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죽은자의 입장에서 보거나, 영혼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생을 논한다는 일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산자는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며, 죽은자에게는 삶이 없기 때문이며, 죽음 또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죽음에 대해서 무지한 것과 같이 삶에 대한 지혜 또한 그러하다. 사실 인간이 늙음에 대해서, 병듦에 대해서,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 하는 까닭은 자신이 스스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남들을 의존하여 알게된 것들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으로 여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령 그대가 오십대라고 하더라도, 칠십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젊은이가 아닐 수 없겠지만 팔십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십대, 육십대, 칠십대나 이십대나 똑 같이 자기보다 더 젊은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어린아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모두 이름들만 다른 어른일 뿐, 똑 같은 사람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높은 산에서 보면... 인간 무리들 또한 개미 무리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실 인간은 그런 일들, 남의 일들에는 관심이 없다. 사실 관심이 없고 싶어서 없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선되는 일, 다급한 일들이 자신의 이익에 관계된 일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남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에게 이익이 따르는 일이거나 또는 남들에게 어덯게 보일까에 대한 일이 항상 더 우선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동화, 신화' 들과 같이... 진짜로 심판자가 있어서 인간세상의 인간들에 대해서 선함과 악함으로 분별하여 악한자를 모두 전멸시킬 수 있는 심판자가 있다면, 사실 인간세상에 살아 남을 수 있는 인간은 단 한사람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순수의식의 어린아이들만은 제외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늘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연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들의 존재 자체가 악함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가축들이나, 야생동물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러하며, 개미무리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러하다.
사실, 인간들 누구나 늙음과 병듦, 죽음에 대해서 걱정하거나 두려워 하는 까닭은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라, 모두 남들에 의존하여 아는 것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스스로 아는 올바른 앎이라면, 늙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인 것이며, 죽음 또한 기쁜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 하는 이유는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며, 죽음 직전의 상태에서 자신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더 이상 미래가 없는 죽음 직전에서 과거의 삶을 뒤돌아 보면... 지난 과거들은 한낱 꿈과 같이 희마한... 꿈과 같이 허무한 것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더구나 기쁨이나 즐거움이란 단 하나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죽게 되거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여한만이 남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들의 삶의 끝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아는 앎으로써' 죽음을 경험 한 자들이 인간세상에 전파하고자 하는 말이 진리를 알라는 말인 것이다. 오직 진리의 앎으로써만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며, 가치 있는 삶으로써 여한이 남겨질 수 없는 삶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죽음 직전에야 비로소 자신의 삶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뒤돌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 직전에서야 비로소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보기 때문이다. 사실, 내일과 미래가 없다는 것은 과거가 없다는 것이며, 지금 이순간만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죽음 직전에 다가 가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회고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자신의 모든 앎들이 자신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고방식으로써의 삶이라고 할지라도 여한이 남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며, 삶 자체가 고통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아는 앎일 때에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사실, 가치 있는 삶이란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앎이 아니라, 스스로 아는 앎으로써의 진리의 앎을 실천하는 삶을 이르는 말이며, 검증된 삶이란 진리와 하나된 삶으로써 죽음 앞에 서더라도 올바른 앎으로써 '기쁨'을 노래할 수 있는 삶을 이르는 말이다.
도. 진리. 깨달음의 앎이란... 남들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아는 앎을 아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올바른 앎이란 시간과 공간이 본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며, 더 나아가 삶과 죽음이 본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올바른 앎으로써 존재 자체로써 항상 기쁨으로 여여한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삶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며, 죽음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의 삶은 사실 그대의 삶이 아니라, 남들의 삶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 자신에 대해서 그대가 아는 것은, 그대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그대는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에 대해서 '자아'라고 단정 짓는 것이며, 자아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착각이며, 몽상이다.
그대는 지금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으로서의 삶에 대해서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아는 앎으로써 다시 태어나라고 하는 것이며, 그 꿈과 같은 몽상에서 깨어나라고 하는 것이다. 그대의 본래의 나. 그것이 곧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깨어나기 위한 유일한 길이 있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다.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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