아귀다툼속에서의 투쟁을 위한 삶보다는 차라리 죽음이 천국이라는 말이다. 사실. 죽음을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이며,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써 가치 있는 삶, 검증된 삶을 살라는 뜻이다.
사실. 예수의 '지금 여기에 천국이 있다' 너희가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는 말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너희가 너 자신을 모른다면, 살아갈 가치도 없다' 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사실. 이런 말들 또한 올바르게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직 일념을 깨달아서 일념이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 하여 마음의 구성요소들에 대해서 깨달아 아는 인물들 뿐이다. 왜냐하면 만약에 지식으로써 이해 할 수 있는 말이라면... 종교나 명상센타들 따위가 생겨날 까닭이 없는 것이다.
일념을 깨닫지 못했다면... 사실 살아갈 가치도 없는 인간들, 중생들, 어린 양새끼들과 다를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며, 더 나아가 '깨달음은 없다'고 주장하거나, '이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이것이다' 는 등의 '깨달음'에 대해서 까지도 자기를 주장하는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에 대해서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해야 한다'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이다.
'짚으로 만든 개처럼... ' 이라는 말은 '도를 잘 깨달아서 언어의 상대성과 마음의 허구성에 대해서, 그리고 '도가도비상도'라는 말로써 '도는 도가 아니다' 라는 방식으로 설명했던 노자의 말이다. 이곳에 '노자와 장자'의 해석서가 있으니... 지적으로나마 이해는 가능할 수 있다. 물론 이해와 오해는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인간들의 앎에 대해서 두가지로 나눈다면, 그 하나는 학습으로써 아는 앎이며, 학습으로써 아는 지식은 모두 타인들의 말을 배우는 것이다. 학문으로써의 지식의 높고 낮음은 모두 도토리 키재기와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아이들이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듯이, 대학생이거나, 그들을 가르친다는 교수거나, 인문학을 강의 한다는 중생들 또한 마음에 대한 이해는 초등학생들의 마음에 대한 이해의 정도와 한치도 다르지 않은 무지한 것과 같이 똑 같은 앎이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차라리 어린아이들이 더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탐욕만 더 커지는 것이며, 욕망의 노예로 전락되므로서 추잡하기 이를데 없는 것이 인간들의 끝없는 탐욕이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라.
인간들의 삶들... 재물, 돈, 명성을 위해서는 몸도 팔고, 마음도 팔고, 얼굴도 팔고, 체면도 팔고, 자존심까지 다 팔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 다 버려져야 할 것들이다.
그대의 몸 조차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라질 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는 날까지 탐욕의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그러니 어찌 추한 것이 아니며, 가치 있는 삶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말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인간들의 지식의 한계이며, 지식이 많으면 많은 만큼 더 비참한 삶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모든 지식에 대해서 쓸모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며, 올바른 앎일때, 그때에는 무용지용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마도 일념을 깨닫고 '도가의 약식'으로써 현대의학에서 불치병으로 여기는 질병을 질병들에서 벗어난 인물들이라면... 메스컴에서 떠드는 의사들의 말들과 의약품을 파는 자들의 말들, 그리고 건강식품을 파는 자들에 대해서 '인간 쓰레기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병원으로부터 혈액투석을 권고받았던 사람들은 더 할 것이며, 수십년동안 고질병으로 병원이나 한의원을 찾아다녔던 사람들 또한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지식에 대한 믿음은 신을 믿는 맹신자들과 같아서 암보다 더 무서운 불치병인 것 같다.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은 '인문학 등의 강좌'들에 대해서 의학의 무지와 같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이라도 생겨난다면... 인간들의 모든 지식들은 하찮은 것들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모든 지식은 허구적인 것이며, 쓸모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깨달은 자가 있다.
궁극에 이른자가 있다. 다만, 그들은 '내가 사람이다, 아니다' 또는 '깨달음이 있다, 없다' 라는 분별이 사라진 앎, 진실된 앎으로써 인간생명체의 원리를 아는 앎이며, 더 나아가 우주의 근원을 아는 앎으로써의 지식을 초월한 올바른 앎을 전하는 일을 했던, 하는 사람이다.
지금 이곳의 모든 글들... '도가의 자연의 원리에 따른 단식법'과 인간의 모든 질병이 완치되는 '도가의 약식' ,그리고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서 '지식을 초월한 올바른 앎을 전하는 것과 같이..., "올바른 앎(진리" 에 대해서 소위 (명색이)'깨달음' 이라는 말, 말,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우주의 근원에는 우주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석가모니의 비유법인 '무고집멸도' 라는 말과 같이 '본래 법'도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본래 법이 없는 것'이라는 말은... 말, 말, 말(언어)가 본래 있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실. 이런 말들 또한 지식으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며, 오직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다.
도가의 '화원'의 일념법 강좌에서. 사과는 사과가 아니라는 비유의 '명색의 동일시' 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야만 이해 할 수 있는 말이며, 최소한 '노자'의 해석을 통해서 설명한 '언어의 상대성'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어야만 올바르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마이동풍'이가나 '우이독경'이라는 같을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말은 인간의 '지식'이라는 앎과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과의 앎과의 차이점과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있다'는 말의 뜻과 함께 시간과 공간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비유이며, 사실 '지금 이순간, 지금 여기에' 라는 말에 대한 무식한 자들의 주장이 오직 자기주장일뿐,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게 하기 위한 말이며, 논리에 어긋날 수 없는 말이다.
첫째.
사실 인간들의 지식이라는 것은 기원전 6 세기부터 현 시대까지도 '진리'라는 말만 창조했을 뿐, '진리'가 무엇인지 이해 조차 할 수 없다. 지식의 알음알이로써의 주장들(말, 말, 말들)과 '진리에 바탕을 둔 올바른 말'에 대해서 구분 조차 할 수 없는 무지에 빠져 있는 것이 현시대의 지성체들이다.
사실 진리란, '진실된 말'이며, 인간들의 통념이나, 풍습, 학습, 버릇 등의 지식으로써의 주장들은 하나같이 모두 거짓된 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이다. 인간들의 모든 앎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거짓된 주장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기 때문에 '진리'이며 '진리의 말'이며, 진실된 말이다.
이곳의 모든 글들.... 인간들의 지식으로써는 육하원칙에 따른 논리적으로 반대하거나, 반박할 근거가 없는 까닭은 인간들의 모든 앎들... 지식들이 진실된 말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며, 거짓된 자기주장들이기 때문이다.
그 사례는 지극히 단순한 비유로써 이해 될 수 있다.
가령 이곳 카페의 글들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켜 나가는 인물들의 다툼이 없는 평화로운 삶이 첫째 증거이며, 이곳의 글들에 댓글로써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가 깊어져가는 인물들의 삶이 그러하며, 또한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마음의 실체를 이해 하는 거룩한 인물들의 갈등이 사라져 가는 삶이 그러하며, 해답이 없던 인간 삶에 있어서 가치 있는 삶, 검증된 삶이 무엇인지 올바르게 이해 하는 사람들의 올바른 앎에 바탕을 둔 그들의 삶이 그러하다.
특히 도가의 자연의 원리에 바탕을 둔 "단식방법"과 '"도가의 약식" 방법으로써 온전하게 건강을 회복한 인물들이라면... 의학의 무식한 행태에 대해서 스스로 절감하는 일 또한 그러하며,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앎은 지식을 초월하여... 소크라테스의 말과 예수의 말, 노자의 말, 석가모니의 말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올바른 앎이라면, 어찌 종교나 기타 학문들 따위로써 그 이치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 조차 불가능 한 사람들이, 어찌 남들에 대해서 이해 한다고 주절거릴 수 있겠는가말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인문학의 열풍이라며 떠들어 대는 소위 지식층이라는 중생들... 그들의 헛소리들을 보면서 가치 없는 말들이며, 쓸모 없는 지식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는 사람들이 곧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다. 과학, 의학, 인문학, 철학, 종교학, 신학... 등의 학문들... 수천년 연구하지만, 그 결과는 아직도... 현시대에도... 소크라테스를 이해 할 수 없는 자들이며, 석가모니와 예수, 노자와 장자를 이해 할 수 없는 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시대까지도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종교나부랭이들을 비롯하여 과학명상이나, 기타 명상집단들까지도 서로가 옳다는 방식으로써의 자기주장만 일삼기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 것이다.
올바른 앎은 겨자씨 만큼도 없는데, 언술만 뛰어난 자들이 소위 지식층이라는 자들이다.
사실 이곳에 철학이든 인문학이든, 종교학이든, 의학이든, 과학이든, 심지어 옛 선사라는 중생들의 말재간들에 이르기 까지... 그 뜻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인간들에게 지식의 무지에서 깨어나라는 뜻이며, 진정한 자유와 평화 행복을 원한다면...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우선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부터 이해 해야 한다는 말이며, 그 방법에 대해서 인간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도 올바른 앎은 겨자씨 만큼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자기주장을 고집해야만 하는 인간들의 그 무지와 무지에 바탕을 둔 우주보다 더 무한한 어리석음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욕망은 모두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모두 채워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원인은 '마음'이라는 것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본래 없던 것이며, 허구적인 생각에 불과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지금 여기에, 지금 이 순간을 살라'는 말에 대해서이다.
사실. 인간들은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사실적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모르는 바 아니다. 서로가 진리라고 떠들어대는 종교나부랭이들이나, '지금 여기에' 라는 말로써 말재간을 부리는 명상집단들을 비롯하여, '지금 여기에' 라는 말로써 어리석은 자들을 속이는 자들이 '깨달음'이라는 말에 대해서 까지도 이해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물론 둘 다 어리석기는 매 한가지이다.
사실 '선한목자'에서 설명한 바 있으나, 삯꾼과 이리와 어린 양은 모두 같은 무리들이며, 지식에 묶인 자들이다. 그 중에서 언술이 조금 더 뛰어난 자들이 '이리' 이며, 언술의 뛰어남이 비슷하여 서로가 화합할 수 없는 무리들이 '삯꾼'과 '이리'로 나뉜 것이며, 그리고 그런 언술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는 자들이 길잃은 어린 양새끼들이며 비교적 선량한 인간들이다. 선한목자란... 도를 잘 깨달아서 올바른 앎, 진리를 전함에 있어서 목숨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깨달은 자들을 일컷는 말이다.
현시대에 비유한다면. (정치권에 대해서는 생략하자. 왜냐하면... 인간무리들의 삶 또한 벌래 무리들이나, 짐승무리들의 생존경쟁으로 본다면... 필요 악 으로써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며, 진리란 오직 인연있는 자들의 몫이기 대문이다.
사실. 이단이나 사이비를 비롯한 모든 종교무리들의 수장들이거나, 하수인들 모두가 삯꾼들이며, '이리' 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말재간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는 자들이 어린양들이다. 또한 인문학의 거장이라는 자들로 분류되는 뛰어난 언술을 가진 자들이 '이리와 삯꾼들이며, 그들의 말재간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는 자들이 어린양들이다. 또한 각종 명상집단들, 깨달음을 주장하는 언술이 뛰어난 자들이 삯꾼이며, 이리들이며, 그들의 말재간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는 무리들이 길잃은 어린 양으로 비유하는 비교적 선함에 가까운 무리들이다.
다만 이곳의 글들을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다면,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는 중생무리에서 벗어난 것이며, 더 나아가 일념을 깨달아서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한다거나 또는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하는 사람들이라면... 최소한 어린양 무리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라고 하는 것이며, 가치 있는 삶과 함께 올바른 앎으로써 이웃에게도 그 길을 알려줄 수 있기 때문에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다. 오직 그들만이 인간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평화라는 말의 본래의 뜻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생물들 중에서 시간과 공간에 묶여서 갈길을 잃은 중생들이 있다면 오직 인간동물들 뿐이다. 인간들은 과거가 있기 때문에 현제가 있으며, 미래가 있다는 착각 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시절부터 타인들로부터 그렇게 듣고 배운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리적인 설명으로써 시간과 공간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는 가능할 수 있다.
이미 수차례 반복된 설명이기 때문에 요점만 설명한다면.
사실. 인간은 현제를 경험할 수 없으며, 오직 과거만을 경험하는 것이다.
사실 현제가 없기 때문에 미래가 없다는 말이며, 석가모니의 연기법이라는 말에 다른 뜻이 있다면... 현제가 없기 때문에 미래가 없다는 말로써 이해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 그대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 순간 과거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며, 그대에게 삶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 그대의 최후의 미래이다. 하지만, (일념을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대는 지금 이 글들 또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려는 생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대가 전에 들었던 말들과 비교할 것이며, 그대의 생각과 비슷하거나 유사하지 않으면... 옳지 않다고 판단해 버릴 것이다. 특히 그대가 광신자거나 또는 다른 명상집단들에 세뇌 당했다면... 그대의 뇌는 그들의 뛰어난 언술에 이미 잠식당한 것이다. 광신자나 맹신자들을 비웃을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 설명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다면... 그대 또한 다른 지식들 따위에 세뇌 당한 것이며, 이는 광신자나 맹신자들과 다르지 않은 또 다른 방식으로 세뇌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들로부터의 세뇌에 의해서 그대의 뇌는 이미 잠식당한 것이다. 그대가 모르는 그대 안의 그대의 신의 뜻이다.
하지만 깨어날 수 있다.
이 글을 백번만 읽다보면.... 지적으로나마 이해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글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대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이곳의 모든 글들이 그러하다. 이곳의 모든 글들... 나의 말이 아니라... 그대 자신의 순수의식이, 그대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는 뜻이다.
지금 그대가 '지금'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기억세포에 저장된 과거이다.
'지금 여기에' 라고 더 빨리 생각하더라도 또한 마찬가지로 이미 과거의 기억일 뿐 현제가 될 수 없다. 지금 이순간을 살라는 말 또한 그러하다. 왜나하면 '이 순간'이라고 말하기 전에, 그런 생각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이미 일어난 생각이기 때문이다. 과거이다. 설령 찰나지간이라고 하더라도... 그 찰나 찰나가 이미 과거이며, 과거만을 창조해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라는 말도 거짓된 말이며, 지금 이 순간에 살라'는 말도 거짓된 말이며,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말 또한 거짓된 말이다. 하물며 희망찬 미래가 있다는 말은 어떠하겠는가?
사실. 그렇기 때문에 늦은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하는 것이며, 올바른 앎으로써 삶이 있다면... 그 삶을 항상 즐거움으로 창조해 나갈 수 있다는 말이며, 그렇게 창조해 나가라고 하는 것이다. 일념법으로써 올바른 앎이 드러나야만 가능한 일이다. 억지를 쓰면... 병이 나기 때문이다.
사실 '진리'란 본래 '원리'를 이해 하는 것이라는 뜻이지만.... 진실된 앎, 올바른 앎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타인들로부터 주어모은 지식으로써의 앎이 아니라... 일념법명상으로써 그대가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이며, 이곳의 말들은 그 비유법들이기 때문에 말변사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 그대가 안다는 그대의 앎들은 모두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워서 아는 앎이다. 그러니 그대의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일념명상법으로써 그대가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만이 올바른 앎이라고 하는 것이며,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 곧 그런 방식으로써 스스로 깨달아 알기 때문에 올바른 앎으로써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현제, 내일, 미래가 사실적이 아닌 바와 같이 그대의 마음은 허구적인 것이다. 과거의 올바르지 못한 앎들에 대해서 마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앎의 첫째는 일념법으로서 우선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며, 둘째는 그 올바른 이해로써 삶을 항상 즐거움으로 창조해 나가는 것이며, 더 나아가 마음이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 삶과 죽음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명색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식을 넘어선 올바른 앎일때, 비로소 몸을 야생동들과 같은 건강한 몸으로 재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육체가 나다'는 이분법적 사고(편견, 단견, 소견)방식으로써의 앎이 착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으로써 '원리전도몽상'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은 인간 삶을 위한 유일무이한 길이며, 깨달음을 위한 유일한 법이다.
왜나하면 남들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마음의 본질을 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인연있는 자, 그대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깨달음과 중도 · 방편설 - 말변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자철학 - 도가도비상도 / 석가모니 철학 - 본래무일물 / 도는 도가 아니다 / 법은 법이 아니다 (0) | 2014.10.19 |
---|---|
고집멸도/ 무고집멸도/ 십이연기법/ 명색/ 말변사/ 일체유심조 - 석가모니 가르침의 전체 요악서/ 사자의 서 (0) | 2014.10.18 |
깨달음은 없다 / 유지-크리슈나무르티 - 그는 누구인가? / 구루, 스승 그 어리석음과 무지 (0) | 2014.10.16 |
마음의 실체 / 두려움과 고통. 근심 걱정의 원인와 치유원리 - 내마음은 본래 내마음이 아니다 (0) | 2014.10.16 |
꿈의 해석 -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 대한 몽상 / 인간 삶의 허구와 실상, 원리와 진리에 대한 이해 (0) | 2014.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