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라는 말은 이기주의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기주의는 상대성이다.
불이 일원론은 이원성이나 다양성이 용납될 수 없음의 표현이다.
모든 언어는 상대적이다.
그리고 '도', 즉 불이법은 대상이 없음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일체 유심조의 뜻이기도 하다.
일체가 마음(경험된 기억)이 지어놓은 환상이라는 말이다.
금강경을 많이 본 사람들이 말하는 거품, 헛개비, 꿈...... 이라는 말이다.
일체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라는 말을 보면서 불이일원론임을 알게 되었다.
보는자가 있기에 우주가 있다 하는는 말......
그 한마디면 족하다. (선문답이다)
보는자는 눈으로 본다고 알고있다.
눈이 있기에 보는 것이며, 눈으로 보기에 대상이 있음은 당연한 말이다.
반야심경에 무안이비설신의 라는 말이 있다.
무색성향미촉법이라는 말과 함께......
눈도 없으며 대상도 없음을 표현하는 말이지만, 에고의 생각으로는 말도 안되는 소리일 뿐이다.
허헛 개소리?이다.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가 한 말임을 알기에 개소리라고 할 수 없다.
감히...... 석존께서 하신 말씀이니, 어찌 하겠는가.
수천년이 지났지만, 이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른 사람이 해석을 해 주어도 믿지 않는다.
상카라의 불이 일원론을 깊게 이해한 사람이면 이사람의 말에 대해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엇그젠가 써놓은 글에서 음식의 맛이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생각과의 비교에 의한 분별이라고 설명하였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를 비교하여 해석하는 생각의 작용과 같은 맥락이다.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라는 저서에는 카메라와 눈과를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눈으로 보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산길을 가다가 딸기를 보았다.
그것을 처음 본 사람이거나, 딸기라는 열매에 대해서 전혀 들은바도 없으며 본적도 없는 사람은 관심이 없다.
딸기임을 알고있는 사람은 언젠가 누구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보자마자 어? 이것은 산딸기다, 이것은 복분자 딸기다. 라는 앎은,
과거의 기억속에 있던 지식과 현재 보았던 것과의 비교를 통한 생각에 의한 분석이다.
지식(경험된 기억)이 없다면 이것이다 저것이다 라고 분별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보는자의 생각에 의한 분별이라는 말이다.
눈으로 보았으되 눈이 본것이 아니며, 과거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을 비교하여 해석하는 생각의 작용이라는 말이다.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공은 공이 아니되 공이라는 말의 뜻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이해한 사람들일 것이다.
이름과 대상과의 동일시에 대한 허구에 대해서는 이곳 인간의 기원, 우주의 기원에서도 충분히 설명되었다.
불이 일원론의 기초적인 설명이다.
아인슈타인의 말 중에서,
무한한 것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우주이다, 하지만 우주가 무한한 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우주보다 더 크다는 말이다. 무지 역시 가공된 것이니 실망할 일은 아니다.
또한 상대성이론의 간단한 설명에서,
뜨거운 난로에 손을 대고 있으면 1분이 한시간 인것 같지만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있으면 한시간이 1분인 것과 같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상카라의 불이 일원론에서는 인간이 육체를 나다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뱀과 새끼줄을 비유하였다.
한번 오인하게 되면 돌이켜서 확인해 보지 못했을 경우에는 그것을 당연시하게 된다는 말이다.
육체가 나다라는 착각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하였다.
21세기? 의 과학은 우주와 인체를 분석하고 더 세부적으로 분석한 결과 본질은 아무것도 없었음을 밝혔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음에 대해서 다시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에고의 삶이다.
왜? 아무것도 없는 것일까? 라고...... 석가모니는 이를 무지라고 말한 것이다.
본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라는 말은 석가모니를 비롯하여 생각의 이치를 깨우친 인물들의 공통된 말이다.
나라는 생각이 있기에 보는자의 생각의 작용임에 대해서 수없이 많은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였다.
이 사람이 석가모니의 말이지만, 본질이 왜곡된 말들에 대해서 다시 설명하는 것이다.
에고의 삶이지만,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때 까지 육체만이 나다 라는 착각에 의해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죽음이 두려운 나머지 종교에 의지하고 사후세계를 운운하며 끊임없는 근심과 걱정, 번뇌와 망상으로 고통을 당한다.
한치앞도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죽을때까지, 죽은 다음까지 걱정은 끝이 없다.
욕망에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고통을 당한다.
생사이치를 깨우친 인물들은 인연있는 자들이나마 그 이치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길(도)을 안내하지만......
오죽하면 백천만겁 난조우라는 말을 했겠는가.
상관없는 일이다.
생각의 이치를 깨우친 인물들이 불이 일원론을 연설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가지는 인연있는 자들에게 진리의 길을 알려줌으로써 스스로 깨달은 다음에 인류에게 평화로운 삶의 길을 제시하게 하기 위함이며,
둘째는, 근기?가 약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서 욕망을 버림이 평화로운 삶이라는 길을 제시한 것이다.
인간의 삶은 이기주의적일 수 밖에 없기에 자신의 나를 위해 다른 나를 악용함에 대해서 전혀 죄의식조차도 없다. 다른 나가 이웃에서 죽든지 말든지...... 관심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죽으면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걱정을 하고 있음을 당연시 한다.
자신의 자식만 합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어리석음......
다른 자식은 떨어져라 하고 기도하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모른다?
육체는 자연의 일부이다.
동물이나, 곤충, 벌래, 나무와도 같이 언제, 어느때에 죽을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예수는 육체에 대해서 질그릇에 비유한 것이며, 석가모니는 육체는 손톱위에 올려놓은 흙만큼도 내가 아니며 내것도 아니라고 말하였다.
욕망이 많을 수록 나약할 수 밖에 없다.
무욕이 지혜라는 말이다.
깨닫고 아니고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자신의 나만을 위한 삶에서 다른 나를 위하여 배려하는 삶이 에고에게는 가장 평화스러운 삶이다.
시시비비를 가리지 말고, 끝없이 좋고 나쁨의 분별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배우기 바란다.
자신의 앎이 옳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모두가 평화로울 것이다.
보는 자의 생각,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지 말라는 말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그대가 모두를 사랑하면,,,,,, 모두가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