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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뇌 기억의 저장소???` /衆生의 無知/ "생각의 속성" - 1>시간과 공간의 관념

일념법진원 2018. 4. 27. 19:54

일체 유심조의 설명과 같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우주, 천지만물은 인간의 오직 인간만의 관념에 의해서 창조된 것들일 뿐, 실체가 없으며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육체가 '나'라고 아는 앎 또한 어불성설이지만 인간의 관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육체가 '나다' 라고 아는 앎- 이라는 말. 그 자체에 대해서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생각 없이 본다면 '정신 나간 놈'들의 헛소리쯤으로 여길 수도 있다. 인간으로써는 감히 상상조차 해 볼 수 있는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육체가 '나'는 아니다- 라고 했던 인물들이 있었으며, 있어 왔으며, 지금도 있다.

그런데, 또한 과학적으로나 또는 논리적으로나... 육체가 나다, 또는 육체가 내것이다, 라고 주장해야 할 근거가 없다. 그저 그렇게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다.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다 보니... 그저 낱선 곳에 여행하는 것과 같이 생소하게 느껴질 뿐이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워나가듯이 익숙해지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며, 보편타당한 앎이며 상식적인 말일 수 있다는 뜻이다.  

 

육체가 나라거나, 내것이라면... 그것은 내 뜻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실상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육체를 나라고 주쟁해야 할 근거가 아무것도 없다.

세상에 어느 누가 -육체가 나다, 라는 앎- 그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정의할 수 있겠는가?

타인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다는 사실 이외에 어떤 근거도 찾을 수 없다.

 

사실상 인간의 모든 앎이 그러하다.

 

생각의 속성과 이치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 시간과 공간 또한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오직 인간의 관념, 즉 상상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 사실상 인간의 모든 앎이 그러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희망찬 미래,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만, 오직 꿈일 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에는 두려움과 고통, 회한만이 남겨지는 죽음인데... 그곳에 대해서 희망이라 하니... 어불성설이 아닌가?

 

 

인간은 과거를 살며 과거에 속하며 항상 과거속에서 존재하다가 죽어서 또한 과거로 되돌아 간다. 현재도 없으며 미래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할 만한 분명한 근거가 있다. 다만 깊이 깊이 사유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대가 아는 모든 앎은 타인으로부터 들어서 아는 앎이다.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지식일지라도, 그것이 깨달음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일지라도, 그것이 영혼의 힘일지라도... 타인으로부터 들어서 아는 앎에 대한 이미지일 뿐이라는 뜻이다. 그대의 모든 앎은 그것이 어떤 앎이든지, 어떤 낱말, 언어, 명칭, 이름들에 대한 이미지이며 그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일 뿐, 실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어떤 이미지이든 언어, 말로 표현될 수는 있으나 그림으로 그려질 수 있는 이미지는 많지 않다. 그림으로 그려질 수 없는 이미지라면 환상이며 허상이다. 아궁이의 연기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흐르는 구름과 같다. 그리고 그림으로 그려질 수 있는 이미지 또한 환상일 수밖에 없다.

 

그림으로 그려질 수 없는 이미지, 환상, 허상들은 무엇인가?

신, 하나님, 운명의 신, 영혼, 귀신, 천국, 지옥, 행복, 평화, 자유, 시간, 공간... 등이다. 비물질을 표현하는  모든 말, 말, 말.. 언어, 이름, 낱말들이 그림으로 그려질 수 없는 말, 말, 말들에 불과한 것이라는 뜻이다. 

 

보거나 듣거나, 또는 촉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은 물질이며, 물질들 조차도 그것들의 근원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으니, 비물질이야 어찌 있는 것이겠는가?

 

인간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이 두려움이며, 두려움에는 실체가 없다고 하였다. 그릇된 앎이 그 원인이라고 하였으니... 그 실체를 찾아 분명히 알게 된다면 모든 두려움, 악에서 구원받는 것이다.

 

 

생각의 속성과 이치를 통하여 시간, 즉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실재하는 것이 아님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타인에게 묻는다면... 그 타인 또한 다른 타인으로부터 들었던 말들에 대해서 답변할 수밖에 없으니.. 올바른 앎이 아니다.

 

자신에게 물어보자.

매래가 있는가. 미래가 있는가. 미래가 있는가. ....... 열 번, 아니 백번, 아니 천번이라도 물어보라. 이 글을 모두 읽고난 다음에 계속 묻다보면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요약하자면... '미래가 있는가' 라는 물음 하나를 계속 이어나가다 보면... "미래가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 미래가 있는가, 라는 생각만 있다는 말은, 생각 속에서만 "미래가 있는가" 라는 말이 존재할 뿐, 실재가 아니라는 뜻이며 또한 '미래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마침과 동시에 '미래가 있는가'라는 생각은 이미 과거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 심사숙고해야만 짐작이라도 할 수 있으니. -

 

이렇듯 어떤 생각이든지 과거 진행형일 뿐, 현재도 미래도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지금은 있는가' 라는 한구절의 문구를 끊임 없이 묻다보면 또한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라는 질문이 끝남과 동시에... 생각함과 동시에 이미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라는 한구절의 생각은 과거가 되어버린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생각, 생각, 생각의 흐름에 대해서 감지할 수 없다. 

책 비밀의 언어와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를 통해서 자세히 설명되었으나...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충격 이상의 충격일 뿐, 실마리를 찾기조차, 아니 이해하기 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일념을 통해서 그 이치에 대해서 분명히 알게되면 어떨까? 

일념을 깨친 인물들에게는 이제 이런 글들은 싱거운 말들일 뿐, 신비로운 말도 아니며, 충격적이지 않으며 너무나도 당연하여 일반적인 상식에 지나지 않는 앎일 뿐이다. 

그것이 참다운 앎이며 지혜이다. 

 

생각의 속성과 이치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함께 일념의 깨우침.   

그런 앎들이 보편타당한 앎일때, 인생의 해답을 구할 수 있으며 그것이 곧 진리의 근원이며 바탕이다. 

 

 

인간의 삶에는 해답이 없다. 

돈을 벌기 위해서 비참하게 살아가다가 결국에는 죽어야만 한다. 

죽기 위해서 부지런히, 열심히...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니, 우주보다 더 무한한 어리석음이지만 해답이 없으니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운명의 신, 타령을 하거나, 있지도 않은 신의 노예가 되거나, 욕망의 노예가 되거나, 정신질환자가 되거나... 다른 방법이 없으니, 인생은 허무한 나그네인가? 

아니다. 

이제 그 분명한 길이 밝혀졌다. 

어떤 완전함. 불생불멸... 등의 수많은 말들을 만들어 놓고 그것에 대해서 궁리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그것의 이름이 '진리'일 것이다. 

 

과거를 살면서, 꿈속과 같은 환상의 세계를 살면서 고통을 감내해 나가다가 죽어야만 할 것인가? 

'진리'라는 것을 향해 올바른 길을 감으로써 시간과 공간,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여여한 삶으로 존재할 것인가는 자신의 몫이다. 

 

이름하여 '진리'의 길. 

그대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길이며, 인류 모두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길이다. 

인류 모두의 자유를 위한 길이니 '진리'이다. 

 

그대의 '나 아닌 나'. 

그것이 모든 것의 기원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  

출처 : 일념법 명상의 집- 道家 * 진리의 길-생명의 비밀-우주의 근원
글쓴이 : 진원 원글보기
메모 : 중생의 무지.. 생각의 원리와 뇌의 관계.. 뇌와 마음, 뇌와 의힉, 뇌와 영혼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