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인가?
선과 악을 분별하지 아니함이 진정한 선이며 참다운 앎이다.
인간은 인간의 근원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내가 나의 근원을 모르면서 다른 모든 것을 알려하지만... 자신의 나를 모르고 아는 모든 앎은 그릇된 앎이며, 이에 대해서 무지라고 하였다.
자신의 모든 앎, 지식은 타인으로부터 들어서 아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은 아니다.
순수의식의 상태에서는 선과 악의 분별함이 없으며 감각기관에 대한 분별이 있는 것도 어니다.
어린아이기 겨울에 눈밭에서 노니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목숨이 끊어짐을 보면서...
아이적에는 기라는 것이 발에 있는 것이며 자라나면서 젊은 시절에는 기가 단전 아래에.. 그리고 늙어지면 기가 목까지 올라간다는 속설이 있다.
그리하여 기가 목에 올라가면 입만 살아서 떠든다는 말도 있으며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기라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있다. 라고 생각하면 있는 것인 까닭은 생각의 집중작용에 의해서 있다고 아는 그릇된 앎애 의해서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있다. 라고 아는 앎은 있다라고 아는 생각이며, 느낌 또한 느낌이라는 생각이다.
마음이라는 것이 기억된 생각이라고 하였듯이.......
인간의 본성에는 선과 악의 분별이 없다.
선과 악의 분별이 없다는 생각도 없다.
선과 악의 분별이 없다는 생각도 없다. 라는 말도 없다.
모두가 언어, 말, 말, 말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분별이 없음, 분별이 없음도 없는 상태에 대해서 예수는 "어린아이의 순수의식"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으로 전해지며 순수의식(하나님)은 태어난지 일주일 되는 아이의 의식이라는 설명이다.
인간의 고통.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의 고통은 분별에서 기인된다.
행복의 조건은 분별하지 아니함에서 시작되지만... 분별하지 아니함도 분별임을 깨우침에서 비로소 선과 악, 행복과 불행 등의 분별이 사라지게 되며... 이는 오직 일념 명상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기에 "하루종일 기도하라", "꿈에서 깨어나라" 라는 말등이 만들어진 것이다.
석가를 믿는 종교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모든 경전의 마지막구절... 진언이라는 구절들...
그런 한 구절에 집중하는 습관에 의해서 분별심이 사라져가는 것이다.
분별심이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근원, 뿌리없는 나무와 같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관념은 마음이며 마음은 기억된 생각이다.
기억된 생각에 불과한 것들이기 때문에 일념에 의해서 희미해지다가 일념의 정점에서는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나라는 관념... 선함과 악함 등의 모든 분별은 그릇된 앎, 사회적 동물로 세뇌되는 과정에 의해서 고착화된 생각이다.
인간의 관념은 시대와 상황 그리고 조건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똑같은 조건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왜 다른가? 라고 물을 수 있다.
왜 다르겠는가?
천지만물 그 어느것도 똑같은 시간과 똑간은 장소에서 존재할 수 없다.
지구가 넓은가?
무엇보다 넓으며 무엇보다 좁은가?
지구가 넓다 하여도, 수많은 지구가 있다 하여도... 바늘하나를 꽂은 자리, 그 자리에 다른 또 하나의 바늘 을 꽂을 수 없듯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것들만의 특성이 있는 것이다.
인간이 분류하는 선과 악은 참으로 어리석음의 극치이다.
자신, 또는 자신의 가족, 자신의 집단에 이익이 있을 때에는 선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며 그것이 어떤 상황이든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악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그리스도의 적이라는 말에 대해서...
자신들의 삶은 선이며... 다른 적, 악, 악마가 별도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을 당연시 하기에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며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죽을 때까지 욕망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치열하게 투쟁을 일삼는 것이다.
악한 사람이 없다면... 선한 사람이 없는 것이다.
선한 사람이 없다면.. 악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모두 선한 사람이라면... 악한 사람이라는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와같이 분별된 언어, 말, 말, 말에 세뇌됨에서 풀려났을때... 그때의 앎이 진정한 앎이며 지혜이며 자유와 평화로 가는 길이다.
미래의 희망, 행복, 성공.. 희망찬 내일...
그릇되 앎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의 그릇된 앎에서 비롯된 가르침이 아니던가?
투쟁하여 승리함으로써 평화로울 수는 없지 않겠는가?
자신의 작은 기쁨, 행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악용하는 자가 어찌 평화로울 수 있겠는가?
인간의 삶, 그릇된 가르침, 사회적 동물로의 세뇌에서 비롯된 경쟁, 투쟁은 사람이 사람을 이겨서 승리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리 세뇌되었으니... 죽을 때까지 그리 살아야 되는 것인가?
그러다가 갑자기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죄, 원죄... 인간의 나약함에서 비롯된 욕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욕망은 두려움이 원인이다.
그리고 두려움은 실체없는 것, 실재하지 않는것, 그릇된 앎에 따른 분별심이 그 원인이다.
천지만물은 언어로써 존재하며...
언어는 실재하지 않는 것이기에 이름지어 명칭으로 있는 것이며...
명칭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분별이며...
명칭있는 모든 것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선함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선함만 행하라.
그것이 분별임을 아는 앎이 참다운 앎이다.
존재하는 모든것...
그릇된 앎에 의해서 있다고 아는 것이다.
그대의 진정한 나.
그것이 모든 것의 기원이다.
진리.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