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중도 · 방편설 - 말변사

사념처 수행과 사념 그리고 일념법 / 중생의 견해와 붓다의 견해 - 우이독경이란?

일념법진원 2014. 9. 19. 06:20

'사념' 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에 보니. 두 가지의 뜻으로 해석된다.

그 하나가. -간사할 사- 와 '생각할 념' 자로써의 사념이며, 둘이 '생각할 사와 생각할 념' 자로써의 사념이다.

 

사념(邪念)【명사】 사특(邪慝)한 생각. 사사(邪思).
¶ ∼을 품다/ ∼을 떨쳐 버리다.
 
사념(思念)【명사】【~하다|타동사】 사려(思慮).
¶ ∼에 잠기다.

 

 

인간은 지성체다.

지성체란 언어(말)의 뜻을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추상적으로 상상하여 그것들 주장하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의 모든 말들은 그런 중생들에게는 우이독경이다. 만약에 일념을 깨치지 못하여 일념이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다면, 누구나 중생이며, 우이독경이다. 그런데 더욱 더 아이러니한 것은 중생들은 스스로 중생이라고 알면서도 자신들이 '우이독경'이라는 말로 설명되는 '소' 와 다르지 않은 인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것 같다.

 

소나 말 등의 축생들과 같이 붓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인간들에게 중생이라고 한 것이며, 인간들에게는 붓다의 말이 우이독경이라고 한 것이다.

 

 

'사념처경, 대념처경'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모든 인간들이 사실 중생이며, 그 중생들에게 '우이독경'이라고 한 것이다. 인간의 관점, 지식 따위로써는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 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무한한 어리석음은 석가모니가 사라진지 수천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부처'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며, 더 큰 어리석음은 '부처'를 이루기 위해서 수행을 하는 것이다' 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더 큰 어리석음이 있다면, 돌덩어리를 우상으로 숭배한다는 것이다.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다.

'명색이 부처' 다. 

 

석가모니는. 석가모니의 몸은. 그것은 형상일 뿐, 그것을 부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뜻의 다른 표현이 '본무' 이며, 이 또한 인간관념으로써는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우이독경이라고 한 것이다.

 

그대가 깊이 잠들어 있는 동안... 그 상태, 생각의 휴식 상태에 대해서 '본래무일물'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으나, 그 또한 기억할 수 없는 생각이다. 생각의 윤회가 끊어진 상태에 대해서 '부처' 라는 말로 표현된 것이다. 그곳으로 가는 길, 방법이 일념법이다.

 

 

수행자, 수도자 라는 말들 이미 어긋난 표현이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서 무엇을 얻거나, 도를 구하는 일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찾기 위한 법, 방법이기 때문이다. 

 

'부처'를 보기 위해서 도를 닦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실체를 깨닫기 위해서 생각을 관찰하는 것이다.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자신의 행위를 관찰하는 것이다. 말재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언어는 시작도 없는 것이며, 끝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의 기원에는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지식. 지성체의 어리석음 중에서 가장 큰 어리석음은 지식의 시작도 가늠할 수 없으며, 지식의 끝 조차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지식 따위로써 '수행론'을 주장하는 자들.... 모두 우이독경이다. 소가 떠드는 소리와 같다. 앵무새들과 다르지 않은 것들이다.

 

금강경에는 '아상 인상 수자상 중생상이면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라는 말이 있다. 수행이라는 말, 말, 말... 등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이며, 세상 어느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말라는 말이다. 하물며 석가모니 시대의 유물인 그의 왜곡된 말, 말, 말들에 묶여 있으니. 어찌 무한한 어리석음이라고 아니할 수 있겠는가? 

 

 

최소한 지식이 있는 지성체라면. 최소한 지식이 왜. -왜 그 끝이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 만큼이해라도 할 수 있어야만 하지만... 이런 말들 또한 우이독경이다. 지식은 지식의 근원도 모르며, 그 끝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식... 쓸모 있는 것이겠는가?

무용지용일까?

무용지물일까?

 

이런 말들을 이해 하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는 지식이라면, 무용지용이다. 하지만 이런 말의 뜻 조차 이해 하려 들지 않는다면... 지식은 무용지물이다.

 

 

석가모니의 사념처경이나, 사념처경 등의 모든 경에 대해서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모든 인간들, 중생들의 우이독경은 '뱀 사' 자거나 또는 '간사할 사' 자로써의 사념이다. 중생들의 수행과 관련된 모든 주장들이 '간사함'에서 비롯된 망상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사실 그들, 명색이 부처들의 진실된 말에 대해서는 단 한구절도 이해 할 수 없는 자들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이독경이라고 한 것이다. 

 

사실 세상에서 가장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석가모니의 수행법을 주장하는 자들이며,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석가모니를 우상으로 숭배하는 자들이며, 광신자, 맹신자들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석가모니의 뜻도 아니며, 석가모니의 가르침도 아니기 때문이다.

 

 

책과 카페에 '일념법'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여기서는 간략하게 요약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법, 즉 석가모니의 말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방법들은 삿된 길이다. 왜냐하면 석가모니의 말이 아니라, 우이독경일 수밖에 없는 중생들에 의해서 우상숭배사상으로 왜곡된 글이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생각에 대한 생각'이기 때문에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이해가 불가능한 말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식은 지식이 아니라 무식이며, 무지이며, 무명이다. 

왜냐하면 지식이라는 것들은 정작 지식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자기 주장만을 일삼기 때문이며, 그 주장들 모두가 근거가 없는 낭설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대의 '내가 있다' 는 말도 낭설이며, 인간들의 '내가 사람이다'는 말 또한 근거 없는 주장이다. 

 

 

인간은 누구나 '내가 사람이다'고 주장함을 넘어서 '내가 안다'고.. 더 나아가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자신의 내가 '왜 사람인지' 조차 이해 할 수 없다. 

 

인간의 지식은 육하원칙이라는 말을 창조해 냈다.

위대한? 발명이다.

 

그렇다면 육하원칙에 따라서 그대가 '나는 왜 다른 것이 아니라 꼭 '사람인가'에 대해서 규명해 보라는 말이다.

 

육하원칙이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왜? 라는 원칙이며, 그 원칙에 어긋남이 없는 앎만이 올바른 앎이라는 말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렇지 아니한가? 

그렇지 아니한가?  

 

 

그대의 '내가 사람이다' 는 주장은 위의 육하원칙으로 볼때, 과연 올바른 앎인가? 삿된 견해인가?

사실 인간들의 모든 견해에 대해서 삿된 견해라고 말하는 까닭은, 인간들 누구나 하나같이 모두... 오직 남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소위 잘난체 하기 위해서, 간신배들과 다르지 않는 말재간을 부린다는 것이다. 언어의 기원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지식이라고 주장하는 것들... 지식의 끝도 모르면서 지식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들... 그것들이 소위 지식이니, 선지식이니... 하며, 인간의 말을 흉내내며 제잘대는 앵무새와 다르지 않은 것들이다.

 

 

만약에 위의 육하원칙에 따라서, 자신의 '내가 사람이다'는 앎(말, 지식, 뜻, 마음)이 올바른 앎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그나마 이해 하려는 자가 있다면, 그는 상근이이다. 하지만 이런 말에 대해서 이해 조차 할 수 없거나 웃어버리는 자라면... 하근기이며, 우이독경이라는 말에서의 소 보다더 더 낮은 단계의 하근기 중생이다.

 

 

 

그대의 '아상我想' 과 '인상人想'...

그대의 '내가 있다' 는 생각' 과 '내가 사람이라는 생각'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생겨난 것인가?

그대가 스스로 '내가 사람이다'고 안 것도 아니며, '내가 있다'고 안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내가 사람이다'고 주장해서는 아니된다.

 

그대의 '내가 실존'이다는 주장 또한 그릇된 앎이다.

그대의 '내가 여자다'는 주장 또한 올바른 앎이 아니다.

그대의 '내가 남자다'는 주장 또한 그릇된 앎이다.

 

육하원칙에 따르더라도 근거가 없는 앎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렇지 아니한가?

 

 

위의 말들...

명색이 붓다의 견해외 중생의 견해의 차이이다.

     

 

위의 간략한 설명들에 대해서.

 

아!!! 정말 그렇구나.

 

'내가 있다'는 말(앎)이나 또는 '내가 사람이다' 는 말(앎)이라는 지식이.

 

'자아' 즉 '스스로 자' 자와 '나 아' 자로써의... '내가 스스로 나' 라고 알아차려서 알게 된 앎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려고 노력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근기'라는 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듣되 들은 바 없거나, 이해 조차 불가능 하여 크게 웃어버리는 자는 역시 우이독경이라는 말과 같은 하근기 중생이며, 소보다 더 낮은 단계의 중생이다. 

 

사실은 인간들 모두가 이와 같은 무지에 빠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지식에 대해서 지식이 아니라, 무식이며, 무지이며, 무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언어, 말, 말, 말들 또한 근거가 없는 것들이다. 

언어의 근원에는 언어가 없다. 

하지만 '언어가 없다'는 말 또한 '언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근기 중생들은 말 속에서 다른 말을 찾아 헤매는 것이며, 그것들에 대해서 '도를 구하는 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수도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참된 이치를 찾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생각이 모두 착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에 대해서 상근기라고 하는 것이며,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자들... 그것들에 대해서 우이독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말들.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이라면 누구나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라고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이며, 일념을 깨닫지 못했다면 여전히 우이독경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 아니. 모든 붓다의 가르침의 요점은 이러하다. 

'무상한 것은 나(我)가 아니다, 수상행식도 이와 같다. 그것을 관찰하라' 는 방식이다.

 

여기서 '무상한 것'이란. '몸, 육체'를 말하는 것이며, '수상행식'이란 '마음'의 작용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이 말을 한글로 변화 시킨다면... '육체와 마음은 나가 아니다, 그것을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일념명상을 위한 일념문구가 완성된다.

 

'마음이 본래 없는 것'으로써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닫기 위한 다른 방법이란 있을 수 없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생각의 원리'를 깨달아 알때, 그때 비로소 일념명상을 위한 다른 말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대가. '나' 라고 생각하는 것들.

모두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들이다. 

왜냐하면 그대가 알고 있는 모든 앎들이 그대 스스로 깨달아 알게된 앎이 아니라, 어린아이시절부터 타인들로부터. 타인들로부터. 남들로부터. 남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앎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두려우하는 것에 대해서 자신도 두려워 하는 것이며, 남들이 기뻐하면 같이 기뻐하는 것이다. 남들이 울면 따라서 울고, 남들이 웃으면, 따라서 웃는다. 그것이 정녕 그대란 말인가? 

 

남들이 죽으니. 나도 죽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들이 기도하니, 니도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들이 수행을 하니, 나도 해야 되는 것인가.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들이 우상숭배사상에 빠지니. 나도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들이 옳다고 하니. 나도 옳다고 하며, 남들이 옳지 않다고 하니, 나도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그대는 정녕. 그대의 나인가? 

그대는 정녕. 남들의 나인가? 

 

사실 그대의 나는 남들도 아니며, 그렇다고 하여 그대 자신만의 나도 아니다. 

이것도 아니며, 저것도 아니면서.... 다른 사람들의 말, 말, 말에 이끌려 다니거나, 아니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아니다. 이쪽편사람들의 말에 이끌려 다니거나, 아니면 저쪽편 사람들의 말에 이끌려 다니거나, 또는 다른 편 쪽 사람들의 말에 이끌려 다닌다. 그러다가 스스로 정신착란증에 빠지게 되면... 소위 스스로 깨달았다는 자들과 같이 '내가 깨달았다'고 주장하거나, '내가 하나님이다'고 주장하거나, '내가 스승이다'고 주장하거나... 하여 종교나부랭이들을 창조하기도 하며, 명상센타를 차리기도 한다. 자아도취에 빠진 자들이다.

 

그러니. 모두 중생이다. 

우이독경이다. 

 

그렇지 않은가? 

 

석가모니의 말은 석가모니의 말이 아니다. 

모든 붓다들의 공통된 가르침이다. 

법. 불법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명색'으로써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래무일물'이다. 

 

 

부처를 찾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라는 뜻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그대의 나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법이며, 방법이다. 

그것에 대해서 진리의 길이라고 하는 것이며, 새생명이라고 하는 것이며, 인생의 길이라고 하는 것이다. 

 

 

현세상에는 오직 나의 말만이 진실된 말이다. 

왜나하면 인간들의 모든 주장은 타인들의 말에 바탕을 둔 주장들일 뿐, 해답이 없으며, 남들의 말 이외에는 근거가 없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말만이 진실된 말이라고 하는 까닭은, 나의 모든 말들은 '본무'에 바탕을 둔 말들이며, 사실에 바탕을 둔 말들이기 때문이다.   

 

육하원칙으로 보더라도 그대의 '내가 사람이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는 없다. 

인간들의 '내가 사람이다'는 말은 근거 없는 낭설, 풍문이며, 전설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대의, 인간들의 '내가 실존이다'는 말 또한 아무런 근거가 없는 말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나의 말을 들으라.

듣고 옳거든 그 길을 가라.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이다. 유일한 길이다.

왜나하면 오직 자신의 마음의 근본을 찾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대와 인류에게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