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론 · 깨달음. 도. 진리의 길

용서와 화해 그리고 평화/ 자신의 나를 용서하는 일

일념법진원 2014. 12. 29. 13:05

언어의 신비.

언어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일... 그 일에 대해서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는 것 같다.

사실. 본래 깨달음 또한 깨달음이라는 이름이다.

 

시명불성... 시명중도... 라는 말과 같이, 불성이라는 말이나, 중도 라는 말 또한 궁극에서는 '까마귀' 라는 이름과 같이 인간들이 지은 이름에 불과한 것이다. '성령' 또한 그러하며, '영혼, 귀신' 또한 그러하다.

 

하지만 그대에게 마음이 있다면, 아니, 설령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속는 것이다. 설령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더라도, 내가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내가 없다는 나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 '내가 없다'고 주장하는 '나' 가 에고이기 때문이다.  

 

엇그제 만났던 인물들... 참으로 많고 많은 길을 돌고 돌아서 진리와 마주한 인물들이다. 사실, 처음 만나서... 마음에 대한 설명들에 대해서, 그만큼 이해가 빨랐던 친구들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만큼 많은 곳을 다니면서... 스스로 깊고 깊은 사유의 결과일 것이다. 

 

사실. 용서 해야 할 남들이 없는 것이다.

남들을 용서하겠다는 자신을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탓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며,

자신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며, 

자신이 자신의 마음에 속절없이 속았던 것 뿐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이 본래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마음들로써 구성된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이 있다고 주장하는 한, 해답은 없다. 

그 마음이 고유한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웠던 지식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일념으로써 스스로 사실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인간들의 삶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의 삶이라는 것들... 힘겹게 힘겹게 가는 곳이 고작 죽음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먼 훗날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예측 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대의 나를 탓하지 말라.

그대의 나를 채칙질 하지 말라.

그대의 나, 그것이 보래 그대의 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의 본래의 나.

그것이 모든 것이며, 또한 동시에 모든 것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이다.

왜냐하면 그대의 마음의 근원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