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론 - 잘사는 삶 · 올바른 삶

행복의 조건과 인생의 목적과의 관계/ 지식의 허구와 진리에 대한 사유 - 영원한 행복으로의 초대/ 스스로 아는 앎이란?

일념법진원 2015. 2. 20. 06:25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삶에는 후회 없는 삶이 없다.

그런데 인간은 인간들의 삶에 있어서 왜, 후회 없는 삶이 있을 수 없는지에 대해서 조차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없는 지식에 대해서 의심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삶에 대해서 길잃은 어린 양과 같고 다른 동물 무리들과 다를 바 없는 무리들이라는 뜻으로써 '중생' 무리들이라고 했던 인물들이 예수이며, 석가모니이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나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일 수 있다. 그 목적이 무엇이든지 상관 없다. 하지만... 인간들의 삶에 있어서 그 목적이 아무리 뛰어난 생각이라고 할지라도 죽음 앞에서 후회와 여한이 남겨지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은 올바른 지식의 앎이 올바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들로써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부자 되세요/ 세헤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인싯말들... 어처구니 없는 말들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부자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가난하다는 것 또한 상대적 빈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부자라서 행복할 수 있다면... 먹을 꺼리가 부족하던 옛날 사람들은 모두가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단정 짓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사실, 선함과 악함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부자가 악한 것이며, 가난이 선한 것이다. 왜냐하면 부자는 스스로 부자가 아니라 남들과의 경쟁으로써 빼앗은 것이거나, 도둑질한 것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인간이 모두 동등한 것이며, 평등한 것이라면... 공평한 경쟁 논리 따위를 적용할 것이 아니라, 공평하게 분배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정치나 경재 논리 등의 말도 안되는 이분법적 사고방식 따위에 대해서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삶에 있어서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는 것이다. 

 

왜? 인간의 삶은 행복할 수 없는 것이며, 평화로울 수 없는 것이며, 후회 없는 삶이 있을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해서 사유해 보라는 것이다. 인간세상 인간들의 삶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 보이거나 후회 없는 삶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까닭은 인류가 가야할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삶이 길잃은 어린 양새끼와 같다고 하는 까닭은 인간들의 존재 또한 길잃은 어린 양과 똑 같이 죽음을 향해서 달려 나가는 것이 고작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삶의 목적이 겨우 인간들끼리의 경쟁이거나 투쟁이거나, 전쟁, 논쟁, 논란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삶에 대해서 무한한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까닭은, 죽음 앞에 다가서서야 비로소 자신 삶을 되돌아 분다는 것이다. 더더욱 어리석은 것은... 늙고 병든 인간들의 비참하고 추한 모습을 지켜 보면서도... 그것이 곧 자신들 삶의 결과라는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설령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길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연 있는 이들에게 그 길을 알리려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대가 남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기를 원하든 간에... 무엇을 원하던 간에... 자신의 나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것이 없다면, 삶의 결과는 누구나 똑 같다는 것이며, 오직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볼 수 있어야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며, 검증된 삶으로써 죽음 또한 삶과 같은 것으로써 존재 자체를 즐거움으로, 죽음 또한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는... 그대의 삶에 어떤 목적이 있는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며, 무슨 일을 함으로써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말이다.

 

 

인간세상 둘러보니... 인간들 모두가 자신의 삶에 있어서 목적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사실, 어떤 사람이 "나는 오직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목숨을 걸겠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삶은 가치 있는 삶일 것이며, 후회 없는 삶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또한 후회 없는 삶일 수 없는 까닭은 오직 자신만의 잣대로, 자신만의 지식으로,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행복, 자유, 평화를 누릴 수 없는 까닭은 자신의 앎에는, 정작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들 또한 타인들을 의존하여 아는 지식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삶이 참으로 신비스러운 까닭은 자신의 나에 대해서 조차 남들을 통해서 이해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아는 것 또한 남들의 지식을 통해서 이해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자신의 몸에 대해서 까지도 남들의 지식에 의존한다는 것이며,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사실, 그대는 그대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대는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름, 나이, 성별, 부모, 고향'을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들 또한 그대가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며, 남들로부터 듣고 배운 것들에 대해서 '내가 있다'고 아는 것이며, 내가 사람이라고 아는 것이며, 내게도 자존심이 있다고 아는 것이다. 남들로부터 배운 것들이다.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자신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기 때문에, 남들을 의식하는 것이며, 남들의 남들에 의해서 자기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인생이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자기 안에는 자기가 없는 것이며, 남들로부터 듣고 배웠던 말, 말, 말들... 언어만 있는 것이다.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운 언어로써 자기라고 알며,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대 안에 있는 것은, 그대가 아니라 남들의 남들로부터 듣고 배웠떤 언어 들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자신의 내면을 보라는 말이며, 자신의 나에 대해서 자세히 관찰해 보라는 뜻이다. 그대의 나, 라는 것. 그것의 구성 요인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대체 무엇으로 구성된 것이 그대 자신의 자존심인지 알아야만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이해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사실, 그대 안에 있는 것들이,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것 같지만... 사실 그대 안에 있는 것들은 다른 것들이 아니라, 남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웠던 말, 말, 말들... 언어일 뿐, 언어 이외의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면... 현명한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그대 뿐만이 아니라, 인간들 모두가 그러하다. 

 

 

인간들의 드러나 보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천가지 형태와 만가지 형상, 모양으로써 서로 다르게 보일 뿐, 내면에 간직된 것은 오직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웠던 말, 말, 말들일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약에 다른 것이 있다면... 제각기 뇌에 저장된 언어의 숫자가 조금 더 많거나, 작거나의 차이일 뿐이다는 뜻이다. 그 기억된 언어에 의존하여 행위 되어 지는 것에 대해서 '나, 자아' 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언행, 언동'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고. 

 

 

사실, 인간은 꼭두각시 인형과 같은 것이며, 인공지능 로봇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인공지능 로봇이 입력된 언어에 의해서 행위되어 지는 것과 같이... 인간들 또한 자신에게 입력된 언어에 의해서 행위되어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류들에게 공통적으로 입력된 언어가 있다면.... 무엇일까? 

지금 그대가 원하는 것이며, 욕망이라는 '이름' 이다. 

 

 

지금 그대 안에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얻은 언어이며, 그것에 대해서 지식이라고 한다. 남들을 의존하여 얻는 지식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아는 지식이 있는 것이며, 스스로 아는 것에 대해서 '진지(眞知), 진리 라고 하는 것이며, '올바른 앎' 이라고 하는 것이다.

 

왜, 진리, 진지에 대해서 올바른 앎이라고 하는가 하면... 지식으로써 아는 것은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으로써 남들의 앎이기 때문이며, 진리는 스스로 아는 것으로써 자신의, 자신만의 고유한 앎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자신만의 고유한 것이라고 믿는 것 같지만 착각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남들의 말을 의존하여 얻어진 것으로써 본래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남들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자신의 뜻대로 조절할 수 없는 까닭은 그것이 자신이 스스로 아는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남들로부터 얻어진 지식으로써의 앎(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의 말, 남들의 시선에 의해서 자신의 마음이 달라지는 것이며,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이다. 

 

 

그대가 스스로 아는 앎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대가 스스로 아는 앎으로써의 올바른 앎일 때, 비로소 남들의 마음, 남들의 지식 따위에 아랑곳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세상의 모든 지식은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이며,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실된 앎이 아니라 거짓된 앎이기 때문이다. 

 

지식에 대해서 무지하고 하는 까닭은, 인간이 인간의 기원을 모르기 때문이며, 과학 또한 생명의 비밀에 대해서는 완전하게 무지하기 때문이다.

 

'도가' 와 인연 있는 사람들이 온갖 모든 불치병을 치유할 수 있으며, 어려 수많은 암이나, 난치병으로부터 서 자유로울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 올바른 앎이 있기 때문이며, 스스로 아는 올바른 앎으로써의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신념이란 '믿을 신' 자와 '생각 할 념' 자로써의 '信念' 으로써 한글로써는 '생각을 믿음' 이라는 뜻이다. 그대가 믿는 것은 그대의 생각이지만, 그대의 생각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얻어진 남들의 생각인 것이며, 그대의 신념 또한 그대의 신념이 아니라, 남들의 생각을 믿는 것이다. 그것이 종교든, 과학이든, 의학이든... 그대가 믿는 신념은 그대의 신념이 아니라, 타인들의 신념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아는 올바른 앎일때, 비로소 신념이 생겨나는 것이며,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앎이기 때문에 불변의 진리라는 말이 창조된 것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이다.

왜냐하면 스스로 아는 올바른 앎을 위한 유일무이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진리와 인연있는 이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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