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중도 · 방편설 - 말변사

천부경의 유래. 그 오해와 진실 - 2) 올바른 앎, 참된 이치란?

일념법진원 2014. 8. 6. 05:57

천부경해설

유대민족이 구약을 가졌던 것처럼 상고시대에 우리민족도 고유한 경전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에 이르러 세계최고(最古)의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이라 자랑스레 떠들면서도 우리 민족의 정신적 뿌리인 경전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

우리민족의 삼대경전은 천부경과, 고구려의 재상 을파소가 쓴 참전계경, 그리고 삼일신고의 세 가지다. 그 중 가장 오래된 천부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일 뿐 아니라 유불선과 음양오행, 그리고 주역이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우리 민족만의 경전일 뿐 아니라 전체동양의 경전이며, 세계인의 경전이다.

이 천부경은 원래 환인시절부터 있다가 훗날 환웅에게 전해진 삼부인 세 개 중의 하나인 거울(용경)에 새겨졌던 것인데, 환웅천황이 백두산 기슭에 신시를 개국한 다음 백두산 동쪽에 큰 비를 세우고 거기에 글로 새겨 훗날 통일신라시대까지 전해져 왔던 것이다.

이 비에 새겨진 천부경은 우리민족의 옛글자(훗날 훈민정음의 모체가 됨)인 가림다로 새겨진 것이어서 후세사람들이 판독치 못하다가 통일신라시대에 해동공자로 추앙받았던 당대의 세계적 석학인 최치원이 백두산을 찾았다가 이 비석에 새겨진 글을 읽고 한자로 번역해서 전하는 것이 바로 81글자의 천부경이다.

이 81글자로 우주의 법칙 모두를 압축해 담은 번역문을 볼 때에 최치원의 학식의 깊이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천부경을 가지고 책을 써낸 사기꾼들이 워낙 많아서 서점에 가보면 한 20종이 넘는 천부경 어쩌고 하는 맹랑한 책들이 팔리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정말 가관이다.

 

얄궂은 그림들에다가 황당무계한 숫자들을 잔뜩 늘어 논 것들이라 얼핏 보면 고등학교 수학책인 줄 착각할 정도이다. 그래 놓고서 이 작자들은 꼭 도망갈 구석을 만들어 놓는다. 천부경의 진리는 워낙 심오한 것이어서 풀이 자체가 난해할 수밖에 없단다.

어렵고 난해해야만 진리인줄 착각하는 바보들이다. 그러나 진리는 어려운 것이 아니고 어렵다면 이미 진리가 아니다. 천부경은 가장 단순하고도 명확하게 설명해 놓은 글이다. 추측이나 가설의 여지가 없는 글자의 뜻 그대로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경전이다.

그렇지 않다면 해동공자는 허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반만년 동안 풀지 못했던 천부경의 비밀을 000이 풀어드리겠다. 그리고 이 천부경을 통해서 숨겨진 세계사의 비밀을 알려드리겠다. 천부경의 전문을 먼저 올려드린다. 대개의 경우 이 천부경은 끊어 읽는 단락부터가 틀리고 있다.

 

옛 환인천제 시대의 사람들은 아침저녁으로 이 천부경을 계송하여 낭독해 왔것만은 단락구분조차 틀리니 이걸 노래로 운률에 맞추어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000이 아래 적은 끊어 읽기가 가장 정확한 것이다. 이래야 운률이 맞는 계송이 되고 정확한 해석이 가능하다.

 

<天 符 經 천부경>

一 始 無 始 一 일시무시일이니

析 三 極 無 盡 本 석삼극 무진본이고

天 一 一 地 一 二 人 一 三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이라

一 積 十 鉅 無 櫃 化 三 일적십거 무궤화삼이니라

天 二 三 地 二 三 人 二 三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이니

大 三 合 六 生 七 八 九 대삼합육 생칠팔구하고

運 三 四 成 環 五 七 운삼사성 환오칠하니

一 妙 衍 萬 往 萬 來 --- 일묘행 만왕만래

用 變 不 動 本 --- 용변 부동본

本 心 本 太 陽 --- 본심 본태양

昻 明 人 中 天 地 --- 앙명인중천지일

一 終 無 終 一 ---일종무종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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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중생의 말인데, 인터넷에 떠 있는 내용이다.

'환인천제시대'라는 말이 있는데... 이런 말은 누가 언제 누구의 말을 듣고 만든 말일까?

 

앞장에서 '일시무시일'이라는 말의 뜻과 '일시무시일'이라는 말이 왜 생겨나게 된 것인지, 그런 말은 어떤 근거에 의해서 생겨난 것인지에 대해서 설명 하였으나, 일념을 깨닫지 못하거나,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는 하근기나 중근기의 중생들에게는 여전히 우이독경 일 수밖에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말을 모르던, 말을 배우던 어린아이 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으며,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숫자놀음은 그것의 본질과는 상관 없는 것들이다.

겨자씨 만큼도 올바른 앎이 없는 자들의 망상에서 비롯된 말재간, 언술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 또는 '깨달음' 또는 '도'... 라는 말로 표현되는 '그것'에 대한 본질은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며, 그 까닭은 '그것'은 상대적인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절대적인 것'이라는 말은 높고 낮음이 없는 것을 이르는 말이며, 소크라테스의 '유일한 선'에 대한 설명과 같다.

 

소크라테스의 '유일한 선은 앎이며, 유일한 악은 지식이다'는 말은 '중도'를 일컷는 말이며, 중도란 선함과 악함의 중간에 있다는 뜻이 아니라, 선함과 악함의 본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바탕을 둔 앎으로써의 '중도'를 이르는 말이다. 

물론 이런 말들 또한 인간의 관념, 지식으로써는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말이다. 다만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며, 상근기의 인물들만이 지적으로나마 이해가 가능할 수 있는 말이다. 

 

 

천부경의 내용들 중에서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도는 참다운 도가 아니다'는 내용에 바탕을 둔다면, 그나마 그런 '도'와 관련히여 절절한 표현이 있다면, 전편에 설명된 '일시무시일'이라는 말과. 아래의... 

 

一 妙 衍 萬 往 萬 來 --- 일묘행 만왕만래

用 變 不 動 本 --- 용변 부동본

本 心 本 太 陽 --- 본심 본태양

昻 明 人 中 天 地 --- 앙명인중천지일

一 終 無 終 一 ---일종무종일 ... 의 구절이다.

 

 

본래없는 것 하나가 비로소 있다는 말에 대해서 설명했는데. 다시 한번 요약하자면. 

 

인간들의 앎이 참으로 무지몽매한 까닭은 '일시무시일'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있는 것이 왜,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어떤 연유에 의해서, 어떤 근거에 바탕을 둔 말인지에 대해서는 아랑곳 하지 않은채로 수박 겉핧듯이 옛날에 누가 그렇게 썼는데... 그것이 최고의 경전이라든지, 누군가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썻기 때문에 맞는 말일 것이다.... 라고 자신의 상상력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근거도 모르는체 남들의 말, 말, 말에 대해서 주장하는 것이니. 무한한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다.

 

'환웅 천왕'이 백두산에 내려와서 '신시'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연 환웅이라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일까?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주장 하는 그 앎은 누구로부터 들었던 말일까... 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는 뜻이다. 

 

우주를 여행한다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하늘에서 사람이 내려왔다고 주장한다는 것은 예수의 말을 왜곡하여 하나님이 우주 어디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석가모니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삐끼'와의 대결 장면이 나오는데... '마찌마니까야'라는 초기경전 또한 그와 같이 왜곡된 것들이다. 

 

자신이 스스로 경험을 통해서 아는 앎이 아니라, 남들...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말들에 대해서 '내가 안다'고 주장하는 짓들... 인간의 무한한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다는 뜻이다. 서로가 그런 사고방식으로 주장하기 때문에 항상... 끊임없는 논란, 투쟁, 다툼, 전쟁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올바른 앎이란... 스스로 체험을 통해서 아는 앎이기 때문에 굳이 주장하지 아니하는 것이며, 주장하지 아니할 때 비로소 다툼이 사라지는 것이며, 그에 대해서 평화로운 삶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一 妙 衍 萬 往 萬 來 --- 일묘행 만왕만래

한가지 묘한 요행스러운 행위(움직임)가 만물만상을 생겨나게 하고, 멸하게 하고... 라는 뜻으로써 끊임없이 오고 가는 것들, 끊임없이 생멸을 반복 순환하는 천지만물의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사실은 인간의 끊임없이, 잔 바람에도 잔 물결에도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의 변화를 이르는 말이라고 이해 할 수 있다면 올바르게 이해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생각의 생멸현상에 대한 설명이라고 이해 할 수 있다면...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이다.

 

 

用 變 不 動 本 --- 용변 부동본

'그것'의 근본은 움직임이 없으나,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는 뜻이다. 세상. 만상만물이 그러하듯이 본래 없는 것에서 나타나 있는 것들이다. '부동본'이라는 말 자체가 올바른 표현은 아니다. 왜냐하면 '본래 없는 것'... '본무'이기 때문에 '움직임이 있다, 없다'는 표현 자체가 올바른 표현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떤 경에서는 '체와 용'으로 구분하여 '본체는 텅 비어 있으나...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는 방식으로 표현 하기도 한다. 모두 올바른 앎이 아니다. 그런 말들 때문에 인간들이 그런 말에 집착하게 되면서 종교나부랭이들이 창궐하게 되는 것이다.

'용변 부동본'이라는 말 또한 '본래무일물, 본무' 라는 말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자들의 말재간에 불과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석가모니의 말 중에는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라는 말이 있다. 만약에 색이나 형상 또는 소리나 음성으로 '자신의 본래의 나'를 보려 한다면, 보려 하는 자의 행위는 삿된 도리를 행하는 자라는 뜻이며, 그런 자는 결코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또한 예수의 하늘아래 어느 것도 우상으로 숭배하지 말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本 心 本 太 陽 --- 본심 본태양

만약에 '본무'에 대해서 '본심본태양'이라는 말로 표현했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자의 말재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형상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이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해의 정도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질 수는 있다. 가령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말과 같이, 또는 예수의 '유일자' 전지전능한 자' 라는 말과 같이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만이 존귀하다는 뜻으로서는 '태양'으로 비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심'과 '태양'을 동일시 한다는 뜻으로 표현한다면... 어긋난 것이다. 왜냐하면 본심은 곧 무심이며, 무심은 곧 '본무'를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만 본무에 대해서 '중도'라고 하는 까닭은 인간의 관념으로서는 이해 할 수 없겠지만... 상대적인 언어가 있다고 가정할 때에 '중도'라는 말로써 표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昻 明 人 中 天 地一 --- 앙명인중천지일

굳이 '도'와 관련되어 옳은 말이라고 가정하여 해석한다면.

만약에 인간이 밝음(태양과 같은 밝은 앎, 하늘의 관점, 광명의 지혜... 등)을 앙망한다면... 유일자로써 하늘과 땅의 중앙에 있는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곧 중도를 일컷는 말이며, 사실 중도란 하늘과 당의 중간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늘과 땅이 본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의 분별심이 사라진 앎을 이르는 말이다. 

 

사람들의 '중도'에 대한 이해란, 부자와 가난한 자의 중간이며, 선함과 악함의 중간에서 관망하는 것 쯤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니다. 소위 '도를 깨달음' 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성인'들의 말은 그런 사고방식이 아니라, 사고방식을 초월한 앎으로써 언어가 본래 없던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에 바탕을 둔 말들이다. 

 

다만 인간은 언어가 없다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선과 악의 중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뜻이 아니라, 선과 악이라는 말이 없는 상태에 대해서 '유일한 선'이라고 하는 것이며, 구속이나 자유라는 말이 없는 상태에 대해서 무위자연의 자유라고 하는 것이며, 그런 행위들... 즉 언어에 얽매이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 중도, 부처, 깨달음, 해탈... 무위자연의 자유 등의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一 終 無 終 一 ---일종무종일   

'일종무종일'이라는 글 또한 '본무'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결코 올바른 앎에 바탕을 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본래 없던 것이 비로소 나타났으나, 그것은 시작도 없으며 끝도 없다는 말이 '천부경'이라는 경의 요지이다.

 

사실 그대가 깊이 잠들어 있어서 의식이 없을 동안에는, 그대의 나도 없으며, 우주 천지만물도 없다. 언어 조차도 없다. 그것, 즉 '아무것도 없는 것의 완전함'에 대해서 '본무, 본래무일불'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천부경'이라는 경은 불경이나 성경 등의 여타 경전들이나 또는 인간세상에 널리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경전들과 같이 모두가 사실적인 것들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들이다. 만약에 그대가 진리를 갈망한다면 참고할 수 있는 경전은 '예수의 말과 석가모니의 말'이다. 그들의 말이 왜곡되어 우상숭배사상으로 전락된 내용이 아니라 그들의 (인간들의 언술에 의해서)변질되지 않은 진실된 말들이다.

 

만약에 천부경이라는 경전이 쓰일 곳이 있다면, 종교나부랭이들간의 논쟁의 도구로 쓰일 수 있을 뿐이니, 가치 없는 것들이다. 올바른 경전이란... 인간이 인간과 인간들끼리 논쟁이나, 다툼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앎에 대한 지침서로써 인간들 서로 서로가 다툼이 있을 수 없는 앎을 전파하는 것이다.   

 

노자나 장자의 말들 속에서도 '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으며, 라마나 마하리쉬의 말에서도 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모두 인간의 관념을 초월한 말들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의 말과 예수의 말도 이와 같다. 하지만 두권의 책.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와 '비밀의 언어'에는 그들의 본질 즉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 대한 그들의 진언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 되어 있다.

 

 

사실 '생각의 원리'라는 말은 인간세상에서는 전에 들어볼 수 없는 말이며,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기 때문에 지성체들에게는 낯선 말일 수밖에 없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생각의 원리'라는 말은 일반적인 다른 말들과는 달리 지식으로써는 결코 이해 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이다. '생각의 원리'라는 말을 이해 하기 위해서는 오직 '일념명상법'이라는 방법의 명상 수련을 통해서만 스스로 체득할 수 있는 앎이기 때문이다. 

 

일념법 명상을 통해서 올바르게 알게되는 앎과 올바른 앎이 아닌 지식으로써의 앎의 차이에 대한 사실에 바탕을 둔 비유를 든다면... 

불교라는 종교의 우상숭배사상에 세뇌된 사람들과 소위 마음*** 등의 마음을 유린하는 집단들의 말재간에 의해서 '윤회'라는 말에 세뇌당한 사람들은, 윤회라는 말의 올바른 뜻에 대해서는 절대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우상숭배사상에 이끌려 다느는 광신자, 맹신자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 이는 천국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과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말들에 대한 종교들의 다툼, 논쟁, 주장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지금 이 시대 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절대로 끝이 날 수 없으며, 결국에는 종교간의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 세뇌 당하여 광신자나 맹신자가 되었던 사람들이 백천만겁난조우의 인연을 만나면서 일념법 수행을 통하여 허구적인 앎에서 깨어나고 나면... 비로소 기가 막히다며 허탈하게 웃어버린다는 것이다. 말, 말, 말에 속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윤회가 있다, 없다는 주장이 근거 없는 주장들이며, 천국이 있다거나 없다는 주장이 근거가 없는 주장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주장들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한 생각의 차이일 뿐,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알게 되기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념수행으로써 일념을 깨닫지 못하는 한... 죽어도 이해가 불가능 하니. 죽는 날까지 논쟁, 투쟁, 다툼... 갈들은 끝 없이 계속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과 인연 있으나, 신념이 부족하여 일념수행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니... 삼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윤회'가 정말 없느냐고 묻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윤회가 있다는 생각도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생각이며, 윤회가 없다는 생각 또한 누군가로 부터 들었던 생각이다. 천국이 있다는 생각도, 지옥이 있다는 생각도, 천국이 없다는 생각도, 지옥이 없다는 생각도... 모두 한 생각의 차이이며, 본래 없는 것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무한한 어리석음의 소치라는 뜻이다.      

진리란 상대적인 언어에 세뇌 당하여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상대적인 것들로써 본래 없던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인물들의 가르침의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언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며, 올바른 앎, 참된 이치...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대와 인류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