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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 "내 경계 넘어오면 부모라도 끊어내야???" /인간쓰레기들??? /지식의 저주 /불상=붓다? vs 십자가=예수? /깨달음? 진리? '일념법명상'

일념법진원 2020. 1. 5. 05:51

인간의 무지, 그 어리석음의 한계는 어디일까? 

인간은 무엇일까? 

어느 철학자들의 주장과 같이.. 

"실존"이라면... 

자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사살이라면...  


1 존재의 원인은 무엇이며.. 

2 존재의 이유.. 목적은 무엇이며.. 

3 존재의 결과는 무엇일까? 


지금, 그대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자, "마음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한번 찾아 보고.. 


명제의.. 아래의 글을 본다면.. 



--- 아  래 --- 



한겨레

"내 경계 넘어오면 부모라도 끊어내야"

정은주 입력 2020.01.04. 09:36 수정 2020.01.04. 18:26  

[토요판] 커버스토리
'거리의 치유자' 정혜신·이명수 부부
1년간 170회 전국 워크숍
1만여명 속마음 주고받아
'당신이 옳다' 25만권 판매
"공감은 감정노동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신뢰가 본질"
"공감은 나한테 먼저 적용
갑질 상사 맞추려다 '나' 상실"
쓰러져가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을 전파 중인 정혜신씨와 심리기획자 이명수씨 부부를 지난해 12월26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자격증 있는 사람이 치유자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치유자다.”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만 안 할 수 있어도 공감의 절반은 시작된 것이다.” 심리치유서 <당신이 옳다>에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와 심리기획자 이명수씨는 이렇게 썼다. 30여년간 1만2천여명의 속마음을 듣고 나누었던 정혜신씨는 현장 치유 경험을 바탕으로 소멸해가는 사람을 구하는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을 내놓았다. 충조평판 하지 않고 온 체중을 실어 공감하는 것,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라고 묻고 또 묻는 것이다. 이 간단한 방법으로 심정지 상태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이 다시 뛴다. 그 심리적 심폐소생술의 원리를 정혜신·이명수 부부가 설명한다.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을 하는 것은 필요하고 도움이 돼서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상대가 만만해서 하는 거다. 명확한 자의식을 가진, 개별적 존재로 의식하고 존중하면 그렇게 하지 못한다.”(정혜신)

“누군가 고통과 상처, 갈등을 이야기할 때 충조평판을 해서 좋아지는 경우를 단 한차례도 보지 못했다. 사람은 그런 것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경험칙으로 알고 있다.”(이명수)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가 30여년의 현장 치유 경험을 집대성해 펴낸 심리치유서 <당신이 옳다>(2018·해냄)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충조평판 하지 않고 온 체중을 실어 공감하라’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의 핵심이 위치한 곳은 내 감정, 내 느낌이므로, ‘지금 마음이 어떠냐’고 묻는 것이 출발점이다. 이렇게 시작된 공감으로 소멸 직전에 사람을 소생시킬 수 있다고 해서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교육을 받으면 초등학생도 심폐소생술로 길 가다가 쓰러진 성인의 목숨을 구할 수 있듯이, 그 존재 자체에 눈을 맞추고 존재의 안부를 물으면 ‘나’에 대한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했다.

일상에서 소리 없이 쓰러져가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심리적 심폐소생술을 전파 중인 정혜신씨와 심리기획자 이명수씨 부부를 지난해 12월26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이들은 지난 한해 동안 제주도부터 전남 해남까지 동네서점과 도서관 등에서 ‘심리적 심폐소생술 워크숍’을 170회 넘게 열어 1만여명과 질문응답하며 속마음을 주고받았다. 이틀에 한번꼴로 전국을 돌아다닌 셈이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40쌍 정도)이 공감자(들어주는 사람)와 화자(말하는 사람)로 나뉘어 100분간 서울숲을 걸으면서 속마음을 나누는 ‘속마음 산책’도 했다. 2018년 10월에 나온 <당신이 옳다>는 25만권 팔렸고, 지난해 공공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된 책(비문학 분야)으로 꼽혔다.

자녀한테 하는 말 99% 충조평판

―충조평판을 왜 하면 안 되나?

“관계란 나도 있지만 너도 있는데 충조평판은 나만 있고 너는 없는 관계다. 나는 아는 자, 너는 모르는 자, 나는 깨달은 자, 너는 어리석은 자라는 게 깔려 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의심은 추호도 하지 않을 때, 상대를 개별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을 때 나올 수 있는 게 충조평판이다. 평사원이 사장한테 충조평판 하지 않는 이유다.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관계를 파괴하는 비수이자 표창이기에 충조평판을 하면 부작용만 남는다. 가닿지도 않는 말을 사랑하는 사람한테 더 열심히 해서 결국 관계를 짓밟아놓는다.”(정혜신)

“사람들이 하는 말의 90%가 충조평판이고, 부모가 자녀한테 하는 말은 99.9%가 그렇다. 직장에서 업무적 관계가 아니라 개인적·일상적 관계에서는 충조평판 할 필요가 없다. ‘아이가 게임만 하는데도요?’라고 묻는데 되물어보자. ‘충조평판을 한다고 해서 그 문제 행동에 변화가 생기나?’ 충조평판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허벅지에 십자수를 놓는 심정으로 참아야 한다.”(이명수)

고통을 마주할 때 우리의 언어는 벼랑처럼 끊어지고 길을 잃게 되는데 그때 노느니 장독 깬다고 충조평판이라도 날린다. 그 바른말은 어김없이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책 107쪽) 아팠던 얘기를 꺼냈는데 그 위에 충조평판이라는 소금이 뿌려졌으니 또 거부당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상대는 더 이상 상처를 꺼내지 못하게 된다.(책 284쪽) 이중 삼중으로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기 전까지, 내 고통에 진심으로 주목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까지 그렇게 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을 물어봐야지. ‘어떤 마음인데요?’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그렇게 계속 물어보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공감이 된다. 묻기 전에는 모른다. 모든 인간은 개별적 존재이니까. 5살 아이한테도 충조평판 하지 않는 이유가 그에게도 자의식이 있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너무 많이 경험했으니까 두려워서 멋대로 판단하고 규정하지 못하는 것이다.”(정혜신)

“아침에 눈을 뜨면 ‘지금 마음이 어때’ 하고 서로 묻는다. 만날 보는데 왜 묻나 싶지만, 마음은 날씨와 같아서 계속 변하니까 어젯밤과 오늘 아침이 다르다. 모든 인간은 개별적 존재인 동시에 완전하게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함부로 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지금, 여기(here and now) 마음이 어떠냐’고 묻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이유다.”(이명수)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할 때 필요한 것은 “내 말이 아니라 그의 말”이다. 지금 그의 상태를 모르는 나는 물어보는 게 당연하다.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인정한다면 그에게 물어볼 말이 자연히 떠오른다. “지금 네 마음이 어떤 거니?”

―그렇게 마음을 물으면 공감하는 건가?

“속으로는 한심해 죽겠는데 ‘너 마음이 어떠니’라고 묻는 것은 공감이 아니다. 공감은 대화의 기술도, ‘그래그래’ 끄덕이는 것도, 좋은 말 대잔치도 아니다. 그가 어떤 행동을 했더라도 그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전제돼야 가능하다. 따뜻해서, 착해서가 아니라 그 어떤 경우에도 인간에 대해 믿기 때문에 공감하는 것이다.”(정혜신)

네가 그럴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그것이 ‘당신이 옳다’는 말의 본뜻이라고 했다. 이런 정서적 내 편은 심리적 생명줄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산소 공급원과 같다. 존재 자체만으로 자신에게 주목해주는 그 한 사람이 바로 생존의 최소 조건이다.

정혜신씨에게는 남편 이명수씨가 그 한 사람이다. 12살 때 7년간 암으로 투병하던 엄마를 떠나보낸 그의 어린 시절은 잿빛과 결핍이었다. 세상으로부터 나만 고립된 것 같은 느낌들에 한없이 외로웠던 그 우울한 나날이 정신과 의사가 돼 누군가의 속마음을 듣는 중에도 걸핏하면 치고 올라왔다. 상처를 공감받지 못했던 시간 동안 그는 그 직업에서 발을 빼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큰 고통을 겪었다. 그를 바꾼 것은 일상에서 남편에게 남김없이 공감받은 경험이었다. “조금씩, 천천히, 끝까지, 모든 게 바뀌었다. 그리고 내 직업은 고통이 아닌 희열로 바뀌었다.”(책 188쪽)

존재가 온전히 받아들여지면

정혜신씨는 지난 15년간 ‘거리의 치유자’로 살았다. 2004년 진도 간첩조작 고문 피해자 박동운씨의 깊은 심리적 아픔을 보고 치유상담에 나선 이래 사회적 재난 피해자를 최전방에서 만나왔다. 고문생존자를 돕는 ‘진실의 힘’과 쌍용자동차 해고자 및 가족을 돕는 ‘와락’, 세월호 피해자를 돕는 치유공간 ‘이웃’에서 상담했다. 이런 상담 현장에서 이명수씨는 어떻게 심리적 심정지 상태에 있던 이들의 심장이 다시 뛰는지 지켜본 증인이다.

세월호특별법 서명을 받던 곳에서 노인들이 집기를 부수고 유가족에게 욕설을 퍼붓는 일이 있었다. 소동이 끝난 뒤 정혜신씨는 한명의 노인과 얘기를 나눴다. “고향이 어디세요?”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세상을 떠난 아내와 자신을 거들떠보지 않는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한참 만에 노인이 불쑥 말했다. “내가 아까 그 아이 엄마(세월호 유가족)들한테 욕한 것은 좀 부끄럽지.”(책 45쪽)

정혜신씨는 분노 가득한 사람도 만났다. 남편이 인권 관련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에게 무차별 구타를 당했고, 그 뒤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남편을 대신해 아내가 생계를 도맡았다. 30대 초반의, 아이가 셋인 아내는 “운전면허가 있었다면 트럭을 몰고 경찰청 정문을 들이받고 나도 죽고 싶다”고 했다. 정혜신씨가 대꾸했다. “운전면허가 왜 필요해요. 들이받고 말 건데. 면허 없어도 돼요!” 그의 말에 아내는 멈칫하다가 피식 웃었다. 비장한 분노를 표출했다가 순간 긴장이 풀어졌다.(책 166쪽)

“자기 존재가 온전히 받아들여지면 사람은 합리적인 존재로 돌아온다. 자기도 자기 상황을 객관적으로 거리를 갖고 보게 되면서 스스로 정리하는 것이다. 그러면 부작용도 없이 문제 해결이 저절로 된다.”(정혜신) 행동이 옳다는 게 아니라 감정이 옳다고 하면, 거기서부터 성찰과 화해가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나’와 ‘너’가 충돌할 때는 어떻게 하나?

“공감은 나한테 먼저 적용되는 것이다. 일방적이고 착취적 관계에서는 공감하는 게 옳지 않다. 갑질 상사한테 맞추려 한다면 나는 점점 지워지고 그는 괴물이 될 것이다. 계속 고통을 당하고 있으면 경계를 명확히 세우고, 필요하다면 관계도 끊어내야 한다. 엄마나 남편, 아내가 내 삶에 너무 관여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이명수)

“공감은 감정노동이 아니다. 너와 나는 다르고, 개별적 존재라는 경계가 분명해야 한다. 나는 희생하고 헌신하고 망가져도 상대방은 떠받치는 게 공감이 아니다. ‘나’는 없고 ‘너’만 있는 것은 병적인 관계다.”(정혜신)

심리적 심폐소생술(CPR) ‘당신이 옳다’가 열리면 참석자들이 메모지에 궁금한 점을 적어 붙여놓는다. 해냄출판사 제공

수만번 지옥에 빠지는 게 삶

전문직에서 일하는 40대 미혼 여성이 동갑내기 남성과 결혼을 결심했는데 홀로 사는 엄마가 반대해 상담했다. 엄마는 사윗감이 전문직이 아니라서 나중에 딸한테 얹혀살지도 모른다며 반대한다고 했다. 딸은 엄마가 쓰러지기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하며 결혼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정혜신씨는 “딸은 국경수비대가 하나도 없는 나라 같다”고 진단했다. “엄마가 경계를 허물고 침략군처럼 자신의 고유한 감정과 의사 결정 영역까지 쳐들어왔는데 나가라는 말도 못 하고 맞서 싸우지도 못”하는 탓이다.(책 182쪽)

―충조평판 하지 않고 공감하려는 결심이 자꾸 무너지면 어쩌나?

“우린 일상에서 여러번 패하고 아직 채 일어서지 못했거나 어제 패하고 오늘 다시 일어서는 중인 사람들이다. 치유자라고 해서 지옥에 빠지지 않는 게 아니다. 그저 일어나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기에 ‘또 빠졌구나, 빨리 나와야겠다’ 이렇게 담백해지는 거다.”(이명수)

“무너지면 풀썩 주저앉게 되잖나. ‘내가 알았던 게 아니구나, 아무것도 아니구나.’ 근데 그것이 삶이다. 조금 잘되다가도 다시 떨어지고, 그렇게 뭉개다가도 다시 나아가고. 지옥이 일상이고, 일상이 지옥이라는 걸 순하게 받아들이면서 죽는 날까지 수백, 수천, 수만번 무너지는 게 삶이다. 깨달음을 얻는 어떤 경지에 도달하는 것, 그것은 가짜다.”(정혜신)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say-the-truth "지식의 저주를 끊고, 진리로 거듭나라" -나사롓 예수. 붓다 석가모니- 

say-the-truth "지식의 저주를 끊고, 진리로 거듭나라" -나사롓 예수. 붓다 석가모니- 

say-the-truth "지식의 저주를 끊고, 진리로 거듭나라" -나사롓 예수. 붓다 석가모니- 


헛 참.. 옳다. 

"그대가 옳다" 

"지옥이 일상이고... 일상이 지옥이라고 아는.. 그대가 옳다" 


허헛 참.. 

아니다. 

"그대가 옳다는 착각.. 망상.. 환상에 취해 있는 것이다." 


그렇다. 

무지몽매한 인간들은 모두 다 죽기 위해서 사는것이다. 

결국 죽기 위해서.. 서로 "내가 더 옳다" "당신이 옳다"며... 서로 싸우다 죽는짓들에 대해서... '내 인생이라고.. 내 삶이라고.. 내가 옳다고.. 억지를 부리가다 결국 죽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무지몽매한 지식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며.. 

여러 방편을 들어 자세히 설명했던 그대의 옛 도반이.. '싯다르타 고타마' 즉 '석가모니'이다. 


say-the-truth "지식의 저주를 끊고, 진리로 거듭나라" -나사롓 예수. 붓다 석가모니- 


헛 참. 

뭐라고? "깨달음을 얻는 어떤 경지에 도달하는 것. 그것은 없다?" 


이 길은.. 높고 험난하여 아무나 갈 수 없노라고.. 자세히 설명했던 옛 진실된 일념법구도자들 중의 하나가.. "나사롓 예수"이다. 

6년 여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서.. "나는 나가 아니라, 불타"라며... 너희들의 모든 고통의 원인은.. "지식"이라고.. 설명했던 옛 진실된 일념법구도자가 "석가모니"이다. 


"두 번째 독화살을 맞지 말라"는 말로서.. "죽음이 본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라는 말이며.. 사실은.. "삶과 죽음"이 있다는 지식 또한... 개개인 인간들.. 중생들 저마다의 기억속에만 있는 "환상, 몽생"이라는 뜻이다. 


항상.. 반복하여 설명하는 말이지만.. 

개개인 인간들.. 중생들.. 길잃은 어린양새끼들... "당신이 옳다"는 지식이든지, "내가 더 옳다"는 식이든지.. 모두 다 스스로 깨달아 아는 지식이 아니라, 모두 다 남들..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운 지식이 아닐 수 업다. 


즉, 그대의 뇌에 저장된 모든 지식들이.. 본래 그대의 지식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는 것과 같이.. 앵무새가 말을 지저귀는 것과 같이.. 모두 다 남들의 지식에 의존하여 "자신이라는 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 근거 없는 소리라는 뜻이라고 본다면.. 이시대의 현자일까? 


say-the-truth "지식의 저주를 끊고, 진리로 거듭나라" -나사롓 예수. 붓다 석가모니- 


그렇다. 

예수 또한.. 너희의 삶은 지옥이라고단정 지어 설명하는 것이며, 그런 무지몽매한 지식의 저주를 끊고.. 진리로 거듭나라 한 것이며.. 붓다 또한.. "비아경"에 대한 설명과 같이... "나는 본래 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라며" "나 아닌 나" 즉, 여래를 보라 하는 것이다. 


'즉견여래' 또는 "내세득작불"이라며.. 

일념의 무념처에서 즉시 볼 수 있는 것이며.. '일념법구도자'들의.. '일념삼매'의 경험과 같이... 생각의 소멸로 고요함을 경험하는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여래'를 볼 수 있다는 설명과 같이.. 


물론, 인간들.. 중생들은.. '고요함'을 경험 할 수 없다. 

성경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라는 구절이 곧 '일념삼매'의 고요함을 말하는 것이지만... 인간들은 고요함을 두려워 할 뿐만이 아니라... 진실로 '고요함'을 경험 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그저 '고요함'이라는 말을 듣게되면.. '고요함'이라는 말에 대한 망상만 더 생겨날 따름이다. 


사실은.. '참선'이라는 말 또한... '참으로 고요함'을 일컷는 말이며... 

사실은.. '명상'이라는 말 또한.. '어두울 명.. 생각할 상'자로서.. '고요함'을 일컷는 말이며.. 

'상자적멸상'이라는 구절 또한... '일념법'을 아는자.. '일념삼매'에 들어서.. 생각이 소멸되어 고요험의 극치'에서.. 비로소 '득작불'이라는 말과 같이.. '여래'를 볼 수 있다는 뜻으로서.. 이와 같이 안다면.. 진실된 일념법구도자로서.. '진리에 눈 뜬 거룩한 인물'이다. 


물론.. 하근기.. 중생들에게는.. '우이독경'이라는 말과 같이.. 

이런 진실된 이야기들 또한 보되 본 바 없으니, 개돼지와 다를 것이 없는 것들로서.. 인간이하의 존재들일 터.  


say-the-truth "지식의 저주를 끊고, 진리로 거듭나라" -나사롓 예수. 붓다 석가모니- 


명심하라. 

한집에 두사람이 결코 화평할 수 없는 이유는...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며,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무지몽매한 지식을.. "나"라고 알고, 서로가 '내가 더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이거나, 더 어리석은자들과 같이.. "당신이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신이 옳다"는 헛소리 보다는.. 

달마의 순치황제와의 이야기에 대한 설명과 같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라"는 뜻이지만, 어리석은 중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마음"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미 다 충분히.. 

자세히.. 설명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고... (두 권의 책..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그리고.. '비밀이 언어'에서.. )


명제의.. '붓다'와 '불상' 그리고.. '예수와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say-the-truth "지식의 저주를 끊고, 진리로 거듭나라" -나사롓 예수. 붓다 석가모니-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형상은... 인간들의 삶이 고통이라는 뜻으로서,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지식 너머 진리로 깨아나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석가모니의 형상인 불상의 의미는.. 

첫째는 '고요함'의 극치에 이른 모습이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서. '화난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인자한 모습'으로도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한편으로는 아는, 잘난체하는 어리석은자들을 비웃는 모습이며, 한편으로는.. 기도하는자들에게.. 허헛 참. 근심하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하는 모습으로 보여질 수 있는 것과 같이.. 희희낙낙거리거나, 크게 슬퍼하지 말라는 뜻으로 본다면.. 이시대이 현자이다. 


왜냐하면..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그 상대적인 괴로움이 있는 것이며... 기쁨이 있기 때문에, 그 상대적인 슬픔이 있는 것으로서.. 인간들의 '나와 너'라는 분별심과 같이, 언어가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이... 서로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무지몽매한 지식이, 생.노.병.사의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는 뜻으로 본다면.. 이시대의 현자이며.. 


(상대적인 지식이 있기 때문에.. 비이원론적 또는 불이론적.. 불이일원론적인 지식이 있는 것이며.. 그것에 대해서.. 참된이치, 진리라 하는 것이며.. "도"라는 말로 통칭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망물이 근원은 도"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는 것. )


사실은.. 도가의 일념법강좌와 더불어.. 일념법명상, 일념법수행을 통해서.. "마음이 생각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아는.. 진리에 눈 뜬자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비밀의 언어'이다. 


say-the-truth "지식의 저주를 끊고, 진리로 거듭나라" -나사롓 예수. 붓다 석가모니- 


자, 중요한 것은... 

'인생에는 답.. 해답이 없다'는 것이다. 


명제의.. 어리석은자들의 망상망언과 같이.. 삶은 지옥이지만, 저희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닌 것과 같이, 원하는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며, 원하는대로 죽어질 수 없는 것과 같이... 그대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 없는 것이.. 개개인 인간들의 삶이라는 허무맹랑한 것이며.. 유명무실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 자신을 알라"고 하는 것이다. 


그대의 뇌에저장된 모든, 모든 모든 지식들은.. 

마음은.. 그대가 스로 발견하여 아는 지식이 아니라, 그대가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시절부터.. 남들, 타인들로부터 주입된 남들의 지식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내 이름'이라고 부르지만, 그 이름 또한 강아지에게 이름 지어주는 것과 같이.. 남들에 의해서 지어진 이름인 것과 같이, 본래 그대의 이름이 아니라, 남들의.. 남들에 의한.. 남들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러니, 그대의... 내 안에는.. 진실된 그대가 있는 게 아니라, 남들로부터 얻어지거나 끌어 모은 식들이 아닐 수 없다는 것. (헛 참.. 붕어빵 속에는 붕어가 없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면, 그져 웃어버릴 일일까? 아니면, 슬퍼할 일일까? ) 


웃어버릴 일도 아니며, 슬퍼할 일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대가 모르는.. 아니, 인간관념으로는 애초에 사유가 불가능한.. '진리'가 있기 때문이며, 진리를 깨닫기 위한 법, 방법이 있기 때문이며.. 그 유일한 법, 방법이.. '노자, 장자, 석가모니, 예수, 소크라테스, 까비르'가 설명한 것과 같은.. "일념법"이 있기 때문이며.. '시공간'이 있다고 가정하여.. 현시대에는 '일념법명상의집 도가'가 있기 때문이며.. 이와 같이 지식 너머 진리에 대해서.. 지극히 논리적으로...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분명히 설명할 수 있는.. 일념법 고급구도자 "화원선생"이 현존하기 때문이다. 


say-the-truth "지식의 저주를 끊고, 진리로 거듭나라" -나사롓 예수. 붓다 석가모니- 


위의 글을 보니..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좀 더 올바르게 사유할 수 있다면.. 


"내가ㅡ 나를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는 가능한 일일 것 같다. 

물론, 그 때 비로소.. "너 자신을 알라"는 말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는 가능한 일이지만.. 


사실은.. 일념법 4단계 즈음에서... "아.. 마음이 생각에 불과한 것이구나"라는 알아차림, 즉 작은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일념법 7단계 즈음.. 즉, '일념삼매'의 시간이 더 길어질 무렵에 비로소.. "내가 나를 모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유상삼매지만.. '일념중에 문득...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죽기 전에 나라도 알고 죽어야 할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일어난다는 것이며, 그 때 비로소, 죽기 전에 꼭 해야만 하는 일이.. "내가 나를 아는 일"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모른다는 것"이.. 너무나도 황당한 일이며,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로서, 말도 안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예수의 진실된 뜻 또한 그러하며.. 석가모니의 진실된 뜻 또한 그러하며.. "너 자신을 알라"던 소크라테스의 진실된 뜻 또한 그러하며... 노자, 장자의 여러 "도"의 이야기들.. 방편설명들 또한.. 이와 같이, 지식 너머 진리에 대한 방편설명들.. 방편언어라고 본다면.. 이시대의 현자이다. 


say-the-truth "지식의 저주를 끊고, 진리로 거듭나라" -나사롓 예수. 붓다 석가모니- 


어린아이들이..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지만... 

어른들이 노인들을 비난하고, 청소년들이 노인들을 비난하고.. 

노인들은.. 말세시대라며.. 젊은이들을 비난하는 것과 같이.. 


여자가 남지를 비난하고, 남자가 여자를 비난하고.. 

여자가 여자를 비난하고.. 남자가 남자를 비난하고.. 

아비가 어미를 죽이고, 어미가 아비를 죽이고.. 

어려서도 죽고, 젊어서도 죽고, 늙어서도 죽고.. 

병들어 죽기도 하고.. 치매에 걸러서 망연자실하기도 하는 것이.. 

무지몽매한 중생들의 실상 아닌가 말이다. 


이와 같이... 인간들은 모두가 다 똑 같이.. 

서로 편을 갈라서 서로 아는체 하고, 서로 싸우다 죽는 짓들에 대해서.. '내 인생'라고 부르는 것이니, 어찌 지옥이 아닐 수 있겠는가만은.. 


그러니, 너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발견하라는 것이며.. 

답이 없는.. 지식의 저주를 끊고, 진리로 거듭나라 하는 것이다. 


일념법이 진리이며, 진리를 향한 유일한 법이며, 최상승법이며.. 무상심심미묘법이다. 

이 길은 좁고, 높고 험난하여..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이라던.. 예수의 말과 같이.. 


귀하고 귀한 인연있는 인물들만이 갈 수 있는.. 유일한 인생길이다. 


진리. 오직 그것이 너희를 자유하게 할 것이니... 


say-the-truth "지식의 저주를 끊고, 진리로 거듭나라" -나사롓 예수. 붓다 석가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