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나 영혼, 성령이나 불성, 그리고 '귀신 신'자와 '지날 경'자로써의 '신경'이라는 말, 말, 말들... 사실.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린아이들에게나 들려 줄 수 있는 동화속의 옛 이야기와 같은 유치한 말들이다.
물론 인간의 통념이나 관념 등의 지식으로써는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말들이기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을 수밖에 없는 말이며, 논란은 끝이 없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과학도 이를 증명할 수 없으며, 신학이나 종교학 등의 어떤 학문으로써도 해답을 구할 수 없는 말이다. 사실 지식의 허구이며, 식자우환의 대표적인 사례이며, 인간세상이 평화로울 수 없는 원인이다.
모든 종교들이 서로가 주장하는 진리라는 것 또한 이런 신이 있다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의학 역시 '신경계'라는 말로써 '귀신'이 있다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다 보니 모든 종교들 하는 짓들이.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는데. 결론은 '사후의 세계'에 대한 망상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죽음을 경험할 수 없는 자들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원인이다.
하지만, 일념을 깨달은 인물들에게는 그런 말들이 그져 말, 말, 말들일 뿐, 사실적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말들 따위에 흔들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혼령이라는 말, 넋이라는 말, 말, 말들과 귀신이라는 말은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며, 우주를 여행하는 자들이나, 의학을 전공하는 자들이나, 신학이나 과학자들 조차도 감히 단정지어 말 할 수 없는 것들이 사후의 세계이며, 신의 세계이다.
올바른 앎이란. 그런 말들이 말, 말, 말로 이루어진 것들일 뿐,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을 이르는 말이다.
천국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과 지옥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 그리고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자들 조차도 올바른 앎이 겨자씨만큼도 없기 때무에 주장만 무성할 뿐, 해답을 구할 수 없는 것이다. 아득한 예날부터 지금 이순간까지도 주장들만 무성하다.
자신의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
의학에서는 아직도 '신경'이라는 말에 대해서 사실적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에게는 그런 말들에 속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경이라는 말 또한 '신경이라는 생각'일 뿐, 생각의 환상물질이기는 매 한가지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깨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다.
올바른 앎이란 그런 것이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감히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 할 수 없는 말들에 대해서도 분명히 아는 앎으로써 인간들이 지식 따위로써 주장하는 어떤 말에 대해서도 흔들리지 않고 빙긋이 웃어버릴 수 있는 앎이다. 인간들이 모든 앎이 추상적인 것들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인간이 인간의 기원을 모르듯이, 인간의 지식 또한 지식의 근원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곳의 글들로써도 지적으로나마 이해는 가능할 수 있다.
수차례 계속 반복해서 읽다보면, 익숙해지기 때문이며... 올바른 이해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져 주장이 아닐, 논리적인 말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언어의 기원에 바탕을 둔 말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식에 바탕을 둔 이해와 일념을 깨달음으로써의 이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하나의 사례를 들자면. 불교라는 종교를 비롯하여 각종 다른 종교들에 다니다가 마음수련이라는 곳에 다녔던 육십대 여인의 경우에. 마음수련이라는 곳에서 지옥이 있다는 세뇌와 함께 윤회라는 말을 사실적으로 믿게 되었는데. 일념을 깨달은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에는 '아하, 윤회가 생각의 윤회구나' 라고 이해 한다고 했다가도 다시 옛 마음수련이라는 곳에 묶여있는 사람들의 말을 듣다보면, 다시 윤회가 있으며, 지옥이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의심은 끝이 없는데, 지식으로써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을 들으면 이 말이 옳은 것 같고, 저 말을 들으면 저말이 옳은 것 같은데, '도'를 이해 하는 사람들 즉 일념을 깨달은 사람들에게는 웃어버릴 수밖에 없는 일들이다. 하근기들이 '도'의 언어를 듣게되면 박장대소 하는데, 일념을 깨달은 인물들은 그런 말들을 듣게되면... 빙긋이 웃어버린다. 근거 없는 말재간들에 불과한 말들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서로가 옳다는 모든 주장들이 앵무새가 떠드는 소리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성장하는 과정에서 타인들로부터 들었던 말들에 대해서 믿을 수밖에 없다. 조상신이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으며, 귀신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제사를 지내야 하며, 성묘를 가야하며, 죽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간다고 믿을 수밖에 없으니, 믿는 것도 아니며, 믿지 않는 것도 아닌채... 그져 다른 사람들의 말, 말, 말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줏대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런 주관도 없는 것들이 일념을 깨닫지 못한 인간동물들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대는 다른 사람인가?
그대는 자신의 나에 대해서 무엇을 아는 사람인가?
그대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이리 저리 이끌려 다니는 사람은 아닌가?
사실 인간들의 사고방식들이 모두 그러하다.
테레비젼에서 '무엇이 좋다'고 하면... 우루루 몰려다니다가, 또 다시 아니라고 하면, 까맣게 잊는다. tv 가 진리인가?
대체 진리. 진실된 앎이란 어떤 앎인가?
그대는 그런 사람은 아닌가?
있다는 말과 없다는 말, 좋은 것이라는 말과 나쁜 것이라는 말, 큰것이라는 말과 작은 것이라는 말, 삶과 죽음이라는 말, 천국과 지옥이라는 말, 말, 말들...
'더 좋은 세상이 있다는 말은 지금은 좋은 세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게, 그런 사고방식으로써 남들의 말, 말, 말에 이끌려 다니다 보니.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결국 또 다른 말들에 이끌려 다니다가 죽어 사리지는 것에 대해서 자신의 삶, 내인생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이 인간들의 무한한 어리석음이다.
타인들의 그런 주장들, 남들의 말, 말, 말들... 중생들의 삶이 그러하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말, 말, 말들에 속절없이 이끌려 다니다가 죽어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자신의 삶, 인생'이라고 단정 짓는다는 것이다.
타인들의 말에 이끌려다니는 삶이 어찌 자신의 삶이란 말인가?
타인들의 말에 이끌려 다니는 삶이라면, 타인들의 삶을 대신 사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타인들을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니다.
겨우 남들이 주장하는 말, 말, 말들에 이리저리 속수무책으로 이끌려 다니다가 죽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인생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찌 그 인생이 그대의 인생이란 말인가?
남들의 주장들... 근거도 없는 말, 말, 말들에 이끌려 다니는 삶이라면, 그것은 그대 자신의 스스로의 삶이 아니라, 남들의 삶을 흉내내는 것이며, 남들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대에게는 어떤 주관이 있는가?
그 주관은 누구로부터 듣고 보고 배운 것인가?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운 것들에 대해서 자기의 앎이라고 주장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아니한가?
남들이 그러하니. 나도 그렇다고 주장할 셈인가?
남들이 두려워 하니. 나도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남들이 시장엘 가니 나도 가야 하는 것인가?
남들 모두가 가니. 나는 가지 않아야 하는 것인가?
이것도 아니며, 저것도 아니면서.... 이리 저리 이끌려 다니는. 그대는 누구인가?
사실 인간들의 천태만상으로 드러나는 모든 삶들이 그와 같다.
자신의 삶이라고 주장하지만, 자세히 보면, 자신의 삶이 아니라... 타인들의 말, 말, 말들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나 뜻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또한 다른 사람들의 다른 말에 이끌려 다니는 것일 뿐, 자신의 자신만의 생각도 없는 것이며, 자신의 의지도 없는 것이며, 자신의 마음 조차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말들을 조합하여 자기라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사람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인간들의 삶이 이토록 무모하다.
인간들의 인생이라는 것이 이토록 무지몽매한 것들이다.
이토록 무재몽매할 수밖에 없는 이유 조차 모르는채, 자신의 삶이 아니라 남들의 말에 이끌려 다니는 남들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죽음 앞에서 여한을 남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말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렇기 때문에 지성체들의 모든 앎에 대해서 올바른 앎이 겨자시 만큼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그대의 모든 앎들, 그대가 주장하는 지식들... 과연 그대 스스로 깨달아서 아는 앎이 단 하나라도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그렇듯이. 자신의 이름 조차도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것이며, 귀신이라는 말을 비롯하여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모든 말들이 자신의 앎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운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말이다. 만약에 그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인물이라면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일 것이다.
그들만이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며, 검증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올바른 앎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변함이 없는 앎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앎을 이르는 말이다. 예를 든다면, 윤회가 있다거나 없다는 말들, 귀신이 있다거나 없다는 말들 등의 인간들의 모든 주장들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를 분명히 아는 앎이다. 이는 타인들의 말에 흔들림이 없는 앎으로써의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올바른 앎이다. 사실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일이다.
스스로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유일한 길이며, 방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별은 별이 아니다'는 말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라는 말이라고 이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올바른 앎이며 진실된 앎이다. 더 나아가 '나는 나가 아니다'는 앎에 다다름에 대해서 소위 '심해탈' '깨달음'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며, 명색이 '부처'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인간세상의 모든 논리는 허구적인 것들이다.
왜나하면 논리라는 말의 뜻 조차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지식이기 때문이다.
있다, 없다.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다른 것이다. 좋은 것이 있다, 없다는 모든 말, 말, 말들은 어떤 근거에 바탕을 둔 말이 아니라 모두 추상적인 말들이다. 그리고 그 추상적인 말들의 바탕에는 '내가 있다'는 말이며 '내가 있다'는 말은 '내가 없다'는 말과 상대적인 말이다. 그리고 상대적인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주체와 대상간의 문제이며, 주체가 사라지거나 대상이 사라지면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는 말도 없는 것이다. 언어 자체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지식은 절대로 논리적일 수 없다.
지식은 지식의 근원을 모르기 때문이며, 지식의 끝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지식에 대해서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렇지 않다는 근거가 없다.
언어의 기원을 모르는 것이 지식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 아니라면 주장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는 방식의 석가모니의 말이 그런 뜻이며,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또한 그런 뜻이다. '언술이 뛰어나서 나의 말을 옮기는 자가 그리스도의 적이다'는 예수의 말 또한 그런 뜻이다.
'中道' 라는 말이 있다.
'중도'라고 하니. 중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선함과 악함의 중간이라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식의 한계이다.
신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과 그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중간에 서 있는것이 중도가 아니다.
'사후의 세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자와 없다고 주장하는 자의 중간에 대해서 '중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책과 이곳의 모든 글들의 요지는 '본래 없는 것' 이라는 말에 대한 비유법들이다.
물론 이런 글들을 끊임없이 읽음으로써 그 이치에 대한 이해는 가능한 일이며, 더 나아가 글들에 익숙해짐으로써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으로써의 이해가 깊어질 수는 있다. 어린아이가 수천수만번 듣고 배우면서 말을 익혀 나가듯이... 그렇게 이해가 깊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언술이 뛰어난 자들의 말재간에 속아 넘어갈 수 있는 확률은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사실 광신자나 맹신자들은 모두가 속고 속이는 줄도 모르는체 속고 속이는 집단들이다. 물론 그들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인간들의 모든 앎들이 그러하다.
'中道'란 '올바른 앎'을 이르는 말이다.
'올바른 앎'이라는 말에 대한 가장 적절한 비유가 있다면 '너 자신을 알라'던 '소트라테스'의 '유일한 선은 앎이며, 유일한 악은 지식'이라는 말이다.
사실 이런 말들...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에게는 통념이며, 상식이며, 가장 보편적인 말이며, 당연한 앎이다.
'중도'. '올바른 앎'이란.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생각의 원리를 이해 하면서 내면으로부터 드러나는 순수한 앎을 이르는 말이다.
'별은 별이 아니다'라는 말에 대해서 사실적으로 이해 하는 앎이다.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는 말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다.
모든 언어가 상대적인 것들이며, 명색으로써만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에 대해서 '중도' 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며, 올바른 앎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란.
몸에 좋은 음식이 있다는 말이나, 보양식이 있다는 말이나, 보약이 있다는 말, 말, 말들 모두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일 뿐만이 아니라, 건강을 해치는 독약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다.
모든 질병의 원인과 치유 원리에 대한 설명과 같은 맥락이며, 유기체의 특성에 대한 설명과 같다.
건강을 위한 몸에 좋다는 한약재를 비롯하여 모든 약물과 모든 보약들 또한 사실적인 근거가 있는 말이 아니라, 근거 없는 낭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다.
귀신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영혼이 있다고나 없다거나. 신경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천국이나 지옥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등 등의 모든 말들이 사실적인 것들이 아니라 하구적인 것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다.
그런 앎.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에 대해서 상대적인 언어를 벗어난 '올바른 앎'이라고 하는 것이며, 그러한 '올바른 앎'을 실천함에 대해서 '중도'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세상의 모든 앎들.
이상, 사상, 이념, 감정, 느낌들... 모두 사념이며, 망념이며, 망상이며, 몽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삶에 대해서 무지몽매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불치병, 난치병등의 질병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며, 결국에는 치매에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상, 인상'.
'내가 있다, 내가 사람이다'는 말. 그 말 자체가 올바른 앎에 바탕을 둔 말이 아니라, 상대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인 말에 바탕을 둔 말들이 인간의 지식이기 때문에 허구적인 것들이라고 하는 것이며, 상대적인 것을 초월한 앎에 대해서 올바른 앎이라고 하는 것이다.
'진리'라는 말로 표현되는...
그대가 아는 모든 앎이 사실적인 것들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며,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진정한 앎, 올바른 앎, 진리 그리고 '中道'란.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깨달아 아는 앎을 이르는 말이다.
그대와 인류에게 자유와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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