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언어의 실체를 아는 앎이 참다운 앎이다.
언어, 말, 말, 말은 "아무것도 없는 것" 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불립문자, 말변사, 방언 등으로 설명되었으며 경험, 즉 기억에 바탕을 둔 사람들은 언어의 근원, 나의 기원에 대해서 알수 없기 때문에 고통과 괴로움에서 해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아라는 말 또한 방언이며 불립문자이기에 알음알이 이다.
한자로 번역되면서 나는 없다, 라는 말로 해석되면서 수많은 구도자들이 정신질환을 겪는다.
무아라는 말의 뜻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유아로 표현해야한다.
무아라는 말을 무유아라는 말로 표현하게되면 그나마 조금은 이해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불경의 어디엔가 무유공포라는 말이 있다.
무 공포로 표현된다면 공포가 없다, 라는 말로 해석되어야 하기 때문에 올바로 이해할 수 없으나... 공포가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로 해석된다면 공포라는 말이 있으나... 그것이 실재하는 것이 아님으로 납득할 수 있는바와 같이......
무아라는 말 또한 무유아, 라는 말로 표현됨으로써 "나"라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나라는 것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이와같이 모든 것, 즉 언어로 존재하는 것들이 있지만 그것들의 근원이 본리 있는 것이 아니듯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무아라는 말에 대해서 나는 없다, 라고 아는 그릇된 앎으로 공부를 한다면 그 길은 바로 갈 수 없는 길이다.
나, 라는 말은 육체를 뜻하는 말이다.
삶을 경험하는 나...
육도윤회라는 말로 표현되는 희로애락을 윤회하는 생각에 이끌려 살아갈 수 밖애 없는 나... 그것이 진정한 나는 아니라는 말이며...
수행을 하던 나에서 행위자인 육체가 내가 아님을 깨달아서 아는 나로써 존재하는 나.... 그것이 내가 아님을 알아차리는 나에 대해서 부처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며 하나님 나라이며 성령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하지만 이를 납득할 수 없으며 오직 분별로써만 깨우친 인물들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가려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있지만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카페의 글을 충분히 반복하여 읽으며, 일념을 공부함으로써 조금씩 참다운 앎이 다가올 수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해와 오해는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무아와 무유아에 대해서이다.
무아... 라는 말...
나는 없다... 로 이해하기 보다는 나는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로 이해해야 하며, 그릇된 앎의 나에서 참다운 앎의 나로 다시 태어남으로 이해한다면 올바른 이해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 예수의 말을 인용한다면... 진실로 말하노니 사람이 거듭남이 하나님나라를 보는 것이요, 성령이다, 라는 말이다.
사람이 볼때에 그들 또한 사람이다.
예수도 석가모니도... 이곳에 설명된 불이일원론을 연설한 인물들이 그러하듯이...
언어의 실체에 대해서 "통찰"이라는 말로 설명한 바 있다.
나, 라는 말, 사람이라는 말, 신이라는 말...
죽음, 고통, 괴로움... 등의 모든 말, 말, 말... 그것들의 근원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오직 "그것"이며 나를 비롯한 천지만물은 그것에 의해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그대의 나...
자아의 본질...
그것이 모든 것의 기원이며 그것에 대한 설명이 진리의 말이다.
그것에 대해서 진리라 하며 새생명이라고 한다.
진리.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