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백과사전'에 기록된 "변증법"이라는 괴기한 말을 창조한 후... 그 법에 대한 논란들로써, 결론은 해답이 없다는 것이며... 다만 인간류의 모든 지식은 이와 같이 논란, 논술, 뛰어난 언술들로써의 자기 주장들일 뿐, 합리적일 수 없는 것이며 해답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설명 하고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류들의 모든 지식이 이와 같이 논란만 무성할 뿐, 해답이 없다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인식 함으로써만 지적으로나마 '진리'를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며... 비로소 가치 있는 삶, 더 나아가 검증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며... 사실,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자신이 모르는 사람들... 절대다수 인간류의 삶이란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자신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 아 래 - (백과사전의 변증법에 대한 논술, 언술, 논란, 논쟁들.... )
요약 변증법이란 실재 속에 모순구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모순율을 부정하는 특별한 논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의미의 변증법을 사용한 것은 헤겔 이후이다.
변증법에 철학의 방법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한 것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변증법을 대화술, 문답법으로 구사하였고 플라톤은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사유방법으로 생각했다.
헤겔은 변증법이 인식의 발전만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발전 논리라고 생각했다. 즉 모든 사물은 결국 정·반·합의 3단계로 발전한다고 생각했다. 헤겔의 변증법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이르러 유물론과 결합되어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계승되어 자연이나 사회도 변증법적 구조를 갖고 변증법적으로 발전해간다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목차
펼치기변증법이라는 말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 시대나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그 의미를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로서는 변증법이란 실재 속에 모순구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모순율을 부정하는 특별한 논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보통의 형식논리학에서 모순율은 절대적인 근본원리이므로 이 원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A는 B이다"이면서 동시에 "A는 B가 아니다"가 되므로 두 주장이 모두 성립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변증법은 이 모순율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형식논리학과 대립하는 논리로 이해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에서 변증법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헤겔 이후이며, 그 이전에는 전혀 그러한 의미를 갖지 않았다. 원래 변증법이 대화술이라는 의미였으므로 이는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사상이 다른 사람을 상대로 대화나 토론을 할 때 우리는 상대의 입장이 어떤 점에서 틀렸는가를 논증해야 한다. 즉 상대의 입장에 어떠한 모순이 포함되어 있는가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상대 입장의 모순을 밝혀낼 수 있다면 상대도 자신의 오류를 깨닫고 인정하고 우리가 옳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사상적인 대화란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모순율이라는 원리가 처음부터 당연한 것으로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입장에 모순이 있음을 지적받아도 결코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을 상대로는 토론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즉 모순율의 인정은 대화를 성립시키는 전제조건인 것이다.
따라서 대화술로서의 변증법은 본래 형식논리학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논리라고는 할 수 없고, 형식논리학을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성립한다.
이렇듯 변증법이라는 개념은 헤겔 이전과 이후에 전혀 그 의미가 달리 쓰이고 있는데, 여기서는 역사적 흐름을 따라 그 의미의 변천을 더듬어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논을 변증법의 창시자로 불렀는데, 제논의 변증법이란 바로 토론이나 변론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유일부동이며 불생불멸이라는 자신의 스승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을 계승해, 이 입장에서 '운동'이나 '다양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상이 얼마나 자기 모순을 안고 있는가를 논증하려고 했다.
그러나 제논의 변증법은 소피스트들에게 와서는 논의를 위한 논의, 반론을 위한 반론이 되고 말았다.
완전히 논쟁술로 전락해버림으로써 그 적극적 의의를 잃어버린 변증법에 철학의 방법으로서의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변증법을 대화술, 문답법으로 훌륭하게 구사한 철학자였다.
그는 아테네 시가에 나가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철학적인 문답을 나누었는데, 그것은 어떤 질문을 하여 상대방이 대답하면 그 대답을 찬찬히 짚어보면서 상대에게 모순이 있음을 자각시킴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진리를 알고 싶어하는 의욕이 생기게 하려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계승한 플라톤은 변증법을 학문의 최고의 방법으로 중요시했다. 다만 소크라테스의 경우 변증법이 실제로 타인과 주고받는 문답술이었던 데 비해 플라톤은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사유방법으로 생각했다.
원래 사상적인 대화는 반드시 실제 상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진리를 찾아 사색할 때는 언제나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면서 자기 자신을 상대로 대화한다고 할 수 있다. 사상의 발전은 이처럼 자기 자신과의 대화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플라톤과 달리 그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법을 학문의 방법으로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변증법은 통설이나 추측으로부터 출발하여 추론하는 논의로서, 개연적인 진리를 발견할 수는 있지만 참된 학문적 의의는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만 사유의 훈련으로서, 참된 인식을 하기 위한 준비의 의미만을 가질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고대와 중세를 통해 변증법이라는 말은 단순히 논리학의 일부인 변론술 또는 논리학 자체를 의미했지만, 근세에 이르자 칸트는 이 말에 다시금 중요한 의의를 부여했다. 칸트에 의하면 변증법이란 가상(假象)의 논리학, 즉 참인 듯이 보이는 오류를 비판하는 논리학이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단지 경험적 세계 즉 현상계를 인식할 수 있을 뿐이며 초경험적인 것, 예컨대 신이나 영혼 등에 대해서는 인식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의 이성은 본래 개개의 판단을 종합, 통일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어떡해서든 경험을 초월한 무제약적인 것을 찾으려고 하며 여기에서 오류가 발생한다. 칸트는 이 오류를 선험적 가상이라 불렀는데, 이를 밝히고 비판하는 것이 선험적 변증법의 임무이다. 즉 칸트에게서 변증법이란 플라톤과 같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적극적인 철학의 방법이 아니라 단지 참인 듯한 오류를 비판하는 소극적인 역할로 규정되어 있었다.
변증법에 가장 적극적인 의의를 인정한 것은 헤겔이다.
헤겔은 변증법이 인식의 발전만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발전 논리라고 생각했다. 즉 모든 사물은 결국 정·반·합의 3단계로 발전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존재 자체가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면, 존재는 적어도 발전의 제2단계에서는 모순적 구조를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변증법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즉 변증법은 모순의 실재를 인정하는 모순논리로서 모순율을 부정하는 특수한 논리가 되기 때문이다.
헤겔에 이르러 변증법의 의미가 달라진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변증법이라는 말의 의미가 달라지면 존재 속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상은 변증법적 사상이라고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헤겔은 "만물은 태어나서 유전하며, 만물을 생성하는 것은 사물의 대립"이라고 생각했던 헤라클레이토스를 변증법의 진정한 창시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를 변증법의 창시자라고 할 때, 이는 제논을 변증법의 창시자라고 할 때의 변증법과는 전혀 다른 뜻이 된다.
헤겔의 변증법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이르러 유물론과 결합되어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계승되는데, 마르크스주의에 의하면 모든 존재, 즉 자연이나 사회도 변증법적 구조를 갖고서 변증법적으로 발전해간다. 자연에서 나타나는 변증법은 자연변증법이며, 사회나 역사를 변증법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유물사관이다.→ 변증법적 유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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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첫 번째 책의 제목이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이며, 두번째 책의 제목이 "비밀의 언어" 이다.
처음 책을 쓰기 전에... "진리" 라는 이름의 "진실된 지식"에 대해서 세상에 알려야 할까, 말까에 대해서 잠시 사유한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깨달음" 이라는 것... "도" 라는 것... "진리" 라는 것이 세상에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라면 굳이 책을 써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책을 쓰기 전, 한 동안 인터넷을 통하여 위의 '변증법'에 대한 논란들을 비롯하여... '인류의 성인'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들의 남겨진 이야기들과 더 나아가 "신비주의자" 라고 알려져 있는 인물들의 글들을 두루 읽어 보면서 내린 결론이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라는 책을 쓰는 거였다.
왜냐하면 인간세상에는 이미 '진리(불변의 진리, 진실된 지식)'를 설명했던 인물들이 있었으나, 그들의 진실된 뜻이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전해지지 않았을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석가모니와 예수의 진실된 뜻이 왜곡되고 변질되어서 '우상숭배를 위한 잡서'로 둔갑된 것과 같이... 또는 "자기 무지" 라는 말에 대한 설명과 함께 "너 자신을 알라"던 소크라테스의 진실된 지식은 개그맨들의 '농담의 도구'로 전락된 것과 같이... 노자와 장자의 '도'에 대한 이야기들은 '괴팍한 도인'으로 여겨지는 것과 같이... 신비주의로 사상 따위로 여겨지는 것과 같이... 인간세상에 진실은 없고, 거짓이 진실로 포장된채... 인간류의 오랜 역사가 전쟁으로 일관되었던 사실과 같이, 현 시대 인간류들의 존재 또한 역사와 똑 같은 악순환이 반복되지만... 인간류의 지식이라는 것은 그런 사실 조차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인식할 수 없을만큼 무지에 빠져 있고, 완전하게 타락되어 가고 있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류 모두에게 진정한 자유와 행복, 평화가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방해 하는 것이 있다면... 인간류 이외의 다른 괴물이 있다거나 악마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위의 해답이 없는 논란들과 같은 '지식'이 '괴물'이며, 악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설명 하기 위해서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라는 책을 쓰게 된 것이며, '비밀의 언어' 라는 제목의 책을 추가 하여 다시 쓰게 된 까닭은....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라는 책을 올바르게 이해 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이곳 카페와 브로그를 통해서 좀 더 자세히... 여러 방편설들로써 '진실된 지식, 진리'에 대해서 다시 설명 하는 것이며, 아울러 "소크라테스"의 진실된 지식과 '석가모니와 예수' 그리고 "노자와 장자"의 진실된 뜻이 모두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을 현시대의 과학, 의학, 인문학을 비롯하여 여러 사건과 사고들을 사례로 들어 인간류의 사고방식이 절대로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더 나아가 '진실된 지식' 즉 '진리'를 설명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진리' 즉 "통찰의 지혜"를 얻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도 "도가의 일념법"의 설명과 같이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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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글을 지적으로나마 이해 하기 위해서는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 몇 가지가 있다.
첫째가 소크라테스의 "자기 무지"를 발견하는 것이 철학의 시작이라는 말과 "자기 무지"를 아는 것이 '진실된 지식'이라는 말과, 이와 같은 맥락으로써 "무지를 아는 것이 진실된 지식"이라는 말이며, 결론이 있다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다.
둘째는 "나사롓 예수"의 말로써 "나는 빛이요, 만유이다" 는 말과 "사람들은 모두 거짓되다" 는 말, 그리고 "지식의 저주를 끊으라"는 말에 이어서 결론은 "자신을 발견 하는자"가 곧 "나와 같이 되는 자"로써 이런 '비밀의 언어'의 해석을 발견하는 자는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셋찌는 "석가모니"의 말로써... "몸은 나도 아니며, 내것도 아니며, 나와 비슷한 것도 아니다"는 말과... 비아경의 "색은 나가 아니다" 는 말로써... 두 권의 책에 설명된 것과 같이, "육체는 나라는 생각일 뿐... " 이것도 아니며, 저것도 아니며, 다른 것도 아니다'는 설명과 같이... 사람들의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의 모든 지식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설명이다.
넷째, 노자와 장자의 '도관'에 대한 설명과 같이.. 그들의 말 또한 같은 맥락으로써 "지식은 무지몽매한 것으로써 사람을 해치는 흉기"라는 말을 비롯하여 '중도'에 대한 여러 방편설명들 모두가 "진리, 진실된 지식"에 바탕을 둔 방편설명으로써 인간은 단지 '인간'아라는 이름으로써 있는 것으로써... 모두 평등해야 한다는 원리와 원칙에 바탕을 둔 설명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는... 노자의 '명가명비상명'이라는 구절과 석가모니의 뜻으로 알려져 있는 "명색"이라는 말이 같은 뜻의 다른 표현으로써... 한글 금강경의 "고통"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고통이 있는 것이다" 라는 말과 같이... 모든 낱말, 이름들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이름"과 "형상"과의 동일시로써의 착각이며... 동시에 언어는 모두 상대적인 것으로써 존재할 수 있다는 설명과 같이... 언어는 사실적이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방편 설명들이 그들 성인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들의 진실된 뜻이라는 사실을 현 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써 설명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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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증법이라는 말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 시대나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그 의미를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로서는 변증법이란 실재 속에 모순구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모순율을 부정하는 특별한 논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보통의 형식논리학에서 모순율은 절대적인 근본원리이므로 이 원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A는 B이다"이면서 동시에 "A는 B가 아니다"가 되므로 두 주장이 모두 성립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변증법은 이 모순율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형식논리학과 대립하는 논리로 이해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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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람들... 인간류가 "모순율은 절대적인 근본원리" 라고 생각 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사람들 누구나 "자신이라는 존재가 본래 있는 것"이라는 착각(원리전도몽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란 참으로 단순한 것이다.
왜냐하면 '모순율이 절대적인 근본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나는... 즉 자신이라는 존재가 "언제 어디서 무어을 어떻게 왜" 라는 육하원칙이라는 법칙에 적용하여 사유해봄으로써 추상적인 개념으로써가 아니라 사실적인 해답을 발견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라는 존재가 본래 있는 것이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모순의 근본원인을 발견 할 수 없는 것이며... 위의 여러 주장들과 같이 말만 무성할 뿐, 해답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순'의 시작은 '자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남들을 의존하여 얻어진 '지식'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 누구나 자신이라는 존재가 "자아" 라는 말로써 스스로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까닭은... 단지 자신의 어린아이시절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며... 또한 성인들의 진실된 뜻을 이해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소크라테스의 말을 올바르게 이해 하려고 노력 했던 학자들이 있었다면... "자기 무지" 라는 말에 대해서 사유할 수 있었겠지만... 예수를 믿는 광신자들이 석가모니를 악마로 취급하는 것과 같이, 석가모니를 믿는 자들이 예수를 적으로 취급하여 서로 소통이 불가능한 것과 같이, "인간"이라는 이름으로써 동등하고 평등 해야 하는 인간들 누구나 (하나의 사례를 든다면...) '광신자' 또는 '맹신자'들과 같이...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권리나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언술이 뛰어난 타인들로부터 세뇌 당한 '지식'을 "나, 자아, 자기" 라고 인식, 인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써 무지몽매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는 뜻이다.
물론, 자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자신이라는 존재가 태어나지 않았었던 사실이 전제된 것이지만, 자신이라는 존재가 태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사유조차 불가능한 사실이지만... 논리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본다면... 자신이 태어나지 않아서 '본래 나가 없었다'는 것이 사실적인 것이라면, 지금 "나가 있다는 것"은 사실적인 것이 아니다'는 결론이 아닐 수 없다는 뜻이며... 이와 같이 '자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사실적인 것으로 본다면... '자신이라는 존재가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써... 둘 다 합리적이지 않다는 뜻이며, 이와 같이 인간류들의 "나, 자아, 자기" 라는 존재 자체가 모순으로써... 인간류에게 생겨나는 생로병사의 고통을 비롯하여 여러 사회 문제들 또한 해답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써... 인간류의 역사가 전쟁이었던 사실과 같이 인간들의 삶이란 끊임없는 악순환만 반복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뜻이며... 오직 그런 사실, 자신이라는 존재가 본래 없었다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깨달아 알아야만 비로소 가치 있는 삶, 더 나아가 검증된 삶으로써 무위자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며, 그런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설명 했던 인물들이 그들... 인류의 성인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들의 '지식'을 초월한 '진실된 지식'인 것이며... 스스로 깨닫고 나면 너무나도 당연한 지식으로써 보편타당한 앎이기 때문에... 죽는 날까지 변할 수 없는 지식이라는 뜻으로써 '불변의 진리' 라고 부르는 것이다.
인간류들의 모든 지식이 무지몽매한 것을 넘어서 참으로 신비스러운 까닭은... 자신의 두뇌에 저장된 지식을 "자신의 나, 자아, 자기" 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 모든 지식들은 남들을 의존하여 얻어진 것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유해 볼 수 있다면... 자신이라는 존재의 근본원인이 다른 것이 아니라... "남들로부터 얻어져서 두뇌에 저장된 '지식'이라는 사실과 더 나아가 두뇌에 저장된 지식을 총칭하여 "생각"이라고 부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어야만 가치 있는 삶,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갈 수있는 것이며, 그런 사실을 지적으로나마 사유할 수 있는 집중력이 있을 때에 비로소 '도가의 일념법' 수행으로써 스스로 그런 사실을 스스로 확인 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들 누구나... 자신이 스스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사실적인 것이라고 믿음으로써 분란, 논쟁, 논란을 넘어서 투쟁과 전쟁의 악순환이 끊임없이, 끝없이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현상이 있다면 종교들간의 서로가 진리라는 주장들로써...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이 보다 더 편협하고 옹졸한 사고방식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렇기 때문에 위의 변증법이라는 말을 창조하고 그에 대한 서로간의 주장들만 무성할 뿐, 해답이 없다는 사실과 같이... 학문을 연구한다는 자들과 지식을 주장하는 자들은 모두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며... 모든 종교나 여러 수 많은 학문들 또한 "소 여물통에 누워서 잠 자는 개와 같다"는 나사롓 예수의 설명과 같이... 지식은 전쟁의 도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인간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유일한 길, 법, 방법은 오직 진리를 아는 앎이라야만 한다는 뜻이다.
"진리, 진실된 지식"이란... 이와 같이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남들의 지식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자신이 스스로 아는 것'을 이르는 말이며... 그렇기 때문에 "너 자신을 알라"고 하는 것이며.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자신이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자신이 스스로 깨닫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도가의 일념법'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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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집중력이 9 초이며, 붕어 집중력이 12 초라는 연구 결과와 같이... 위의 설명들 또한 붕더보다 더 집중력이 낮은 하근기 중생들의 관념으로써는 보되 본 바 없는 것으로써, 눈 뜬 장님과 같기 때문에...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게 세뇌 당한 그대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라고 주절 거리거나 또는 '부처님 말씀'은 그게 아니라고 주절 거릴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또 다른 남들의 지식을 자기라고 생각하는 뛰어난 언술에 세뇌 당한 자들은 '남들로부터 얻어진 정보들'을 자신의 앎인냥 자기를 주장 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써... 대다수 인간류들의 지식은 무지와 어리서음의 한계를 넘어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세상에서는 가장 현명한 자들만이 '진리'를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며... 삶, 생명, 인생이 있다면 오직 그들만이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진리를 모른다면,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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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도가의 일념법을 의존하여 자신이 자신의 '생각의 원리'를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한다면... 누구나 중생이며, 한근기 중생들이라면, 이곳의 설명들 또한 단 한구절도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의 하단부에는 항상 "일념명상의 집 도가" - "개요 ===>" 라는 표시로써... "도가의 화원"의 '일념법 수행'으로써 얻어진 새로운 지식을 설명 하는 곳을 안내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두 권의 책'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이 한편의 글이나 다른 몇편의 글들로써 진리를 이해 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며... '도가의 화원'의 블로그는 진리의 앎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이 함축된 것으로써... 집중력이 붕어 보다 더 낮은 하근기 중생이 아니라면 누구나 지적으로써도 이해가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식'은 근거 없는 언어를 창조하여 무조건 "있다" 고 주장 하는 것이지만, 진리란 지극히 '논리적인 설명'이기 때문이다. (비유를 든다면... 지식은 '영혼"이 있다고 주장 하지만, 영혼이 있다는 근거가 없을 뿐만이 아니라, 사실, "사람, 인간"이라는 것, '이름' 또한 "언어로써만 있는 것"으로써 다른 근거가 있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거짓되다'는 예수의 진실된 뜻과 같이... '모든 고통의 원인은 지식'이라는 석가모니의 진실된 뜻과 같이... "도" 가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의 기원이라는 노자와 장자의 여러 비유 설명들과 같이... '너 자신을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과 같이...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자신이 모르기 때문에..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을 '자신'이라고 믿는 삶이라면, 그것은 자신의 삶이아니라, 남들의 삶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써 사실 살아갈 가치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말과 같이... 말은 말이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인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이와 같이, 거짓된 지식, 해답이 있을 수 없는 지식이 있기 때문에... 해답이 분명한 진실된 지식, 진리가 있는 것이다.
현 시대에 진리를 전하는 유일한 곳이 이곳, 일념명상의 집 '도가' 이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자신이 모르는 자신을 발견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모른다는 사실 조차 모르기 때문에 여러 종교나 명상, 도를 주장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하수인이 되거나, 잘 길들여진 강아지와 같이 그들을 추종하는 것이며... 자신의 몸을 자신이 모르기 때문에... 가설을 사실인냥 주장하는 학문들, 즉 의학, 생명공학, 종교학 등의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을 의존하므로써 더 큰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류 모두가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위한 유일한 길, 빕, 벙법이 있기 때문에 그 길, 진리의 길을 현 시대의 보펀적인 언어로 다시 설명 하는 것이며... 인간세샹에 널리 진리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며... 그대 또한 진리를 알고, 진리와 벗삼는 삶이 아니거나, 세상에 진리를 전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사실,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리와 인연있는 모든이에게 영원한 자유와 평화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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