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인간은 지성체이며, 유기체이다.
하지만 인간들의 지식으로써는 인간을 왜, '지성체'라고 하는 것인지, 왜, 유기체라고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해 조차 불가능한 것 같다.
사전에 '지성체'라는 말을 검색해 보니.
유기체라는 말에 대해서는 '유기체 설'로 설명된 반면에 '지성체'라는 낱말은 없다. 한글과 컴퓨터에 '지성체'라는 낱말을 타이핑 해 보니. '지세'라는 말로 변하면서... 땅을 빌려 쓰는 값으로 내는 세, 지대. 땅세.... 라는 설명이다.
사실 인간이 '지성체'라는 말에 대한 뜻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다면, 두려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지식이 허구적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마음 또한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 또한 사라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언어의 뜻으로 본다면 '知成體'로써 '지식으로 이루어진 몸'이라는 뜻이 지성체라는 말이다.
예를 든다면, 이력서를 쓸때, 사진을 붙이고 자기의 이력을 기록하고... 자기 소개서를 쓰는데, 이는 모두가 살아온 날들에 대해서 쓰는 것이며, 과거의 경험들에 대해서 쓰는 것이며, 자신의 기억세포에 저장된 낱말들 중에서 남들에게 드러내고 싶은 것들만을 간추려서 쓰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세포에 저장된 말들에 바탕을 둔 다른 생각들을 쓰는데, 그것에 대해서 희망이라고 하며, 과거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자기 주장들일 것이다.
'지성체'라는 말에 대해 이해 하기 위해서는, 이력서의 기록과 같이 '나는 이런 사람이다'는 주장들 모두가...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이며.... 기억된 생각들에 대한 기록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인식해야만 한다. 이력서에 바탕을 둔 면접에서는 더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기억된 생각들에 대한 다른 표현들이며,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된 생각들의 바탕에는 '내가 있다, 는 말, 말, 말이며, 내가 사람이다'는 말, 말, 말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 모두에게 공통적인 지식 하나가 있다면, '나는 사람이다'는 말(앎, 뜻)이다. 사실 지식이라는 말의 뜻은, '알 지' 와 '앎 식' 자로써 한글로 표현하자면 '앎'이라는 말이다. 무엇을 아는 앎에 대해서 지식이라고 하겠는가? 그렇다. 말을 아는 것에 대해서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며, 말의 뜻에 대해서 아는 것에 대해서 '의식'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의식'이라는 말 또한 '뜻 의' 와 '앎 식'으로써의 의식이다. 말의 뜻에 대해서 아는 앎이라는 말이니... 모두가 말, 말, 말에 대해서 인식함을 이르는 말이다.
'인식, 인지' 라는 말은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아는 일이나 작용이라는 설명이 사전적 의미이다. '인정할 인' 자와 '앎 식' 자이며, '인지'라는 말 또한 지식을 인정하여 앎이라는 뜻이니... 말 속에서 말을 찾는 일들이 인간들의 지식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왜 죽음을 두려워 하는지 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움과 공포로 인식하기 때문에... "왜 죽음을 두려워 하느냐" 는 묻는 사람이 더 이상한 사람이겠지만. 사실 이런 의문에 대해서 스스로 사유하여... 돌이켜 볼 수 있다면...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 이해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긴, 인간은 자신이 말을 배우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남들의 말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닐 수밖에 없겠지만...
옛말에 '남들이 장에 가니 나도 간다'는 말이나 또는 우화에 나오는 말들이 있는데... 남들의 말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는 사람에 대해서 어리석다는 비유들이 있다.
길가에서 집을 짓는 사람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을 따르다 보니, 평생 집을 짓지 못한다는 말도 있으며, 나귀를 팔러가던 아비와 아들이 남들의 말에... 나귀를 걷게 하기도 하고, 아비가 나귀에 타기도 하고, 아들을 나귀에 태우기도 하는 등... 남들의 말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다가 결국에는 나귀를 메고 장엘 간다는 우화가 있었는데.... 사실 인간들의 지식들.... 모두가 이와 같은 형상이며, 그토록 무모한 것이다. 그러니 인간들의 모든 삶들... 무지몽매한 것이라는 말이 적격이다.
사실 인간의 삶이란 항상, 끊임없는 두려움에 따른 근심과 걱정, 초조 불안 긴장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음이 잠시도 쉴 수 없기 때문이며, 사실 생각의 윤회현상에 대해서 미루어 짐작하거나 상상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끊임없이 흔들리는 까닭은, 뿌리가 분명치 않은 불안정한, 완전할 수 없는 앎에 바탕을 것이 마음이기 때문이다. 결국 마음은 독립적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심이 그 바탕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코끼리를 만져본 장님들의 코끼리에 대한 주장에 대해서 웃는다. 나귀를 팔러가는 부자의 어리석음을 비웃는다. 제각기 자신들은 절대로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똑 같다. 죽음을 두려워 한다면... 그 또한 그들과 같이 남들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두려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들에 대해서... 비웃거나, 멸시하거나, 종경하거나, 두러워하거나, 비난하거나, 사랑하거나, 증오하거나, 미워하거나, 좋아하거나... 모두 다 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고정관념인 '자존심'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 그 자존심이 허구적인 것이라고는 감히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세상 어디에서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사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 또한 타인들로부터 들고 배웟기 때문에 아는 지식이며, 앎이다. 다만 인간은 자신의 어린아이시절에 대해서... 말을 배우던 시절에 대해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 아는 앎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근심하지말라, 걱정하지말라고 말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마음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며, 왜 생겨난 것인지에 대해서 지적으로나마 이해 할 수 있다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고통의 원인을 알아야만 고통을 소멸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불치병들 또한 그러하다. 암을 떼어 낸다고 하더라도 원인을 제거하지 못하는 한, 재발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마음 또한 그 원인을 알아야만 모두 버릴 수 있다는 말, 말, 말들이 이곳의 모든 글들의 요지이다.
인간의 모든 지식들에 대해서 총체적 무지이며 어리석음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인간들 누구나,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모든 것들 다 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남들의 말, 말, 말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면서 불평불만만을 늘어 놓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늙고 병들면 옹고집으로 변해가는 것이며, 죽는 날까지도 자기주장만 하다가 죽어 썩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엇그제 어떤 초보수행자 말하기를.
2년여전 쯤에 우연히 이곳 글들을 보게 되었는데, "현세상에는 오직 나의 말이 진실된 말이며, 진리이며, 일념법이 진리다" 는 말들이 구역질이 날만큼 보기 싫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은 아니지만, 시쳇말로 '나도 자존심이 있는데... "잘난체 하는 짓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보니... 보기 싫더라는 것이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그런데, 아직도 다른 사람들의 말들을 들으면서 깨달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말이 이곳의 말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세상에는 언술이 뛰어난 자들이 많고도 많기 때문이다. 사실 앞서 설명한 '선한목자'라는 '성경구절'을 보면서... 예수의 '언술이 뛰어나서 나의 말을 옮기는 자가 그리스도의 적이다'는 말이 실감나게 들렸는데. 인간들의 지식에 바탕을 둔 언술들이 놀랄만큼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더욱 더 무지몽매한 것들이 인간이다.
귀하고 귀한 인연 있는 이들만이 자유를 노래할 수 있는 것이며, 행복한 삶,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귀하고 귀한 인연있는 사람들만이 그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며, 자신의 마음의 실체, 모든 의심의 근원을 깨달아 알기 위한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이며, 상근기 인물들만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 지식이라는 것들... 스스로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서라면, 단 하나도 쓸모 없는 것이 지식이다.
하지만 무용지용이다. 쓸모 없는 것이 있기 때문에 쓸모 있는 것이 있는 것이며, 쓸모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쓸모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
인간세상에서는 가장 현명한 자들, 가장 명석한 자들, 가장 뛰어난 자들만이 그 길,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길, 진리의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그 길,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더 현명한 것이다.
득도'得道' 라는 말이 있다.
'도'를 얻음' 이라는 뜻이지만, 다른 곳에서 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의 근원을 봄을 이르는 말이다. 만약에 인간의 사고방식으로써 그것을 이해 할 수 있었다면, 어찌 이천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시대까지도 석가모니를 우상의 대상으로 숭배할 수 있겠으며, 어찌 예수를 유일자이며, 하나님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말이다.
설령 어떤 우연한 인연으로 이곳의 글들을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도'와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자신의 마음의 구성요소들에 대해서 이해가 다가올때, 그때 비로소 이곳의 다른 글들에 대해서도 이해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일념법으로써 생각의 이치에 대해서 스스로 이해가 다가온다면... 그때 비로소 '도가도비상도' 라는 '도'와 인연이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 하는 이유 또한 스스로의 앎으로써 두려워 하게 된 것이 아니라, 남들이 장에 가니 나도 쫒아가는 것과 같이... 죽음은 두려운 것이며 가장 큰 고통이라고,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말 때문에 두러워 하는 것이다.
죽은자의 말을 들어서 죽음이 두려운 것이라고 아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의 거짓된 말을 들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 두려운 것이라는 환상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득도. 즉 도를 얻는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일념법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이해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마음이 허구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마음에 대한 완전한 이해로써 마음으로부터 탈출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서 '해탈(解脫), '심해탈(心解脫)'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일념법이 진리이다.
왜냐하면 그대의 마음의 실체를 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도가의 약식이 진리이다.
왜냐하면 건강한 삶을 위한, 진리에 바탕을 둔 유일한 식품이기 때문이다.
인연있는 이여, 그대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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