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 역시 하근기 중생이 본다면 크게 웃어버릴 수밖에 없는 내용이며, 중근기 중생이라면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며 상근기 중생들만이 조금, 아주 조금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말은 같은 말이지만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납득이 불가능한 말이기 때문이다.
앞편에서 '순수의식'에 대해서 말한 바와 같이 '순수의식'이라는 말은 말만 있는 것일 뿐, 인간이 경험허거나 감지하거나, 인지할 수 없는 낱말이다. '불성'이라는 낱말 또한 그러하며, 본래성품이라는 말 또한 그러하며, 사실 '부처, 불타' 라는 말들이 그러하다.
인간의 관념 즉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지성체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기 때문에 '대도무문'이라는 말이 창조된 것이며, 불립문자, 언어도단' 이라는 말까지도 생겨나게 된 것이다.
사실 '대도무문'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 뜻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말, 말, 말을 아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도무문'이라는 말은 '노자'의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도는 참다운 도가 아니다'라는 말과 같이... 석가모니의 '불능견여래'라는 말에 대한 금강경 사구게와 같이 "그것"은 지성체의 마음의 작용 즉 느낌이나 감정을 표현하게 되는 생각으로써는 감히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 조차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관념이라는 것은 모두 어린아이시절부터 보고 듣고 배웠던 말, 즉 언어에 한정된 것이며, 언어 밖의 세상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언어가 없다면' 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언어가 없는 상태'에 대해서 까지도 상상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언어가 없다는 말' 또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곳을 찾아온 두 자매가 있었다. 나이 60대를 넘어선 숙녀들이다. 소개를 들어보니. 마음수련원이라는 곳에서 수년 동안 헤매다가 그곳에서 다시 분파되었다는 '대적광'이라는 수련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들 하는 말이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었는데. "나는 없다" 는 말과 함께 "나는 마음이 없어요" 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경험담을 쏟아 내고 싶어서 안달하는 모습이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수행중에 그런 경험, 즉 '내가 없음'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인간세상에서 가장 낮은 단계의 하근기 중생들이지만, 그들은 그것을 사실적으로 믿는다. 광신자들이나 맹신자들과 다르지 않은 까닭은.... 공통적으로 타인들의 말, 말, 말을 믿고 그 말에 세뇌 당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없다" 는 말도 말이며, "마음이 있다" 는 말 또한 말이다.
"언어가 없다" 는 말도 말이며, "언어가 있다" 는 말 또한 말이다.
"느낌이 있다" 는 말도 말이며, "느낌이 없다" 는 말 또한 말이다.
더 나아가 "내가 있다는 말과 내가 없다는 말도 말이며, 내가 사람이다 라는 말도 말이며, 내가 사람이 아니다, 라는 말 또한 말이다. 말이 아닐 수 없다. "말이 아니다" 는 말 또한 말, 말,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말, 말, 말들은, 말 들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며, 근본 원인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에 대해서 다른 생명체들의 무리들과 다르지 않은 '중생무리들' 이라고 하는 것이며, 길잃은 어린 양 무리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언어를 사용하지만, 언어를 사실적인 것으로 여기지만... 그 언어 자체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근기 중생이나 중근기 중생은 '도의 언어'를 듣게 되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크게 웃어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위의 비유법은 석가모니의 가르침 중에도 나오는 말이며, 한글로 표현 된 말이 "말변사" 라는 말이며 또 다른 말, 말, 말이다. 세상은 언어로 창조된 것이며, 언어가 없다면 세상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대가 주장하는 그대의 나 또한 수많은 말들 중에 하나인 말에 불과한 말이기 때문이다.
위의 말, 말, 말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공통점에 대해서 글을 보자마자, 아니 글을 보기도 전에 서두의 설명만으로써도 그 공통점에 대해서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상근기 중생이라고 하는 것이며, 그렇지 못한 중생들에 대해서 하근기 중생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석가모니로부터 전해져 오는 "중생(衆生)"이라는 말과 예수의 말로써 알려지게 된 "길잃은 어린 양" 이라는 말 또한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지만, 이런 말 조차도 이해 할 수 없는 자들이 가장 낮은 단계의 하근기 중생들이다. 물론 이런 말들을 통해서 그 이치를 알고자 한다면...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으니...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가 따로 정해져 있다는 뜻은 아니다.
위의 말들의 공통점은 '있다' 는 말과 '없다'는 말이 사실상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뜻이며, 상대적인 말들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관념으로써 이해 하는 '상대적인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들은 본래 없는 것이라는 말이며, 성령, 불성, 본래성품, 순수의식... 등의 말, 말, 말들이 상대적인 것들로써 본래 없는 것이라는 말이며, 그 근원이 '본무' 라는 또 다른 말, 말, 말로 표현된 것이라는 뜻이다.
그들의 말... 소위 '도를 깨달은 자' 들의 말, 말, 말들.. 그 말들 또한 인간들의 말과 같은 상대적인 말들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들의 언어는 '언어가 본래 없는 것' 이라는 말에 바탕을 둔 언어이다. 언어 자체가 상대적이기 때문이며, 상대적이 아닌 말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도를 깨닫는 다는 것' 이라는 말 자체가 상대적인 말이다. 깨달았다는 말과 깨닫지 못했다는 말이 상대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즉 소위 '깨달은 자'들은 '내가 깨달았다' 라고 말하지 아니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깨달음도 없다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무고집멸도' 라는 말과 같이...
석가모니는 '나는 용도 아니며, 신도 아니며, 더 나아가 나는 사람도 아니다' 라고 분명히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도'를 깨닫기 위한 인간들의 모든 행위가 어불성설이라는 뜻이다. 삼보천룡이 내려온다고 생각하는 머리깎은 중생들.... 석가모니의 제자라는 아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중생들이 가장 낮은 단계의 하근기 중생들이라는 뜻이다.
사실 인간세상에서는 '도'에 관한한 석가모니가 대표격인 인물이다. 그런데 석가모니를 우상으로 여기는 자들은 절대로 도를 깨달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석가모니의 말을 단 한구절도 올바르게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도를 깨닫는 다는 것은 불성을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며, 부처의 성품을 이해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깨닫기 위한 행위여야 한다는 뚯이다.
인간은 언어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언어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내가 있다, 내가 사람이다' 라는 앎 자체가 언어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이다' 라는 앎 또한 언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를 사실적인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 을 그것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이원성이나 다양성이라는 인간들의 모든 분별들... 모순된 언어 자체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불이일원론'이라는 말의 뜻 또한 그러하다.
인간들의 '이다, 아니다' 그리고 '있다 없다' 는 분별들, 그리고 이것이나 저것 또는 이것도 아니며, 저것도 아닌 다른 것들이라는 말들 자체가 옳은 것이 아니라 우주가 둘로 나뉘거나 다른 것들로 나뉠 수 없는 하나이듯이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하나이며, 하나에 속한 것이라는 뜻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라는 말이 있다.
'순수의식'이라는 말이나 '불성' 이라는 말 또는 '부처의 성품'이라는 말, 말, 말들을 염두에 두고 하는 모든 행위들은 무속인이 신을 본다고 믿는 것과 같은 환상의 세계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는 자신의 마음에 속는 것이다.
꿈이 아니지만 꿈과 같은 것이다. 소위 석가모니를 우상으로 여기는 자들의 삼매에 대한 경험담을 들어보면, 한결같이 '빛을 보았다'는 방식이다. 광명의 빛이라는 말에 집착한 결과이다.
'깨달음'이라는 것.
'그것'은 마음을 이해 하는 것이다.
'해탈'이라는 말은 '이해 함으로써 탈출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본래 '해탈'이라는 말은 '심해탈'이라는 말이며, 마음을 완전하게 이해 하므로써 마음으로부터 탈출한다는 뜻으로써, 마음이 있지만 있는 것이 아니며, 마음이 없지만 없는 것이 아니라는 방식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말은 또한 반야심경에 기록된 말들... 즉 공즉시색, 색즉시공, 공불이색, 색불이공... 등과 같은 맥락이다.
그것들이 있지만 있는 것이 아니며, 없는 것이지만 없는 것이 아니며, 다르지만 다른 것이 아니며, 같지만 같은 것이 아니라는 방식으로써의 설명이기 때문에 인간의 있다, 없다... 는 상대적인 말에 대해서 사실적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사고방식으로써는 결코 납득할 수 없는 말이며, 해석이 불가능 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있지만 있는 것이 아니며, 없지만 없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은 '본래 없는 것'이라는 말에 바탕을 둔 말이기 때문이다. 말장난 같은 말이지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며,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없는 것'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불성이나 성령이 있다고 믿는 자들과 그것들이 없다고 믿는 자들간의 다툼은 끝이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나 천국 지옥이 있다고 믿는 자들과 없다고 믿는 자들의 싸움 또한 끝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지식을 넘어선 올바른 앎에서는 다툼이 있을 수 없다.
그 올바른 앎, 참된 이치 라는 말이 왜곡된 말이 '광명의 지혜' 라는 말이며,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앞서 설명된 소크라테스의 '유일한 선은 올바른 앎이며, 유일한 악은 지식이다'는 말이 있는데, 지식을 초월한 올바른 앎이다. 왜냐하면 올바른 앎이란... 언어가 사실적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을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본래 없는 것이다. "본래무일물" 이라는 말의 본래의 뜻이다.
부처의 성품이라는 불성이라는 말, 부처라는 말, 도... 라는 말... 그런 말들에 세뇌당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언어가 사실적인 것이라고 믿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내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인간들은 '내가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을 듣게 되면, '미친놈'이라는 생각이 먼져 일어날 수밖에 없다.
물론 '나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하거나, 나는 마음이 없다' 고 말하는 자들, 그리고 내가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자들과 '내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자들' 더 나아가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 또한 일종의 정신질환자들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언어를 사실적인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까닭은 '내가 사람이다' 라고 아는 앎. 그 자체가 근거가 없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석가모니의 말이나,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라는 책, 그리고 '비밀의 언어'라는 책의 내용들에 대해서 온전한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며, 그런 책을 읽는 일 마져도 쉬운 일이 아닐 수밖에 없다.
사실 하근기 중생이나 중근기 중생들이 '도'의 말을 듣게된다면 크게 웃어버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의 말의 본질은 "나는 사람도 아니다" 라는 말이며, 모든 말의 바탕이 '나는 이것도 아니며, 저것도 아니며, 다른 것도 아니며, 더 나아가 나는 사람도 아니다' 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불립문자, 언어도단, 대도무문, 그리고 석가모니의 소리와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 그리고 예수의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말... 모두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왜냐하면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 도' 라는 말과 같이... 언어는 상대적인 것으로써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하구적인 것이며, 오직 '그것'만이 사실적인 것으로써 '있는 것과 없는 것' 즉 모든 것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요지는 소크라테스의 말과 같이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다. 예수의 말로써는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금강경 사구게의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라는 말과 같이... 우상숭배사상 따위로써는 결코 자신의 나를 볼 수 없다는 뜻이며, 오직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며, 그 방법에 대한 설명에 대해서 '일념법, 일념명상법' 수행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인간들은 '내가 사람이다' 라는 말에 대해서 의심할 여지 조차 없다.
하지만 그대의 '내가 사람이다' 라는 고정관념 또한 그대가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에 헤아릴 수 없을만큼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타인들의 말을 듣고 비로소 알게된 것이 '내가 사람이다, 내가 여자다, 내가 남자다' 라고 알게된 것이지만... 순수의식의 어린아이 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사람이다' 라는 앎(識)에 대해서 감히 의심조차 해 볼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런 말...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며, 인간의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에게도 입장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들에게도 인간들과 같이 자기 관념, 자기 주장, 자기만의 사고방식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본다고 가정한다면... 가정한다면, 가정한다면, 가정한다면... '육체가 나다, 내가 사람이다' 는 말이 말도 안되는 소리이며,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내가 사람이다' 라는 말이 상대적인 말일 뿐만이 아니라, 근거가 없는 말, 즉 사실무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말은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다.
하지만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상근기 거룩한 인물들이라면, 석가모니의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말이며, 예수의 본래의 뜻이며, 노자의 해석서와 다르지 않은 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일한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이며, 오직 일념법, 일념명상법 만이 대도무문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법, 방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에 이런 말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조금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다면, 그가 곧 상근기이며, 이해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그가 곧 상근기이다.
고통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고통을 느끼는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적이 아닌 것들... 자기를 주장하는 일, 마음을 주장하는 일, 느낌 따위를 주장하는 일들.... 하근기 중생들의 견해이다.
그대에게 인류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깨달음과 중도 · 방편설 - 말변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은 무엇인가? 마음과 깨달음 그 오해와 진실 - 7) 무아와 진아. 자아 / 제법무아의 뜻 (0) | 2014.08.26 |
---|---|
마음이 무엇인가? -마음과 깨달음- 그 오해와 진실 - 4) 견성과 초견성 / 성불과 광명의 빛 (0) | 2014.08.22 |
신비의 문 / 마음과 깨달음 그 오해와 진실 - 2) 순수의식과 무의식. 잠재의식에 대하여 (0) | 2014.08.19 |
신비의 문 / 마음의 문 - 정신적인 것들과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착각 / 진정한 휴식이란? (0) | 2014.08.14 |
사자의 서 / 우주의 법칙(하늘의 도) / 무위법과 유위법 - 순수의식과 의식 / 신비의 문 (0) | 2014.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