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중도 · 방편설 - 말변사

마음의 본질 / 무아와 진아 - 참된 이치와 진리... 가치 있는 삶이란?

일념법진원 2014. 7. 26. 06:31

사실 인간에 대해서 뭇 짐승들과 다르지 않은 '중생衆生"이라고 했던 인물이 석가모니이다. 그 이유는 뭇 짐승들의 슴성이나 습관과 같이 인간들 또한 그렇게 길들여지기 때문이며, 짐승들이 습관을 버릴 수 없듯이 인간들 또한 자신의 작은 습관들 조차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습관'이라는 말은 소위 '버릇'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며,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과 같이 인간의 습성(마음. 성격, 성질) 또한 짐승들과 같아서 쉽게 고쳐질 수 없으며, 버릴 수 없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서 불교라는 종교는 석가모니의 말을 왜곡되게 해석하여 '업. 업식, 전생의 업, 육도윤회'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며, 기독교라는 종교는 예수의 말에 대한 오해로써 '원죄'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선과 악이 본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악으로부터 구원받게 해달라는 방식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말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 있다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며, '너 자신을 알라'는 말에 바탕을 둔 말 중에 가장 중요한 말이 '유일한 선은 앎이며, 유일한 악은 지식'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선함과 악함을 분별하는... 권선징악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는 지성체의 모든 앎(말, 뜻, 통념, 관념, 지식.. 등)이 사실상 악에 해당된다는 뜻이며, 이 말은 또한 예수의 말 중에... '죄 없는 자 있거든, 이 여인을 돌로 처 죽여라' 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올바른 앎, 참다운 앎, 전지전능, 전식자, 광명의 지혜... 등으로 표현되는 말들에 대해서 '참된 이치, 참다운 앎, 진리의 말'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며, 위의 설명과 같이 '선과 악함'의 분별로서 아는 앎이 아니라, 선과 악, 큰것과 작은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맛 있는 것과 맛이 없는 것' 부자와 가난한 자, 행복한 자와 불행한 자' 등의 모든 분별이 그릇된 앎이며, 인간들의 지식이 그런 상대적인 앎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그렇지 않으면 살아갈 가치도 없다는 방식으로 말한 것이며, 예수 역시 너희가 너 자신을 모른다면 짐승보다 더 뛰어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방식으로 말한 것이며, 석가모니 또한 너희가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한다면...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는 말이며, 이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우이독경'이라는 말이다. 사실 우상을 숭배한다는 일 자체가 우이독경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것이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조상신이든... 우상을 숭배하는 일로써는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마음에는 본질이라는 것이 없다.

마음이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대가 기억할 수 없으나 어린아이시절부터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워서 아는 말(앎)이 '마음'이며, 생각의 다발이라는 뜻이다. 예수는 너희가 그런 어린아이 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지옥이 있다면 지옥에 사는 것이며, 그런 고통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때, 비로소 천국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며, 석가모니 또한 원리전도몽상에서 깨어났을때, 비로소 극락에 사는 것이며, 그것에 대한 다른 이름이 '불타'라고 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은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는 결코 경험이전의 사고에 대해서 상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식은 이에 대해서 '순수의식, 잠재의식, 무의식'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며, 그들은 그것에 대해서 '본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本無' 라는 말은 '연기법'에서의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는 것' 이 아니라,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도 없는 것이라는 말로써... '주체와 대상이 모두 없는 것'을 일컷는 말이다. 

 

 

인간이 어리석어 '깨달음'에 대해서 이해 하려 하지만 깨달음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은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이라는 말, 말, 말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이며, '무아'라는 말 또한 '무아'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무아'라는 말에 대한 환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나가 있다'라는 앎(말, 생각, 마음, 뜻)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원리가 전도된 망상(착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경험 이전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석가모니의 말을 오해 하여 '무아無我'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한글로써는 '나의 존재'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나의 존재가 없다'는 뜻으로서 '무아'라는 말로 이해 할 수밖에 없으나, 한자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언어 조차도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없는 것이다.

 

굳이 상대적인 언어로 표현한다면, '무아'가 아니라 '무아상'이라고 설명한 바 있는데.

사실 갓태어난 아이에게는 '내가 있다'는 주체의식이 없다. 그렇다고 하여 '내가 없다'는 생각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태어난 아이가(사실 아이에게는 태어났다는 생각도 없으며, 아이라는 생각도 없지만...) 타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타인들을 흉내 내게 되는데... 그런 일련 과정을 통해서 어느 날 문득 '내가 있다'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며, 그것이 최초의 인위적인 '한생각'이라는 내용에 대해서는 두권의 책에 자세히 설명된 바와 같다. 

 

석가모니의 말씀이라는 경전에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물론 금강경 사구게에도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라는 말로써 형상이나 소리로서 여래를 보려는 모든 행위는 '삿된 도를 구하는 자'로써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어린아이에게 최초로 일어난 생각이 곧 '아상'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나라는 생각'이며, '나라는 생각'은 단순하게 '나'라고 주장하는 '나'가 아니라 '육체가 나다'라는 분명한 생각이라는 뜻이다. 그대가 기억할 수 없는 시절에 일어난 최초의  한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다른 것들은 나가 아니며', 오직 '육체만이 나다'라는 분별된(상대적인) 생각이며, 그 생각이 그대의 마음의 바탕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사실 '나라는 생각'이 있는 어린아이라고 하더라도 아직은 성인들과 같은 선악의 분별심이 완전하게 갖추어진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완전한 분별심'이라는 말은 '권성징악'의 통념(관념)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무아'라는 말이 지식으로써도 올바른 이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아'가 아니라 '무아상'이라는 말로 이해 해야만 그나마 지적으로나마 '

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설명하는 것이다. 

 

'육체가 나다'라는 생각이 최초로 일어난 생각이며, 이에 대해서 '원리전도몽상'이라는 말로 표현했던 인물이 석가모니이다. '아상'이 생겨났음을 일컷는 말이며... 그 다음에 생겨나게된 생각(말, 뜻)이 '인상'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사람이라는 생각'이 먼저 일어났던 것이 아니라, '내가 있다(육체가 나다)'는 생각이 먼저 일어난 생각의 뿌리(마음의 뿌리)이며, 그 다음에 알게되는 앎(識식) = (생각, 말, 뜻, 명색)이 '인상' 즉 '내가 사람이다'라는 생각이라는 뜻이다. 

 

'아상'이라는 말의 반댓말은 '무아'가 아니라 '무아상'이라는 말로써 '육체가 나라는 생각과 육체가 나가 아니라는 생각'의 차이이다. 중생의 견해로써는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가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생각의 차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깨닫기 위해서는 오직 일념법명상을 통해서 일념의 뜻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이해 또한 오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아(眞我)'라는 말은 석가모니가 이름 지은 '불타'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써 '무아상' 또는 '비아(非我)를 뜻하는 말이다. 물론 '이다, 아니다' 라는 분별 자체가 상대적이기 때문에 모순이다. 다만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짓는다면, '진아, 참나, 부처, 도, 진리... ' 등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의 관념으로써 '본무'라는 낱말에 대해서 이해가 불가능한 까닭은 '언어가 상대적이며, 상대적인 언어가 없는 상태'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내가 있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며, '내가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 또한 환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노자의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도는 참다운 도가 아니다'라는 말과 석가모니의 말이라는 금강경 사구게의 '형상과 소리, 음성으로써는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이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아니 그러한가?     

 

 

항상 반복되는 말이지만... 인생에 해답을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이며, 서로가 해답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또한 세상을 이루고 사는 세상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해답을 모른다고 아는 앎이 올바른 앎이며, 서로가 죽는 날까지도 옳다고 주장하는 앎이 무한한 어리석음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관념(마음, 지식, 말, 뜻) 따위가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에 주장하는 것이며, 그 결과가 곧 경쟁이며, 투쟁이며, 전쟁을 일삼는 자들이며, 무식하여 용감한 무리들의 죄악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올바른 앎에 따른 가치 있는 삶이란, '인생에 해답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앎으로써... 자기의 관념 따위를 주장하지 아니하는 것이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삶이 아니라 허구적인 욕망이 고통이라는 사실에 대한 올바른(분명한, 명백한) 앎으로써 있는 그대로에 만족하므로써 여여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세상을 보라. 

'세월호 사건'과 연계된 사건들... 자살 사건과 그에 따른 권력자들의 자리 다툼들... 바뀜들, 그 당사자들에게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일 수 있으나, 대다수의 보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누구나... 재판관이 되어 떠들어 대는 것들일 뿐, 해답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죽거나, 연예인이 암으로 죽거나,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누구를 죽이거나... 누구를 탓하겠는가?

 

누구를 탓한 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말이다. 그들은 그런 사고방식으로 가공된 것이며, 다른 사람들 또한 그런 사고방식으로 가공된 것이며, 그대 또한 그대만의 사고방식으로 가공된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사람들, 자신도 모르게 가공되어진 감정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마음의 실체가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조차 불가능한 사람들의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인간세상... 인간무리들... 과연 누가 옳으며 누가 옳지 않겠는가? 

 

올바른 앎이란... 옳고 옳지 않음 등의 모든 분별이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다툼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며 평화라는 낱말이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대와 인류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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