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식은 지식이 아니라 무지(無知)이다.
문명은 문명이 아니라 무명(無明)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아다' 라고 단정 짓는 말 자체가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기억할 수 없는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생활하는, 생명활동을 하는 동물 즉 움직이는 물건이다- 는 말이 사실적인 말이며, 사실에 바탕을 둔 말이다.
사실 인간들의 -내가 사람이다- 라는 말은 사실적인 말이 아니라 허구적인 말이다. 왜냐하면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시절에는 -내가 사람이다-라는 앎(=識. 지식)=(생각, 말, 뜻)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사람이다, 아니다. 또는 내가 여자다, 남자다- 라는 앎(識. 지식. 말. 뜻. 느낌)에 대해서 자신이 스스로 알게된 앎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앎에 대해서 '자아(自我)' 라는 말로 표현되며, 그것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허구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 그들이 소위 -도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인물들이다.
그들 즉 노자와 장자를 비롯하여 석가모니와 예수 등의 앎의 바탕은 단순하기 이를데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공통적인 앎의 바탕에는 다른 복잡하고 다양한 것이 아니라 -나는 사람도 아니다- 라는 앎(언어, 지식, 뜻)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럴 것 같다'고 추측하는 말과 같은 '느낌'이 아니라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올바른 이해이다.
-나는 사람도 아니다- 라는 말(앎)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것이다'는 말이 아니며 또한 '아무것도 아니다'는 말이 아니라 언어, 말로써 표현될 수 없는 것이라는 뜻(앎, 말)이다. 언어는 상대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적인 것, 모든 것들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주체가 사라짐과 동시에 대상 또한 사라지는 것으로써 불완전한 것이다. 영원한 것이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샹대적인)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앎으로써는 '마음'은 정신적인 것 즉 비물질적인 것이며 육체는 물질적인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사물에 대해서, 즉 물질적인 것들... 보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사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적인 것,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알아차린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들이 소위 '인류의 성인'으로 알려진 인물들이다.
여기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사실적인 것인가? 아니면 '정신적인 것'이 사실적인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이다.
사실은 아주 단순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물질적인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근본원인 즉 원인 인자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지식이라는 현대 과학에 의해서 밝혀진 것이지만 '우주'에는 우주가 있는 것이 아니라 텅 비어 있는 것이며, 모든 물질들 또한 나누고 나누다 보면, 쪼기고 또 쪼개다 보면, 궁극에는 '입자와 파동'이 남겨진다고 한다. 그 입자와 파동 또한 '보는 자'가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다만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보는자'가 없다는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예를 든다면, 인간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닭이 먼저인가, 혹은 알이 먼저인가-라는 논란에 빠져 있었는데, 그 논란은 여전히 논란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는 논리이다. 하지만 닭 또한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근본원인은 '입자와 파동'으로서 '본래 없는 것'이며, '닭의 알' 또한 그러하다. 그러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는 앎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으며, 논란이 있을 수 없으므로 다툼이 없는 것이며, 논리적인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모든 앎은 '닭이 먼저인가, 닭의 알이 먼저인가' 라는 의문과 같은 논란이며 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논리정연하다'는 말 또한 논리에 맞는 말이 아니라, 다른 말들을 끌어 모아서 '논리적인 것'으로 가장된 것들이다. 인간의 지식이 논리적일 수 없는 까닭은 -내가 사람이다- 라는 앎(지식. 말. 뜻) 자체가 -내가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과 상대적인 말로써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말이 창조된 이래 인간들에게 평화로운 시대는 없었다. 사실 인간들은 행복한 세상을 꿈꾸기 때문에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착각이다. 왜냐하면 행복한 세상이라는 말은 불행한 세상이 있기 때문에 창조된 말이기 때문이다. 불행한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불행한 세상이 있기 때문에 행복한 세상을 갈망하는 것 뿐이다.
만약에 '불행한 세상'이 없다면... 행복한 세상 또한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사실 인간은 행복한 세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소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망은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이며, 그런 사고방식으로 교육 받았기 때문이며, 그런 습관이 통념과 관념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인간 세상에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신이 나간 사람이거나 정신질환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가장 큰 두려움이 자신의 몸의 죽음이며, 언제 어느때 죽을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 다가서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과 육체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
인간의 관념(지식)으로써는 마음은 비물질 적인 것이며, 육체는 물질적인 것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물질적인 것은 '보는 자'에 의해서, 보는 자가 있을 때, 입자와 파동으로써 근본원인 인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 없는 것이다. 모든 사물들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다. 상상으로써 있는 것이다. 생각으로써 있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내내 행복을 경험할 수 없는 까닭은 '보는 자(느끼는 자, 상상 하는 자, 생각 하는 자, 사고 하는 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물질들을 보기 때문이다. 그 대상 물질들 가운데 하나가 다른 물질(인간들)들과 비교 하여 분별하는 하는 물질 즉 '자신의 몸'이라는 사물이다.
지식은 '정신'과 '마음'과 '영혼'과 '신'에 대해서 서로 다른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마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이름을 짓게 된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항상 단순한 것이며, 가장 단순한 것이 '생각'이다.
'진리는 단순하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생각'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보이는 것들, 즉 자신의 겉모습에 집착하는 까닭은 자신의 생각의 윤회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행복이나 자유, 평화는 물질적인 것들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보고 느끼는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내내 단지 몇 차례의 만족감에 따른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날 때이다. '아 잘 잤다'는 생각이 일어나기 직전에 느끼는 행복이며 기쁨이다.
이는 찰나지간에 일어나는... 다른 잡다한 생각들이 일어나기 전에, 즉 깊은 잠에 의해서 '스스로 생함과 멸함을 반복 순환하던 '생각'의 충분한 휴식(생각의 윤회가 끊어짐) 이후에 일어나는 최초의 생각이다. 그 찰나지간에 일어나는 생각이 인간이 인간으로써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있는 유일한 기쁨이며, 만족할만한 행복이다.
이런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유일하게 일념법명상이다. 일념법 수행자들이 일념에 몰입하여 있을때에는 생각의 생멸현상, 즉 마음의 움직임이 없다. 아니. 마음이 없다는 말이 옳은 표현이다. 사실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라는 한구절에 정신을 집중하다 보면... 그 동안 즉 마음을 찾는 동안 만큼은 마음은 사라져 버린다. 인위적인 행위로써 마음이 사라졌을때 느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평화이며, 행복감'이다.
인간이 행복을 경험할 수 없는 까닭은 마음 밖에서 소득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육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육체는 유기체이며, 물질적인 것이며, 근본원인 인자가 없는 것이다.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생각에 의해서 생겨난 환상적인 것이다. 인간이 그것에 집착하는 까닭은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시절부터 타인들로부터 들었던 말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기억된 생각 때문이다.
인간들의 모든 앎은 말, 말, 말이다.
뜻이라는 말 또한 뜻이라는 말이며, 느낌이라는 앎 또한 느낌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말 이전에는 생각이 있다. 기억할 수 없는 시절에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웠던 말들에 대한 생각이 있는 것이다. 그 최초의 한 생각이 '육체가 나다'라는 생각이며, 이와 같은 뜻이 '나라는 생각'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보면. '我想 人想'이라는 말이 있다. '아상'이라는 말은 '내가 있다'는 생각이라는 뜻이며, '인상'이라는 말은 '내가 사람이다'는 뜻이다.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는 이해 할 수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타인들로부터 말을 배웠던 아이 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몸에 대한 집착은 고통을 가중 시키는 일이다. 왜냐하면 몸에 대해서 고뇌한다는 것은 결국 정신적으로 볼때 가장 큰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육체가 병드는 육체가 나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며, 육체의 안위를 위한 생각의 억압 때문이다.
만병의 근원은 마음이라는 말과 같이 마음이 병들면, 육체 또한 병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며, 육체가 병들면 마음 또한 병이 들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육체나 마음이나 본래 사실적인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며, 생각의 작용에 의해서 가공되어진 것들이 마음과 육체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행복이나 평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육체는 물질이지만 근원 인자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적인 것이 아니므로 그것은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근거를 찾을 수 없으면서 또한 모든 것을 있게 하는 신비스러운 것이다.
인간의 근원적 무지는 이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자'는 마음의 근원에 대해서 '신비의 문'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비의 문'이라는 말은 사실 '마음의 문'을 일컷는 말이며, 예수의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며' '구하라 그러면 구해질 것이다'는 말 또한 신비의 문을 이르는 말이며, 마음의 문을 이르는 말이다. 반면에 석가모니의 말은 '본성, 본래성품'이라는 말로써 표현된 것이다.
인간의 사고방식으로써는 '학문이나 예술, 종교나 도덕 따위로써 정신적 소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크나큰 착각이다.
인류의 역사가 그러하듯 인간들의 바탕이 왜곡된 그릇된 사고방식으로써는 결코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내내 진정한 행복이나 평화를 누릴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 또한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생각에 의해서 생겨난 허상(虛想)이기 때문이다.
현세상에는 '생각의 원리' 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있다.
인간의 지식으로써 어떤 말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은 그 말의 뜻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 말, 말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이며 환상을 갖는 것이다. 이는 광신자나 맹신자들이 굳건하게 믿는 '천국, 하늘나라, 불국토, 하나님의 왕국, 믿음 천국' 에 대한 환상(상상, 몽상, 망상)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은 '생각의 원리'라는 말, 말, 말에 대해서 '행복'이라는 말에 대한 상상과 같은 환상이 아니라, 생각의 생멸현상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몸과 마음' 또한 생각의 환상 물질이며, 천지만물 또한 '나라는 생각'에 의해서 생겨난 '생각의 환상물질'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앎을 뜻하는 말이다.
신비의 문을 여는 방법. 마음의 문을 여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 일념윤회법이 진리이다.
그대와 인류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에서
일념법 강좌 신청하는 곳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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