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라는 낱말을 검색해 보니. 인기 '일순위'가 '도올 김용옥'이다.
사실 철학의 시조격인 소크라테스를 해석하면서 지성체의 허구성에 대해서 밝힌 바 있으며, 글 어딘가에는 '도올'이 아니라 '돌 덩어리'라는 방식으로 어리석은 자의 대표격이라고 설명한 것 같다.
아득한 예날의 이야기지만, 공자와 장자의 이야기에 대해서 설명한 적이 있다.
공자의 하고 다니는 짓들에 대한 장자의 일침은 '너의 그 허울을 벗어라'는 한마디이다.
소크라테스의 말과 같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다. 참고로 공자는 '나는 오늘 저녁에 도를 깨닫는다면 내일 아침에 죽더라도 여한이 없겠다'는 말을 남겼던 인물이다.
사실.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자들이 남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는 자기주장은 논리에도 어긋나는 것이며, 논리적인 것들이 아니라, 억지 주장이다. 그 대상이 누구든지, 대상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다는 오만이 지식의 무한한 어리석음이며, 무지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현직 대통령에게 수많은 비유를 들어 '하야해야 한다'는 방식으로 주장하는 자들이 가장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이며, 가장 기본적인 도덕관념 조차도 없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청년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말이다.
대통령의 입장이 되어야만 대통령을 이해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대 자신의 마음을 남들이 이해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소위 '민주주의'라는 말이 있으며, 민주주의에는 기본적인 원칙이 있다. 인간들은 인간이 무엇인지 그 원인을 이해 할 수 없으며, 원리를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원칙'이라는 원칙을 창조한 것이다. 그 원칙 중에 가장 중요한 원칙, 필수적인 원칙이 '과반수의 원칙'이며, '다수결의 원칙'이다.
인간세상에 그런 원칙이 만들어진 까닭은 인간들의 욕망이 무한하여 우주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인간들 개개인의 욕망이 그러하기 때문에 그런 방식의 '원칙'을 정한 것이다. 원칙을 정했다면, 그 원칙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 인간으로써 지켜야만 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자 가장 기초적인 도리이다.
'민주주의' 라는 말은 국민이 주인이며,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또 다른 원칙이다. 그 원칙 하에 창조된 원칙이 '다수결의 원칙'이다. 소크라테스의 말로 본다면, 악법도 법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서 선출된 국민의 대표자가 '현직 대통령'이다.
'대통령'을 비난하며,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는 자들은 '대통령'을 경험한 자들도 아니며, 대통령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자들이다. 그것들은 다른 곳에서 끌어모은 지식 따위들로써 그것을 자신의 앎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자신의 앎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끌어모은 정보들로써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것도 민주주의의 원칙인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선출된 대통력을 모독하는 것이다. 정신 나간자들이며, 초등학교에서 배운 도덕관념 까지도 망각한 자들이다.
올바른 앎이란, 자기를 주장하며 대상을 모독하는 짓들이 아니라, 다른 방안을 제안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다수결로 선출했다면, 무조건 대통령의 말을 신뢰해야만 하는 것이며, 존중해야만 하는 것이다. 마음이 욕망으로 가득찬 인간들이 서로간의 이익을 조율할 수 없기 때문에, 대표자를 선출한 것이며, 다수결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세월호사건은 누구의 탓인가?
사회에서 사회적 동물로 교육 받았던 사람들의 욕망에서 비롯된 사건이다.
선박회사는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직원들 또한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승무원이나, 기타 승객들 또한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모두가 오직 자신들의 욕망을 위한 목적으로 행위 하는 사람들이다. 사건의 주범들이거나,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자신만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행위들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리고 그 마음이라는 욕망은 어린아이시절부터 사회적 동물로 가공된 것이며, 대대로 물려받은 유산이다.
그런 사건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런 사건은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다.
인간의 무한한 어리석음은 자신들이 스스로, 다수결로 선택한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비난한다는 것이다. 사실 대통령을 비난하는 일은 대통령을 비난히는 짓이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를 비난하는 짓이다. 자신들이 다수결의 원칙으로써 선출한 대통령이라면, 자신들의 대변인이 대통령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대통령을 비난하는 자들의 무한한 어리석음은 그런,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원칙 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지식이 아니라, 무식한 것이며, 어리석은 자들의 대표자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의 본질은 욕망이며, 탐욕이며 근거도 없는 자존심이다.
도둑이든, 사기꾼이든, 살인자들이든, 수많은 종류의 범죄자들이든, ... 모두가 인간이다. 그리고 그 인간들은 모두가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들이며, 인간의 기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더 나아가 지식인이라는 것들 또한 인생이 무엇인지, 인간의 기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들이지만, 언술이 뛰어나 말만 많은 것들이다. 올바른 앎이란, 불평불만을 늘어 놓거나 시시비비를 기리려는 작태가 아니라, 그 근본원인에 대해서 성찰하는 일이며,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세상의 역사는 수천 수만년이다.
그 수많은 세월이 흘렀으되, 인간들의 욕망으로 가득찬 마음에는 한치도 변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항상 시끄럽기만 한 것이며, 더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는 세상은 학문이라는 지식의 허구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세상이 평화롭기 위해서는 단견, 소견, 편견일 수밖에 없는 지식 따위가 버려져야만 한다는 뜻이다. 올바른 앎으로써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인간세상은 철학 등의 학문에 바타을 둔 지식 따위들의 언술에 의해서 더욱 더 논란만 가중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식을 초월한 올바른 앎이 있다.
인간들의 언어는 상대적이다.
상대적이기 때문에 지식 수준이 높아질 수록 해답이 없는 논란만 가중되는 것이다.
'유일한 선은 올바른 앎이며, 유일한 악은 지식'이라는 말이 있다.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인간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첫째는 (인간이 인간의 기원을 모르기 때문에) 원리를 모르는 원칙이지만, 그런 인간들이 정한 '다수결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며, 둘째는 인간세상의 모든 교육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결의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다수결로 선출된 대통령의 말이 곧 국법이라는 인식으로써 대통령을 공경해야 한다는 뜻이다. 부패하고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며, 욕망으로 가득찬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과 마음이 화합될 수 없기 때문에 다수결의 원칙을 정한 것이며, 그것을 정한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들이다. '우리나라' 라고 주장하면서, 우리가 다수결의 원칙하에 선출한 대통령을 우리가 비난한다면, 어찌 무식하고 어리석은 짓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말이다.
우리가 선출한 우리의 대통령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뢰하는 것은 대통령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한 '우리 자신들'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서 선출했다면, 모두가 선출된 대표를 신뢰해야만 하며 공경해야만 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사공을 다수결로 결정한 사람들은 모두가 현명한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 '대통령'에게 위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대통령의 말을 신뢰해야만 하며, 이유 없이, 무조건 따라야 하며, 공경해야만 한다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상식이며,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도덕수준이며, 당연한 논리이다. 그러니. 누구나 스스로 선택한 대통령의 선택에 따른다면, 배가 산으로 갈 일은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이 나라의 현실이 시끄러운 이유이며, 다른 나라들 역시 이와 다른 바 없는 것 같다.
인간이 인간의 기원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둘째의 올바른 방법이란.
교육의 방향에 대한 설정이다.
어린아이시절부터 듣고 보고 배워온 것들이 오직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과 방법들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을 통해서 서로가 싸우고 이겨서 승리해야 한다는 방식이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하며, 성공해서 남들의 위에 서야 하며, 잘난체 해야 하며, 명성을 얻어야 한다는 교육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싸우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지들은 죽는 날까지 경쟁, 투쟁, 전쟁을 일삼는 짓들이 교육의 결론이며, 현시대의 실상이다. 싸우지 말라고 가르지질 말든지, 지들이 싸우질 말든지... 둘 중의 하나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말이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사는 삶이 가장 비천한 삶이며, 가장 어리석은 삶이라고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라고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다. 내면이 가난하여 비참한 사람들이 겉모습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다. 스스로 만족하여 평화로운 사람이라면, 남들의 시선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명색이 철학자라면, 철학은 무지에서 시작된다는 소크라테스의 말 정도는 이해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말이다.
철학은 '무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말은, 인간이 인간이지만 인간의 기원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에 대한 앎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인생의 해답이 없는 까닭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왜 살아야 하는 것인지, 왜 죽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그런 무지에서 깨어나라는 뜻이다.
'철학의 무지'는 단지 그것 뿐만이 아니다.
왜냐하면 '철학'은 '학문의 기원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으며, 학문이 왜 끝이 없는지 조차도 모르기 때문이다.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학문이라면, 죽음이 목적지일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는 쓸모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서로간의 근거도 없는 자존심만 키우는 꼴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앎이란, 삶에 필요한 것들이라야 한다.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지식이다. 그런데, 지식이 끝이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인간의 삶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식을 위해서 인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넌센스이다. 어불성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은 쓸모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지식(철학, 학문들)에 대해서 '유일한 악'이라고 했던 까닭이다.
최소한. 남들을 이해 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깨어나야만 한다.
남들을 비난하지 말라, 그대가 곧 그 남들의 남이기 때문이다.
그대 또한 그 비난하는 남들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그 남들과 같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이다.
왜냐하면 그대 자신의 마음의 근원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대와 인류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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