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20세기와 중세, 고대철학에 이르기 까지 인간 삶에 대한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인간 삶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전했던 인물이 있다면 오직 석가모니와 예수 뿐인 것 같다.
사실, 인생론에 대해서 이렇게 주장하든 저렇게 주장하든... 해답이나 정답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 자신에 대해서 자신의 뜻대로 조절할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에 인간이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고 그 로붓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멈추게 하거나, 가게 하거나, 기능을 더 첨가하거나, 부셔버리거나 하듯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그런 기계와 같이 조절할 수 있다면... 인간들의 삶 또한 기계의 사용설명서와 같은 인간사용설명서가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다.
설령 '마음 사용 설명서' 또는 '몸 사용 설명서'로 나누어 인생론을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 이곳 모든 글들이 그런 설명들이지만...) 인간의 관념으로써 납득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일념명상법으로서 자신의 나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것'이 있다면... 인생의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며, 오직 그들만이 인생에 대해서 토론할 자격이 있는 것이며, 가치 있는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류의 역사와 같이 서로가 옳다는 주장만 무성할 뿐...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결혼 문제만 하더라도 그러하다. 결혼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옳지 않은 것인가? 또는 결혼을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아닌가? 라는 논란은 끝이 없지만... 인간들 삶의 끝이 그렇듯이... 하거나 하지 않거나, 좋은 일이거나 좋지 않은 일이거나... 후회 하기는 매 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스스로 '나는 사람이다' 라고 알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 완전하게 무지한 것이 인간인 것이다. 물론 일념명상법으로써 남들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아는 것'이 단 하나라도 있다면 삶은 가치 있는 삶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실 살아갈 가치도 없는 것이 인간들의 생멸활동인 것이며, 그 까닭은 삶의 결과가 죽음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평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며,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죽기 위한 삶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삶의 가치에 대해서 비유를 들어본다면.
가령 지금... 80 대 노인과 40 대의 중년과 20 대의 청년이 있다면... 어떤 세대가 행복한 삶이며, 가치 있는 삶일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 사유해 볼 수 있는 일이다.
그 이전에 먼저 이해 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대의 내면을 채우고 있는 것들 모두가 타인들로부터 얻어진 지식일 뿐, 그 이외에 사실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사실, 예수의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말은 '지식, 사념이 모두 사라져야만 신을 볼 수 있다'는 말이며, 석가모니의 '네 본성이 부처라는 말 또한, 네 안에 부처가 있다는 말로써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물론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 또한 같은 맥락이지만... 석가모니와 예수만이 인생론에 대해서 올바르게 설한 인물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들만이 삶의 방법들에 대해서 설명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찾는 일에 대해서만 설명한 것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은 노자와 장자로부터 전해져 오는 말들을 인용하여 자기를 합리화 시키기 위한 도구로 삼지만...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는 인간들의 관념으로써는 결코 그들의 말의 뜻에 대해서 실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논란만 가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에 위의 사례에서의... '80대 노인'이, 사십대 또는 이십대 젊은이들을 보면서, '나는 해야 할 일을 다 마쳐가기 때문에 그들 젊은이들보다 더 평온하며 기쁘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가치 있는 삶을 산 것이며, 후회 없는 삶을 산 것이다.
그런데 그 80대 노인이, 젊은이들에게 충고를 하려 하거나... 그 젊은이들처럼 나도 젊어지기를 원한다거나 그들의 삶을 동경한다면... 가치 없는 삶을 산 것이며, 쓸모 없는 인생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가 젊은이가 아니라, 나이 팔십대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면... 젊은이들에게 자기의 지식을 주장할 일이 아니라, 스스로 아는 올바른 앎을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살아 갈 수 있어야만 진정 가치 있는 삶일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80대 노인은 사십대나 이십대의 젊은이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오직 80대의 자신의 입장에서만 대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대가 사십대거나 오십대라고 하더라도... 오직 그대의 입장에서만 80대를 볼 수 있는 것이며, 이십대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이 더 많은 나이가 칠십대나 팔십대의 노인들인 것이며, 여전히 얼굴의 주름에 대해서 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늙은 사람들이다, 그들 또한 여전히 남들을 의식하는 까닭은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며,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한한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의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스스로 아는 것'이 단 하나도...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자신에 대해서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아는 올바른 앎으로 본다면.... 늙음과 죽음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의 고뇌가 더 크기 때문이며, 인생에 분명한 해답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여한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가 젊은이든, 중년이든, 노인이든... 그대의 내면에 간직된 것은 모두... 남들로부터 얻어진 지식이 전부이다. 남들을 의존하여 얻어진 지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마음이든, 느낌이든, 감정이든, 특별한 것이든 보편적인 것이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올바른 것이든, 올바르지 않은 것이든... 모든 앎이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스스로 아는 것이 없는 인간들의 삶, 인생에 대해서 논할 가치도 없는 것이며, 살아가야할 가치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죽음이 두려움과 공포이며, 고통이라면, 삶은 기쁨과 즐거움이라야 하는 것이며, 삶이 근심 걱정과 두려움이라면 죽음은 기쁨이며 즐거움이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삶이 근심과 걱정... 두려움이며, 고통스러운 것이며... 죽음 또한 고통이라면, 그렇게 생각 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인생에 대해서 논리를 주장한다면... 말은 말이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이니, 어불성설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가치 있는 삶, 검증된 삶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 있다.
인간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유일무이한 길이 있다.
이름하여 진리의 길이라고 하는 것이며,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라고 하는 까닭은, 그대가 그대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며 또한 인간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가치 있는 삶을 위한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진리와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자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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