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중도 · 방편설 - 말변사

무아. 무위의 정의 - 무상 고 무아와 언어의 모순/ 인간 삶의 허구와 진리

일념법진원 2015. 3. 15. 07:19

사실 인간은 몸과 마음에 대해서 '나(自我)' 라고 한다. 

그리고 몸과 마음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 알며,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 '영혼'이라고 안다. 그리고 영혼에 대해서는 몸에 깃든 것이며, 무형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사전적 의미가 그러하다)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사람들은... '몸과 마음과 영혼'이 있는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자아' 라고 단정 짓는다. 그리고 양자물리학은 물질세계가 근본원인 물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입자와 파동으로써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인간의 관념으로써는 '내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의심할 수 없다.

물론 '내가 있다'고 생각하든, '내가 없다'고 생각하든... 그것은 개개인의 생각의 차이일 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설령 '내가 없다'고 주장하더라도...'내가 없다'고 주장하는 '나' 가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유아(有我)' 라는 말로 표현 하는 것이며, 그와 상대적인 '나는 없다'는 것에 대해서 '무아(無我)'라는 말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사실 양자물리학이라는 과학에 의해서 밝혀진 것과 같이... 물질세계는 사실적인 것이 아닌 것이다. 물질세계가 근원이 없는 것이다는 말은, 인간의 '육체' 또한 근원물질이 있는 것이 아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에 깃든 무형의 실체가 영혼이다' 는 말 또한 거짓된 말인 것이며... 몸이 나다, 마음이 나다' 는 말들 또한 사실적인 것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들어서 아는 거짓된 앎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는... 인간들의 모든 앎은 서로서로가 타인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이며, 스스로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남들을 의존하여 아는 것에 대해서 지식이라는 말로 표현 되는 것이며, 지식은 상대적인 분별일 뿐,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란 스스로 아는 것으로써 올바른 앎이며, 절대적인 앎이기 때문에 불변의 진리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사실 인간세상 사람들의 '내가 있다, 내가 사람이다'는 말 또한 근거가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물질세계가 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보더라도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거짓된 것이기 때문이다. 육체에 기반한 정신 또한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에게는 '내가 사실적인 것이며, 내 삶이 있다'는 것이다. 상관 없는 일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근본원인이 없는 것이 삶이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 것인가 하는 것이며,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인가 하는 것이다.

 

 

인간세상에는 성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있다.

양자물리학이라는 학문에 의해서 밝혀진 것과 같은 사실에 대해서 '본래무일물'이라는 말로 설명했던 인물이 '석가모니'이다. 그리고 본래무일물이라는 말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로 표현했던 인물이 '예수' 이다. 그리고 '그것' 에 대해서 '道' 라는 말로 표현했던 인물이 '노자' 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 또한 같은 맥락이다.

 

 

사실, 양자물리학의 '본래무일물'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해는 지식으로써 알 수 있는 최후의 목적지인 것이며, 지식의 한계이다. 그리고 진리란... 남들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아는 것으로써 '본래무일물'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아는 것이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안다는 것은... '육체가 나다' 라고 아는 것이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의...) 경험의 오류에서 비롯된 착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올바르게 아는 것이다.

이는 양자물리학에서의 '입자와 파동'이 있다는 것 또한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보는자의 생각으로써만 있는 것, 즉 보는자의 생각에 의존하여 있는 것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고 아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또한 '보는 자'가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며, 보는 자가 없다면... 본래 없는 것이라는 말로써... 보는 자의 생각의 작용일 뿐, 본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여기서 '아무것도  없는 것' 이라는 말 또한... 인간의 관념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관념으로서는 '본래무일물'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무일물, 즉 아무것도 없는 것의 완전함' 이라는 말, 말, 말에 대해서 상상함으로써의 '본래무일물'에 대한 이해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산자는 죽은자의 '無想, 無念, 無我' 를 상상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며... '언어 없음' 에 대해서 상상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죽은자의 입장이 있다고 가정하고... 죽음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삶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에서 밝혀진 것과 같이... 물질계가 없다고 가정하여... 물질계의 입장에서 본다면, 세상이 있다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대에게 주어진 그대의 삶이다.

양자물리학으로 보거나, 죽은자의 입장에서 보거나... 인간 삶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대에게 삶이 있다면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 검증된 삶을 살라는 말이 그들 '성인'들의 가르침의 요점인 것이며... 결론은 스스로 아는 것으로써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에게 삶이 있다면, 그 삶이... 남들과의 다툼이나, 경쟁, 투쟁 전쟁 등의 갈등이 아니라, 행복과 자유, 평화로운 삶이라야 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고통이라면 삶은 평화라야 하기 때문이다.

 

삶이 평화롭기 위해서는 오직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니라... 여러 남들과 자기를 동등하게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삶과 죽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는 지혜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의 '신이 있다'는 주장이나, '영혼이 있다'는 주장은 '없다'는 주장과 상대적인 것으로써 올바른 앎이 아닌 것이다. 그들의 말에 대해서 진리라고 하는 까닭은 상대적인 것에 대해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 아닌 절대적인 앎이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불변의 진리를 깨닫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 까지도 분명하게 전한다는 것이다. 다만 인간이 어리석어서 그들의 말을 오해한 나머지 우상숭배사상으로 왜곡시킨 것이며,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여 전쟁을 일삼는 명분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곧 예수의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말이며, 석가모니의 '네 본래마음이 부처다'는 말 또한 같은 맥락이다. 다만... 언어가 상대적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여... '언어도단, 불립문자'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며... '도가도비상도, 명가명비상명' 이라는 말 또한 '깨달음'이라는 것 또한 다른 '이름'으로써만 있는 것일 뿐, 사실적인 것일 수 없다는 말이다.

 

 

사실... 나의 마음, 나의 몸, 나의 생각, 나의 컴퓨터, 나의 집, 나의 물건... 등은 '나' 와 동일한 것이거나, 나와 동등한 것이 아니라 '나'와 상대적인 것들이며, '나'의 대상들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앎이라면... 육체는 나도 아니며, 내것도 아니며, 나와 비슷한 것도 아니다' 는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며... 그 '나'의 다른 이름에 대해서 '불타, 부처, 도, 깨달음, 성령, 불성, 신, 영혼' 등의 이름 들이 지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라는 말로써 소리와 형상으로... 즉 세상의 지식으로써는 결코 깨달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래' 라는 말 또한... 시간과 공간이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오고 감이 없다는 뜻으로써의 '여래' 라고 이해 한다면... 올바르게 아는 것이다. 

 

소리와 형상으로 볼 수 없는 것이 '我' 라는 말이며... '본무'를 깨달아 아는 것에 대해서 '여래' 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명 중도, 시명여래, 시명불성'이라는 말로써... 스스로 아는 것으로써 올바르게 본다면... '부처, 불성, 여래, 도, 깨달음' 또한 是名, 즉 '올바르게 본다면 이름'으로써만 있는 것이다는 말인 것이며...이름, 말, 언어 또한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다는 말인 것이다. (순수의식의 어린아이와 같이...)

 

 

중요한 것은 스스로 아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아는 것을 알기 위한 방법이며, 그 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 법에 대해서 현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언어로 설명하고자 만든 이름. 언어, 말이... '일념법, 일념명상법' 이다.    

 

오직 일념법이 진리라고 하는 까닭은, 그대의 마음의 실체를 보기 위한 유일무이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진리와 인연있는 이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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