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중도 · 방편설 - 말변사

마음은 무엇인가 / 마음과 깨달음 그 오해와 진실 - 8) 무아와 자아 - 불교의 교의. 삼법인 그 오해와 진실

일념법진원 2014. 8. 28. 07:54

삼법인[]

[불교] 불교 가지 근본 교의().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인() 이른다.

 

 

불교라는 종교의 교의가 삼법인이라는 말로 기록되어 있다.

교의 라는 말은 말의 뜻 그대로 종교의 가르침의 뜻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각 종교들에는 '경전'이라는 책자가 있으며, 종교집단들은 그 경전에 의존한다. 자신들의 종교의 경전만이 사실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많은 종교들이 생겨나는 까닭은 서로가 자기의 사고방식이 기존 경전들보다 더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종교든, 이단이든, 사이비든... 모두가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집단들이며, 큰 줄기는 예수의 말과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바타을 두고 있으며, 여타 집단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우상으로 여기거나, 새로운 우상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인간들의 인생이라는 삶 또한 그와 같이 천태만상이지만... 여전히 해답이 없기는 매 한가지이다.

 

사실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그 하나는. 사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인간들 누구나 '내가 있다'고 주장하며, 내가 옳다고 주장하지만... '내가 있다'는 마음, '내가 있다'는 생각의 작용에 대해서만큼은 무지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이 있으되,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감히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 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에 의해서 '경전'이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 오해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이다.

 

'경전'이라는 말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 통념은 '경이롭다'거나 '매우 훌륭하다'거나 또는 '참된 말, 올바른 말, 침된 이치, 더 나아가 '진리' '진리의 말씀'이라고 단정짓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경전'이라는 낱말의 사실적인 뜻은 '지날 경' 자와 '전할 전' 자로써 '지난 이야기' 즉 전설이나, 또는 '옛날 이야기' 라는 뜻으로써 옛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뜻일 뿐, '가치 있는 것' 과 '가치 없는 것'이 있다면... 굳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치 있는 것이라면... 다툼이 없는 것이라야 하기 때문이다. 옳지 않은 것에 대해서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가치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경전'이라는 말. 수많은 경전들. 제각기 자신들이 믿는 경전이라는 것들이 통일되지 않은 것들이며,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보다는 '가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그대의 삶에 더 이익이 따를 수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종교들이 난무하여.... 결국 역사와 같이 서로가 피를 흘리는 전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어로써 사실을 규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원칙이 있는데, '육하원칙' 이라는 말이다. 사실 육하원칙이라는 말이 창조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언어의 기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원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므로... 원칙을 정한 것이며, 그 원칙에 따른 설명으로써 그나마 어떤 말이거나 이해에 근접할 수 있다는 발상에 의해서 창조된 말이 육하원칙이라는 인간들의 법칙이다. 그러니 모든 말에는 그 원칙에 어긋남이 없어야만 올바른 앎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사실. 각종 수많은 경전이라는 책자들의 '말씀'이라는 말들에는 원칙이 없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라는 원칙에 입각한 말이 아닌 것들이 소위 '경전'이라는 책자들이다. '성경'에 침을 뱉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사람들, 내가 죽더라도 불경에 침을 뱉지는 않겠다'는 광신자나 맹신자들. 그들의 모든 말들은 그 기본적인 육하원칙 조차도 무시된 무지의 소산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 이라는 말, 말, 말...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말, 말, 말들... 모두가 하나같이 육하원칙 같은 것들은 완전하게 무시된채 주장들만 무성하다. 그러니 어찌 무한한 어리석음이라고 단정짓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진리' '도' 라는 말과 함께 사용되는 '참된 이치, 올바른 앎'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말에서의 '유일한 선은 앎이며, 유일한 악은 지식'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선으로 표현되는 앎'이라는 말에는 과연 '육하원칙'에 맞는 말일까에 대해서 생각(사유, 사고)해 보므로써 비로소 올바른 앎에는 어떤 근가가 있는지 자신의 지식으로써, 지적으로나마 이해가 가능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한가?  

 

이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를 돕기 위한 방편설이 이곳의 글들과 지금 쓰여지는 글의 주요 요지이며, 둘째는 '허무, 공, 무' 본무' 등의 말에 대한 이해와 오해에 대해서이다. 

 

후자부터 설명하자면. 

간혹 수행자들이나, 또는 옛 수행자들 또는 지식으로써 언어의 상대성에 대한 이해에 근접했던 인물들, 가령 '락강'이나 '미셀-푸코' 라는... 세상에서 가장 지식이 뛰어났다던 사람들의 자살행위들은 욕망을 벗어난 올바른 앎이 아니라, 언어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 아니라 가치 없는 삶, 검증되지 못한 삶을 산 것이다. 지식으로써는 지식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며, 육하원칙에 따른 앎이 아니라, 일종의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행위에 불과한 것들이다. 

 

 

수도자 또는 수행자 또는 도를 공부하던 사람들이 일상에서는 '욕망을 추구'하다가, '도'를 구하기 위한 구도 과정에서 '허무하다'는 사고의 반전에 의해서 자살하는 경우 또한 지식을 추구하다가 자살하는 경우와 매우 유사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앎 또한 '육하원칙'에 따른 앎이 아니라, 경전들의 '말씀'이라는 말에 집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가령 인간세상의 모든 앎에 대해서 '지식'이라는 말로 표현 한다면, 지식의 '최고지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궁극에 이름' 이라는 말이다. 또한 '궁극에 이름' 이라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들이 '불성, 성령, 유일자, 절대자, 천상천하유아독존, 부처, 진아, 참나' 등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리고 경전 등에 표현되는 최고의 지식에 대한 통칭이 '도' 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며, 이에 대한 예수의 말이라는 성경에는 (비록 다른 말들은 우상숭배사상으로 왜곡되었으나) '세상에서는 오직 나의 말이 진리이다, 라는 말과 함께 '나의 말은 길(道)이며, 진리며, 생명이다'는 말이다. 

 

 

요약하자면. 

세상의 모든 경전들은 '육하원칙'은 무시된 채, 경전의 '말씀' 이라는 말, 말, 말에 집착하는 앎이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말이며, '도, 진리'라는 말로 표현되는 올바른 앎에는 명백한 근거가 있는 말이며, 육하원칙에 어긋날 수 없다는 말이다. 그 길 또한 육하원칙에 어긋날 수 없는 진실된 말이라는 뜻이다.

 

어리석은 자들이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본래무일물'이라는 말, 즉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착각으로써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이다. '진리갈급'이라는 이름의 수행자로부터 들었던 말 중에 그런 말이 있었는데, 그는 '도가의 화원'의 강의와 더불어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부연 설명들, 방편설들로써 그 이치에 대한 육하원칙에 따른 설명으로써 지적으로나마 모든 의구심이 풀렸단다. 

 

그 중 하나가... 누구나 알고 싶은 내용인데. 

'본무, 즉 아무것도 없는 것'이 결론이라면, 허무한 것 아닙니까?' 라는 의구심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허무주의에 빠져든 것이다. 올바른 앎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관념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는 말에 대해서 누구나 안다고 생각(착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석가모니로부터 전해지는 '본무' 라는 말은 상대적인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주체와 대상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무한 것이 아니라, 본래 없는 것에 대한 앎에 바탕을 둔 앎이 올바른 앎이며, 참다운 앎이며, 진리'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며, 검증된 삶을 사는 것이라는 설명에 대해서 알아들으므로써 비로소 지적으로나마 '진리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허무한 것이라고 주절저리는 앎이 아니라, 허무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 비로소... 심해탈이라는 말과 같이, 욕망에서 벗어나,  '절대자, 유일자,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앎으로써. 비로소 무위자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삶과 죽음이, 고통과 불행이, 슬픔과 환상이... 한생각의 차이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으로써 '날이면 날마다 새로운 날들, 올바르게 좋은 날들'로써 진정한 자유와 평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허무'라고 생각하는 것과 '기쁨이 충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생각의 차이이다.

장자의 '소요유' 라는 말과 같은 뜻이며, 제물론이라는 말 또한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다.

 

'그것'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리 때문에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도' 라고 표현하거나 또는 예수가 말했던 '성령'이라는 말로 표현 하거나, 석가모니가 말했던 '불타, 부처'라고 표현한다면, 그것은 여섯가지의 원칙에 의거하여 설명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원리도 없으며, 원칙도 없이... 그져 지나간 말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 부처님의 말씀, 교주의 말씀'이 옳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지식이지만, 지식이 아니라 무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모든 앎에 대해서 밝음이 아닌 '어두움'이라는 뜻으로써 '무명'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며, 가치 없는 것들이며,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자. 

육하원칙이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이다. 

 

'도'에 대해서 예수는 '너희가 어린아이 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 라는 방식으로써 너희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 고 했다. 

 

그리고 그 순수의식은 갓태어난 일주일 되는 아이라고 했단다. 그리고 석가모니의 말에는 '무명, 행, 식, 명색... 생사우비고뇌 등'의 12연기법이라는 말로 표현된 내용에서...  '무명, 행, 식'은 어린아이기 말을 배워서 말을 인식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는 책과 카페에도 자세히 설명되었으니, 참고하면 될 일이다.

 

부처의 연기법의 '무명, 행, 식'은, 예수의 '선악과를 따 먹어서 원죄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써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는 과정에서 선과 악의 분별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말을 배우지 않을 수 없지만, 말을 배우지 않았다면... 선가 악의 분별이 생겨날 수 없다.

 

 "소위 언술이 뛰어나서 예수의 말을 옮긴자" 들의 주장은 이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선악과'라는 과실이 사실적인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 말, 말, 말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린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는 과정이 곧 '선악과를 먹이는 과정'이며, 선과 악의 분별이 시작되는 과정이며, 나와 너, 아빠와 엄마, 하늘과 땅... 등의 상대적인 분별을 가르치믐 것이다. 그리고 그 가르침에 의해서 말을 인식함에 대해서 '마음'이라고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부패하고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한 것이다. 선과 악함의 분별 자체가 원죄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는 자들이 구원이라는 말을 창조한 것이며, 믿어야 천국이라고 주절거리는 것이다.

 

믿어야 하는 것은 예수와 하나님이 아니라, 부처님이나, 다른 신들이 아니라... 그들이 가르치는 방법을 믿어야 한다는 뜻이다. 깨닫기 위한 방법, 깨어나기 위한 방법, 진리의 길을 가는 방법... 등이다.

 

원죄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로부터 구원을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들과 그 분별에 대해서 '전생의 업'이라고 주장하면서 부처님의 가피가 있어야  깨달음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들의 억지주장들은 근거가 없는 낭설들에 대해서 주장하는 것이며, 원리와 원칙도 없는 '말씀'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육하원칙'에 따라서 그 길을 가라고 설명했던 인물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어린아이시절의 상태를 사례로 들면서 그 길에 대해서 가장 분명하게 설명했던 인물이 오직 예수와 석가모니의 경전에 기록된 말이다.

 

 

육하원칙의 마지막 귀절이 '왜?' 이다. 

왜, 도를 구하는 것이며, 왜 부처가 되어야 하는 것이며, 왜 성령이 되어야 하는 것이며, 왜 깨달아야 하는 것이냐는 말에 대한 답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그렇지 않으면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말과 같은 말로써 '가치 있는 삶, 검증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삶, 검증된 삶이라는 말은... 삶과 죽음이 없는 이치를 깨달아서 두려움 없이 무위자연의 자유를 누린다는 말과 같이 하루하루를 평온하게 살라는 뜻이며, 죽음 앞에서도 '나는 기쁘다'라고 할 수 있는 삶을 이르는 말이다. 올바른 앎으로써 다툼이 없는 삶을 이르는 말이며, 일일시호일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까지는. 그대가 항상... 깨어 있는 동안 내내, 하루종일, 일체처 일체시에... 라는 말이다.

 

 

무엇을. 어떻게... 라는 말은. 

'내가 나를 모르던' 어린아이시절에는 선과 악의 분별심이 없었는데, 지금 그런 분별심으로부터 생겨난 지식이라는 앎들에 바탕을 둔 삶들 모두가 그렇듯이. 삶이 고통이며,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모든 고통들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 하므로써... '나는 나가 아니다, 나는 나라는 생각이다, 생각은 본래 없는 것이다' 라는 방식으로의 '일념법 교육'에 바탕을 두고 그 길, 진리의 길을 가라는 뜻이다.

 

 

'원죄' 와 '높고 험난한 업'이라는 말이 생겨난 까닭은, 인간의 관념, 즉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는 '어린아이시절' 즉 '말을 배우던 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말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며, 육체가 나다, 마음이 나다, 생각이 나다' 라는 앎이 올바른 앎이 아니라, 착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를 넘어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 비로소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며, 그 경지에 이름에 대해서 '성령, 불성, 부처, 유일자' 등의 말, 말, 말들로써 표현된 것이다.

 

 

불교의 교의.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 또한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일 뿐, 진리의 길을 가기 위한 방편설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하라는 뜻에서 요악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 이라는 말 또한 또 다른 비유의 말, 말, 말이다.

모든 것들은 형상이 없는 것이라는 제행무상이라는 말은 '생각으로만 있는 것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며, 제법무아라는 말 또한 인간세상의 모든 법이나 형상들에는 '나'가 없다는 말이며, 그런 사실을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 항상 고요하고 고요하여 변함이 없는 고요함(심해탈)으로서 영원하다는 뜻이며, 그것이 곧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의 기원이라는 뜻이다.

 

그것이 그대의 순수의식이며, 본래성품이라는 뜻이며, 그대의 나는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들로써 생각으로 지어진 환상, 환영, 몽상이라는 뜻이다.

'본무' 라는 말... 언

 

일념법이 진리이다.

 

백천만겁 난조우의 인연있는자

그대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