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기원을 앎은 우주의 기원을 앎이며 노자와 장자는 이를 '도' 라고 가명을 지었다.
본명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없음' 이다.
인간이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일어난 생각이 육체=나다라는 생각이었으며,
이것(육체)이 '나'이기에,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다라는 말이 시작되었으며, 이를 석가모니는 연기법이라고 하였다.
'나'라는 생각은, 육체=나다라는 생각이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확신하기에 스스로 가장 깊은 잠재의식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자리잡고 있었다.
근심, 걱정, 불안, 초조, 긴장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육체인 나의 완전하지 못함이 그 원인이다.
죽음을 경험할 수 없지만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모든 생각의 바탕이기에 제한된 삶에서 무엇인가를 성취해야만 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끊임없이 나는 언제까지 무엇인가를 해야만 된다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가장 큰 문제이다.
차라리 죽음의 날자가 정해져 있다면 어떠할까?
허허허, 세상사람들 모두에게 물어보라.
만족하여 행복하다 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육체=나, 즉 육체만이 나다라는 한정된 범위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은 사소한 욕망에 목숨을 걸고 있다.
잠시의 쾌락을 위해서, 재물을 모으기 위해서, 다른 나에게 보이기 위해서......
생각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도 없이 순간 순간 대상을 찾아다닌다.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생각은 없다.
스스로 묵상을 한다든지, 화두를 든다든지하는 것 조차도 생각 이전에 이미 결정되어진 것일 뿐이다.
하루종일 생각을 안할 수 없지만 하고싶지 않더라도 생각은 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시간동안에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생각에 대한 생각을 해 볼수는 있지만 생각에 대해서는 누구나 무지하다.
식사시간에 천천히 식사를 마치고 나서 식사시간 동안에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해 보라.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몇가지의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할 수 있는가?
생각은 찰나지간에 끊임없이 이어진다.
기억할 수도 없으며, 짐작도 예측도 할 수가 없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김치를 보았을 때는 김치라는 생각을 했었으며,
맛을 느낄때는 맛이라는 생각을,
신맛을 느낄때는 시다는 생각을,
옆사람의 젓가락 소리를 들었을 때는 듣고있다는 생각을,
저쪽에서 누군가가 "동해바다" 에서...... 라는 말이 들리면, 바다를 상상하며 파도를 생각하고 있다.
생각은 대상에 의해서 스스로 행위하고 있음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문명시대?
현대인은 스트레스에 의해 병들어 간다. 모든 질병의 원인이 생각의 번뇌에서 비롯된다.
생각은 스스로 다스리려는 노력이 느슨해지면 부정적이 될 수 밖에 없어진다.
모든 생각의 바탕에는 죽음이라는 두려움이 깔려 있기에 부정적인 요소에 지배를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념의 집중을 습관화 하여 생각을 휴식하게 하는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며,
모든 대상에 대하여 긍정적인 생각을 유도하기 위한 노력이 다음의 방법이다.
생각의 미묘함에 대해서는 짐작 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일념의 집중을 위해 노력을 했던 사람들에게나 짐작이 가능할 뿐이기에 이해가 쉬운 일도 아닐 것이다.
하룻동안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기억할 수도 없듯이 생각은 99%가 망념이다.
망념이기에 모든 경전은 "꿈에서 깨어나라" 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생각에 대해 이해할 수만 있다 하더라도 기쁨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는 생각에 대해서 이해하기 바란다.
이곳의 모든 글들이 생각에 대한 내용들이다.
생사이치 이해하고
생사윤회 이해하니
일념화두 분명하고
화두들고 살다보니
생사이치 뚜렷하네
본래없는 이름지어
마음이라 말을하고
본래없는 이름하여
인생이라 말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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