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언어 · 불이일원론

[마음]의 정의 - 心法, 해탈법/ 마음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일념법진원 2014. 12. 17. 08:00

'마음' 본래 없는 것이다. 

'마음' 이라는 이름이 있는 것이다. 

'마음' 이라는 이름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것'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분법적 논리로 본다면,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있는 것' 과 '없는 것' 으로 구분 지을 수밖에 없다. 

사실. 인간은 이분법적으로 아니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자아'가 실존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원성이나 다양성이 사실적인 것으로써 있는 것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 

 

 

자아가 실존이라고 믿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은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순수의식, 무의식, 잠재의식, 무몰식, 아뢰야식' 등의 또 다른 이름들을 짓게 된다. 그리고 그 이름들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사실적이라는 말 또한 사실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사실적인 것은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실체가 있다면, 그것은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또한 언어이며, '언어가 아닌 것,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 '실체'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런 설명 조차도 사실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말일지라도, 말에 불과한 소리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없는 것'에 대해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없는 것'이라는 말, 말, 말에 대해서 상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깊이 잠든 상태" '죽음의 상태' 에 대해서 기억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대해서 설명하는 까닭은, 인간들의 진정한 자유와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는 유일한 방법이 마음의 실체를 깨달아 아는 방법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 두려움, 고통과 괴로움, 슬픔, 환상들... 모두 본래 없던 마음의 작용이 그 원인이기 때문이다.

 

 

책. 비밀의 언어와 '깨달음의 실체를 밝힌다' 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되었을 것이다.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은. 순백의 투명한 물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위에 검정색의 먹물 한방울이 떨어진 것과 같다는 것이다. 본래 감각기관으로써는 보이지도  않으며, 느낄 수도 없는... 투명한 물... 그 순백의 투명한 물위에 한방울의 먹물이 떨구어지면서 '회색빛깔의 색상으로 드러나는 것이 마음이라고 설명되었던 것 같다.

 

사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것이 대기중의 공기이다. 바람도 공기이며, 공기 또함 바람이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그것은 바람이 아니며, 공기도 아니며... '없는 것'이다. '없는 것' 도 '없는 것' 이다. 보고 느끼는 자도 없는 것이며, 대상도 없는 것이다. '자아'가 있기 때문에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다. 인식하는 주체가 있기 때문에 대상들이 있는 것이다. 양면이 있는 동전과 같다. 동전이 있기 때문에 양면이 있다, 동전이 없다면... '無'... 지금. 그대의 나(我)가 본래 그러하다. 본래 있던 것이 아니라, 지식으로 가공된 것이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게 깨달아 아는 앎으로써 무위자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말로 전해지는 '마음이 본래 없는 것이다'는 비유법은 참으로 많은 것 같다.

'여몽환포령' 이라는 말과 '여로역여전'이라는 말들 또한 같은 비유법이다. 있는 것 같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이름(名) 뿐인 것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사실. 깨달음, 도, 득도, 불성, 성불' 등의 말, 말, 말들 또한 '이름'으로써만 있는 것이다. '명색의 동일시'로써만 있는 것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다. 부처, 영혼, 천국, 지옥... 등의 말, 말, 말들 또한 그러하며, 시간과 공간 또한 그러하다. '있다, 있는 것이다'는 생각은 오직 인간동물들만의 생각이다. 경험에 바탕을 둔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지식이 마음이다. 듣고 보고 배운 지식이 있기 때문에... 하늘, 땅, 천지만물, 마음, 생각, 언어, 나, 나이, 고향, 부모, 형제, 친구... 가 있는 것이다.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名色의 동일시이다. 명색의 동일시에 바탕을 둔 착각이며 환상이다.

 

 

사실. 세상에 중요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세상 만상만물들... 그대의 인생이라는 삶들, 그 모든 것들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텅빈 하늘에서 흩날리던 하얀 눈이 어느덧 사라져 없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삶 들... 그대의 지난 날들이 기억세포에 저장된 몇 조각의 생각들인 것과 같기 때문이다. 어젯밤 꾼 꿈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삶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삶이다. 알지만 평화로울 수 없는 까닭은 여전히 마음은 그런 사실에 대해서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마음이 내뜻대로 될 수 없는 까닭은 본래 '자신이 창조한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타인들의 말, 말, 말들에 의해서 가공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인간의 관념으로써 도, 깨달음, 진리.... 를 얻는 일이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마음'이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래 없에 대해서 찾기 때문이다.

 

사실, 진리, 도, 깨달음이란 마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마음의 장난, 유희에 속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마음이 본래 없는 것이다'는 말을 듣더라도... '마음이 본래 없는 것이다'는 말, 말, 말에 대해서 상상할 수밖에 없다. 이는 '행복'이라는 말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며, '죽음'이라는 말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깨달음'이라는 말에 집착하여 그것을 상상하다 보면... 기억세포에 저장된 여러 말들에 대해서 집착하게 되는 것이며, 그 말들과 유사한 환상의 세계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속인들이 신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며, 삼매에서 빛을 본다는 말과 같은 것이며, '마음이 없다'고 주절거리는 것과도 같은 것이며, 성불했다, 깨달았다는 말과도  같은 것이다.

 

 

그대의 기억세포에 저장된 것은 모두 언어, 낱말, 말, 말, 말들이다.

그 안에는, 영혼, 성령, 불성, 깨달음, 도, 하늘, 빛, 기억, 생각, 마음, 하나님, 부처님, 부처... 등의 수많은 낱말들이 있다. 그런 말들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말이 없는 것'을 아는 앎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또 다시 '말이 없는 것' 이라는 말에 대해서 집착할 수밖에 없다.  

 

 

사실. 깨달음은 단지 '마음의 어떤 변화가 아니라, 마음이 본래 없는 것이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것이다. 사실은 마음이 본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가 나다'는 고정관념이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육체가 나가 아니다' 라고 단정짓는다면 이 또한 단견이다.

  

 

'보리달마'의 말들을 해석하다 보니.

'불법'에 대해서 '심법' 이라는 말로 표현된 것 같다.

'마음법'이며, 마음으로써만 전달될 수 있다는 방식이다. 사실은 '불법'도 아니며, '마음법'도 아니다. 왜냐하면 지식으로 알고 있는, 즉 어린아이시절부터 타인들로부터, 타인들에 의해서 듣고 보고 배웠던 모든 지식이 곧 마음이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은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 그런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다.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은 경험이전의 사고에 대해서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이전의 사고' 라는 말은 '경험자가 없는 경험'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며, 그대가 깊이 잠들어 있는 상태와 같이... 윤회하던 '생각이 쉬는 상태' 를 이르는 말이다. 분명히 경험자가 있었는데, 기억세포에 저장되지 않아 기억할 수 없는 것이다. 분명히 '내가 잠을 잤는데' 잠을 자는 동안에 대해서는 기억할 수 없다. '잠든 동안'에 대해서 '경험자가 없는 경험'이라고 하는 것이다.  

 

 

현시대는 옛시대와는 달리, 언어가 문자화 되므로써 문법이 있으며, 논리적이라는 말이 있으며, 육하원칙이라는 법칙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 깨달음' 또한 논리적인 설명을 통해서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사실. 진리, 깨달음, 득도란 다른 것이 아니라, '육체가 나다'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 벗어나는 것이다. 사실.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고정관념으로 바뀌는 것이다. '내가 남자다'는 고정관념엣서 벗어나는 것이며, '내가 여자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육체가 나다'는 생각도 단견, 편견이며,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생각 또한 편견이라고 아는 앎에 대해서 소위 '깨달음, 도, 진리' 라는 이름의 말, 말,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육체가 나다' 라는 주장은 편견일 뿐만이 아니라, 사실적인 것 같지만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단군신화나 신, 절대자 등의 옛 신화가 근거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주장은, '육체가 나다'는 주장보다는 조금은 사실적일 것 같다. 왜냐하면, 최소한 근거 없는 신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며, '육체가 나다'라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는 것만큼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둘 다 편견이며, 단견이다.

신이 있다는 생각도 인간의 생각이며, 신이 없다는 생각도 인간의 생각이기 때문이며, 근거 없는 낭설에 바탕을 둔 허황된 생각이기 때문이다. 육체가 나다는 생각도 허구적인 생각이며,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생각 또한 근거 없는 생각, 생각, 생각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의 존재의 이유가... 그런 시시껄렁한 말재간들로써 죽는 날까지 서로가 옳다고 싸우기 위해서라면... 싸우면 될 것이다. 어떤 사고방식으로 살든지간에 결국 죽음이 목적지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단견이며,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편견이다. 그 마음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는 방식으로써, 또는 이렇게 하면 된다거나, 저렇게 하면 된다는 방식이 아닐 수 없는 주장들이 인간세상의 모든 법칙이나, 방법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근기 중생들의 언술이라고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마음이 기억된 생각이다, 아니다... 라는 논란들...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의 말재간이며, 언술이 뛰어난 자들의 선을 가장한 악행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상관할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도'의 관점에서 본다면... '도의 관점, 하늘의 관점'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인간, 짐승, 동물, 벌래, 산천초목들... 모두  모두가 둘이나, 셋이나 그 이상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이며, 자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자연 또한 '보는자'의 입장에서 있는 것일 뿐, 사실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존재계의 모든 것들은... 근본원인 인자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어려운 것이 가장 쉬운 것이다. 

사실. 가장 쉬운 것이 또한 가장 어려운 것이다. 

 

사실. 인간은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 '하나님이나, 절대자 또는 신'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사실, 인간들 모두의 문제이며, 그대 자신의 문제이다. '내가 사람이다'라고 주장하며, '자존심'을 주장하지만... 근거가 없는 것들에 대해서 무턱대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 사실, 즉 자신의 '나' 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육하원칙의 법칙으로써도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생갈할 수 있다.

'마음'이라는 '이름, 명칭, 낱말'에 대해서...  "누가 언제 어디서 (마음이라는 낱말을) 어떻게 왜" 알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희미한 기억이 있다면... 아마도 다섯 살이나, 여섯살이나, 일곱 살 쯤에 '누군가'는 기억할 수 없겠지만... 그들, 타인들로부터 '마음'이라는 말을 들어서 알게된 것이다. 그리고 전혀 기억할 수 없는 어린아이시절에 '내가 있다, 육체가 나다. 나는 사람이다, 나는 여자다, 나는 남자다' 라는 생각, 즉 고정관념이 생겨난 것이다. 

 

사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 상근기라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란 그런 상근기 인물들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 즉 인간들의 학문은, 사실 인간이 근거 없는 신의 창조물이라고 믿기 때문에 미신에 바탕을 둔 것이며, 미신이다. 근거 없는 '자기'를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창조되는 것들이 언어이다.

 

인간이 끊임없이 지식을 탐구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자기'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며, 그 자기가 스스로 완전할 수 없기 때문이며,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며, 스스로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지식의 함정은 곧 언어의 함정이다. 언어의 유희, 언어의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그 이유, 원인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완전하여 평화로울 수 없는 까닭은 '근거 없는 것'에 대해서 '자기, 자아'라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그런 사고방식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이라고 믿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인들로부터 듣고 배웠던 앎들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분명히 이해 할 수 있어야만, 진리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완전하여 부족함이 없는 앎에 대해서 진리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앎에 대해서 '진리, 도, 깨달음, 성령, 불성' 등의 말, 말, 말들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대와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진리'라고 한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이다. 

왜냐하면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육체가 나다'는 생각과 '육체가 나가 아니다'는 생각이 한생각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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