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아라는 말의 뜻은 "진정한 나, 불성, 도, 참 나, 신, 순수의식, 우주의식" 등의 말들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며, 자아라는 말의 뜻은 "내가 생각한다, 내가, 내 몸, 내 마음이라고 아는 나, 즉 "육체가 나다"라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며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진아"라는 말은 경험과 분리된 사고방식, 또는 경험 이전의 "자아"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서 "노자"는 "천지만물과 자아와의 분별이 사라진 지인"으로 표현하였으며 석가모니의 말이 왜곡된 종교에서는 불성, 본성, 자성으로 표현되며 예수의 말이 왜곡된 종교에서는 하나님, 하나님 나라, 성령 등으로 표현된다.
이곳에는 일념의 성취, 일념만년에서 알아지는 참다운 앎으로 표현되었으며... 생각의 이치와 속성, 그리고 말변사, 상대적인 언어의 속성, 그리고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이치 등에 대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였다. 또한 "아무것도 없는 것의 완전함"과 그에 대한 여러가지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였으니...
일념과 병행하여 글들을 반복하여 읽음으로써 이치에 다가갈 수 있다.
여기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일념이 깊어지면서 자아와 진아와의 경계를 알아차림에 대해서이다.
이런 말들에 대해서 도의 경지, 경계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며, 심우도의 설명으로 설명된 내용과도 다르지 않다.
아마도 일념이 깊어져서 일념을 유지하는 시간이 하루에 대 여섯 시간 정도 될 무렵이니, 수행의 경지로 본다면 10단계 중에서 6단계 내지 8단계 즈음일 것이다.
물론 수행자에 따라서 그 시기가 달라질 수 있다.
일념이 그만큼 깊어질 무렵에는.
일념 중에 일어나는 한 생각에 대해서 분명히 알아차리며, 일어난 한 생각에 대해서 피식 하며 웃음을 던질 수 있는 경지이며 이때, 허헛 이것은 에고일 뿐 내가 아니지, 그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하며 일념이 지속되는 경우이다.
이 상태가 진아와 자아와의 경계를 어렴풋이? 또는 분명히 알아차림의 시작단계이다.
지금 일념을 위해서 노력하는 중이라면... 그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그 즈음에서는 카페의 글들에 대해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되며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튀어 나오는 말들이지만 이미 분별이 사라짐에서 나오는 말들이기에 진리에 어긋나지 않은 진실된 말들이다.
일념에 의해서, 일념이 깊어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알아차려지는 앎이기 때문에 신비로울 수밖에 없으나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앎이지만 그 말을 듣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참다운 가르침이 된다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무지와 지혜의 뜻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으며, 우이독경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실감하게 된다.
오직 자신만이 아는 앎이며 남들에게 설명조차 불가능한 앎이다.
예를 들어 "별은 별이 아니다", 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 분명히 안다는 뜻이니... 말변사,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분명한 앎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일념의 힘이다.
평온함의 기쁨과 함께 다가오는 참다운 앎.
인간의 투쟁해야만 하는 삶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즐거움이며 기쁨이다.
그때 비로소 즐거움과 기쁨으로 존재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는 것이며 진리에 다가서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와 평화. 오직 진리의 길에서만 하나될 수 있다.
진리.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