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세상이 실재라고 본다면, 그리고 진리와 지식이 있다고 본다면.
그리고 진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들의 삶은 희극이지만, 지식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 삶은 비극이다.
인간은 인간 삶을 실재라고 믿고, 비극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인간의 삶의 결과는 누구나 비참한 죽음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은 삶이 비극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행복한 세상이 있다'고 주장하는 까닭은 삶이 편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 삶이 항상 불안한 까닭은 미래의 삶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며,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 까닭은 마음의 바탕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내제 되어 있기 때문이며,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까닭은 죽음에 대한 올바른 앎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인간으로써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이란 죽음이 전제된 것이기 때문이며 죽음을 두려운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불 수 있어야만 비로소 행복을 창조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절대적인 행복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이와 같이 절대적인 불행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죽음이 없는 삶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왜냐하면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 아니라 고통이기 때문이다.
사실, 죽음이 공포스러움과 두려움과 고통이라면...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기쁨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불평과 불만을 일삼는다면... 욕망이 너무 큰 것은 아닌 것일까?
그렇지 아니한가?
사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만족하여 평화로울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이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것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욕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는 까닭은... 단지 타인들로부터 그런 사고방식으로 가공된 것이며, 길들여진 것이며, 버릇되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욕망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산다는 것은, 사냥꾼에게 길들여진 사냥개가 주인을 위해서 목숨을 잃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실 인간세상의 모든 삶들이 그러하다. 약육강식으로 보이는 뭇 중생들... 즉 자연상태에서 벗어나지 않은 짐승들의 존재는 단지 본능으로써 생존을 위한 것이지만, 인간들의 생존경쟁은 끝없는 욕망으로써 삶, 존재 자체가 전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마음 밖에서 행복을 구하려는 까닭은 자신에 대해서 자신 스스로 자신을 아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자신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는 까닭은 다른 행복한 사람들의 겉모습만 볼 수 있을 뿐, 내면을 볼 수 없기 때문이며, 그들의 병듦과 죽음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의 삶 전체를 자세히 관찰해 볼 수 있다면 그것이 어떤 사고방식으로써의 삶이든지간에 행복한 삶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삶의 끝은 누구나 죽음이라는 비극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해 본다면 개개인 인간의 삶이란 희극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 자신의 자신에 대한 앎이 자신 스스로 아는 것으로써의 자신이 아니라, 남들로부터 듣고 보고 배워서 익힌 남들의 지식으로써, 남들의 지식에 의해서 가공된 것이, 그대가 나라고 아는 그대의 그대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몸이거나, 마음이거나...
사실, 자신이 자신을 모르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것에 대해서 '진리의 앎'이라고 하는 것이며, 인간들은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신비주의자' 라고 하는 것 같다.
'득도(得道)' 라는 말과 '깨달음' 이라는 말, 그리고 '진리' 라는 말이 있다. 그런 말들과 동일시 되는 말이 '신비주의자' 라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본다면... 인간들이 신비주의자들이며, 그 들 몇 몇만이 사실주의자들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누구나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자신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으로써 사실적인 것이 아닌 것에 대해서 '자아'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그들은 자신 스스로 아는 것으로써 '자아'는 '자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대의 삶은 본래 그대의 삶이 아니라, 남들로부터 얻어듣고, 얻어 배우고, 얻어 익힌 지식으로써의 삶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그대의 인생은 그대 자신의 삶이 아니라, 남들의 삶을 사는 것이며, 남들의 삶에 대해서 나의 삶이라는 착각, 환상의 세계에 대해서 사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착각이다. 왜냐하면 그대가 그대에 대해서 올바르게 아는 것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의 삶에 대해서 살아갈 가치도 없다고 하는 까닭은, 자신의 삶이 아난 것에 대해서 자신의 삶이라는 착각으로 인하여 죽는 날까지 아귀다툼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며, 삶 자체가 다툼이나, 논쟁, 논란, 경쟁, 투쟁 전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가 행복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대의 인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의 인생, 가치 있는 삶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그대 자신의 본래의 나를 아는 것이다. 인간세상의 지식들과 같이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그대 스스로 깨달아 아는 나로 사는 것이다.
그대가 그대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있다.
이름하여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다. 이 법에 대해서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는 까닭은 현시대의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예수와 석가모니가 깨달은 방법이기 때문이며, 그들이 인간세상에 전파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라고 하는 까닭은, 인간의 마음의 근원, 모든 의심의 근원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우주의 원리와 생명의 비밀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법이기 때문이다.
진리와 인연있는이에게 영원한 자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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