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페미니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주간경향 | 입력 2016.09.13. 16:38 | 수정 2016.09.13. 16:41
 

ㆍ가부장적 권위 대신 ‘수평질서’를 만드는 감수성… 20·30대 여성 넘어 남성들도 관심 늘어

미디어는 종종 ‘여성상위시대’를 말했다. ‘여풍당당’ ‘여인천하’ 등의 제목이 달린 소식 들이다. 외무고시, 행정고시 등 각종 시험에 서 여성 합격률은 절반을 넘었다. 여성의 대 학 진학률은 남성을 앞질렀다. 미디어 속 세계에서는 양성평등이 멀지 않아 보였다. 그 러나 현실은 미디어가 조명하는 세계와 달랐다. 강유리씨(가명·26)는 성차별이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괴리감을 느낀다. “지금 우리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성차별을 겪어온 세대다.” 강씨는 1991년 생이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 ‘젠더사이드’가 많이 있었다.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면 여자 라는 이유만으로 태어나지 못할 뻔했다는 이 야기들이 꽤 있다. 내 동생만 해도 여자아기 라는 이유만으로 태어나지 못할 뻔했다.”

한국 여성으로 살면서 ‘생존’에 대한 답1990년대의 출생성비(여아 100명당 남아 수)는 116.5명(자연수준 106)이었다. 셋째아 이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93명까지 치솟 았다(1990년). 199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성비의 불균형 변동추이와 대응방안’ 보고서를 보면 당시의 남아선호사상을 짐작 할 수 있다. 1991년 당시 15~49세의 기혼여성 74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들이 꼭 필요하다’는 응답은 40.5%, ‘있는 것이 낫다’는 응답은 30.7%, ‘없어도 무관하다’는 응답은 28%에 그쳤다. 강씨의 말이다. “대놓고 ‘아들이 좋다’고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요즘은 다들 딸이 좋다고 말은 하지만 내 동생, 그리고 내 친구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다.” 성장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성장과정에서도 우리는 성추행을 겪는 등 범죄대상이라는 위험에 놓여 있었다. 범죄 피해자이면서도 비난받기까지 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생각한게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의 옷차림을 왜 지적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최근 들어와서 다소 분위기는 바뀌었지만, 평생 동안 그런 사건이 벌어지면 피해자를 탓하는 댓글을 보며 살았다.” 한국여 성정책연구원이 발간한 2015년 한국의 성평 등보고서에 따르면 강력범죄 남성 피해자는 4403명(2010년)에서 3237명(2014년)으로 줄어든 반면, 여성 피해자는 2만930명(2010년) 에서 2만1722명(2014년)으로 늘었다.

서울 시민청을 찾은 시민들이 ‘강남역 살인사건’피해자 추모글을 읽고 있다. / 정지윤 기자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강씨에게 페미니즘은 ‘생존’에 대한 답이었다. 강씨는 얼마 전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진행한 페미니즘 입덕 강좌 ‘다시 만난 세계’를 들었다. 페미니즘 관련 책을 혼자 읽어오기는 했지만, 강의를 듣고 사람들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만 접하다가 현장에서 강의를 들으니 느낌이 달랐다.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만 이야기할 때는 사람들끼리 굉장히 많이 싸우고 입장이 갈리면 서로 미워하게 된다. 그러나 강의를 들으니 서로 의견이 다르더라도 의견 차이에 여백을 두게 되더라. 강의를 듣고 연대와 관련한 부분에서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여성혐오,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 메갈리아, 넥슨 성우 교체 사건 등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 이후 강씨처럼 페미니즘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20·30대 여성이 늘고 있다. 민우회에서 ‘다시 만난 세계’ 입덕 강좌를 진행하는 김홍미리 연구활동가는 지금 한국 사회에 불고 있는 페미니즘 열풍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올해 들어 입문 강좌를 세 번 진행했는데, 매번 200명이 넘게 신청한다. 처음에는 70명 정도로 마감을 하려 했는데, 예상치를 훨씬 넘는 숫자가 신청을 해서 장소를 넓은 곳으로 옮겼다. 페미니즘에 대한 열풍이 부는 배경에는 착시현상이 있었다. 여성 상위시대, 성평등에 대한 과잉된 담론이 있었다. 그런 과잉담론이 있으니 한동안 성차별에 대해 말하는 게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있었고, 또 한편으로 이 사회가 그래도 안전하다고 믿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무너 졌다. 이 세계가 구축된 방식이 이상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고, 교육·문화 하나하나가 다 문제로 드러나는 시점이 온 것이다.”

20대 김동희씨도 강유리씨와 비슷하다. 그에게도 페미니즘은 ‘생존’과 관련된 것이다.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은 김씨에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여성혐오와 관련해 SNS 에서 논쟁을 하면 정말 별의별 말이 다 오간다. 일부 유저들은 페이스북에 ‘너 얼굴 기억 했으니까 찾아가서 죽여버리겠다’는 식의 메시지를 보낸다. 생각보다 꽤 많이 온다. 그런데 강남역 사건은 그 협박이 현실이 된 사건이 아닌가. 무섭고 놀라서 며칠 동안 학교를 못갔다.” 김씨는 한국 사회에서 20대 여성은 소수자이기 때문에 차별이나 혐오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사실은 크게 와닿는 부분이 없었다. 왜 남자애들은 여자애들 외모를 품평할까 이 정도였다. 나는 스무살이 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오빠가 있었는데, 외모나 옷에 대해서는 전혀 제재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옷을 대충 입고 가거나 화장을 안하고 가는 날에는 지적하는 말을 여지없이 들어야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후로 부딪히는 사회에서 나는 계속 불평등 속에서 산다. 자취방을 구할 때도 여자이기 때문에 안쪽에 있는 싼 방을 구하지 못한다. 안전 때문에 대로변에 있는 방을 구하느라 언제나 좀 더 비싼 방을 구해야 한다.”

여성의 자각 적극적 정치참여로 이어져

페미니즘 열풍의 중심에 있는 이들 20·30대 여성들은 온·오프를 넘나들며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는 얼마 전 ‘나의 첫 젠더민주주의 수업’이 라는 페미니즘 강좌를 열었다. 강좌를 기획한 최해선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은 “대다수가 20·30대 여성이었는데, 수강신청이 쇄도해 일찍 마감을 할 정도였다. 무작정 현장을 찾아온 사람이 있을 정도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고 말했다. 최 연구원이 강의 를 기획했던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망설이는 페미니스트’가 많다는 생각에서였다. “여 성학을 공부하지 않았고, 메갈리아에 동의하지 않지만, 또 나는 나대로 여자라서 억울한 일을 당했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데도 어떤 전문성이나 급진성이 상대적으로 적기에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말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생각했다. 이번 강의에서 그런 사람들의 갈급함을 많이 느꼈다.” 최 연구원은 지난 20대 총선에서 20대 여성의 투 표율이 오른 것도 이러한 연장선에 있다고 진단했다. “20대 총선에서 청년층 투표율이 올랐는데, 남성보다는 여성이 많이 올랐다. 이 현상이 최근 몇 년 사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여성혐오 논란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 한다. 여성들이 성불평등 문제를 더 명확히 인식하게 되었고, 과거에는 침묵하고 당하던 것을 더 이상 참아주지 않게 됐다. 유행이 지난 것으로 여겨졌던 페미니즘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관심이 커졌고,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매체·세미나·공동체가 생기고 있다. 이런 여성들의 자각이 적극적인 정치참여로 이 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20·3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페미니즘 열풍은 다른 사회 로의 전이 가능성을 시사 한다. 여성혐오나 성대결은 경제위기때 주로 불거 지는 논란이다. 대표적으로 IMF 사태 직후 불거진 ‘군가산점제 논란’이 있다. IMF 사태 직후 불안한 한국 사회의 좌절과 분노의 에너지는 남녀 간의 대립 구도로 전이됐다. 윤보라 여성학 박사는 <여성혐오 가 어쨌다구?>(현실문화·2015)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남성이 가지 고 있어야 마땅한 자원을 여성이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가져간다는 설정은 경제위기가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조차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매우 효과적인 힘을 발휘한다. 여성은 남성을 착취하고 약탈하는 존재로 재현되고, 이는 한국 여성이 비난받아 마땅한 가장 강력한 원인이자 근거로 작용하지만, 정작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시행되는 것은 대대적인 여성 ‘표적’ 정리해고였다.” 일베를 중심으로 퍼진 ‘여성혐오’ 또한 일견 IMF 사태 당시의 양상과 닮아 있지만, 이번에는 ‘여성혐오’의 끝에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질문이 떠올랐다. 김홍미리 연구활동가는 지금의 페미니즘 열풍을 “한국 사회가 다른 정치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느냐에 대해 처음으로 질문하고 있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런 맥락에서 페미니즘은 20·30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그리고 다른 세대에까지 확장성을 가지는 감수성이다. 숫자로 계량화할 수 있는 양성평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질서 자체를 바꾸는 감수성이기 때문이다. 김홍미리 연구활동가의 말이다. “가부장적 질서와 위계·통계·지배 이것이 한국 사회의 원칙이었다. 그 원칙으로 굴러가던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이대로는 뭔가 이상 하고 잘못됐다는 각성이다. 페미니즘은 서로가 서로의 옆에 있다, 연결돼 있다는 감수성 이다. 근대가 만들어 놓은 ‘완벽한 인간상’은 어떤 독립적 존재로 인간을 상정하고 끊임없이 완벽해지라고 요구한다. 페미니즘은 서로 지배하려 들거나 완벽해지려는 강박이 아니다. 그런 권력에 대해 꾸준히 저항하고 수평 질서를 만들어가는 감수성이 페미니즘이다.”

한국여성민우회 페미니즘 입덕강좌 ‘다시 만난 세계’ / 한국여성민우회 페이스북

이대로는 뭔가 잘못됐다는 각성

페미니즘은 가부장적 위계질서 속에서 억압받은 남성에게도 다른 가능성을 시사한다. 20·30대 남성들 중에서도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임명수씨(가 명·34)의 말이다. “처음에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중 하나로 페미니즘을 공부했다. 그 런데 계속 공부하고 알아가다 보니 대단한 위로를 받게 됐다. 이전의 나는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상에 부족한 면이 많았다. 운동도 별로 안 좋아하고 싹싹하게 위계질서에 맞춰 사회생활도 잘 못하는 부족한 남성이었다. 장남이다 보니 진지하고 차분해야 된다 는 압박들을 세상의 유일한 진리인 양 받아 들였는데,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내가 너 무나 부족하게 느껴졌다. 페미니즘을 만나면서 ‘그냥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내가 내 색깔대로 살아도 되는구나’ 하는 위로를 받았다. 내게 맞지 않았던 ‘사회적 남자’의 옷을 벗어던져도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여성들도 그런 맞지 않는 옷 때문에 괴로워하 고 있구나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강태이씨(22)도 페미니즘을 통해 ‘남자다움’이 아닌 ‘자신다움’에서 편안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소위 말하는 혐오발 언이나 행동들을 나도 모르게 하고 살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좀 무섭기도 하고 자괴 감도 들었다. 물론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계속 고민을 하고 말 한마디나 행동 하나하나 조심하려고 한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마음이 편해진 게 있다. 나 또한 남자라는 이유 만으로 강요받았던 부분에서 좀 자유로울 수 있게 됐다. ‘그냥 나는 나인 거구나’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편안함이 생겼다.”

물론 여전히 페미니즘을 둘러싼 남녀 간 갈등의 골은 깊다. 강태이씨는 “메갈리아 티셔츠를 SNS에서 올렸더니 생각이 안 맞다고 연락을 끊는 친구들도 있다. 이 격차를 어떻 게 좁혀가야 할지가 고민이다”라고 말했다. 김홍미리 연구활동가는 조심스럽게 희망을 이야기했다. 최근 페미니즘에 적대적일 것이라 여겨지는 군필자 복학생 모임, 상관 없을 거라 여겨지는 한의사 모임 등 각계각층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의 문을 두드리는 모임이 많아졌다. “여혐논란이 있었던 중식이 밴드도 페미니즘을 공부 중이라고 한다. 표현의 자유와 페미니즘이 ‘적대적 관계’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비판됐는데, 그 고비는 넘겼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적대적 관계 말고는 만날 수 없었던 것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그 국 면을 넘어가고 있는 시기라고 본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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