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중도 · 방편설 - 말변사

[구원] [해탈]의 정의/ 구원과 영광 - 믿음과 신앙/ 마음과 영혼(성령, 불성)/ '자아' 와 의 관계에 대한 사유

일념법진원 2015. 1. 30. 08:11

사실 인간의 무한한 어리석음이 있다면, 신을 믿는 것이며,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들에 의해서 신앙의 대상으로 전락된 예수와 석가모니는... 우상을 믿거나 신을 숭배했던 인물들이 아니라 스스로 '자아탐구'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찾았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불성이나 성령, 또는 예수님이나 하나님, 부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타인들의 마음을 믿는 것과 같은 것은 무한한 어리석음이다. 참으로 신비한 일은 죽는 날까지 자기의 자존심 즉 자기의 지식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우상으로 숭배함에 대해서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리석음이 우주보다 더 무한하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믿을 만한 사람을 갈망하겠지만, 이 또한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한, 타인들의 마음 또한 이해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장 큰 어리석음이 있다면,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는 완전하게 무지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며, 남들의 언행, 언동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기리려 하거나, 또는 어떤 언술이 뛰어난 자들을 스승으로 섬기거나, 더 나아가... 심지어 정신병자와 같은 자들을 우상으로 숭배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완전하게 무지하기 때문이다.  

 

 

사실. 도를 깨닫는다는 것, 일념법으로써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생겨난 의타심이나, 의존성이나, 열등감 등의 모든 나약함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인간세상에는  자신보다 더 뛰어나거나, 더 위대 하거나 더 훌륭한 사람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분명히 이해 하는 앎인 것이다.

 

 

사실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라면... 인간세상에서는 가장 지능이 뛰어난 인물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 "세상에 자신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있을 수 없으며, 자신보다 더 위대한 인간이 있을 수 없으며, 인간세상에 자신보다 더 지능이 뛰어난 인간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올바른 앎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대가 일념을 깨닫지 못했다면, 인간이 인간이면서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 조차 불가능하다면... (사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무형의 실체가 '영혼'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신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며, 타인들의 말, 말, 말에 의존하거나, 운명의 신을 믿을 수밖에 없다거나, 여타 종교나부랭이들의 하수인이 되거나, 하나님의 피조물이거나, 중생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으로써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삶을 사는 것이며, 여한이 남겨질 수밖에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사실, 일념법으로써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은, 인간세상의 모든 지식들이 쓸모 없는 것이며, 더 나아가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올바른 앎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불치병환자라고 할지라도 일념병상법으로써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 할 수 있을때... 현대의학이나 기타 학문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며, 스스로 모든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능력을 얻는 것이다. 인간의 지식의 한계를 벗어난 능력이기 때문에 '초능력' 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나의 삶'이며, '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내인생이며, 나의 삶'이라는 앎(말, 생각, 마음)에 대해서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에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가... 그대의 삶에 대해서 '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대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완전하게 무지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내 인생이 있다'는 말(앎)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내 삶'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며,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올바른 앎이 아니라 착각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대는 인간세상에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반신반의하거나, 헛소리 쯤으로 여기거나 또는 사투리, 방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일념을 깨달아서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 할 수 있는 인물들이라면, 상식에 속하는 말이며, 당연한 앎으로써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인간들의 '내 인생'이라는 말(앎, 지식)이 왜 논리적이지 않은 말이며, 왜 어불성설이라고 하는가? 

첫째, 인간은 누구나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자신'이라는 몸 또한 근원물질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셋째는 자신의 마음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영혼'에 의해서 움직에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위대한??? 지식인들이 주장하듯이... 몸에 깃든 무형의 실체인 '영혼'에 의해서 움직이는 몸과 마음에 대해서.. 그대는 '자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대가 '나, 자아, 내 몸, 내 마음'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대는 몸에 대한 아무런 권한이 없으며, 마음 또한 스스로 조정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인간들 대다수가 신을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영혼을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며, 욕망의 늪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언술이 뛰어난 자들... '예수의 마음'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어리석은 자들이 예수의 말을 왜곡시키게 된 것이며, '구원'이라는 말을 창조된 것이며, 구원자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참으로 무모한 발상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마음이라고 주장하면서 남들의 마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 앎..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몸에 깃든 영혼이 있으며, 그 영혼에 의해서 생명이 있는 것이며, 마음 또한 영혼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것'에 대해서 '자아'라고 동일시하기 때문에... '내 인생이며, 내 삶' 이라고 생각하는 오류에 대해서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예수는 그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설명했던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방식으로 설명했던 것이며, 더 나아가 하루종일 기도하여 진리로 거듭나라고 한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수는 '나'를 믿으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나의 말, 말, 말'을 믿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말, 말, 말씀을 하는 '나' 가 '나가 아니기 대문에... '나의 말이라는 편견(나와 너 라는 분별심)으로써의 '나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나와 너, 선함과 악함이라는 양변의, 극단의 분별심을 떠난...)이라는 방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사실, 예수의 말이 왜곡되고 변질되어 전해지는 '하나님으로부터의 구원' 이라는 말은, 석가모니로부터 전해지는 '해탈, 심해탈'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써...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깨달아서, 즉 영혼의 실체가 '나라는 생각의 환상물질이라는 사실'에 대한 올바른 앎으로써 '마음이 본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여 왜곡된 마음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는 말인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내 인생, 나의 삶' 이라는 주장은...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운 그대로의 삶을 답습하는 것이며, 그것이 누구이건간에 여러 타인들의 삶을 흉내 내는 것들이 아닐 수 없다. 설령, 세상에 어떤 특별한 삶이 있다고 하더라도... 또는 어떤 인간의 어떤 특별한 사고방식으로써의 삶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의 삶 또한 특별한 것이 아니라, 여느 과거시대의 인간들의 삶을 흉내 내거나 유사하게 답습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일념법으로써 자신의 마음이 본래 없는 것이라는 앎으로써의 삶을 사는 일이란,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운 그대로의 앎으로써의 삶을 답습하거나, 타인들의 삶을 흉내 내는 삶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자신을 믿는 자신만의 삶을 사는 삶으로써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더 나아가 죽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 비로소 '검증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존재 자체를 여여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올바르에 이해 하는 앎에 대한 기쁨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세상만사 모든 일들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즐거운 일로 재창조해 나갈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 권세'가 아니라... 자신 스스로의 권능을 되 찾는 일에 대해서 소위 한글로는 '깨달음' 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며, 한자로써는 '득도, 오도, 정각, 부처, 불성' 등으로 표현 된느 것 같다.    

 

 

사실. 인간들이 우상으로 여기는 예수와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등의 인물들의 존재가 그런 방법으로써 가치 있는 삶을 살았던 인물들이다. 사실 인간이 스스로 만족하여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이유는 자신의 삶이지만, 자신의 삶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운 그대로의 삶을 답습하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영혼'이 있다는 말과 하늘나라 어디엔가 하나님이 있을 것이다는 말, 그리고 불성이나 성령이 있다는 말, 심지어 마음이 있다는 말(앎, 지식, 뜻) 조차도 근거가 없는 말인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과념으로써 납득할 수 없는 까닭은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말 또한... 예수의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만약에 불성이나 성령이나 운명의 신, 또는 영혼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대가 스스로 깨달아서 아는 앎이 아니라, 누군가 타인들로부터 듣거나, 책을 보거나 등의 간접 경험을 통해서 알게된 앎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타인들로부터 들었던 말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사실이라고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앎을 믿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앎을 믿는 것이다. 그대의 삶 또한 그러하다. 여러 타인들의 삶을 흉내 내는 방법으로써의 삶으로써 그대가 행복할 수 있다면 상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인간세상 어느 누구도 스스로 만족하여 행복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 수 없는 까닭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완전하게 무지하기 때문이다

 

 

사실, 마음은 욕망이다.

하지만 인간이 욕망을 모두 채울 수도 없으며, 욕망을 모두 비울 수도 없는 까닭은 그 욕망(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本無' 라는 말에 대해서 상상할 수 있을 뿐, '본무'를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시간과 공간이 없다'는 말은 '무아(無我)'를 이르는 말로써 '본무' 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이 말은 또한 '우주가 없다'는 말과 같은 뜻이지만... 인간의 관념이란 '우주가 없다'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우주가 없다는 뜻으로써의 "'무주(無宙)' 가 있다" 는 방식으로 이해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깨달음, 진리'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며, 불립문자, 언어도단, 우이독경' 그리고 더 나아가 기독교의 '방언'이라는 말들까지도 창조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영혼'이라고 알며, 또한 그것에 대해서 '자신'이라고 아는 앎에 대해서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앎 또한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워서 아는 앎일 뿐, 자신이 스스로 깨달아서 아는 앎이 아니라는 뜻이다. 

 

 

만약에 마음, 영혼이 있다고 들었다면, 그래서 타인들로부터 들었던 말들에 대해서 무조건 적으로 믿는다면, 그런 삶이라면 온전한 자신의 삶이 아니라, 타인들의 삶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젠 자신에게 물어서 스스로 깨달아 알아야 한다는 뜻이며, 그 방법에 대해서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아탐구' 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가령 영혼이 있다거나, 성령이 있다거나, 불성이 있다거나, 귀신이 있다면... 이제 스스로 자신에게 물어보라는 뜻이다. 가령 '영혼'이 어디에 있는가? 라고 타인들에게 묻는다면... 서로가 자기의 주장들을 늘어 놓을 수밖에 없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성령'이라고 주장할 것이며, 석가모니를 믿는 자들은 '불성'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대 자신에게 끊임 없이 묻고 물어 들어가다 보면... '영혼이 어디에 있는가' 라는 한구절의 생각에 대해서 끊임없이 반복하여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영혼이 어디에 있는가' 라는 단 하나의 의문에 대해서 끊임없이... 하루종일 기도하여 진리로 거듭나라는 '예수'의 가르침과 같이 단 '하룻동안'만이라도 단 한시간동안만이라도... 끊임없이 묻고 또 묻다보면, '영혼이 이디에 있는가' 라는 생각을 반복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며, 어느 순간... 아!! 영혼이 있다는 생각일 뿐... 그것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생각의 작용'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사실, 귀신이나 영혼, 성령, 불성... 등의 말, 말, 말들만 무성할 뿐, 어떤 근거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자신이 알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의 작용에서 비롯된 환상이기 때문이다. '일체유심조의 더 깊은 뜻'에 대한 설명과 같이...

 

 

위의 요약설명들... 책과 카페에 여러 방편들과 사례들로써 자세히 설명된 내용들이다.

사실 진리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 하지만 지식은 근거가 없기 때문에 논리적일 수 없는 앎이며, 올바른 앎이 아니다. 반면에 진리는 분명한 근거에 바탕을 둔 말들로써 올바른 앎인 까닭은 지극히 논리적이기 때문이며, 현시대 인간들 누구나 이해가 가능 할 수 있는 까닭은 현시대가 문자가 밝은 문명시대이기 때문이며, 육하원칙이라는 법칙과 논리적이라는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라고 하는 까닭은 인간세상이 존재하는 한.. 인간이 진리를 갈망하는 한,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유일한 법이며, 방법이기 때문이다. 

 

진리와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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