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언어 · 불이일원론

깨달음과 깨침/ 체용불이 - 돈오돈수와 돈오점수 / 하근기 중생- 언술이 뛰어난 자들의 망상과 망언. 진리란?

일념법진원 2014. 12. 14. 08:09

인간의 무지 그 어리석음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사실. 깨달음의 용어들에 대해서 다시 해석해 볼까하여 '깨달음'이라는 낱말을 검색해보니, 체용불이라는 말과 함께 돈오돈수가 어떻고 돈오점수가 어떻고 하며 '증산도'의 문화 연구소라는 곳을 통해서 책을 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사실 자세히 보니. '체용불이' 라는 제목의 책자들이 여러권 있었다. 

 

지식의 무지, 무식의 소산이다.

왜냐하면 '도가도비상도'라는 '노자'의 말은 '도는 도가 아니다'는 말이며, 석가모니의 말로 전해지는 '무고집멸도'라는 말 또한 '도, 법'이 본래 없는 것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불성 또한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닌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닌 것도 아니라는 설명이기 때문에 인간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써는 이해가 가능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깨달음'이란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상태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에 지식으로써는 감히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말이다. 사실. 공. 무. 등으로 표현되는 '텅 빔' 또는 '없음'이라는 말 또한 인간의 사고방식으로써는 주체와 대상으로써의 이분법적 사고로 이해 될 수밖에 없다.

 

설령 '아무것도 없는 것' 즉 '본래무일물, 본무' 라는 말로 표현된다고 하더라도 이 또한 주체와 대상으로서 이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 이라는 말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이해는 '허공'이라는 말로써 '하늘이라는 주체가 있으며, 그것이 텅 비었다'는 방식으로 이해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무' 라는 말이나 '본무' 라는 말 또한 그러하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본래무일물'이라는 말에 대한 이해 또한 편견이며, 단견이며 소견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본래무일물'이라고 생각하는 자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아'가 있다는 생각과 자아가 없다'는 생각은 한생각의 차이이다. 자아가 있다는 말도 편견이며, 자아가 없다는 말도 편견이다. 그리고 깨달음, 도... 등으로 표현되는 말은 '본래무일물'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며, '자아와 대상' 모두가 사라졌음을 이르는 말이다. 

 

 물론 자아와 대상이 본래 없는 것, 이라고 설명 하더라도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자아와 대상이 없다'는 말, 말, 말에 대해서 상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비유를 들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들 또한 매일매일 깊은 잠을 통해서 '본무'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대는, 아니 인간은... '깊이 잠들어 있는 동안' 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다. 그 상태에 대해서 '무, 공, 본무, 본래무일물'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며, '죽은자의 생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것, 그것에 대해서 '깨달음, 도, 본무, 진리' 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사실. 인간은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완전하게 무지하다.

물론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완전하게 무지한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바탕으로 하여 '진리, 깨달음, 도' 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며, 인간의 관념으로써도 이해가 가능하도록 설명하는 것이다.

 

사실. 석가모니, 예수가 존재하던 시대에는 '논리적'이라는 말이나 '분법'이라는 말, 또는 '육하원칙'이라는 말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그들이 글을 남긴 것도 아니다. 다만 언술이 뛰어난 자들, 즉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 의해서 그들의 말이 이분법적 논리로 해석되다 보니, 예수의 말과 석가모니의 말이 서로 다르게 해석된 것이다. 우상숭배사상으로 전락된 것이다.

 

 

생각의 이치에 대한 논리로 본다면,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있다'는 생각과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은 단지 인간들의 생각일 뿐,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이라는 말 또한 그러하다. 부처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처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이라는 뜻이다. 인간이 무한한 어리석음은 '물가에 돌맹이를 던져 놓고서 기도하면 돌맹이가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불상앞에서 기도하는 짓이나, 하나님에게 무엇을 달라고 기도하는 짓들이 그러하다는 뜻이다. 감동하는 것은 불상이나 하늘이 아니라, 인간들의 마음이 흔들린다는 말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현시대는 문자가 밝은 시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 도, 진리' 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도록 설명될 수 있다. 논리적이라는 말과 논리적이라는 말을 충족시킬 수 있는 육하원칙이라는 법칙으로써 이해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가 있으며, 둘은 인간들의 언어가 명색의 동일시일 뿐,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며, 셋째는 '생각의 원리'에 바탕을 둔 설명으로써 누구나 지적으로써도 이해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난생 처음 듣는 말들이기 때문에 사투리와 같이 알아들을 수 없거나, 전혀 낯선 말로 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일 뿐, 올바른 앎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말이 진리의 말이다. 

 

사실. 깨달음이라는 말은 한자로써는 '노자의 '道' 라는 말과 같은 뜻이며, 석가모니의 말로 전해지는 '중도'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또한 예수의 말로써는 '진리'라는 말로 해석되면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로 알려진 것 같다. 그리고 한글사전의 '진리'라는 낱말에 대한 의미는 '우주의 근본원리를 이해 하는 앎'으로 표현된다. 사실, '깨달음'이라는 말과 '진리'라는 말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며, '통찰'이라는 낱말 또한 '깨달음'의 앎을 표현 하기에는 적절한 설명방법이다.

 

사실. 인간의 사고방식이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는 까닭은 '자아'가 실존이기 때문이며, "육체가 나다" 라는 앎에 대해서 사실적이 아니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감히 '내가 사람이 아니다' 라고는 생각 조차 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명색의 동일시라는 말이 있다. 

사실 인간들의 모든 언어가 명색의 동일시이며, 이름과 형상과의 동일시를 뜻하는 말이다. 가령, 하늘에 날아다니는 어떤 물건에 대해서 '까마귀' 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말이다. '까마귀' 라는 글자, 또는 '까마귀' 라는 소리는 '그것(날아다니는 물건)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그런데 그 이름을 짓고 나서... 의례히 그것에 대해서 까마귀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이름을 짓고 나서는 '까마귀' 라고 하면... 이름과 형상을 하나로써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12 연기법에 나오는 '名色'이라는 낱말의 본래의 뜻이다.

 

사실 그대의 이름 또한 그러하다.

인간세상에는 '명실공히' 라는 말이 있다. 이름과 실체가 같아야 한다는 말이지만 인간세상의 모든 언어는 모두가 '명색'의 동일시로써 사실이 아닌 것이며, 실체가 아닌 것이다. 

 

그대 또한 본래 이름이 없었다. 

육체, 몸 이라는 말도 '이름'이며, 그대의 이름이 '철수'라고 하더라도 '철수' 라는 말 또한 '이름'이다. 

 

사실. 인간은 '육체=나=이름=마음' 으로써 모두 '이름'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들을 총칭하는 말이 '언어'이다. '언어가 없다면' 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언어가 없다면' 이라는 언어이며, 생각이다.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 또한 '생각이 없다는 생각' 이다.   

 

 

체와 용이 둘이 아니라고 주장하든, 둘이라고 주장하든, 돈오돈수가 옳다고 주장하든 돈오점수가 옳다고 주장하든 그런 말들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사실 불경을 해석한다는 자들이거나, 성경을 해석한다는 자들 모두가 중생이며, 길잃은 어린 양새끼와 같은 것들이며, 짐승보다 뛰어날 것이 단 하나도  없는 것들이다. 아니.

차라리 짐승들이 더 뛰어난 것 같다.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는 것들이 진리. 깨달음에 대해서 까지도 옳다, 그르다고 주장하는 짓들을 보니. 인간들, 지식들... 짚으로만든 개처럼 취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진리가 무엇인지 서로가 주장해서 서로가 떠들어서 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단말인가? 

 

'체와 용'이 어떻고... 하며 주절거리는 자들, 그것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식하고 어리석은 것들이다. 

'체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며, 용 또한 보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들은 '도, 깨달음, 진리'에 대해서 까지도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동전이 있기 때문에 양면이 있는 것이다. 동전을 놓고서 서로가 이쪽이 옳다, 저쪽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들이 인간의 지식이다. '진리, 도, 깨달음' 그것을 동전에 비유한다면, 이쪽면도 아니며, 저쪽면도 아니다. 왜냐하면 '동전이 본래 없었던 것' 이기 때문이다. 

 

우주, 하늘이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며, 인간세상이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며, 그대의 나 또한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있겠는가? 부처님이 있겠는가? 하늘이 본래 없는데, 성부가 았겠는가? 성모가 있겠는가? 성자가 있겠는가?

 

'자아'가 본래 없는 것이다. 사실.

그대의 '나가 있다'는 말, 앎, 생각들... 근거 없는 앎이다. 

타인들로부터 그렇게... 듣고 배우고 익혀서 아는 지식, 정뵤들과 같은 것이, 근거가 없는 앎이다.  

자아가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삶과 죽음 또한 본래 없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대의 '내가 있다'는 앎이 근거 없는 앎인것과 같은 이치이다. '내가 있다는 생각과 내가 없다는 생각'은 한생각의 차이이다. 더 나아가 '인간의, 인체의 근원물질이 없다. 몸의 근원인자가 없다.

 

인간은 스스로 우리가 인간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또한 근거 없는 주장이다. 우주 만상만물들... 근본원인이 없는 것이다. 원인물질이 없는 것이다. 우주가 먼저 있던 것이 아니라,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의 관념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관념으로 본다면, 깨달음이 있다.

진리가 있다. 우주의 근본원인을 이해 하는 앎이 진리이다. 생명의 비밀을 이해 하는 앎이 진리이다.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깨달아 아는 앎이 진리이다. 물질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앎' 만이 있다. 그것들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앎. 그것만이 있는 것이다. 오직 그것이 실체이다.

 

만약에 깨달음이 있으며, 깨침이 있다면.

'깨달음'은 진리이다.

그리고 깨침이 있다면, 깨침이란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언어가 상대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지혜이다. 언어가 '명색'으로써 존재하는 것일뿐, 사실적이 아닌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앎이다.

 

 

깨달음. 도. 진리.... 인간의 지식으로 헤아려 이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인간들의 천적은 인간들의 지식이다.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 '진리, 깨달음'을 논하는 자들... 수많은 중생무리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의 하근기 중생들이다. 깨달음의 언어, 진리의 말, 말, 말들... 짐승들은 어차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들 또한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짐승들과 똑 같이 알아들을 수 없는 자들에 대해서 '하근기'중생이라고 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반신반의 하는 자들에 대해서 중근기 중생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적으로나마, 석가모니의 말과 예수의 말,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말과 노자, 장자의 말, 말, 말들이 모두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면, 상근기 인물이다. 더 나아가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면,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이다.

 

지식은 논리적이지 않은 것들, 근거 없는 앎에 대한 주장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진리는 지극히 논리적이며, 근거가 분명한 앎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에 다툼이며, 경쟁이며, 투쟁이 아닐 수 없다. 반면에 진리는 올바른 앎이기 때문에 다툼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평화이며, 자유라고 하는 것이다.  

 

진리와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