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들의 선문답
마조편
1>
남악회양(南岳懷讓)이 마조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마조가 한 눈에 법기(法器)임을 알아보았다.
회양은 좌선하고 있는 마조를 찾아가 물었다.
"대덕(大德)은 무엇을 얻을려고 좌선을 하는가 ?"
마조가 대답하였다.
"불성(佛性)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자 회양은 부근에 있던 기왓장 하나를 집어 들더니
마조 앞에서 갈기 시작하였다.
마조가 물었다.
"기왓장은 갈아서 무엇에 쓰실 겁니까 ?"
회양이 대답했다.
"거울로 쓰려고 하네."
이에 마조가 빈정거렸다.
"그런다고 기왓장이 거울이 되겠습니까 ?"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회양이 일갈했다.
"기왓장이 거울이 될 수 없다면 좌선으로
부처가 되겠는가 ?"
마조가 물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
회양이 말했다.
"소가 수레를 끌고 가는데 수레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수레를 다그쳐야 하겠는가, 아니면 소를
다그쳐야 하겠는가 ?"
마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회양이 다시 말했다.
"그대는 좌불(坐佛)을 흉내내고 싶은 것인가 ?
아니면 좌선(坐禪)을 배우고 싶은 것인가 ?
만일 좌불을 흉내내고 싶다면, 부처는 정해진
모양새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리고 좌선을 배우고
싶다면, 선이란 결코 앉거나 눕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라. 법은 영원히 계속 이어질 뿐, 결코 머무는
적이 없다. 좌불을 흉내내는 것은 곧 부처를 죽이는 것이다.
앉음새에 집착하면 정작 깊은 이치에는 이를 수가 없다."
2>
회양으로부터 법(dharma)의 의미에 대해 가르침을
듣고 난 후, 마조는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한 감로수를
마신 기분이었다. 그는 스승에게 큰 절을 올리고 나서
다시 물었다.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면 무상삼매(無相三昧)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
회양이 말했다.
"그대가 내면의 지혜로 가는 길을 개척하고 있는 것은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 내가 그 법의 요지를 말해주는
것은 마치 하늘이 내려주는 단비와도 같은 것이다.
그대는 가르침을 받고 있으니 반드시 도(道)를 보게 되리라."
마조가 다시 물었다.
"도는 색깔과 형상이 아닌데 어떻게 그것을 볼 수
있겠습니까 ?"
회양이 말했다.
"심지(心地)의 법안(法眼)은 능히 도를 볼 수 있다.
무상삼매도 마찬가지다."
마조가 물었다.
"거기에도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습니까 ?"
이에 대해 회양이 답했다.
"이루고(成), 파하고(壞), 모으고(聚), 흩어진다는(散)
관점에서 본다면, 진정으로 도를 보는 것이 아니다.
자, 나의 게송(揭頌)을 들어보라."
"무심(無心)의 땅이 품고 있는 여러 씨앗은
단비 올 때 한결같이 싹터 오르네.
삼매의 꽃은 형태와 색깔이 없으니
피고 짐이 또다시 있을 리 있겠는가 ?"
마조는 이에 문득 개오(開悟)하고 마음속에 초연함을 느꼈다.
이후 제자로서 십년을 시봉(侍奉)하니, 나날이 그 깨달음이
깊어 갔다.
3>
어느 날 마조가 강서(江西)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스승이 계신 곳을 들렀다. 마조가 향을 사르고 엎드려
절하자, 회양은 이런 게송을 읊었다.
"나는 그대가 집에 가지 않기를 충고한다.
그대가 간다 해도 도(道)는 움직이지 않는다.
옆집에 사는 늙은 여인은 그대의 어린 시절 이름을 부르리라."
마조는 스승의 충고를 받아들여 다시 태어난다 해도 집에는
가지 않기로 맹세했다.
그후 오직 강서(江西)에만 머물렀는데, 사방에서 제자들이
모여 들었다.
어느날 대매(大梅)라는 승려가 처음으로 마조를 친견하고
나서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
마조가 말했다.
"현재의 이 마음이 곧 부처다(卽心是佛)."
이 말을 듣고 대매는 문득 깨달았다. 이후 그는 대매산으로
돌아가 몇 년이 지나도록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어느 날 마조는 한 승려를 보내 그를 시험해 보도록 했다.
승려가 대매에게 물었다.
"도대체 마조 스님께 무슨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으셨습니까 ?"
대매가 말했다.
"현재의 이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을 들었지."
"그런데 요즘 들어 마조 스님의 말씀이 좀 달라지셨습니다."
"어떻게 달라졌단 말인가 ?"
"이제 마조 스님은 이 마음 자체는 마음도 부처도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非心非佛)."
대매가 말했다.
"그 늙은이가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짓을 언제나 그만둘까?
그가 아무리 '비심비불(非心非佛)'을 말한다 해도 나는
오로지 '즉심즉불(卽心卽佛)'일 뿐이다.!"
승려가 돌아와 마조에게 사실을 이야기하자 마조가 말했다.
"매실이 다 익었구나!"
4>
어느 날 백장(百丈)이 마조를 시봉(侍奉)하여
산보를 나갔다.
그때 돌연, 머리 위로 들오리 떼가 날아 올랐다.
마조가 물었다.
"이 것이 무엇인가 ?"
백장이 말했다.
"들오리입니다."
"어디로 갔는가 ?"
"그냥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마조가 느닷없이 백장의 코를 잡아 비틀었다.
백장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마조가 말했다.
"날아가 버렸다고 ? 그들은 처음부터 여기에 있었다 !"
그 순간 백장이 문득 깨달았다.
이튿날 마조가 법당에 올라 법좌에 앉았다.
이윽고 대중이 다 모이자 백장이 돌연 몸을 일으켜 자리를
걷어 버렸다. 그러자 마조는 곧 방장으로 돌아갔다.
백장이 그를 따라 들어갔다.
마조가 물었다.
"아까 내가 미처 설법을 시작하기도 전에 왜 자리를 걷어
버렸는가 ?"
백장이 말했다.
"어제는 스님께 코를 비틀려서 아파 혼났습니다."
"어제 너는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있었는가 ?"
"오늘은 이제 코가 아프지 않습니다."
그러자 마조가 말했다.
"어제의 일을 잘 알고 있구나."
5>
마조에게는 세 명의 걸출한 제자가 있었다.
그들은 남전(南泉), 서당(西堂), 회해(懷海)로
스승과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즐겼다.
어느날 그들은 마조를 따라 달맞이를 갔다.
마조가 물었다.
"이런 때는 무엇을 하는 게 가장 좋겠는가 ?"
서당이 먼저 말했다.
"공양에 좋은 시간입니다."
회해가 말했다.
"수행하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남전은 아무 말없이 휙하니 옷깃을 떨치며 물러갔다.
마조가 서당지장(西堂智藏)을 돌아보며 말했다.
"경(經)은 장(藏)에 들 것이다."
(마조는 지장(智藏)의 이름을 가지고 농담을 하고 있다.
지장의 장(藏)은 바구니를 의미한다. 즉, 붓다의 말을
담아 갖고 다닐 수 있는 바구니라는 뜻이다.)
그다음 마조는 회해(懷海)를 돌아보며 말했다.
"선(禪)은 바다로 돌아갈 것이다."
(마조는 두 번째 농담을 하고 있다. 회해의 해(海)는 바다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마조는 결론을 내리듯이 말했다.
"오직 남전만이 물외(物外)에 초연하구나."
6>
마조는 제자들을 다룸에 있어 효과적인 수단을 찾아내는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었다. 이것은 석공혜장(石鞏慧藏)과의
대화에서 잘 나타난다.
혜장은 원래 사냥을 업으로 생업으로 삼고 살아가며 승려와
마주치는 것을 꺼렸다. 어느날 한 떼의 사슴을 쫓다가 마조가
머무르는 암자를 지나치게 되었는데, 마침 밖에 나와 있던
마조와 마주쳤다.
혜장이 물었다.
"혹시 사슴이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
이에 마조가 되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
"사냥꾼입니다."
"그대는 활 쏘는 법을 아는가 ?"
"물론 잘 쏘지요."
"화살 한 대로 몇 마리나 맞출 수 있나 ?"
"화살 한 대로는 한 마리밖에 못 맞추지요."
"신통치 않군."
"스님은 잘 쏘십니까 ?"
"암 잘 쏘지."
"화살 하나로 몇 마리나 잡으십니까 ?"
"한 번에 떼거리 전부를 잡는다네."
"이도 저도 다 생명이 있는 것들인데, 그렇게 마구 잡아도
되겠습니까 ?"
그렇게 잘 알면서 왜 그대 자신은 쏘지 않는가 ?"
"저 자신을 잡으려 해도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이에 마조가 말했다.
"그대는 영겁 동안 무명번뇌(무명번뇌)를 쌓아 왔다.
그러나 오늘, 그 끝없는 과정은 돌연 멈추었다 !"
혜장은 그 자리에서 화살을 꺾어 팽개쳤다. 그리고 출가하여
마조의 제자가 되었다.
얼마쯤 세월이 흐른 후, 혜장이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데
마조가 물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
혜장이 말했다.
"소를 돌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돌보는가 ?"
"풀밭에 들어갔다 하면 즉시 고삐를 바싹 잡아당깁니다."
마조가 말했다.
"자네는 소를 돌볼 줄 아는군 !"
7>
약산유엄(藥山惟儼)은 율장학파(律藏學派)에서
불교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경전 연구에 조예가 깊었으며,
선에 입문하기 전까지 고행 수도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런 것들이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법(dharma)의 형식화를 넘어 진정한
자유와 순수성을 염원했다. 그래서 스승을 구하던 중,
석두(石頭)를 만나게 되었다.
약산유엄(藥山惟儼)은 처음으로 석두(石頭)를 친견하고
나서 물었다.
"삼승십이분교(三乘十二分敎)는 대강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근래 남방에서는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가르치고 있다고 들었는데, 저는
아직 그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아무쪼록 자비를
베푸셔서 이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시오."
석두가 말했다.
"긍정해도 소용없고 부정해도 소용없다. 또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해도 소용없다. 자네라면 어찌 하겠는가 ?"
약산이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러자 석두가 노골적으로 말했다.
"자네는 나와 인연이 없는 듯하니 마조 스님께 가 보게."
약산은 석두의 말에 따라 마조를 찾아갔다. 그는 공손하게
예를 올리고는 석두에게 물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
마조가 말했다.
"나는 어떤 때는 그의 눈썹을 치켜 올려 눈을 깜박거리게
만든다. 또 어떤 때는 그가 눈썹을 치켜 올리거나 눈을
깜박거리도록 가만 놔두지 않는다. 어떤 때는 눈썹을 치켜
올리고 눈을 깜박거리는 자가 그이며, 어떤 때는 눈썹을
치켜 올리고 눈을 깜박거리지도 않는 자가 그이다.
그대는 이것을 이해하겠는가 ?"
이 때 약산과 마조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약산은 문득
깨달았다. 그는 마조에게 큰절을 올렸다.
마조가 물었다.
"무엇을 알았길래 절을 하는가 ?"
약산이 말했다.
"제가 석두 스님께 있을 때에는 마치 쇠소(鐵牛)에 매달린
모기 같았습니다."
"이제 그와 같이 깨달았으니 잘 지켜 보전하라."
약산이 마조의 곁에서 시봉(侍奉)하기 삼 년, 어느날 마조가
물었다.
"요즘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
약산이 대답했다.
"피부가 모두 벗겨져 나가고 오직 진실만이 남았습니다."
마조가 말했다.
"이제 자네가 얻은 것은 마음의 근본과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손끝에서 발끝까지 그것이 닿지 않는 곳이 없구나.
이제 자네는 대나무 밧줄 세 가닥을 허리에 동여매고 아무
산이나 들어가 있게."
약산이 물었다.
"저보고 어떻게 하라고 산에 들어가라 하십니까 ?"
"그렇지 않다 ! 머물지 않고 계속 여행할 수도 없는 일이며,
여행하지 않고 계속 머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으로 나아가고,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 위의 배처럼 이곳 저곳
떠다니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이곳은 자네가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니다."
8>
한 중이 마조 앞에 네 개의 선을 그었다. 위의 한 선은 길고,
나머지 세 개의 선은 짧았다. 그리고는 마조에게 물었다.
"한 선은 길고, 다른 세 선은 짧다고 말하는 것 외에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
그러자 마조는 땅바닥에 한 선을 더 그어놓고 말했다.
"이 선을 짧다고도 길다고도 말할 수 없다.
이것이 그 답변이다 !"
한 중이 물었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 ?"
마조가 말했다.
"자네의 '뜻'이라는 말은 어떤 뜻인가 ?"
다시 중이 똑같은 질문을 던지자, 마조는 그를 한 대
쥐어 박더니 말했다.
"자네를 때리지 않았다면 제방(諸方)의 선지식이
나를 비웃을 것이다 !"
법회(법회)가 마조에게 물었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 ?"
마조가 말했다.
"쉿 ! 목소리르 낮추고 좀더 가까이 오라."
법회가 가까이 갔다. 마조는 느닷없이 주먹을 한 대 먹이면서
말했다.
"여섯 귀로 상의할 일이 아니다. 내일 다시 오너라."
이튿날 법회는 법당에 들어가 말했다.
"오늘은 꼭 말씀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마조가 말했다.
"저리 비켜라. 다시 기회가 있으면 법당으로 오너라.
그 때는 대중 앞에서 밝혀주지 !"
그 순간 법회는 문득 깨달았다.
법회가 말했다.
"그것을 증명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법회는 법당을 한 바퀴 돌고 밖으로 사라졌다.
9>
방거사(龐居士)가 마조에게 물었다.
"일체의 법(dharma)과 무관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
마조가 대답했다.
"서강(西江) 물을 다 마시고 오면 그때 가르쳐 주지."
이말을 듣고 방거사가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후 그는 2년 동안 마조의 절에 머물렀다.
마조가 말했다.
"모든 법은 마음에서 유래하며, 모든 명칭은
마음의 명칭이다. 실로 모든 법이 마음에서 생기나니,
마음이야말로 모든 법의 근본인 셈이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물 위에 비친 달 그림자는 그 모양이
여럿이지만 정작 달 자체는 하나인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물줄기는 여럿이지만 물이라는 본질에 있어서는 아무
차이도 없다. 수없이 많은 삼라만상이 있지만 공(空)
안에는 아무 차별도 없다. 도리(道理)를 설하는 이론은
많지만 자유자재한 지혜는 하나이다. 이처럼 모든 것은
하나의 마음에 근본을 둔다.
일체의 법 모두가 불법(佛法)이다. 갖가지 법이 나름대로
해탈(解脫)이며, 해탈은 진여(眞如)와 다르지 않다.
일상 생활 가운데 가고, 오고, 머물고, 앉고, 눕고 하는
모든 것이 신기한 일이다. 거기엔 시간의 흐름이
필요치 않다. 경에 이르기를 '어느 곳이나 부처 없는 곳이
없다'고 했다."
마조가 말했다.
"도를 닦아 익힐 필요가 없다. 오직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면
된다. 마음이 생과 죽음, 행동을 꾀하는 것에 물들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더러움이다. 도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
평상시의 이 마음이 바로 도이다.
평상심(平常心)은 일부러 짐짓 꾸미지도 않고, 옳고
그름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취사 선택에 얽매이지 않고,
평범함과 성스러움을 구분짓지 않으며......
걷고, 서고, 앉고, 눕고 하는 일상적인 행동들,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이 모든 것이 도인 것이다."
10>
어느 날, 한 중이 마조를 친견하러 왔다. 마조는 땅바닥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 보이며 말했다.
"들어가도 맞고, 안 들어가도 맞는다.!"
이에 중이 서슴없이 원 안에 들어갔다. 마조가
그를 내리쳤다.
중이 말했다.
"저를 때리신 것은 옳은 처사가 아닙니다!"
마조는 주장자에 기대어 사라졌다.
방거사가 마조에게 물었다.
"물은 근육도 뼈도 없지난 만석(萬石)을 싣는 배라도
거뜬히 받친다고 합니다. 이것은 어떤 도리입니까 ?"
마조가 말했다.
"여기는 물도 없는데, 근육이니 뼈니 하는 것은
또 웬 말인가 ?"
어느 날, 은봉(隱峰)이 수레를 밀고 가는데, 마조가
다리를 뻗고 주저앉아 길을 가로 막았다.
은봉이 말했다.
"스승님, 다리 좀 거두어 주십시오."
마조가 말했다.
"한 번 뻗은 것은 다시 거두어 들일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말을 마치자 은봉은 계속 수레를 밀고 나아갔다.
결국 마조는 다리를 다치고 말았다. 법당으로 돌아왔을 때,
마조는 도끼를 손에 들고 소리쳤다.
"아까 내 다리에 상처를 입힌 놈은 썩 앞으로 나서라!"
은봉이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나서더니, 마조 앞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러자 마조는 도끼를 내려 놓았다.
마조는 수수께끼 같은 방식으로 급소를 찌르는데 결코
기회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는 임종을 앞두고
중병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도 근황을 묻는 제자에게
유명한 대답을 남겼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
어느 날, 마조는 절 가까이에 있는 석문산(石門山)에
올랐다. 그는 얼마 동안 숲 속을 거닐면서 명상했다.
그러다가 동굴이 무너져 평평해진 것을 보고 동행한
시자(侍者)에게 말했다.
"다음 달, 나의 육신은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는 산에서 돌아와 곧 몸져 누웠다. 다음 달인 2월 4일
그는 목욕을 마치고 결가부좌를 한 채로 입적(入寂)했다.
여든의 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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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재간들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도를 닦아 익힐 필요가 없다. 오직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면
된다. 마음이 생과 죽음, 행동을 꾀하는 것에 물들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더러움이다. 도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
평상시의 이 마음이 바로 도이다.
평상심(平常心)은 일부러 짐짓 꾸미지도 않고, 옳고
그름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취사 선택에 얽매이지 않고,
평범함과 성스러움을 구분짓지 않으며......
걷고, 서고, 앉고, 눕고 하는 일상적인 행동들,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이 모든 것이 도인 것이다."
참으로 옳은 말인 것 같다.
왜, 어떤 방법으로 더러움에 물들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아야 하겠지만, 요점은 없다.
그져, 분별하지 말라는 말이다. 분별하지 말라는 말 또한 분별이다. 행위하지 않음도 행위이다. 움직이는 모든 것이 도인 것이다는 말,말,말들.... 언술이 뛰어난 자들의 말재간이 아닐 수 없다. 요점이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더욱 더 가관인 것이... 결가부좌를 한 채로 입적했다는 말이다.
석가모니는 누워서 죽었는데, 중생들은 불상이라는 형상을 보고, 그것을 흉내내는 짓에 집착한 결과이다.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면... 이 글에 등장하는 머리깎은 중생들, 모두가 하근기 중생들이라는 것이다. 올바른 앎은 겨자씨 만큼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 깨달음'을 말재간들로써 아는 체 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불성을 보는 것이 아니며, 불법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그 근원을 찾기 위한 일이라는 뜻이다.
석가모니의 말이라는 불경이라는 경전이 우상숭배사상으로 왜곡되는 과정에서 그 가르침의 본질의 자취가 사라진 것이다.
팔만대장경에도... 불경이라는 경전에서도....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근본을 찾아볼 수는 없다. '도, 깨달음' 의 방편설들만 가득하여 수박 겉핧기 식이다. 인간의 관념, 즉 지식으로써는 수천수만년을 연구한다고 하더라도.... 해답을 구할 수 없는 말들이다. 왜냐하면 '나와 너' 라는 상대적인 분별이 사라진 '무위진인'들의 말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누구거나... 이런 글들에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그대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는 방법, 법, 길이다.
석가모니의 초기경전을 한글로 해석한 글을 보니.
제자들이여...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다, 수상행식도 이와 같다' 그러니 그것을 관찰하라'는 말이다.
두권의 책과 카페의 모든 글들.... 그 결과에 바탕을 둔 방편설들이다.
'일체유심조의 더 깊은 뜻'의 내용과 같이...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그대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을때, 그 때 비로소 삶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올바른 앎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백천만겁 난조우라는 말과 같이 귀하고 귀한 인연이 있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기 위한 대도무문의 빗장을 보는 것이며, 더 나아가, 검증된 삶으로써 어린아이들의 소꿉장난과 같이 삶을 즐거운 놀이로 재창조할 수 있는 능력, 권능을 얻는 것이다.
인연있는 자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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