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중도 · 방편설 - 말변사

사자의 서 / 삶의 한계를 초월한 사람들의 이야기 - 무위자연의 자유로 가는 길

일념법진원 2014. 7. 16. 08:37

인간이면서 인간의 굴레에서 벗어났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위 '사자의 서'라는 말이며, 어느 책자의 제목이기도 한 것 같다.

 

말은 말인데, 말도 안되는 소리에 대해서 '어불성설'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 같다. 이와 유사한 말들에 대해서 '속담' 이라는 말로 표현되는데, "아니땐 굴뚝에 연기날까" 라는 말 그리고 "따듯한 밥 먹고 왠 쉰소리냐" 라는 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라는 말 들이다. 이와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이 '불립문자'이며 '언어도단'이라는 말이다.

 

사실 인간 관념으로 본다면 '사자의 서' 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죽은 자의 글'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곳의 모든 글들은 '죽은 자'의 말이며 죽은 자의 글들이다.

죽은 자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며, 죽은 자들을 대변하는 말들이다.

그대의 조상들이 그대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을 대신 전하는 것이며, 석가모니와 예수, 소크라테스 , 노자와 장자 등의 말을 대신 전하는 것이며, 왜곡된 그들의 말을 현 시대의 언어로써 다시 해석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상을 삶이라고 생각하며, 이사람은 일상을 꿈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움으로 생각하며, 이사람은 죽음 또한 꿈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미래의 행복을 추구하며, 이사람은 그 또한 꿈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며, 이사람은 행복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며, 이사람은 불행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

 

천국을 기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지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복을 기원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복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지금 이전에는 불행을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 불행을 느끼는 사람은 지금 이전에는 행복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니. 행복한 사람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아니며, 불행한 사람 또한 진정으로 불행한 사람은 아닌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며, 이사람은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지금. 지금... 이 순간만이 사실적인 것이며, 진실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순간을 산다는 것은...

과거와 상대적인 미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몰입)하는 것이다. 

과거는 기억세포에 저장된 생각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래는 기억에 바탕을 둔 환상이라는 생각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몸을 나라고 생각하며, 이사람은 몸을 나라고 생각하지 아니한다. 

 

사실 사람들 누구나 육체가 나다, 몸이 나다라고 생각(단정 짓지만)하지만, 그 단정 짓는 생각인 '고정관념'은 고정된 생각일 뿐, 아무런 근거가 없는 말(생각, 뜻)이다.

그대가 살아오는 동안에... 기억세포에 저장된 무수히도 많은 생각들 중의 한 생각일 뿐, 근거가 없는 생각이며, 사실적인 것이 아니다. '고정관념'이라는 말이 그 뜻을 설명해 준다. '고정된 생각'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고정된 생각과 고정되지 않은 생각은 분별이며, 상대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상대적인 것들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다. 주체가 사라짐과 동시에 대상 또한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과거의 기억에 바탕을 둔 생각들에 바탕을 둔 다른 생각들(사고방식)로써 살아가는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각들... 기억세포에 저장된. 그 생각들 중에는 기억할 수 없는 생각들도 있으며, 희미하게 기억할 수 있는 생각들도 있으며, 기억하고픈 생각들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생각들로 뒤엉켜져 있다. 그 생각들... 바닷가의 작은 파도들과 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들. 그 생각들 중의 한생각이 '육체가 나다'라는 생각이다. 물론 '육체가 나다라는 생각'은 '육체가 내가 아니다'라는 생각과 상대적인 생각이다. 

 

 

인간들의 '내가 생각한다'는 생각은 그토록 허무맹랑한 것이다. 

'육체가 나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육체가 나다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생각의 차이이다. 

'마음이 내마음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음이 아니다'라는 생각 또한 한생각의 차이이다. 

'내생각이 내생각이라는 생각(주장)'과 '내생각이 내생각이 아니라는 생각' 또한 한생각의 차이이다. 

 

삶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삶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죽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죽음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선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악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선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악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고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고통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행복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불행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불행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각자 개개인의 몫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어가 상대적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인식할 수 있어야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지식은 '상대적인 것'이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사실 올바르게 이해 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에게는 보편타당한 앎이며, 상식적인 것들이다. 

 

모든 상대적인 것들은, 즉 상대적이라는 말은 주체가 있기 때문에 대상이 있다는 뜻이다. 주체가 없으면 대상 또한 없다는 말이 상대적이라는 말의 뜻이다. 그대가 있기 때문에 빛에 의해서 그대의 그림자가 생겨난다. 태양이 없어도 그대는 있으며, 그림자가 없어도 그대는 있다. 하지만 그대가 없으면, 태양도 없으며, 그림자도 없다. 세상 또한 그러하다. 세상이 변하든 말든, 세월이 가든 말든... 그대와는 상관 없는 것들이다. 

 

 

그대라는 주체가 있기 때문에 태양이 있고, 그림자가 있듯이 세상 또한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대에게는... '나'라는, '내가 있다'는 주체가 있기 때문에 세상, 천지만물 등의 대상이 있는 것이다. '내가 있다'는 생각과 '내가 없다는 생각'은 기억세포에 저장된 수많은 생각들 중, 하나의 생각이며, 절대적인 생각이 아니라 상대적인 생각이다. 

 

인간이 겪는 '고락苦樂' 또한 이와 같이 상대적인 말이며, 기억된 생각들 중의 하나이다. 

'괴로울 고' 자와 '풍류 락' 자로 표현되며 '고통과 즐거움'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무한한 어리석음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즐거움과 고통이라는 상대적인 말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고통이 있기 때문에 즐거움이 있는 것이며, 고통이 없다면 즐거움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용지용이라는 말과 무용지물이라는 말이 있다. 

'무용지용'이라는 말은 '죽은 자'의 말이며, '무용지물'이라는 말은 산자의 말이다.

쓸모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쓸모 없는 것이 생기는 것이며, 쓸모 없는 것이 있기 때문에 쓸모 있는 것이 생기는 것이라는 말이 '무용지용'이라는 말의 뜻이다.

 

이 말은 좋은 일이 있기 때문에 나쁜 일이 있는 것이며, 나쁜 일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좋은 일이 생긴다는 뜻으로써 언어가 상대적일 뿐, 사실적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설명하는 글이다. 석가모니는 이런 사실에 대해서 '연기법'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며, 그대가 있기 때문에 삶과 죽음이라는 상대적인 앎이 있는 것이며, 그대가 없다면... 삶과 죽음 또한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고방식'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는... (思考方式)【명사】 어떠한 문제를 생각하여 해석·구명하는 방식·태도.
¶ 건전한 ∼/ ∼이 고루하다.

 

 경험에 바탕을 두고 생각하는 방식이라는 뜻이다.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식으로써는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구할 수 없을 뿐더러, 행복이나 평화 자유를 누릴 수도 없다. 왜냐하면 위의 설명과 같이 언어는 상대적이며, 상대적이기 때문에 사실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렇듯 사실적이 아닌,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언어에 세뇌당한 것이며, 그 언어 속에서 또 다른 언어를 찾아 헤매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들에 대해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착각이라고 하는 것이며, 꿈에서 깨어나라고 하는 것이다. 해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생로병사의 고통과 괴로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지금 그대가 주장하는, 아니 모든 인간들이 주장하는 모든 앎들이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모든 앎에 대해서 허구적인 것이라고 하는 것이며,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는 앎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앎(말, 뜻, 마음, 생각)이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할 수 있을때, 그때 비로소 올바른 앎의 행복과 자유,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천지만물과 자아와의 분별이 사라진 지인만이 무위자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말... 노자의 도관이며, 사실적인 말이며, 올바른 앎에 바탕을 둔 말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과 같이...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예수의 말과 같이...

'네 본래성품이 부처'라는 석가의 말과 같이...

 

그대와 인류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법 수련. 수행 신청하는 곳.

일념명상의 집 '도가'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