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언어 · 불이일원론

일체중생 실(개)유불성/ 무법 가득법 - 지식의 총체적 무지와 진리/ 석가모니의 자취

일념법진원 2014. 12. 14. 11:05

22. 無法可得分 무법가득법

須菩提白佛言. 世尊 佛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爲無所得耶. 佛言. 如是如是
수보리백불언. 세존 불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위무소득야. 불언. 여시여시

須菩提 我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 乃至 無有少法可得 是名 阿耨多羅三藐三菩提.
수보리 아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 내지 무유소법가득 시명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제22분. 얻을 법이 없어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심은 곧 얻음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오니까? 부처님께서 말하셧다. 그렇다! 그렇다!
수보리야!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에, 조그만큼의 법이라도 얻을 바가 있지 아니함에 이르렀음으로 비로소 아뇩다라삼막삼보리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영문은 Edward Conze이 번역한 내용이며,

한문은 鳩摩羅什(구마라습)이 번역한 내용임.

한글 번역은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강해를 참조했음.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란 중생은 무두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불성이란 여래와 같은 성품으르 지녔다는 여래성(如來性), 깨달을 수 있는 성품을 지녔다는 각성(覺性)과 그 뜻이 같습니다. 즉 부처가 될 가능성, 혹은 부처님의 깨달음의 성질등을 불성이라 하며 여래장)如來藏)이라고도 합니다. 일체중생실유불성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경전은 (열반경) 제7권에서 불성을 진주에 비유핮니다. 역사(力士)가 서로부딧쳐서 미간에 있던 진주가 살 속에 박혀서 찾지 못하여도 거울에 비추면 잃지 않은 것을 알게 된다고 비유합니다. 이는 모든 것에는 본래부터 진주라는 불성이 있으나 단지 모르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범부는 불성이 번뇌에 덮여 있어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만약 번뇌를 여의면 불성이 드러난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일체중생에는 모두 깨달을 수 있는 성품인 불성이 있으나 중생이 번뇌를 제거하는 수도의 실천을 하지 않으면 불성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원래 갖추어진 불성일지라도 광산에서광맥을파서 갈고 닦아 금을 만들기 전에 금은 광산에 그냥 묻혀져 있듯 번뇌를 제거하고 가르침에 따라 갈고 닦아야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열반경)에서는 중생의 불성을 인정하면서도 매우 어려운 말씀임을 또한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불성은 우리 모두가 갖춘 성불할 수 있는 직접적 원인이 될 수 잇으나 보리심이란 간접적 원인이 없으면 중생은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성과 보리심이 결합해야만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불성을 지닌 사실만을 알아 이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보리심으로 실천해야 진정한 진리를 증득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심광거사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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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에는
[중생]이란 것이 없나니
중생이란 때를 벗어난 때문이며.

[법]에는 [나]라는 것이 없나니
나라는 때를 벗어난 때문이며.

[법]에는 [목숨]이라는 것이 없나니
생사를 벗어난 때문이며.

법에는 [남]이란 것이 없나니
과거와 미래가 끊어진 때문이며.
법은 항상 고요한 것이니
모든 [상]을 없애버린 때문이며.

법은 형상을 여읜 것인
연고가 없는 때문이며.

법은 [이름]이 없나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때문이며......
ㅡㅡㅡㅡㅡ 중략 ᆞᆞᆞᆞᆞᆞᆞ

거사님은
무슨 인연으로 병이 생겼으며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겠습니까?

유마힐이 말하였다.
[무명]으로 부터 내 병이 생긴 것이요
일체 중생이 병이 들었으므로
나도 병들었으니

일체 중생의 병이 없어지면
내 병도 없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하여
생사의 길에 들어가는 것이요

생사가 있으면 병이 있는 것이니
이 병을 여의면
보살도 병이 없을 것입니다.

[출처 : 유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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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금강경에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여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만약 모든 형상이 상 아닌 것을 본다면
즉시 여래. 즉 부처님을 친견하리라. 란 부분도
알 수 있고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 삼법인도
느낄 수 있고요.

12연기. 연기설. 인연과 인과응보도 느낄 수 있네요.
[유마경]에도 그러한 가르침을 알려주십니다.

유마거사님은 속세를 떠난 스님이 아닌데도
부처님의 수제자들께서
유마거사의 지혜와 법안이 높아
서로 문병가시길 꺼려하셨다합니다.

우리 우바새. 우바이. (거사님. 보살님.)
큰 서원을 가지고 열심히 수행정진 다 같이 해요!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끊으오리다
.

세세상행 보살도.
세세생생 보살의 길을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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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글이다.

위의 설명들... 모두 하근기 중생들의 어긋난 주장이다.

 

올바르게 아는 인물들이라면, 위의 '무법가득법'이라는 말에서의 '시명(是名)' 이라는 낱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올바른 앎으로 본다면, '아뇩다라...' 라는 말 또한 그것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름'으로써만 있는 것이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명색의 동일시의 착각에서 깨어난다면... 모두 말로 지어진 것들일 뿐, 사실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우주만물의 근원물질이 '아무것도 없는 것' 과 같은 이치이다.

 

인간세상, 인간들의 모든 앎, 지식이 '명색'의 동일시에 대한 착각으로써의 앎이라는 말이기 때문에 사실적인 앎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인간은 우리가 '인간이다' 라고 주장한다.

'내가 사람이다' 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앵무새에게 말을 가르쳐서 '앵무새가 '나는 사람이다, 나는 사람이다, 나는 사람이다' 라고 지저귀는 것과 똑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앵무새가 배운 그대로 지저귀듯이 인간들 또한 근거 없는 말, 말, 말들에 대해서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들이 지식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의 '내가 사람이다'는 말 또한 그져 배운 그대로 주장하는 것일 뿐, '내가 사람이다'는 말에 대한 근거가 없다. 단지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부터 그렇게 듣고 배웠기 때문에 사실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것 뿐이다.

 

사실. '내가 사람이다'는 말과 '내가 사람이 아니다'는 말은 상대적인 말이다. 상대적인 말들 중에서 하나에 대해서만 무조건 옳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은 것이다. 억지로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다수결로 결장한다면... 인간들의 주장이 옳은 것이며, 석가모니의 말이나, 예수의 말이나, 지금 이곳의 글들은 모두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들의 지식은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지식은 근거  없는 것들에 대해서 주장하는 것으로써 터무니 없는 주장이다. 반면에 진리는 근거가 분명한 앎으로써의 올바른 앎이다.  

 

사실. 인간들의 '우리가 사람이다'는 말은 무턱대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이라는 말에 대한 근거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거나, 단군신화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인간이며, 단군신화를 주장하는 것 또한 인간이다. '하나님'이라는 것이 사실적인 것이라서, '내가 하나님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간동물들만의 자기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시명중도(是名中道)' 라는 말이 있다. 

'바를 시' 자와 '이름 명' 자로써... 올바르게 본다면 '중도, 도, 법, 불성' 이라는 말 또한  또 다른 '이름' 이라는 뜻이다. 명색으로써만 존재하는 것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별은 별이 아니다, 라고 한 것이며, 법은 법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이며, 사람은 본래 사람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이다. 영혼은 영혼이 아니며, 부처는 부처가 아니며, 우주는 우주가 아니며, 물은 물이 아니며, 산은 산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세상만물의 근본원인 물질은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또한 모두가 '명색'의 동일시에 따른 착각의 산물, 환상물질들이기 때문이다. 

 

무법가득법이라는 말은 '법'이 본래 없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면, 그것이 곧 모든 것이라는 뜻이다. 

'한 법도 얻은 것이 없다'는 말은, 본래 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을 이르는 말이다.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앎, '나가 나가 이니다'는 앎... 올바른 앎이다. 

왜냐하면 '내가 있다'는 말은 '내가 없다'는 말과 상대적인 말일 뿐만이 아니라, 근본원인물질이 없는 것에 대해서 인간들은 '자아' 라고 알며, 자기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자신의 허구를 보라고 하는 것이며, 진리의 길을 가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살아갈 가치도 없는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의 지식에 바탕을 둔 모든 주장들이 이와 같이 허무맹랑한 것이다. 무지몽매한 것이다.

마음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마음이 왜, 생겨난 것인지에 대해서는 완전하게 무지하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 마음이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마음이 왜, 서로 다른지에 대해서 이해 조차 불가능 한 것이 지식이기 때문이다. 얼굴 모습이 모두 다르지만, 왜 다른지에 대해서도 무지하기 때문이다. 원인도 모르면서 그져 주장하는 것들... 인간들의 지식이다. 그러니 서로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기를 주장해야만 하니. 어찌 서로가 화합하여 평화로울 수 있겠는가말이다.

 

'일체중생개유불성'이라는 말은, 사실. 중생들에게 불성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중생들의 앎이 이토록 무지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깨달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이다. 그 법, 방법에 대해서 까지도 자세히 설명했던 인물들이 예수와 석가모니이다. 하지만 아득한 옛시대의 말들이다 보니, 이미 퇴색되고 변질도어 우상숭배사상으로 전락되면서 그 본래의 뜻은 애시당초 자취가 사라졌다. 그렇기 때문에 현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써 표현되는 말이 '일념법, 일념명상법, 일념윤회법' 이라는 방법이다. 

 

이런 말들, 진실된 말들, 진리의 말들... 일념명상법으로써 생각의 생멸현상에 대해서 이해 할때, 그때 비로소 사실적인 앎으로 드러나는 것이며, 지식을 초월한 올바른 앎일때, 그때 비로소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앎이기 때문에 '불변의 진리' 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한 예를 든다면, 성령이나 불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령이나 불성의 생각이 아니라, 오직 인간들의 생각이라는 앎이 그러하다. 

 

행복이나 자유, 평화. 오직 진리 안에 있는 것이다.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자유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