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말은 말인데,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이 '도가도비상도' 라는 말의 뜻이다.
인간의 관념으로 볼때는 말은 말인데, 말도 안되는 소리가 '도가도비상도' 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도는 도가 아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도, 깨달음, 진리' 가 있기는 있는데... 드러나 나타나는 것은 도가 아니라는 말이며,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 이라는 말이다. 언어가 상대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인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일체유심조' 더 깊은 뜻의 설명과 같은 맥락이다.
'하나님이 하늘나라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며, 부처가 불국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네 본래성품이다' 는 말과 같은 뜻이며, 석가모니의 초기경전에 기록으로 남겨진 '나는 신도 아니며, 더 나아가 '나는 사람도 아니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니. 인간 관념으로써는 감히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비밀의 언어이며 또한 언어의 비밀이다. 하지만 생각의 유희이며, 마음작용의 결과이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있으며, 그 법에 대해서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지식으로써는 이해가 불가능한 말이며,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에게는 상식적인 말이며, 보편타당한 말이며, 더 나아가 진리이다. 영구불변이며, 영원불멸이라는 말은... 세상의 지식은 끊임없는 발전과 같이, 끊임없이 변화되는 것이지만,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은 확고부동한 앎, 즉 절대적인 앎으로써 죽는 날까지 변할 수 없는 앎이라는 뜻이다.
사실. 인간세상의 모든 앎은 지식으로써 결코 진리일 수 없다.
지식으로써는 그 지식 수준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진리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진리'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정작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답변할 수 없다. 현대문학이나 여타 학문들과 같이... 서로가 자기를 합리화 시키기 위한 말재간들이며, 주장만 할 따름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떠들거나, 부처님 말씀이 진리라고 주장하거나, 제각기 잘난체 하기 위해서 온갖 말재간을 겨루겠지만... 진리가 아니라 무지이며, 무식이며, 무지몽매한 주장들이 아닐 수 없는 것들이다. 인간이 인간이지만, 정작 인간의 기원 조차 모르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세상의 모든지식들의 주장들은 논리적이지도 않으며, 현실적이지도 않으며, 사실에 바탕을 둔 것들이 아니라, 근거가 전무한 것들에 대한 주장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지식의 바탕이 근거 없는 허구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기원이 무엇인지 모르는 앎이 모든 지식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사실. 석가모니의 말이 왜곡되어 '육도윤회' 라는 말이 창조된 것이다. 사실. 육도윤회라는 말은 감각기관과 감각기관의 앎을 이르는 말이며, 그런 앎에 의해서 스스로 일어나는 생각의 윤회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생각의 윤회와 같은 윤회가 곧 마음의 윤회이며, 언어의 윤회이다. 이런 말들 또한 광신자나 맹신자들에게는 우이독경이겠지만, 일념을 깨달은 인물들에게는 사실적인 말이며, 불변의 진리이다.
사실. 예수는 이런 사실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인간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길잃은 어린 양새끼'에 비유한 것이며, 석가모니는 '소나 말과 같은 축생과 같다'는 뜻으로써 '중생'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명색이 인간일 뿐.... 모양과 형상이 인간일 뿐, 짐승이나 다를 것이 없는 것들, 아니 짐승들의 생명활동보다도 더 어리석은 짓을 일삼는 것들이, 스스로 지능이 뛰어난 동물이라고 주장하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 인간들의 삶, 존재, 일상이 다툼이며, 경쟁이며, 투쟁이며, 전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생각'이라는 낱말의 사전적 의미가 이미 어긋나 있다.
백과사전의 뜻을 보니.
"기억이 의식 위로 떠올라 글이나 언어로 표현되기 전의 추상적인 말" 이라는 방식이며,
한글사전의 설명을 보니.
"헤아리고 판단하고 인식하는 것 따위의 정신 작용" 이라는 설명이다.
'정신작용' 이라는 말과 '마음작용'이라는 말에는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사실. 그 느낌은 다르겠지만... 똑 같은 뜻이다. 왜냐하면 '정신작용'이라고 생각하든, '마음작용'이라고 생각하든... 그것 또한 기억세포에 저장된 생각들 중의 한 생각에 불과한 생각들에 불고한 또 다른 생각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생각에 대해서 무지하다.
생각은 '뇌' 에서 일어난다는 말은 누구나 아는 상식적인 말이다. .
그렇다고 하여 뇌를 해부해서 '생각'을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뇌 또한 '뇌'라는 '생각'이기 때문이며, 이미 기억세포에 저장된 수많은 생각들 중의 한조각의 생각에 불과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 생각들, 뇌라는 생각, 생각이라는 생각, 마음이라는 생각, 느낌이라는 생각, 감정이라는 생각, 지식이라는 생각, 진리라는 생각, 생각, 생각들.... 하늘나라라는 생각, 지옥이라는 생각, 불국토라는 생각, 영혼이라는 생각, 천국이라는 생각, 생각, 생각들... 말, 말, 말들... 생각과 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이겠는가?
'생각이 있다'는 생각 또한 기억세포에 이미 저장된 하나의 생각이듯이... 언어가 있다는 생각 또한 한조각의 생각에 불과한 생각이며, 마음이 있다는 생각 또한 그러하며, 느낌이 있다는 생각 또한 그러하다.
신, 절대자가 있다는 생각도 그러하며, 영혼이 있다는 생각도 그러하며, 내가 사람이다는 생각도 그러하다. 내가 사람이 아니다는 생각도 그러하며, 마음이 없다는 생각도 그러하며, 생각이 없다는 생각 또한 그러하다. 무엇이 있다는 생각과 없다는 생각이 곧 한생각의 차이이며,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음의 작용을 그칠 수 있다는 생각 또한 이미 기억세포에 저장된 생각들 중의 한조각의 생각에 불과한 것이며, 마음의 작용을 그칠 수 없다는 생각 또한 그러하다. 언어가 있다는 생각도 하나의 생각이며, 언어가 없다는 생각 또한 하나의 생각이다. 더 나아가 '내가 있다는 생각, 내가 없다는 생각' 또한 기억된 생각들 중의 하나의 생각이다. 내가 산다는 생각, 내가 죽는다는 생각, 생각, 생각들... 모두 각각의 조각조각난 생각들일 뿐, 해답은 없다.
그리고 생각은, 언어와 행동으로써 드러나는 것이다.
언어와 행동은 생각의 윤회 작용에 의해서 표출되는 것이며, 언행은 수많은 생각들 중에서 아주 사소한 작용 중의 일부분이며 제한적인 것이다.
사실 생각의 권능은 인간의 사고방식을 초월한다.
인간의 생명을 초월하는 것이며, 우주를 창조하고도 남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생각에 의해서 '우주'가 창조된 것이며, 신, 절대자가 창조된 것이며, 영혼, 성령, 불성, 하늘, 하나님 까지도 창조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자아' 또한 그런 방식으로 창조된 '생각의 환상물질'이기 때문이다.
사실. 생각은 생각이 아니다.
왜냐하면 생각이라는 낱말 또한 기억세포에 저장된 수많은 생각들 중의 하나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라는 말로 표현 되는 것이며, '노자'는 "그것"에 대해서 '도가도비상도' 라는 말로써 "도" 라는 말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 "그것" 에 대해서 '예수'는 '성령'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며, 석가모니는 '불타, 중도' 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자. 이런 설명들로써 무엇을 이해 할 수 있겠는가?
일념을 깨닫고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에게는... 좋은 말이 아니라, 올바른 말들로써 가치있는 삶, 가치 있는 앎, 진리에 대해서 좀더 분명한 이해가 다가올 수 있는 말이겠지만, 일념을 모른다면 여전히 우이독경과 다를 바 없을 것이며, 마이동풍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지식과 진리가 있다.
지식은 꿈과 같은 것, 환상적인 것, 추상적인 것, 몽상이며, 진리는 사실적인 것, 현실적인 것, 실제적인 것이다.
지식은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 '하나님의 창조' 또는 '신의 창조' 또는 '단군신화'와 같은 환상에 바탕을 두고 창조된 거짓된 앎이며, 진리는 지식이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앎이다.
지식은, 절대적인 앎이 아니라, 상대적인 앎으로써의 자기 주장이며, 근거가 없는 (인간의 기원이 무엇인지 모르는...) 앎에 바탕을 둔 상대적인 주장인 반면에 진리는 절대적인 앎으로써 한번 알고나면 죽는 날까지 변할 수 없는 앎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변의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지식은 진리를 이해 할 수 없고, 진리는 지식에 대해서 이해 하기를, 언술이 뛰어난 자들의 말재간으로 여긴다. 어린아이들이 자기 엄마의 말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 소위 언술이 뛰어난 자들이 주장하는 지식이다.
지식과 진리 사이에는 '일념법'이라는 유일한 길, 법, 방법이 있다.
문자,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이 학습을 통해서 글을 배우고 익혀서 '지식'을 얻듯이, 진리 또한 오직 '일념법'이라는 명상법을 통해서만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지식은 영원히 진리일 수 없기 때문이며, 진리는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신, 영혼, 삶, 죽음이 있는 유위법이며, 진리는 무위법이다.
지식은 '내가 있으며, 세상이 있으며, 죽음이 있으며, 영혼이나 귀신이 있으며, 삶이나 죽음이 있으며, 근거가 분명치 않은 앎으로써의 유한한 것이기 때문이며, 진리는 자아와 세상, 우주가 본래 없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근거가 분명한 앎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원리에 대해서 무지한 앎에 바탕을 둔 상대적인 앎으로써의 자기 주장들이 아닐 수 없는 반면에 진리는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앎으로써 주장해야 할 자아가 없는 절대적인 앎이기 때문이다.
지식으로써의 앎은, 삶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앎으로써의 방황이며, 진리는 죽음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삶이 무엇인지 아는 앎으로써의 삶을 즐기는 것이며, 죽음 또한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진실된 앎이다.
'불변의 진리'란.
첫째. 소크라테스의 말과 석가모니, 노자의 말이 기원전 6세기 경 인물들의 말이지만, 1 세기 경의 예수의 말과 한치의 오차도 없는 똑 같은 말이듯이, 그리고 그들의 말에 대해서 현시대의 보편적인 언어로써 해석된 내용이 모두 똑같은 말이듯이... 인간이 지식을 초월하여... 스스로 깨달아서 아는 '올바른 앎, 진실된 말'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앎이라는 뜻이며.
둘째. 현시대에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인물들'이 그들의 말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 한다는 것이며, 그들의 말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있다'는 주장이 근거 없는 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것이며, 부처님이나, 영혼, 신... 귀신, 하늘나라, 불국토... 등의 모든 말, 말, 말들이 사실적인 것에 대한 표현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들이며, 환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념을 깨달아 아는 앎은, 지식과 비슷한 앎이지만... 죽는 날까지 변할 수 없는, 타인들의 말들 따위에 흔들릴 수 없는 앎이기 때문에 '불변의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일념을 깨달아서 일념의 뜻에 대해서 올바르게 아는 앎일 때에는, 인간세상의 모든 지식들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으로써, 과학이나, 의학, 한의학, 종교학, 신학, 통념... 등, 인간들이 주장하는 어떤 말에 대해서도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리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자신만의 흔들림이 없는 올바른 인생 길을 찾은 것인 것이다.
'도, 진리, 깨달음'이라는 것이 환상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적인 것이며, 실제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으로써의 삶의 길이며, 살아가는 방법이 '진리'인 것이다. 그런 확고한 앎, 변함없는 앎으로써의 삶에 대해서 '가치 있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일념법의 습관화로써 '육체가 나다'는 착각(편견, 단견, 소견)에서 벗어남으로써 비로소 '검증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가장 훌륭한 지식으로써만 이해가 가능할 수 있는 지식이 '진리'이다. 하지만 지식으로써는 진리를 볼 수 없다. 오직 일념명상법으로써 일념을 깨닫고, 일념이라는 낱말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일념이라는 낱말의 뜻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 하는 앎일때, 그때 비로소 '진리'에 대해서 상상하는 앎이 아니라, 진리라는 말의 깊고 깊은 뜻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라고 하는 것이다.
자유와 진리는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욕망으로써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까닭은, 삶과 죽음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되기 전에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신, 영혼, 절대자, 우주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대의 '나 아닌 나' "그것"이 본래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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