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이라는 말이 있고, "초월자" 라는 말이 있다.
인간의 관념 즉 인간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써는 그들의 말에 대해서 지적 이해가 불가능 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 '신비주의자' 라는 또 다른 말로 표현하는 것 같다.
초월[超越] 이라는 낱말의 사전적 의미를 보니, 아래와 같다.
이는 일반적으로 어떤 영역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영역 안에 존재하는 것을 내재(內在)한다고 한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 세계는 현상계를 초월한 세계이며,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신은 세계를 무에서 창조한 세계의 원인인 초월자이다. 칸트는 경험할 수 있는 세계 내에 존재하는 내재적인 것이라고 하였고, 한계를 넘어서 대상이 의식 일반에서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을 초월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사실 이곳에 쓰여지는 모든 글들이 곧 인간들의 이분법적인... 상대적인 언어로 설명하려고 애쓰는 초월자의 말이며, 예수와 석가모니, 그리고 노자와 장자, 소크라테스의 말들 또한 그러하다. 다만 인간과 초월자들과의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은 언어의 굴례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언어 속에서 '그것'을 찾는 것이며, 그들은 언어 밖에 있다는 것이며, 언어의 한계를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언어' 밖에 있다는 것은... 언어가 본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가 본래 없다는 것은.... 우주와 인간과 자연... 등의 존재계가 본래 없다는 것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아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인간 관념으로써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언어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며, 언어는 허구적인 것이기 때문이며, 그들은 유일한 실체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나 또한 언어가 없다면... 있는 것이 아니듯이...
현시대까지 전해져 오는 말들 중에 '초월자'에 대해서 가장 근접하여 설명된 말이 있다면 석가모니로부터 전해져 오는 '중도'에 대한 설명이다. 왜냐하면... '존재계의 탄생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존재계가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아며, 존재계의 소멸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존재계가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또한 죽음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삶이 있을 수 없다는 말과 같은 맥락으로써 사실, 인간류의 존재 자체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시대는 문자가 발전된 시대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다만 지식으로써 이해 한다는 것은 쓸모 없는 논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육체가 나다'라는 관념, 고정관념에 대해서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체가 나다'는 말은 '육체가 나가 아니다' 라는 말과 상대적인 말로써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말이 '중용'이라는 말과 '중도' 라는 말이다.
사실 인간이 중용을 따를 수 없는 까닭은... 양 극단을 벗어날 수 없는 '육체가 나다'라는 상대적인 생각이 고착화 되어 고정관념화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양 극단이라는 말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언어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나와 너, 선과 악, 하늘과 땅, 큰 것과 작은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인간과 신, 인간과 영혼...등의 상대적이 아닐 수 없는 모든 언어가 그러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와 석가모니가 태어나면서부터 깨달아 아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과 똑 같은 방법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며, 인간들과 같이 언어의 굴레 속에서 헤맸다는 것이다. 그리고 석가모니의 사례와 같이 수 년간의 스스로 알기 위한 수행을 통해서 그 이치를 깨달게 된 것이며, 그 이후의 지식을 넘어선 진리의 가르침들이 언술이 뛰어난 인간들의 상대적인 언어로 왜곡되면서 성경, 불경 등의 수많은 종교들로 전락된 것이다.
노자와 장자의 해석서로써 일부 설명되었으나... 어차피 인간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써 그들을 이해 할 수 없는 것이며, 그들에 대해서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며, 그들은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 경험이전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험 이전의 사고방식이라는 말은... 죽은자의 입장에서 본다는 뜻이며 또한 창조자의 입장에서 본다는 뜻으로 이해 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그들이라는 말 또한 그들이라고 할 수 없는 까닭은 그들에게는 '자아와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자아와 대상이 없다는 말은... 우주가 있다면 우주와 하나라는 뜻이며, 천지만물이 있다면 천지만물과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실 우주, 하늘, 자연, 인간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의 창조자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뚯이 아니라, 본래 없는 것이며 단지 그대의 생각이 없다면 세상 또한 본래 없다는 말이며, 생각의 환상물질일 뿐, 사실적인 것은 없다는 뜻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초월에 대해서 주장하는 철학자들, 사상가들과 같이 지식으로써 언술을 겨루는 쓸모 없는 짓들을 일삼을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아는 올바른 앎(진리)을 얻는 방법'인 것이다.
그 방법에 대해서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며, 인간세상이 존재하는 한 영원한 영원한 법이며, 불변의 진리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자신을 스스로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실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모두...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으나,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지금 그대의 '내가 사람이다, 내가 여자다, 내가 남자다' 라는 지식들 또한 그대가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언어를 아는 것이며,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인간들의 모든 앎이 그러하기 때문에 지식에 대해서 무지라고 하는 것이며, 무한한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진리의 올바른 말들을 왜곡하고, 더 나아가 거짓된 앎으로써 서로가 잘난체 하는 것들이 지식이기 때문이며, 그런 지식들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생명공학, 의학의 무지와 히포크라테스의 진리, 그리고 도가의 단식법과 도가의 약식으로써의 불치병들의 완전한 치유에 대한 설명들 또한 같은 맥락이다)
그대의 지식, 그대의 마음, 그대의 인식, 인지, 느깜들... 모두 그대가 스스로 아는 것으로써의 그대의 것이 아니라, 본래 남들의 것이며, 남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워서 아는 것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초월자라는 말이 있으며, 그것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아는 것'을 아는 자를 일컷는 말인 것이다.
사실 인간은 '자아의 부재상태'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다. 자아가 있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자아가 없다는 것 또한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볼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죽음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볼 수 있다면, 삶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 하는 까닭은 죽음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볼 수 없기 때문이며, 남들로부터 얻은 지식에 대해서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두려워 하기 때문에 나도 두려워 하는 것이며... 인간들 모두가, 그렇게 남들을 보고 따라 하는 것들이 아닐 수 없는 까닭은, 자신이 본래 자신이 아니라, 남들에 의존하여 알게된 것이 자신의 나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사실적인 것을 아는 진실된 것이 아니라, 사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닌, 거짓된 것을 아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식은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며, 자신의 몸에 대해서 아는 것들 또한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일 뿐, 자신이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의 설명과 같이 죽음 또한 그러하다.
죽음을 사실 그대로 본다면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기쁨인 것이다. 사실 인간의 삶이 고통인 것이며, 삶이 고통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죽음은 기쁨이라고 하는 것이다. 고통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라는 말, 말, 말이 있기 때문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통이라는 말이 없다면, 고통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어리석은 자들이 언어에 집착하는 것이다.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은 진실딘 것이 아니라 거짓을 주장하는 것이다.
올바른 앎이란 스스로 아는 것이며, 스스로 아는 것만이 진실된 앎이며, 남들의 지식 따위에 이리 저리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절대적인 앎이기 때문에 불변의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비근한 사례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이 옳다고 주장하는자들과 예수의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고 주장하거나 그들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자들의 논쟁, 전쟁은 끝없이, 끊임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까닭은 그것들의 앎이 자신들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며, 언술이 뛰어난 자들의 간사한 말재간에 세뇌 당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의 말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여러 비유를 들어 반복 설명하는 까닭은 현시대는 문자가 발전되었기 때문이며, 지식은 비논리적인 반면에 그들의 말은 지극히 논리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이다.
왜냐하면 그대의 몸과 마음에 대해서 올바르게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진리와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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