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중도 · 방편설 - 말변사

깨달음의 세계 - 공즉시색 색즉시공/ 시생멸법 생멸멸이/ 생사이치/ 생각의 이치와 속성 - 인간의 본질/ 나는 무엇인가? - 석가모니의 자취와 진지

일념법진원 2015. 3. 31. 08:36

사실, 이곳 모든 글은 죽음을 경험한 자의 경험담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 자들,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의 지식으로써는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다. 물론 경험자라는 말은 올바른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은 "육체가 나다" 라는 고정관념"이 '착각이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인간의 근원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 조차 불가능한 까닭은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자신 스스로 아는 것으로써의 자기가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얻어진 지식으로써 자신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모든 지식의 바탕은 "타인들의 지식으로 구성된 자기가 있다"는 앎에  바탕을 둔 것으로써 정작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지만, 진실된 앎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더 나아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아상 인상 수자상의 중생상 불능견여래" 에 대한 설명과 같이... 인간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서 아는 것 조차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며, 그것을 당연하게 여김으로써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며,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며... 인생이 무엇인지 이해 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진리란 단순한 것이며 올바른 앎인 것이며, 절대적인 앎인 것이며...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앎인 것이다. 반면에 지식은 상대적인 것으로써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이며, 끝이 없는 것이며,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는 것으로써 쌓이면 쌓이는 만큼 근심과 걱정만 더 늘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식자우환'이라고 하는 것이다. 

 

 

 

須菩提 所謂佛法者 卽非佛法  수보리 소위불법자 즉비불법.

사라자 色卽是空 空卽是色   사리자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불이공 공불이색... 이라는 말이 있는데, 싯다르타의 '삶과 죽음이 본래 없는 이치'에 대한 가르침이 한자로 번역된 것이며, 우상숭배사상을 위해서 쓰여진 말들이다. 

 

 

금강경이라는 책자에는 '수보리' 라는 중생에게, 그리고 반야삼경에는 '사라자'라는 중생에게 '생멸법'에 대해서 설명하는 내용중의 일부분이다. 

 

 

 

사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도를 깨닫는다는 것과 '진리'를 아는 것에 대해서 서로 다른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사실, 진리를 아는 것과 도를 깨닫는다는 것은 같은 것이며... 소크라테스와 예수, 석가모니 등의 성인들의 말이 진리인 까닭은... 남들을 의존하여 얻어진 지식으로서, 지식에 대해서 지식으로 궁리하여 얻어진 앎이 아니라, 스스로 아는 것으로서의 앎이기 때문이다. 

 

사실 현세상에서 지식을 얻는 일은 참으로 쉬운 일이다. 하지만 지식이 무지라는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지식이 완전하게 무지한 것이며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참과 거짓이 아니라 그져 '헛소리 들...' 이라는 사실에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아는 것에 대해서 '진리' 의 앎이라고 하는 것이다. (현시대에는 그런 인물들이 많고도 많다. 왜냐하면 일념법수행으로써 생각의 이치와 속성에 대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식을 얻는 것은...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시절부터 남들로부터 말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다만 인간은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지식에 대해서 의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진리란... 그런 지식으로써는 인간과 인간들간의 투쟁으로써의 삶이 결코 평화로울 수 없다는 것과 죽음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에 대해 자각함으로써... 스스로 진실된 앎을 알기 위한 수행으로써 얻게된 결과가 지식을 넘어선 '진리의 앎'인 것이다. 

 

 

 

지식은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몸이지만 자신의 건강이나, 병든 몸에 대해서도 스스로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학, 한의학, 옛날 이야기 등의 통념이나, 남들의 지식에 의존함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며,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조차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늘의 뜻이라거나, 운명의 신의 뜻이라거나... 신에 의존하거나, 남들의 마음에 의존하거나, 남들의 지식 따위를 의존함으로써 광신자나 맹신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와 같이 삶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죽음 또한 올바르게 아는 것이 아닌 것으로써 두려움과 고통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 안에는 진정한 자신은 없는 것이며... 님들의 말로 구성된 것에 대해서 자신이라고 아는 것이며, 남들로부터 얻어진 지식들에 대해서 자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남들의 지식을 자기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결국 남들을 자기라고 주장하는 격인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소위 불법자 즉비불법" 이라는 말은...  '도를 깨달은 자'에게는 '도'는 도가 아니다'는 말로써 '도가도비상도'라는 노자의 말과 같은 뜻이며 또한 '명가명비상명'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써... 한자로... '是名' 즉 올바르게 본다면 '이름' 뿐인 것으로써 사실적인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다. 이 말은 또한 '죽은자'에게는 '죽음이 없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물론 삶이 있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인간 관념으로써는 이해가 불가능한 말인 것이다. 

 

사실, 시간과 공간이 없다는 말과 같은 맥락인 것이며... 싯다르타의 "나는 이것도 아니며, 저것도 아니며 더 나아가 나는 사람도 아니다" 는 말과 같은 뜻으로써 '본무'를 깨닫는 것이다, 는 말이지만... 이런 말들 또한 인간의 관념으로써 이해 할 수 없는 까닭은... 인간은 자신의 나의 부재상태에 대해서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깊이 잠든 상태'의 '자기 없음'을 비유로 들 수밖에 없는 것이며, 죽은자의 두뇌가 썩어 사라짐으로써 '생각 없음' 으로 표현 될 수 있을 따름인 것이다.

 

 

 

인류가 과학을 신뢰한다면... 양자물리학에 의해서 밝혀진 '물질계의 근원물질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인간세상과 그대와 우주와 만상만물이 있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공즉시색 색즉시공. 공불이색 색불이공 이라는 말 또한 그러하다.

'없는 것이 곧 있는 것이며, 있는 것이 곧 없는 것이다'는 말과 '있는 것은 없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며, 없는 것 또한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는 말로써... 인간의 관념으로써 있는 모든 것들과 상대적인 없는 모든 것들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생각에 의존하여 있는 환영, 환상, 몽상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인 것이다. (생각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며... 생각이 없다면, 없는 것이다는 말이다)

 

 

 

사실, 21세기 첨단과학, 문명이라는 인간의 지식의 최종 결론은... 기원 전 6 세기 경부터 전해져 오는 '득도, 깨달음'의 앎... 즉 진리의 앎에 대해서 조금 이해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인간류의 지식의 끝은... 진리에 대해서 아주 조금 이해 하는 것이다.

 

사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우주의 근원을 아는 것이며, 인간 생명의 근원을 보는 것으로써 생명의 비밀을 아는 것이며, 생명체의 원리와 구조를 아는 것으로써 불치병이나 난치병 등의 원인에 대한 앎으로써 모든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육체의 얽매임에서 벗어난 정신'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며, 무위자연의 자유라는 말로 표현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 삶에 해답이 없는 까닭은,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 하는 까닭은...

인간이 욕망의 화신으로 존재함으로써 老 病 死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까닭은... '자기가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자신 스스로 아는 것으로써 아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지식으로써 자기 자신을 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것이 진리인 것이며, 올바른 앎인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인간의 '내가 실존이다'는 앎 또한... 스스로 아는 것으로써의 자신을 아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배운 지식으로써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것이 없는 것이며, 자신의 몸에 대해서까지도 남들의 지식에 의존함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지식으로써 진리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眞知' 즉 진실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며... 그 방법이 곧 일념수행법이며, 일념명상법으로써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아는 것이다. 

 

항상 반복 강조되는 것과 같이... 지식은 사실 무근인 것들에 대해서 무턱대고 주장하는 것이며, 진리는 지극히 논리적인 것이며, 양자물리학이라는 과학으로써도 밝혀진 것으로써 근거가 분명한 것에 바탕을 둔 방편설인 것이다.

 

지식이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하는 까닭은... 영혼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 신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 마음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 등의 모든 주장들과 같이, "있다는 것" 과 "없다는 것" 에 대한 논란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있는 것이라면... 육하원칙의 법칙에 따라서 왜? 있는 것인지 사실을 사실 그대로 분명히 아는 것이라야 논쟁, 논란, 다툼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며... 서로간의 다툼이 사라져야만 비로소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깨달음, 진리란...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진리를 궁극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면, 우주의 원리를 이해 하는 것이며, 생명의 비밀을 이해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진지란... 일념법 수행으로써 자신의 '생각의 이치와 속성'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아는 것이다.

 

두 권의 책과 카페에 자세히 설명 되었기 때문에, 요약하자면... "생각은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다" 는 것이다. 스스로 일어난다는 것은, 인간의 의지, 또는 인간의 뜻이나...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써도 '생각의 생멸의 윤회현상'에 대해서 감지할 수 없다는 것이며... 생각의 흐름을 제어 할 수 없다는 것이며, 생각의 흐름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상태 즉 산자의 이야기이다. 

 

 

 

사실, 시생멸법이라는 말 또한 "사실을 올바르게 본다면 생멸법이다" 는 말이며, 이 말은... 생각의 생함과 멸함의 법칙이라는 말로써 생각의 윤회현상을 일컷는 말이며, 생각의 연속성과 영원성을 이르는 말인 것이다. 

 

생각의 이치란.... 생각의 생함과 멸함이 반복되는 것을 이르는 말이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식으로써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으로써 인간 관념으로써는 그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은 동일한 같은 생각을 지속할 수 없는 것이며... 끊임없이 변해 가는 것이며, 바뀌는 것일 뿐, 인위적으로써는 결코 멈추거나 더할 수 없는 것이다. 

 

'영혼이 있다는 생각'과 '영혼이 없다'는 생각이 절대적인 생각이 아니라, 상대적인 생각이듯이... 인간의 모든 생각은... 상대적인 것들로써의 주장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인 주장만 난무하는 것일 뿐, 해답을 구할 수 없는 것이다. 

개개인의 인생사 인간류들의 세상사 모두 그러하다.  

 

 

 

일념법으로써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는 것을 알아차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내 인생'이라는 말... 생각의 원리로써 사실을 올바르게 본다면,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올바르게 본다면... '내 인생' 이 아니라.... 남들로부터 얻어진 지식으로써 구성된 것이 자기 자신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성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그대의 내 인생이 아니라, 남들의 지식으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남들의 인생'인 것이며... 다른 남들 또한 자기의 삶과 죽음이 아니라... 남들의 삶과 죽음을 대신 하는 격인 것이다. 남들의 말들... 타인들로부터 얻어진 지식으로 구성된 것이기 자기의 나이기 때문에... 그런 인간들에 대해서 '지성체' 라고 하는 것이며. 남들의 지식을 자기라고 알기 때문에 지식에 대해서 무지몽매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대 안에 있는 모든 것들... 남들로부터 얻어진 지식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대 안에는 그대가 없는 것이다.

유명무실(有名無實)이라는 말이 아마 그 뜻인 것 같다. 

 

'나' 라는 이름, '사람' 이라는 이름, '남자' 라는 이름, '여자' 라는 이름.... 행복이라는 이름, 불행이라는 이름, 삶이라는 이름, 죽음이라는 이름... 더 나아가 깨달음이라는 이름, 불성이라는 이름, 성령이라는 이름... 이름들만 무성한데... 보고 만질 수 있는, 열매와 같이 사실적인 것은 없다는 말이... 유명무실이라는 말의 본래의 뜻이기 때문이다. 

 

 

대도무문의 문을 여는 일...

구하라 그러면 구해질 것이며,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는 예수의 말로 전해지는 진리를 구하는 일... 일념법, 일념명상법, 일념수행으로써 자신의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스스로 아는 것으로써의 올바른 앎으로써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며... 그것에 대해서 眞知(진실된 지식. 참다운 앎, 올바른 앎) 라고 하는 것이다. 

   

진리와 인연있는 이에게 영원한 자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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