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중도 · 방편설 - 말변사

사자의 서 / 우주의 법칙(하늘의 도) / 무위법과 유위법 - 순수의식과 의식 / 신비의 문

일념법진원 2014. 8. 6. 08:32

'도교'라는 종교. 노자의 '도덕경'을 이해 할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창조된 종교이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은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사람'이기를 원하기 때문에 노자의 도에 대한 가르침이 종교화 된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오래 살기를 원하는 까닭은 삶이 즐거운 일이거나, 행복한 일이거나, 평화로운 삶이라서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왜냐하면 세상 어디를 둘러 보더라도 인간이 인간들끼리 다투지 않고 화목하게, 평화롭게... 마음 편안하게 사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마음이 무엇인지 조차 이해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마음이 평화롭다거나 마음이 편안하다면,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말에 대한 한자의 표현이 '어불성설'이라는 말이다. 

 

 

사실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 하는 까닭은 말을 배우던 어린아이시절부터 타인들로부터 그렇게 들었기 때문이다. 죽음을 경험했던 사람들로부터 들은 것이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앎이 내면 깊이... 잠재의식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자신도 모르는 마음 깊은 곳에  간직 되었기 때문이다. 

산자는 결코 죽음을 경험할 수 없다.

 

 

사실 성인들, 즉 '도를 깨달은 인물들'은 죽음에 대해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진정한 휴식이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말도 그러하며, 예수의 말도 그러하며, 석가모니의 말 또한 그러하며, 노자의 말 또한 그러하다. 

 

인간은 아득한 옛날부터 현 시대까지도 '신'이 있다고 믿는다. 

하늘에도 신이 있으며, 땅에도 신이 있으며, 물에도 신이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그 믿음은 스스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처럼 타인들로부터 들었던 말에 대해서 믿어버리게 된 것이다. 

 

어린아이시절부터 들었던 말, 말, 말들과 그리고 성장과정에서 들었던 말들 또는 삶에 힘겨워 할 무렵에 의존할 곳을 찾아 다니다가 또는 우연히... 남들에게 들어서 알게되는 종교들을 알게 되고, 다시 그 종교들의 뛰어난 언술을 믿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세뇌가 깊어지면... 광신자로 맹신자로 돌변하게 되는 것이다. 사상을 넘어 이념이라는 말에 세뇌 당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상'도 생각할 상자의 하나의 생각이며, 이념 또한 생각할 념자로써 하나의 생각이다. 지금 이 글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 하기 위해서는 이 '생각, 생각, 생각'이라는 낱말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사람들 누구나 자신의 앎에 대해서 죽는 날까지도 주장한다는 것이다. 서로가 옳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남들로부터... 어린아이시절부터 남들에게 들었던 말, 말, 말들에 대해서 자신의 앎인냥 착각 하기 때문이며, 그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의 모든 앎 또한 그렇다는 사실에 대해서 인지할 수 있다면 그대는 상근기 인물이며 현자이다.  

 

 

인간의 마음 또한 그러하다. 

스스로 깨달아서 아는 앎이 아닌 것이 마음이다. 

광신자나 맹신자로 전락하여 평생을 다른 종교들과의 투쟁을 목적으로 살거나 또는 '신의 뜻'이라는 세뇌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하여... 종교의 하수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 또한 자신의 앎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그렇게 세뇌 당한 탓이다. 

그리하여 행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만은.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가운데서, 끊임없는, 끝이 없는 다툼 속에서 행복이나 평화라는 말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왜냐하면 역사가 그러하듯이 종교간의 갈등은 결국 인간과 인간들간의 피를 흘려야만 하는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위 인간세상에는 한글로 통용되는 '도를 깨달은 자' 라는 말이 있다. 

도통한 사람, 도사, 도인... 등으로 표현 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가 깨달았다고 주장하거나 도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실적인 앎이 아니라, 어린아이시절부터 그렇게 들어서 아는 것들이며,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착각 속에서 헤매는 것이다. 무속인들이 신을 받았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은 허무맹랑한 주장들이 아닐 수 없다.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웠던 모든 앎은 올바른 앎이 아니다. 

인간들의 모든 지식이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웠던 것들이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세상에는 항상 논란과 갈등과 다툼만 일어나는 것이다. 남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앎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일때, 그때 비로소 다툼이 사라지는 것이며,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 노자와 장자, 석가모니, 예수... 등의 성인들이 소위 '깨달은 인물들' 즉 '도인' 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 같다. 사실 인간세상이 한시도 평화로울 수 없는 까닭은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워서 아는 앎들에 대해서 '내가 안다'는 그릇된 앎들을 서로가 주장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지성체들이 이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논란이나, 다툼 들... 인간들 끼리의 크나큰 갈등은 사라질 것이다. 두 권의 책과 이곳 카페에 노자와 장자, 그리고 석가모니와 예수,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 이르기 까지 자세히 설명하는 까닭은, 그들 또한 본래는 뭇 인간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으며,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다만 그들은 스스로. '왜 죽어야만 하는가' 라는 생각에 대해서 고뇌하다가 그 길, 진리의 길을 가게 된 것이며, 스스로 깨달아 알고 보니, 삶과 죽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알게 되었던 인물들이라는 뜻이다. 

 

 

만약에 그대가 진정한 지성인이라면... 최소한 그들이 '도를 깨달은 인물들'이며, 그들의 말이 시대와 조건 상황에 따라 표현이 다를 뿐, 공통된 말이며,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이 작은 나라에서만이라도 그들의 말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모든 사람들이 이해 할 수 있다면, 최소한 종교들 간의 갈등 만큼은 말끔히 사라지지 않겠는가말이다. 종교들의 갈등이 사라지는 것 만으로도 인간 세상은 좀 더 평화로울 것이다.

 

 

사실 그들의 말은 '죽은 자'의 말이다. 

몸은 행위 하되, 정신적으로 죽음을 경험 한 자의 말이다. 

 

'내가 있다, 내가 사람이다'는 생각이 그릇된 하나의 생각일 뿐, 사실적인 생각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사람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일념명상법으로써 일념을 깨닫고 '생각의 원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써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 만이 올바르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겠지만. 다만, 그들, 성인으로 여겨지는 그들의 말이 모두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들의 남겨진 말들에 대한 해석과 비유 설명을 통해서... 한글을 이해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 할 수 있는 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말에 대해서 '사자의 서'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사실 그들의 말은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는 말들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그들의 말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한 것들이거나 자신들의 명예욕이나, 재물욕을 채우기 위한 말은 단 한구절도 없다는 것이며, 오직 다른 모든 인간들에게 이익이 되게 하기 위한 말들이며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방법론이며 인생론이라는 것이다.  

 

 

'우주의 법칙'이라는 말과 '하늘의 뜻' 이라는 말에 대한 '노자'의 표현은 '하늘의 도' 라는 말로 표현된다. 석가모니의 말로써는 '무위법'이라는 말로 표현되며, 예수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노자는 '도덕경'을 통해서... 하늘(우주)보다 더 먼저 있었던 것이 '도' 이며, 그것에 대해서 '신비의 문'이라는 말로 표현 한다. 

 

인간. 즉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는 그들의 말에 대해서 아무리 연구하더라도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것 같다. 사실 인간이 그들의 말의 공통점, 즉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는 까닭은 (예수의 말과 같이) 인간은 누구나 '말을 배우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천지창조라는 말이 있으며, 우주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으며, 천지인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 말, 말, 말들에 속수무책으로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 말, 말, 말을 창조한 것 또한 인간이다. 

 

 

天. 地. 人 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도' 가 먼저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道'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 왜냐하면 언어가 상대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며, 상대적인 것들은 주체가 사라지므로써 대상 또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본무, 본래무일물'이라는 말로 표현했던 인물이 석가모니이며, '하나님의 창조'라고 했던 인물이 예수이다. 

 

 

인간은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언어, 말, 말, 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말, 말, 말에 구속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기억된 생각들에 대해서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념법(一念法) 명상으로써 '한 생각이 원리'를 이해 하므로써 납득할 수 있다.

 

'우주의 법칙'이라는 말이나, 신비의 문이라는 타인들로부터 전해져 오는 말, 말, 말에 대해서 상상하거나 집착하라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어야만 참다운 앎이며, 참된 이치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서 '광명의 빛, 지혜, 참된 이치, 전지전능한 자, 유일자, 천상천하유아독존' 등의 말이 창조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신, 창조자, 절대자' 라는 말 또한 그러하다. 

 

 

우주 천지 만물의 변화는 무위법이며, 인간세상의 모든 법칙에 대해서 '유위법'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사실 인도의 성자로 알려진 '라마나-마하리쉬'는 '창조는 없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왜냐하면 '창조'라는 말 또한 인간들의 말, 말, 말로써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이 있다는 생각은 '하늘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이 생각이다. 

땅이 있다는 생각 또한 '땅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이다. 

신이 있다는 생각 또한 '신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이다. 

태양이 있다는 생각 또한 '태양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이다. 

우주 자연, 천지만물들이 있다는 생각도 '그것들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들의 생각이다.

동물이 있다는 생각도 '동물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이다.

 

더 나아가 깨달음이 있다는 생각도 '깨달은 자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이며, 깨닫지 못했다는 생각 또한 인간의 생각이다. 

 

마음이 있다는 생각, 마음이 없다는 생각, 삶이 있다는 생각, 죽음이 있다는 생각, 행복이 있다는 생각, 불행이 있다는 생각, 생각, 생각, 생각들... 모두가 자신이 기억할 수 없던 어린아이시절부터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워서 아는 생각들이다. 그대 스스로 깨달아서 아는 생각들이 아니라... 타인들의 말, 말, 말에 세뇌 당하여 아는 그릇된 앎들이다. 

 

 

우주, 하늘, 땅 그리고 세상 모든 것들... 생각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며, 기억할 수 없으나, 어린아이시절에 최초로 일어난 '나라는 생각(육체가 나라는 생각)에 바탕을 둔 생각의 표현들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말변사'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만물 모든 것들과 '그대의 나' 마져도 '생각의 환상물질들'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이 예수의 가르침의 요지이다.

일념법 명상으로써 뇌(기억세포)에 저장된 모든 지식(생각들...)이 허공과 같이 텅 비어 졌을때를 이르는 말이다. 

선과 악의 분별심이 사라져야 한다는 뜻이며, 높고 험난하다는 업(嶪)이 사라져야만 한다는 뜻이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있는데... 사소한 버릇 하나도 고칠 수 없거나, 고치기를 거부하는 그 마음이 모두 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하루종일 기도하라'는 말이며, 행주좌와 어묵동정. 일체처 일체시... 일념에 몰입 하라는 뜻이다. 일념명상법으로써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깨닫고, 더 나아가 일념의 무념처에 이르러 '육체가 나다'라는 앎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육체가 나라는 생각일 뿐' 허구라는 사실에 대한 알아차림으로써 깨어나라는 뜻이다. 원리전도몽상에서 깨어나라는 뜻이다. 

 

 

세상에 근심걱정이 없는 사람은 없다. 

아니. 있을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내가 사람이라고 아는 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내면 깊이, 잠재의식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다'는 말이 있으나,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것이며,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으나, 행복한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인류에게 자유와 평화가 있을 수 있다면 오직 그 길 뿐이다. 

인간이 인간의 기원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자신이 자신 존재의 이유, 존재의 가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진리의 길이라고 하는 것이며, '도' 라는 이름으로 표현된 것이다. 

 

'생각의 원리, 생각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일념법'이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그대와 인류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에서...

일념명상수련. 강좌 신청 하는 곳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