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학의 근본문제들』은 1927년 전기 하이데거의 대표저서인 『존재와 시간』이 출간된 그 해에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이루어진 강의로서 『존재와 시간』의 논의들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 강의록의 편집자이자 하이데거의 조교였던 빌헬름 폰 헤르만(Wilhelm von Hermann) 교수에 따르면, 『현상학의 근본문제들』은 완성되지 못한 『존재와 시간』의 제1부 제3편 ‘시간과 존재’ 및 제2부 전체에 대한 해설이라고 한다. 비록 『현상학의 근본문제들』 역시 원래 계획대로 마무리되지 못한 채 제2부 제1장인 ‘존재론적 차이의 문제’에서 중단되었지만, 그럼에도 이 강의록은 전기 하이데거 사상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통속적인 시간이해로부터 보다 근원적인 시간성을 발견해 나가고자 하는 전략을 취한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시간을 이야기할 때 우리 자신을 밖으로 말한다고 설명한다.
하이데거는 바로 우리에게 ‘지금’이라는 시간이 주어지는 방식을 성찰하도록 촉구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알게 된 이 세 규정들, 말하자면 지금, ‘더 이상 아닌 지금’으로서의 당시의 변양들, ‘아직은 아닌 지금’으로서의 다음의 변양들이 우리가 기대함, 간직함, 현재화함으로 특징지은 행동관계들에 대한 자기해석이다.
이 논의들은 하이데거의 ‘순간(Augenblick)’에 대한 논의와 연결된다.
현존재인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장 근원적인 의미의 시간은 결단성에서 경험되는 본래적인 시간으로서 순간이다.
“지금까지 이야기된 것에서 명백히 되어야 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즉, 순간이란 현존재의 근원적이고 본래적인 시간성에 속해 있으며 현재화함으로서의 현재의 일차적이고 본래적인 양태라는 것이다. 일찍이 우리는 현재화함이 지금 속에 자신을 밖으로 말한다는 말을 들은 바 있다. 다시 말해, 존재자와 그 안에서 만나게 되는 시간으로서의 지금이 근원적인 시간성에서부터 발원하고 있다고 들었다. 지금이 언제나 현재에서부터 발원하고 있는 한, 이 말은 지금이 순간에서부터 파생된다는 것을 뜻한다
시간성이 시간화함으로써 현존재에게 순간이 주어지고, 이러한 순간을 통해 현존재는 존재자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현존재가 결단성 없이 시간을 경험한다고 해서, 다시 말해 일상 가운데 비본래적 시간을 산다고 하여서, 이 시간이 본래적 시간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니다. 시간성은 현존재의 지평이기 때문에 현존재는 시간성에서부터 의식적으로나 의지적으로 벗어날 수가 없다. 따라서 현존재가 존재자들과 만나고 있다면, 그는 이미 시간성으로부터 주어지는 시간 가운데 존재자들과 만난다. 다만 비본래적인 현존재는 그에게 주어지는 시간을 ‘순간’으로서 경험하지 못하고, 즉 적극적으로 자신이 상황을 만들어가며 존재자들의 존재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으로서 경험하지 못하고, 단순히 존재자들이 그에게 현재화되는 ‘지금’으로서만 경험할 뿐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이라는 통속적 시간이해는 우리가 존재자들과 만나게 되는 시간으로서 여전히 역할을 하며, ‘현재화함’이라는 행동관계 역시 그 만남의 사건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기대함’이나 ‘간직함’ 속에서도 존재자들과 관계를 맺는다면, 이 속에는 ‘현재화함’이라는 사건이 언제나 놓여 있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 행동관계들에 근거한 ‘다음’과 ‘당시’ 역시도 ‘지금’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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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위와 같은 언술, 논술, 논쟁들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인간들의 지식이 위와 같은 끊임없는 논란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지식에 대해서 '진리' 라고 하는 것이며... 그런 설명의 일부분이 아래의 내용이다.
만약에... '나는 소크라테스의 제자'/라고 주장하며, 소크라테스를 말했던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진리를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었더라면.... 그리고 예수의 말을 옮긴 자들이, 예수의 진언을 단 한구절이라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알아 듣고, 셩경을 창조 했다면... 그리고 '싯다르타'의 진실된 말이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전해 질 수 있었다면... 더 나아가 '싯다르타'를 묘사했던 '헤르만-헷세' 가...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었다면... '르네 데카르트' 가... 자신의 생각의 작용 원리에 대해서 조금,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 할 수 있었다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상투적인 말로써 (소위)잘난 체 하지 않았다면... 현 시대까지도 위의... 존재와 시간과 언어... 등의 논란들과 같은 헛소리들로써 시간을 때우는 짓들... 이미 사라졌을 것이며, 현란한 말재간을 부리는 자들 또한 발 붙일 곳이 없을 것이며, 자취를 감췄을 것이다. 또한 현시대 까지도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종교집단들... 모두 사라졌을 것이며... 인간세상이 이토록 시끄럽지 않을 것이다.
진리의 전당이라는 이름의 대학이 사라졌을 것이다.
문학, 인문학, 철학, 정신분석학, 심리학 의학 등의 모든 지식을 추구하는 학문들 또한 사라졌을 것이다.
젊은이들이 '진리의 전당' 이라는 말에 속아서... 언술이 뛰어난 자들의 뛰어난 언술에 속아서... 고뇌하지 않을 것이며, 최소한 지식 속에서 진리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말을 단 한구절만이라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었더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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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논술들... 논쟁을 위한 기술들... 하나같이 모두 쓸모 없는 짓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실 싯다르타의 말과 예수의 말, 그리고 노자와 장자의 남겨진 말들을 볼때, 그들의 모든 말들이...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한 구절에 대한 방편설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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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문제인가?
현시대는... 양자물리학에 의해서 '존재계 즉 물질계'가 '비실재적, 비존재적인 것' 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리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공감할 수 없는 말이겠지만... 그들은/ 스스로/ 그렇다면 '나는 왜 있는 것일까' 라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사실, 인간류의 역사를 보니, 소크라테스, 노자와 장자, 예수, 싯다르타, 히포크라테스... 등, 극 소수의 인물들이/ 양자물리학에 의해서 밝혀진 사실과 같이... 존재와 시간과 공간이 "본래 없는 것이다"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아는 앎(진리)에 바탕을 둔 말들을 남겼던 인물들이다.
그들은... 여러 방편을 들어 인류에게 '가치 있는 삶과 검증된 삶'을 살아가라는 말들을 남겼으며, 더 나아가 진리를 구할 수 있는 방법 까지도 설명 했다는 사실을 실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의 진실된 말이/ 언술에 뛰어난 자들에 의해서... 종교로, 신비로, 환상적인 것으로, 신비주의자 등으로 왜곡되고 변질되고... 아름답게 포장 되어, 진리의 깊은 뜻을 볼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게 계속 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현시대는 문자가 밝은 시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진언들에 대해서 현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써 설명하는 것이다. 진리는 지극히 논리적인 것이며, 사실적인 것에 대한 앎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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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단순하다.
다만 지식으로써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볼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으로써 분명히 이해 할 수 있는 것이 진리이다. 왜냐하면... 지식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무턱대로 주장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비논리적인 반면에 진리는 근거가 분명한 것으로써 지극히 논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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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제는 '나라는 존재가 있다' 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 라는 존재가 없다면... 시간과 공간 언어는... '본무' 라는 말과 같이... '본래 없는 것' 이다. (양자물리학으로 본다면...입자와 파동이 있다지만, 그것 또한 보는자가 있기 때문이다)
지식은 '내가 있다'는 가정하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진리는 '내가 왜 있는가' 라는 의문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있다는 것'은... '내가 없다는 것' 과 상대적인 것이며... 상대적인 것은 절대적인 것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있다는 것' 은... 사실... '내가 있다는 생각' 이다.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다. 그대가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에 남들에게 듣고 배운 것으로써...
'내가 있다는 것'은... '내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내가 있다는 생각"은 "내가 없다는 생각"과 상대적인 생각이다/(그대의 뇌에 저장된 생각들 안에서... )
다만... 인간은 "내가 있다는 생각"이 고정관념화 된 것으로써... 단지 "내가 없다는 생각"을 사실로 여길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있다는 생각' 하나만을 사실적인 생각으로 여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그대가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 순수의식에... 최초로 각인된 생각이기 '내가 있다는 생각' 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단지 고정관념화 된 생각(두뇌에 저장된 언어) 일 뿐이다.
'육체가 나다라는 생각' 과 '육체가 나가 아니다라는 생각' 은... 이와 같이... 상대적인 생각이며, 다만... 육체가 나다라는 생각이 고정관념화 된 것 뿐이다. 왜, 다른 것은 나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일까? 왜, 모든 사람들을 나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일까? 왜, 자연을 나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일까? 왜, 오직 육체 하나에 대해서만 '나'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일까?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생각의 원리에 의존하여 생각해 본다면... '육체가 나라고 생각하든, 육체가 나가 아니라고 생각하든'... 그것 또한 한생각의 차이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생각의 원리... 생각의 이치와 속성에 대한 설명 참고)
시간과 공간이 있다고 생각 하는 것 또한... 오직 '육체 하나만이 나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들만의 관념인 것이며, 우주만상만물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그러하다. 물론 절대자가 있다는 생각 또한 그러하며, 하나님이 있다는 생각 또한 그러하다. 왜냐하면... 절대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 또한 '절대자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라는 주체가 사실적인 것으로써... '내가 하나님이다' 라고 말을 하거나,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말을 하는 것, 주장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단지 인간은... 자신의 생각의 작용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가 사실적인 것이라고 아는 것이며, 그런 지식이 착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감히 상상 조차 불가능한 것이다. (지식은 그대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의 앎이란... 일념수행으로써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는 것' 이다.
생각의 주체는... 다른 것들이 아니라, 인간이다는 사실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어야만 한다. 왜 그래야 하느냐고 묻고 싶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올바른 앎일 때, 그때 비로소... 절대자를 볼 수 있으며, 신을 볼 수 있으며... 가치 있는 삶, 검증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며... 언제 죽더라도 여한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대의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 진리를 이해 하려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는 것이며... 진리의 앎이 곧 자유이기 때문이다. '자유' 라는 말 또한 '언어가 사실적인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 있는 말이다. (진리의 앎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다, 라는 예수의 말이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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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말... 무한한 어리석음의 소치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 일념수행으로써(스스로아는 것) 최초로 깨닫게 되는 새로은 지식이... '나는 생각 한다' 는 말이 올바른 앎이 아니라... '경험의 오류'라는 사실에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아는 것이다. 그런 앎은... 남들을 의존하여 얻었던 지식과 같은 것들이 아니라... 스스로 아는 것으로써의 최초의 지식으로써... 지식을 초월한 진리를 이해 하는 첫번째의 지식/ 이다.
인간세상의 성경이나 불경 등의 경전들을 비롯하여 모든 지식서 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꾸며진 말들이다. 진실된 말은 꾸밀 수 없는 것이며, 지식은 사실적인 말이 아니기 때문에... 꾸며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세상 사람들의... 화장을 하는 일... 화려한 의상으로 겉 모습을 꾸미는 일들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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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시간, 언어를 논하기 전에... '너 자신을 알라' 는 말의 뜻에 대해서 일부 설명한 것이다. 왜냐하면 지식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지만, 사실 지식의 시작도 알 수 없는 것이 지식이며 또한 지식의 끝도 모르는 것이 지식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생명은 끝이 분명한데, 지식이 끝이 없는 것이라면... 그 지식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인간의 무한한 어리석음 중 하나가... "지식은 끝이 없는 것" 이라는 지식에 대해서 당연하다는 듯, 진리인냥 주장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이며, 진리를 이해 하는 것과 같이... 올바르게 알고보면 싱겁게 웃어버릴 수 없는 일이다.
지식이 끝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추구해야 마땅하다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지식이 그런 것이라면... 죽을 때 까지 추구해야 하는 것이라면.
인간은 지식을 추구하기 위해서 창조된 도구인가? 라고.
아니면... 지식이 인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인가? 라고. 지식이 인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면... 그대가 죽기 전에... 한 생면이 끝이 나기 전에... 모두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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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전당.. 이라는, 지식을 추구하는 일이... 무한한 어리석음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이해 하는 것이 곧, 진리를 이해 하는 것이다. 그대의 가치 있는 삶, 검증된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해답이 없음으로써... 해답이 없기 때문에 끝이 있을 수 없는 지식이 아니라... 진리라야 하기 때문이다.
진리와 인연있는 이에게 영원한 자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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