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세상. 칠십여억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지구라는 작은, 아주 작은 행성에 살고 있지만, 그들 개개인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해서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미루어 짐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문명. 문화. 발전으로 예복한 세상을 예견하는 것 같지만, 아득한 옛날이나 현시대나 행복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조차 이해 할 수 없으니. 지식은 지식이 아니라 무식이며, 무지이며, 무명이 아닐 수 없다. 만약에 인간이 평화로워 행복하다면... 하나님이나, 부처님... 신이나 운명 따위에 대해서 관심조차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과학을 신뢰하지만, 그 역시 올바른 앎이 아니라 여전히 무명이다. 참된 이치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릇된 앎으로써의 주장들만 무성하다는 뜻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세상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만, 실상 자세히 보면 인간들의 삶이라는 것이 겨우 남들, 타인들로부터 자신의 존재성, 우월성을 인정받기 위한 안타까운 몸부림에 불과한 것들일뿐, 진정으로 세상을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 없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다.
생명의 비밀을 찾는 일들, 우주의 신비를 조장하는 일들, 지상낙원을 찾는 일들, 신을 숭배하는 일들... 더 나아가, 수많은 학문들... 각각 이합집산들과 그 집단들을 이루는 개개인들. 사실상 그들 개개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들 개개인의 안위와 함께 타인들로부터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자신만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또 다른 수단과 방법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가치 있는 삶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인류의 발전은 인류의 모태를 파괴하는 가장 큰 어리석음이며, 무모한 짓들이다. 인간은 인간의 척도로써 자연, 우주를 본다. 하지만 우주자연, 하늘, 부처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무리들 중에서 가장 지능이 낮은 동물들이 소위 인간이라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수많은 유기체들이 공존하지만 오직 인간동물들만이 자연에 순응하지 못하므로 인하여 불치병이나 난치병 등의 질병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며, 자신의 '내가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음으로 인하여 삶을 고통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고통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행복이나, 자유, 평화를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인간세상이 항상 고요하여 평화로울 수 없기 때문에 행복할 수 없는 까닭은 서로가 자신의 나를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신의 나를 이해 할 수 있다면 서로가 서로로부터 간섭하지 아니하고, 간섭받지 아니하므로써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이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인간들 개개인들의 삶이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자신의 건강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면서도 남들로부터 인정받는 일에 대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을 버는 일이나, 명성을 얻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인간들의 모든 행위들이 그러하다. 목숨이 아까운 것이며, 오래 살고 싶어 하면서도 '성공'이라는 말에 집착한 나머지 채 늙기도 전에 병들기도 하며, 모두가 그렇게 생로병사의 고통을 감내하다가 소멸되어 사라져 간다. 그렇게 끊임없는 윤회가 반복 수행되는 것이 인간들의 삶이라는 환상의 세계이다.
사실 인간들의 개벽론이나 창조론, 빅뱅론 등의 우주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들은 모두가 추측이며 망상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그것들을 알아서 더 행복거나 평화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허무맹랑한 짓들을 하는 까닭 또한 자신의 나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에서 비롯된 환상들일 뿐,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실. 그대 자신의 나를 알면,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이 없다.
아득한 옛날부터 그런 말을 했던 인물들이 있었다. 사실 인류의 역사로 볼때, 그런 사실에 대해서 가장 분명하게 설명했던 인물이 있다면, 석가모니와 예수이다. 그들만이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써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경험이전'의 상태 즉 "무의식, 잠재의식, 순수의식'등으로 표현되는 그 상태에 대해서 설명 했기 때문이며, 인간의 기원과 우주의 원리에 대해서 까지도 사실을 사실 그대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말은 그런 사실에 바탕을 둔 말로써, 인간들에게 가치 있는 삶, 검증된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이르기 까지이며. 더 나아가 인간들이 진정 평화로운 삶, 가치 있는 삶, 검증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해탈법 까지도 분명하게 밝혔으나, 이미 왜곡되었 본질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 남겨진 기록들에 본질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책과 이곳에 '불이일원론'을 역설했던 인물들의 본래의 뜻에 대해서 설명 되었으나, 예수와 석가모니를 사례로 드는 까닭은 오직 그들의 남겨진 말에서만 '무의식'상태의 어린아이 시절에 대한 설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 이외의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으로 살았던 사람들로부터 듣고 배웠던 말들에 대해서 사실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경험된 생각들로써는 경험이전의 '사고없음'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험된 사고'로써는 '경험이전'의 사고를 경험할 수는 없다. 경험된 사고가 모두 지워져서 사라져야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망망대해, 바다가 아무리 넓고 크더라도 그 바다의 바닥 역시 땅이다. 바다속의 땅바닥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바닷물을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두 퍼 내야만 한다. 이와 같이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은 경험된 모든 기억들(생각들=마음)을 모두 사라지게 해야만 '그것(자아의 본질)을 볼 수 있다. 그 방법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설명했던 인물들이 '예수와 석가모니'이다. 둘 다 똑 같은 방법이지만, 인간들의 사고방식에 의해서 서로 다른 것들이라고 왜곡된 채 전해진 것이다.
인류는 개개인의 집단이며, 경험된 사고에 대해서 사실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며, 언어를 사실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경험 이전의 사고를 본 사람들은 인간들의 모든 언어(하늘, 땅, 사람.... 등)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사람은 '석가모니. 예수'와 같이 '언어가 사실적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물론 현 세상에 '언어가 허구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본래 인간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오직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사람' 하나 뿐이다. 사실 이사람은 '나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사람도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아니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까닭은... '이것도 아니며, 저것도 아니며, 다른 것도 아니다'는 말이며,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는 뜻이다.
언어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사람 또한 사람들의 관념으로 볼때에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사람'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세상이 수천수만년 전부터 이어져 오지만, 단 한시도 평온할 날이 없는 까닭은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자신이 무엇인지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내가 나다, '내가 사람이다, 내 마음이 있다'고 주장은 하지만... 정작 그 주장들이 근거가 없는 주장일 뿐, 사실무근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쓰여지는 글들이 그런 사실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설명하는 내용들이다. 그대가 주장하는 모든 것들이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는 말과 함께, 인문학자들의 주장들 또한 사실무근이며, 종교학이나, 과학이나 의학들 또한 사실무근인 것들에 대한 주장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마도 그들 중에서 가장 무식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있다면, 인체가 유기체라는 사실에 대해서 까지도 망각한 의학, 의술이라는 허울좋은 명분으로 병들어 고통스러운 사람들의 몸을 해부하여 더 큰 고통을 겪게 하는 하근기 중생들이다.
사실 '도, 깨달음'이라는 말들에 대해서 더욱 더 자세히 설명하는 까닭은 인류가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후, 그 어느 시대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도, 깨달음'이라는 말의 깊고 깊은 뜻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가 가능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가 존재했던 시대에는 예수의 말을 지적으로나마 올바르게 이해 했던 인물이 단 한사람도 없었으며, 석가모니의 시대 역시 석가모니의 말의 깊고 깊은 뜻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던 인물들은 몇몇에 불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노자와 장자의 시대 또한 그러 했으며, 심지어 '라마나-마하리쉬'의 곁에서 수행을 했다는 사람들 조차도 이곳 회원들보다 더 깊이 이해 한 사람은 없었다는 뜻이다.
사실 불경에는 '이다라니 무진보' 라는 말과 같이 '불경을 끊임없이 독송하므로써 무궁무진한 보물을 얻을 수 있다는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여타 수많은 종교들 역시 '말씀'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너희 안에 보물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일러주겠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명상산업이라는 말까지 창조 된 것과 같이, 중생들간에는 예나 지금이나 서로가 다른 방법이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만의 방법이 옳다고, 진리라고 주장하며... 심지어 죽은 다음이라도 천국엘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리들 까지. 그 다양성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이다.
왜, 그런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일까?
대체 그들은 무슨 근거를 두고 그런 말들에 대해서 주장하는 것일까?
사실 인간들이 주장하는 모든 앎들, 모든 말들... 근거가 없는 낭설들이다.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이 남들의 말, 말, 말을 듣고, 그것에 대해서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말들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사람들 조차도 많지 않은 세상이다.
그런데 신비로운 것은 '사람은 본래 사람이 아니다'는 말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 하는 사람들이 현 세상에 많고도 많다는 것이다.
사실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거룩한 인물들에게는 '사람은 본래 사람이 아니다'는 말은 신비스러운 말이 아니라, 사실적인 말이며,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며, 보편타당한 말이며,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라는 것이다. 그런 앎에 대해서 올바른 앎이라고 하는 것이며, 상대적인 앎에 대해서 주장하는 말들에 대해서 그릇된 앎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에 도를 구하는 구도자, 수행자가 '내가 있다, 내 마음이 있다, 그래서 나에게는 자존심이 있다'고 생각하여 '자기를 주장한다면' 그는 올바른 구도자가 아니라, 삿된 길을 가는 자이다. 그는. 올바른 앎을 가진 수행자는, 자기를 주장하기 전에 먼저 타인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하기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타인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구도자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이해 하는 일에 전념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어찌 세상과 더불어 다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내 마음이 있다고, 내 자존심이 있다고 막무간에 주장할 일이 아니라, 그 마음이, 그 자존심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왜 생겨난 것인지 그것부터 올바르게 알아야만 가치 있는 삶일 수 있지 않겠는가말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죽는 날까지도 자신을 주장하기 때문에 우주보다 더 무한한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이며, 모든 고통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말들은 어려운 말이 아니라 단지 낯선 말이다.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사투리와 같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는 것 뿐이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듯이, 학생들이 외국어를 배우듯이... 어려운 것들이 아니라, 전에 들어볼 수 없는 말들이기 때문에 조금 혼란스러운 말들일 뿐이다.
'내가 사람이다'는 말과 상대적인 말이 '내가 사람이 아니다'는 말이다.
다만 그대는 '내가 사람이다'는 말만 들어본 적이 있으며, '내가 사람이 아니다'는 말은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다. 단지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일 뿐, 말은 똑 같은 말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사람이다'는 말은 '내가 사람이 아니다'는 말과 상대적인 말이라고 감안한다면... 굳이 생소한 말은 아닐 것이다.
사실 중요한 것은.
'내가 사람이다'라는 말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당연한 것 만큼 근거가 없는 말이며, '나는 사람도 아니다'는 말은 말도 안되는 소리 같지만 분명하고 명백한 근거가 있는 말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 다시, 반복해서 자세히 설명해 나가려는 것이다.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평화 있기를.
다음편 11-1) 에서 계속...
일념명상의 집 '도가'에서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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