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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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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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적정인' 이라는 말의 한자의 뜻을 보니... 개흙 열熱... 소반 반槃... 고요할 적寂... 고요할 정靜... 도장 인印... 이다. 앞편에서 설명된 '삼매'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고 이해 한다면,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이다.
중생들의 알음알이를 주장하려 하는 어리석음이 참으로 무한하며, 무모한 것 같다.
언젠가. '나는 없다' 라는 제목의 책을 본 적이 있는데... 한가지 의심스러운 점이 있었다.
도대체 '나는 없다' 라는 말, 즉 "무아' 라는 말이 어디서 유래된 말일까? 라는 의문이었다. 그래서 '무아' 라는 말은 올바른 표현이 아니며, '무아상無我想' 이라는 말이 옳은 표현이라고 설명 했다. 그런데 이제서야 그 '무아'라는 말의 출처가 '제법무아'라는 말에 대한 중생들의 오해에서 빚어진 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이 글 또한 하근기 중생이나 중근기 중생이라면 이해가 불가능 한 말이다. 상근기 인물들만이 지적으로나마 이해가 가능한 말이다. 어떤 가장 낮은 단계의 하근기 중생은... 불경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이곳의 글들에 대해서 '부처님'을 모독하는 글이라며 욕설을 퍼붓는 자도 있었다. 그런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숭배사상에 길들여진 중생들이라면... 보되 볼 수 없는 글로써 '우이독경'과 같기 때문에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어떤 중생의 책의 제목에 '나는 없다'는 말이 있었다. 그 내용 중에는 '무아'라는 말에 대한, 차마 웃을 수도 없는 기가막힌 말이 있었는데... '나는 없다. 자동차를 소유한 나는 없는 것이다' 라는 방식으로써 '내가 없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어떤 집단에서는 "여러분, 우리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술이나 마시자" '나는 본래 없는 것이다' 라는 방식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물론 수행자들과의 만남에서 들었던 말이며, 어처구니 없는 말들이며, 전혀 논리적일 수 없는 괴변이다.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인간들은 어찌하여 자신이 스스로 아는 앎이 아니면서 자기를 주장하는 것일까?
'무아' 인데, '내가 하나님이다' 고 주장하는 자들, '무아'인데, 내가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자들, '내가 부처님 말씀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 머리깎고 법복을 입은 광신자와 맹신자들... 만약에 그런 중생들이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대해서 단 한구절이라도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었다면.... 석가모니의 제자라고 주장할 수 없는 일이다. 예수를 우상으로 숭배할 수 없는 일이며, 그들을 우상숭배의 대상으로 여길 수 없다.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말을 하는 어떤 인간이 '나는 없다'고 한다면...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이치에 어긋난 표현이다. 석가모니가 말한 '제법무아'라는 말의 본 뜻에 대해서 이해가 불가능한 중생의 견해이다.
인간의 관념아라는 것이 그토록 무모한 것이다.
'제법무아'라는 문자를 보고서 '나는 없다'는 방식으로 주장하는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의 또 다른 발상(망상)이 '우주가 본래 없는 것' 이라는 말에 대해서 "무주"라고 이름 짓는 것과 같은 무지에서 비롯된 소견이며, 편견이며, 단견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립문자이며, 언어도단이며, 대도무문이 되어버린 것이다.
인간 관념으로써의 '진아' 라는 말을 '무아'의 반댓말로 여기거나, '자아'의 반댓말로 여길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나는 없다, 나는 참나다, 나는 깨달았다'는 방식으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사실 '무아'라는 낱말은 독립적으로 하나의 낱말로 표현되어서는 아니되는 말이다. '제법무아'라는 한구절로 표현될 때 올바른 표현이다. 왜냐하면 '모두 제諸' 자로서의 '제법무아'라는 말은... 인위법의 모든 법에는 '자아'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인위법'이라는 말은 인간세상을 총칭하는 말이며, 인간의 척도로써 지어진 법, 즉 인간의 관념으로써 보고 느끼는 세상의 법칙들 안에는 '나'가 없다는 말이다. 육체가 없다는 말이 아니며, 마음이 없다는 방식으로써의 "있다, 없다' 라고 단정짓는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한글로써의 '없다'는 말과 '아니다'라는 말의 차이이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글로 표현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없다'는 말과 '나는 나가 아니다' 라는 말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본래 우주가 없는 것이다' 라는 말에 대해서 '우주가 없다'는 방식의 '무주'라고 이름짓는 일들... 무한한 어리석음의 소치인 것과 같이... '제법무아'라는 말을 오해하여 '나는 없다'고 상상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대해서 사람이지만 소와 같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기 때문에 '우이독경'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것이다. 중생이라는 말 또한 소나 말과 같이 진실된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뜻의 다른 표현이며,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뜻하는 말이며, 예수의 '길잃은 어린 양'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본무, 본래무일물, 아무것도 없는 것의 완전함' 이라는 말이 있으나... 어차피 인간의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을써는 이해가 불가능한 말이다. 인간의 관념이란 말의 뜻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 말, 말들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들... 그것에 대해서 '이해'라는 말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는 이해가 아니다' 고 하는 것이며, 이해와 오해는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적으로나마 이해 해야 하는 것은. '나는 없다'가 아니라 '나는 나가 아니다, 무아는 무아가 아니다, 우주는 우주가 아니다, 진아는 진아가 아니다, 순수의식은 순수의식이 아니다, 불성은 불성이 아니다, 해탈은 해탈이 아니다, 성령은 성령이 아니다, 부처는 부처가 아니다' 라는 방식으로 이해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제법무아'라는 말과 같이 '존재하는 것'들 모든 것들이 '있는 것'이라고 알지만...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대상들이 있는 것이며, '나라는 생각'이 본래 있는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생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궁극에 이른다면... 그 생각 또한 언어일 뿐, 사실적이 아닌 것이다.
'나라는 생각'은 '육체가 나다'는 생각이다.
다만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는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육체가 나다'는 생각이 언제 어느때, 어떤 방식에 의해서 생겨났는지 기억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자'가 있다고 믿는 것이며, 하늘에서 내려왔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물, 피조물일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신선'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며, 신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며, 영혼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며, 귀신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며... 등 등의 온갖 망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상상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상상속에서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몽상이라고 하는 것이며, 망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참나, 진아, 부처, 불성, 영혼, 귀신, 성령, 혼령, 넋, 도사... 그런 말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라는 어떤 과일과 같이 구체적인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들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 말, 말들에 대한 상상력들을 주장하는 것들이 인간세상 인간들의 생각이지만, 그 생각은 구체적인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져 그럴 것이다는 방식으로 상상하는 것이다.
상상하는 것에 대해서 이해 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남들의 말, 말, 말을 듣고... 남들의 말을 듣고, 남들의 말을 듣고... 그 말들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들.... 그것들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대의 모든 주장들.
그렇지 아니한가?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까지도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사실 있다고 믿는다는 것은 '있다고 믿는 것' 아니라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대가 잠들기 전에, 깜깜한 밤에... 인간세상에 대해서 상상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은... 기억된, 기억세포에 저장된 생각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그대가 홀로 있지만... 생각 속에서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상상의 나래를 펴다가 어느 순간에 깊이 잠들면... '無, 空' 이다. 생각이 없다. 생각이 없다는 생각도 없다. 생각의 흐름이 끊어진 것이다.
그 상태에 대해서. 그대가 '무, 공'이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무, 공'이라는 말로써 설명할 수 있는 것이며, 그대가 잠에서 깨어난 다음에 '잠들어 있는 동안의 상태'에 대해서 '무, 공' 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깊이 잠든 동안의 상태' 에 대해서 표현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사실 어떤 말로써도 '깊이 잠든 상태'에 대해서 표현될 수 없다. 그대가 기억할 수 없는 시간동안이며, 그대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있다'는 말도 없으며, '없다'는 말도 없다. 그대가 없는 상태이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의 완전함'이며, 고요함이며, 평온함이지만... 그런 말 조차도 없는 상태이다.
그대의 자신도 모르는 생각, 생각 생각들... 끊임없이 윤회하던 생각들이 흐름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동안이다. 그런 상태에 대해서 '본무, 본래무일물' 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며, 제법무아 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삼법인이라는 말에 대해서 사실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석가모니의 말이 이미 왜곡되어 그 본질이 훼손된 채로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무식하고 어리석은 중생들의 알음알이에 의해서 그 길, 인간이 깨닫기 위한 길이 우상숭배사상에 의해서 이미 대도무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삼법인이라는 말에 그 길... 석가모니와 같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 이 세 구절이 삼법인이며, 머리깎은 중생들의 교리란다. 불교의 근본 교의 라는 말로 표현되는데, 교의 라는 낱말의 한자의 뜻은 '가르칠 교' 와 '뜻 의' 자이니. 가르침의 뜻이라는 말이며, 불교라는 종교의 뜻, 목적이라는 말(뜻)이다.
세 가지의 법이 있는데, 끝에 '도장 印' 자로써 도장을 찍은 것과 같이 약속한 것이니. 어기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불교라는 종교의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대한 허구성과 석가모니의 본래 가르침의 뜻을 올바르게 다시 전하기 위해서 '삼법인'의 깊은 의미에 대해... 다음 편에 자세히 설명하려 한다.
다만, 무아, 진아, 불성, 순수의식... 등의 말, 말, 말에 이끌려 다닌다면, 그대의 '나 아닌 나'를 볼 수 없다. 그렇다고 하여 '나 아닌 나'라는 말에 집착하라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본무' 라는 말의 본래의 뜻은 그대의 나 또는 우주만상만물 뿐만이 아니라, 언어 자체가 '본래 없던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 밖에서 찾거나, 말 속에서 찾거나, 세상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며, 오직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라는 방식의 '도가의 수행법'인 일념법으로써 그 길을 가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라고 했다.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라고 하니. 그러면 불경이라는 글자는 '소리와 형상'에 포함되지 않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앞서 '비아경'에 설명된 바와 같이 '없다'가 아니라 '아니다' 라고 아는 앎이 올바른 앎이다.
몸도 나가 아니다, 마음도 나가 아니다, 감정도 나가 아니다, 느낌도 나가 아니다... 라는 방식이다. 그런 것들이 생각속에서만 있는 것들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라는 생각, 내가 있다는 생각, 내가 사람이라는 생각, 내가 중생이라는 생각, 세상이 있다는 생각, 고통이라는 생각, 슬픔이라는 생각, 죽음이라는 생각, 삶이라는 생각, 천국이라는 생각, 지옥이라는 생각, 부처님이라는 생각, 하나님이라는 생각, 영혼이라는 생각, 생각, 생각들... 모두 허상이며, 상상의 세계이기 때문에 환상이며 몽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망상속에서 헤매다 보니 결국에는 어리석을 치 자의 치매에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들의 모든 질병들 또한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을 채우려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어리석음이 어리석음인줄 모르기 때문에 중생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대의 '나 아닌 나' 그것이 모든 것이며 또한 모든 것의 기원이다.
인연있는 자
그대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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