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매를 위한 일념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의 방법들이 있다.
유상삼매라 함은 일념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과정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다.
무상삼매라는 말은 사실상 무의미한 말이다.
삼매라는 말은 일념의 무념처를 뜻하는 말로써 이미 육체가 내가 아님을 알아차림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를 무상삼매, 또는 무념무상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것을 정의할 수 있는 말은 없다.
삼매를 위해서 노력하는 행위를 수행, 또는 공부라고 표현한다.
염불이나, 화두, 또는 자신의 행위를 관찰하는 방법등을 들 수 있으며, 호흡을 관찰하는 방법도, 숫자를 헤아리는 방법도, 또는 주력이라는 한 구절의 문장을 암송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러한 행위를 위해서, 즉 수행을 하기 위해서 일상에서 하는 일들을 포기해야 한다면 가치없는 일이다.
말을 배우기 전의 아이가 행위를 하듯이 어떠한 행위를 하든지 상관이 없는 일이다.
수행을 위해서 하루종일 앉아 있어야 한다면, 이는 미친짓이다.
몸이 망가진다.
앉아있어야 할 경우에는 편안한 자세를 취하면 된다.
허리를 펴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는 없다, 다면 가슴을 편다는 느낌으로 호흡을 관찰하면 되는 것이며, 오직 일념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면 무엇을 하든지 상관이 없다.
수행체험기에서 자세히 설명하였다.
생각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방황하고 있음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기억할 수도 없는 생각들은 망념이며, 이 망념에 의한 스트레스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된다.
하루종일 생각하면서 살지만, 하루일을 마친 뒤에 생각해 보면 기억에 남는 생각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망념을 일념의 집중으로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기위한 행위가 수행이다.
운전을 하는 일이나 또는 걸음을 걷는 행위와 같이 육체의 대부분의 행위는 습관에 따라 이루어진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을 제외한다면 나머지의 모든 행위에서 자신의 행위를 관찰하는 방법과 화두를 생각하는 습관의 시간을 늘려나가면 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내일을 모른다.
모르는 내일을 미리 생각하는것은 에너지의 소모일 뿐 아니라 전혀 소득이 없는 근심과 걱정일 것이다.
내일의 일은 내일 생각해도 결코 늦지 않으며, 미래를 생각하는 것 역시 부질없는 망념일 뿐이기에 근심과 걱정만을 만들어 내는 결과일 수 밖에 없는 것임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생각들은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념의 지속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일념화두를 이용하여 생각을 휴식하게 해 주는 결과는 마음의 평화는 물론 건강이 회복된다.
육체는 생각에 의한 환상물질이기에 생각이 휴식을 취함에 따라 자연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게 됨은 당연한 이치이다.
일상을 통하여 내가 우주의식임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화두하나 지니고 사는 삶이 자유로 가는 길이다.
근심과 걱정의 결과는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일이다.
걱정해서 해결될 일은 없다.
인간이 우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삶과 죽음은 하나이다.
그리고 죽음은 없다.
그대는 결코 죽음을 경험할 수 없다.
살아있는 자는 결코 죽지 않는다.
집착과 욕망을 화두에 투자하라.
무엇을 구하려는가.
그대가 우주의 기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