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식 일러라' 라는 말.
머리깎은 중생들이 '선방'이라는 곳에서 수행자들에게 하는 말이란다.
동안거. 하안거 라는 명분으로 백일 동안 '이뭣고' 라는 화두를 들고서 하루종일 앉아 있는다는데. 어거지로 화두를 들다 보니 그런 안거가 끝나면 모두 몸보신을 해야만 한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말들이 '선방의 문고리만 잡아 보더라도 삼악도는 면한다'는 말이다. 이와 유사한 말이 '도인'의 뒷꼭지만 보더라도 삼악도는 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삼악도'라는 말은 '아귀 축생 수라' 라는 말이며, 인간은 삶과 죽음을 윤회 하는데, 최소한 아귀나 축생, 수라로는 태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란다.
이런 허무맹랑한 말들이 전해지면서 '선방'에는 광신자들이 몰려 오는데, 고기를 먹지 않는 대신에 최고급 야채나 과일들은 푸짐하기만 하다는데, 그 광신자들이 삼악도를 면하기 위해서 선방의 문고리를 만지기 위해서 줄을 선다고 한다. 푸짐한 음식들과 과일들을 받치면서. 사실은 선방의 문으로 들어가므로써 수행을 할 수 있다는 말이 와전된 것이겠지만, 이 역시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마음을 찾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이나 비로자나부처님'의 가피가 있어야만 깨달음이 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해탈이라는 말은 그져 해탈이 아니라, 심해탈이라는 말이며, 마음을 이해 하여 탈출한다는 뜻이다.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념수행으로 그런 사실에 대해서 깨달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왜곡되고 반전됨을 반복하다 보니. '불공이니, 부처님의 가피니. 하는 방식이나, 천도제 등의 헤괴한 짓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짓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조차 불가능한 자들의 행태이니. 말해 무엇하겠는가만은.
옛날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는데, 절간을 왜, '절' 이라고 하는가 하면, 저절로 들어오기 때문에 절이라고한다는 말도 있다. 절간만 지어 놓으면, 무엇이든지 저절로 들어온다는 뜻이다. 불공을 드리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말, 말, 말들에 대해서 그대로 믿어버리기 때문에 온갖것들을 들고서 절간에 찾아 오기 때문이다.
불경에는 '이다라니 무진보'라는 말이 있다.
어떤 불경을 수십 수백 수천번 반복해서 읽다보면, 독송하다보면, 무궁무진한 보물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끊임없이 반복해서 보다보면... 물론 일상에서의 다른 망상은 일시적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 있기도 하니. 옳은 말일 수도 있으나, 성경이든 불경이든, 여타 다른 경전들이거나 끊임없이 읽다 보면, 누구나 우상숭배사상에 빠져들고 마는 마력이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말 그대로 경전이다. '지날 경' 자와 '전할 전'자로써 지난날의 옛 이야기들을 전달하기 위한 말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할 수 있는 자라면 그나마 현명한 자일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신비스러운 것은 그 경전들을 끊임없이 읽어 나가다 보면, 그 말, 말, 말들에 세뇌 당하게 되는데, 다른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사상에 세뇌 당하지 아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말재간들이지만, 욕망의 노예들에게는 사실처럼 믿게 된니. 신비스러운 일이다. 신이나 영혼이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런 인간들의 마음의 변화가 더 신비스러운 까닭은 왜일까? 허헛.
사실 카페의 회원들 중에는 '별은 별이 아니다,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라는 말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 없이 '당연한 말'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고도 많다. 일념을 깨닫거나 또는 일념수행 중에서 알아차리게 되는 첫번째 깨달아 아는 앎이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는 사실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중생들에게 있어서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는 말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기 때문에 크게 웃어버릴 수밖에 없는 말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그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사과'라는 말에 대한 이해는 자신 스스로의 앎이 아니라, 어린시절부터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워서 아는 앎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며, 명색의 동일시이에 대한 착각이다. 자신의 마음 또한 그런 방식(명색의 동일시)으로 타인들의 말을 듣고 배워서 알게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조차 불가능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근기라고하는 것이다. (세부적인 설명은 여기서는 생략한다. 이곳 모든 글들의 요점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소식 일러라' 는 말은. 이런 사실(명색의 동일시)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에 대해서 말해 보거라, 라는 뜻이다. 하지만 머리깎은 중생들은 '별은 별이 아니다'는 말이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착각이지만)어떤 뜻인지에 대해서는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도 없기 때문에 '저 하늘에 어느 별이 네 별이나'는 방식으로 선문답이나 법거량을 하는 것들이다. (법이 본래 없는 것이지만, 그런 사실 조차 이해 할 수 없으니... )
즉 '일념'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들이 '선방'이라는 곳을 만들고, 그곳에서 동안거, 하안거 하며 쓸데없는 짓들로써 중생들이 중생들을 병들게 하는 것이다. 육조혜능이 절간을 떠난 이유이다. 수천 수만번 되풀이 해서 반복하더라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별은 별이 아니다'는 말이기 때문이며, 이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는 말에 대한 깨달음(여기서 깨달음이라는 말은 타인들로부터 배워서 아는 말이 아니라, 비로소 자신이 스스로 깨달아 아는 최초의 앎, 진실된 앎, 참다운 앎이라는 뜻이다)은 대도무문의 문을 본 것이며, 불입문자와 언어도단이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사실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는 말에 대한 깨달음은 '윤회는 윤회가 아니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며, '지옥은 지옥이 아니다, '천국은 천국이 아니다' 라는 말과도 같은 맥락이다. 더 나아가 '부처는 부처가 아니다' '불성은 불성이 아니다, 성령은 성령이 아니다, 마음은 마음이 아니다, 귀신은 귀신이 아니다, 영혼은 영혼이 아니다... 등의 모든 말들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게 하는 '깨달음'의 첫번째 관문의 통과를 의미하는 것이며, '도의 실마리를 찾음'이라는 말로 표현 될 수 있는 말이다.
사실 엇그제 회원 한사람을 만났는데.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라는 구절로써 일념수행을 하고 난 후에. 다시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는 책을 보던 중에 전에 보지 못했던 한구절이 확연하게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 구절이 곧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는 글귀였다고 한다.
책 두권과 이곳 카페의 글들이 약 이천여편이다.
그동안 쓰여진 글들 중에 수많은 글들이 브로그나 또는 다른 카페로 스크렙의 형태로 옮겨졌으며, 다른 방식으로 짜깁기 되어 지상에 널려 있을 정도이다. 만약에 절간이나 다른 곳에서 '도'를 구하려는 자들이 이런 인연을 만난다면, 더 이상 다른 중생들의 말에 속아서 고통을 겪을 일은 없을 것이다.
매일매일 금강경을 독송하는 자들은 대체 무엇을 보는 것일까?
금강경을 본 일은 없다. 하지만 그 사구게를 보니.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라고 적혀 있었다. 다만 이런 글귀 하나만이라도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다면, 석가모니를 우상으로 숭배하는 짓들이 가장 큰 죄를 짓는 어리석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만약에 소리나 음성, 그리고 형상이 있는 모든 것들로써 '나'를 보려 한다면, '삿된 도를 행하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자들은 결코 '여래를 볼 수 없다'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의 말을 믿는 자들이 석가모니를 우상으로 숭배한다는 사실... 어불성설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물론 석가모니를 믿는 광신자나 맹신자들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말 또한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일 뿐,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한치의 오차도 없는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이다.
왜냐하면 그대의 마음의 근원을 찾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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