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함 삼세음식세경>
비구들이여, 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색수음(색취온)에 대해서 이렇게 배운다. 곧 '나는 현재에 색에게 먹히고 있다. 과거 세상에서도 이미 현재와 같이 저 색에게 먹히고 있었다'고 그는 다시 '나는 현재에 색에게 먹히고 있다. 내가 만일 다시 미래의 색을 즐겨해 집착하면 다시 현재와 같이 그 색에게 먹히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 뒤에는 과거의 색은 돌아보지 않고, 미래의 색은 즐겨해 집착하지 않으며, 현재의 색에 대해서는 싫증을 내고, 근심을 멸하고자 하여 멸하는 길로 향하느니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 수상행식 수음에 대해서도 이렇게 배운다.
彼多聞聖弟子於此色受陰作如是學。我今為現在色所食。過去世已曾為彼色所食。如今現在。復作是念。我今為現在色
所食。我若復樂著未來色者。當復為彼色所食。如今現在。作如是知已。不顧過去色。不樂著未來色。於現在色生厭.離欲.滅患.向滅。多聞聖弟子於此受.想.行.識受陰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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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간세상에 존재하는 경전이라는 책자들은 '깨달은 자' 들의 말이 아니라, 언술이 뛰어난 자들의 우문우답들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첫번째 이유는... 초기경전은 깨달은 자의 말을 이해 할 수 없는 중생들에 의해서 구전으로 전해진 것이며, 불경 또한 석가모니를 우상으로 숭배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공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올바르게 본다면 이곳의 모든 글들이 초기경전의 내용. 즉 석가모니가 전하고자 했던 본래의 뜻과 같은 말들이지만 현시대의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됨에도 불구하고 '일념'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해 조차 불가능한 말들이다. 하물며, 석가모니가 존재했던 시대의 이야기들이며, 그 지역의 생소한 언어이며, 더군다나 한자로 번역되는 과정을 거쳐 우상숭배사상으로 왜곡되었으니, 그들의 뜻을 어찌 이해 할 수 있겠는가?
사실 인간들의 지식에 대해서 무한한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까닭은, 석가모니, 예수, 소크라테스 등의 올바른 말들에 대해서 지식으로서 이해 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정견이며, 인간들의 언어는 단견이며, 소견이며, 편견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인간들의 지식으로써 그들을 이해 할 수 있었다면... 현시대는 인간들 누구나 평평하여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이 평화로울 수 없는 까닭은... '내가 사람이다'라는 편견에 바탕을 둔 말들이 아닐 수 없으며, 석가모니의 깨달음은 '내가 있다, 내가 사람이다 라는 편견에서 벗어난 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육체가 나다'라는 앎도 단견이며, 육체가 나가 아니다' 라는 앎 또한 편견이기 때문이다.
사실, '육체가 나다' 라는 것과 '육체가 나가 아니다' 라는 것과는 상대적인 것으로써 절대적일 수 없는 것이다. 양 극단이며, 편견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기억된 생각이며 고정관념화된 앎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야만 정견인 것이며, 올바른 앎인 것이다. 인간의 모든 고통들... 육체가 나라는 그릇된 고정관념에 바탕을 둔 집착과 욕망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진리가 아인, 지식의 한계이다.
소위 '도, 깨달음' 이란... '육체가 나다'라는 고정관념이 허구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으로써 '육체가 나라는 생각일 뿐'... '이다, 아니다' 라는 분별이 허구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핵심 또한 그러하다. '무상한 것은 나가 아니다, 수상행식도 이와 같다. 그것을 관찰하라'는 방식으로써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원리전도몽상에서 깨어나라는 말인 것이다.
사실 소크라테스를 설명하고, 노자와 장자를 해석하고, 예수의 말까지 반복하여 설명하는 이유는, 인간의 행복이나 평화는 오직 진리를 앎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며 또한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며, 인생의 참된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모른다면... 삶은 삶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가 자신을 주장하며,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애쓰지만, 오직 그대를 위해서 존재하지만 정작... 그대 안에는 그대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오온'과 '색수음' 이라는 말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하기 위해서는 <삼세음식세경> 이라는 말의 뜻 부터 이해 해야만 한다. '삼세' 라는 말의 본래의 뜻은 '과거, 현제, 미래'를 뜻하는 말이며, '음식세경'에서의 '음' 은 '소리 音'자로써 '인간들의 언어'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음식세경'의 '식' 이라는 낱말의 본래의 뜻은 '알 識' 자로써 인간들의 모든 지식을 일컷는 말이다.
앞서 12 연기법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아이들이 말을 배움으로써 얻게되는 앎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는 말이지만...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 의해서 '12연기법'이라는 불법으로 왜곡된 것이라고 설명한 바와 같다. 그리고 '세경'이라는 말은... '가늘 細' 자로써 세부적인 설명이라는 뜻이며, 經은 지날 경자로써 '지나간 말' 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오온' 이라는 말은 '다섯 五' 자와 '쌓을 蘊' 자로써 다섯가지의 감각기관에 의해서 느끼는 모든 앎이 고통의 원인이다-는 말이다. 이는 과거의 기억에 바탕을 두고 쌓아온 생각(지식, 앎)으로써 현제를 경험하는 것이며, 현제까지의 기억된 생각들에 바탕을 둔 미래의 생각들이 모두 고통이라는 뜻이며,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순간을 보라는 말이 '삼세음식세경'의 뜻이다.
'색수음' 이라는 말의 본래의 뜻은, 명색의 동일시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써 '음' 즉 소리와 '색' 즉 형상이라는 지식으로써의 앎을 얻음을 이르는 말이며, 지식을 얻은 앎이 고통의 원인이라는 말이며, 그 고통을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욕망'에 집착함이 없어야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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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석가모니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정견'이라는 말이다.
초기경전이라는 책자들을 보면... 항상... "나는 이렇게 들었다" 라는 방식으로 기록된다. 성경이라는 책자 또한 예수의 진언이 아니라... '복음' 서이다. 그들, 소위 '신비주의자, 깨달은 자' 라는 말로 표현되는 '통찰의 지혜를 얻은 자'들의 진언이 아니라... 그들의 말을 들었던 자들에 의해서 구전으로 옮겨진 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경전을 보면, '나는 이렇게 들었다' 는 방식으로 기록된 것이다.
그들의 말은 진리이다.
하지만 진리란 그들의 현존시에만 진리일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관념, 지식을 초월한 말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들의 소통을 위한 언어 자체가 모순이며, 혼돈으로써 '말도 안되는 소리' 들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죽는 날까지 욕망, 탐욕만 가득할 뿐, 행복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죽는 날까지 자기를 합리화 시키는 일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있다지만 그 마음 자체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안에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대의 마음 안에 있는 것은... 단지 남들로부터 얻은 모순된 지식이 전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아득한 옛날부터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은 경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대의 마음은 본래 그대의 마음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대의 마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남들을 의존하여 얻어진 지식들로써 가공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지금 '나' 라고 주장하는 일들, 끊임없이 자기를 합리화 시키려는 일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사는 일들, 오직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노력들... 사실, 살아갈 가치도 없는 것들이 인간무리들인 것이다.
사실, 그들은 그런 인간들에게 여러 방편을 들어서 언제 죽더라도 후회 없는 삶을 살라는 것이며, 최소한 인간으로써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무조건 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논리적인 말들로써 그 방법 까지도 분명히 제시한다는 것이다.
신비주의자, 깨달은 자... 들의 말은 단순히 '진리'를 알라는 것이다.
노자의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도' 를 알라는 말이다.
지식과 진리의 차이에 대해서... 인간의 지식으로써도 분명히 이해가 가능할 수 있는 말이 석가모니의 말로 전해져 오는 '정견'이라는 낱말이다.
지극히 단순한 말이다.
지식은...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앎' 이고
진리는... '스스로 아는 앎' 이다, 는 말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아는 것 또한 지식이다.
초기경전에는 항상... '나는 이렇게 들었다'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그런 방식으로 아는 것이 지식이다.
석가모니가 '정견'이라는 말에 대해서 "정견은 '스스로 아는 것'이다" 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들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남들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아는 것이 정견이다' 라고 했다는 말을... "나는 그렇게 들었다" 라고 아는 것은, 정견이 아닌 것이다.
사실, 지식은 모두 그런 방식으로써 아는 것이다.
자기의 이름을 아는 것 또한 '어릴적에 부모로부터 들어서 아는 것' 이며, 나이를 아는 것 또한 그러하며, 말을 배우는 것 또한 남들을 의존하여 알게된 것이다, 는 말이다. 그런데 정견이란... 그렇게 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는 것'이다, 는 말이다.
사실, 인간들의 모든 앎이 이와 같이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앎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아는 앎'이 있다-는 말은 낯선 말이며, 방언이며, 우이독경이라는 말과 같이...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진리를 전하고자 했던 인물들이 무식하고 어리석은 중생들에 의해서... 졸지에 우상으로 전락된 것이다.
사실, '스스로 아는 앎' 이라는 말... 그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 '말'을 아는 것은 '정견'이 아니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아는 앎' 즉 진리를 알기 위한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그들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여러 방편설들에 앞서 '진리의 앎'을 위한 방법에 대한 가르침인 것이다. 하지만 올바른 앎이 없는 언술이 뛰어난 자들에 의해서 그들의 가르침의 본질이 사라진 것이며, 우상숭배사상으로 전락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길, 참된 이치, 가치 있는 삶을 위한 방법, 진리를 알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반복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라고 하는 이유는 오직 그 방법만이 '스스로 아는 앎' 진리의 앎을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대와 인류에게 영원한 평화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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