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무지에 바탕을 둔 지식의 함정은 참으로 깊고 깊어서 그 깊이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것 같다. 왜냐하면 인간세상의 역사를 돌아보니. 지성체는 옛 성인들의 가르침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그들은 그져 신비주의자다'라는 방식으로써 자신들과는 다른, 특별한 사람으로 여겨버리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들을 우상숭배사상의 주인공으로 여기거나, 또는 그들의 말에 대해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니. 그야말로 어리석음이 우주보다 더 무한한 것들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들이 신비주의자가 아니라, 인간들이 신비주의자들이다.
아니.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 자신이 신비주의자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의 몸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모든 앎들, 그 앎에 바탕을 둔 주장들... 올바른 앎이 겨자씨 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서로가 죽는 날까지 자기가 옳다며, 자기 주장하기를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무한한 어리석음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들의 모든 자기주장들이 참으로 신비스럽기 이를데 없다. 왜냐하면 올바른 앎은 단 하나도 없는데... 모두 다 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마음이 참으로 신비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가장 단순한 사례를 든다면. 자신의 '내마음'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모른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내생각이라고 주장하면서 내생각을 내생각대로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사실. 최소한 내마음이 내마음이라고 주장하려한다면, 내마음이기 때문에 내가 마음을 주장하지 아니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며, 최소한 내생각이라고 주장한다면, 내생각을 내가 원하는데로 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자신이 자신의 마음을 모르면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그 자체가 우주보다 더 무한한 어리석음이 아니라고 어찌 주장할 수 있겠는가말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사실 인간이,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다만 지적으로나마 이해가 가능할 수 있다면, 최소한 서로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종교들중 어떤 하나의 종교에 집착하지도 않을 것이다. 서로가 옳다는 명상집단들 따위에 집착하지도 않을 것이며, 철학이나 인문학 등의 학문 따위들에 대한 집착에서도 벗어나 평온함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육체에 깃든 질병들 따위에 대해서도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다.
사실 신비주의자가 신비주의가 아니라 인간들이 참으로 신비스러운 자들이다.
신. 영혼. 귀신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평생을 허비하는 사람들도 부지기 수로 많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이 옳다거나 옳지 않다거나, 내가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목숨을 거는 사람들도 다수 있으며, 부처님 말씀이 진리라며 평생을 허비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보다 더한 사람들 또한 다수이며. 사실 모든 사람들...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니, 무지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는 뜻이다.
더욱 더 신비스러운 것은. 죽는 날까지도 그런 지식에 묶여서 자기를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신비스러운 것은, 인생에 해답을 아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더, 신비스러운 것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올바르게 아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다는 것이며, 그보다 더, 더, 더 신비스러운 것은 죽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올바르게 아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는 어떤 사람인가?
대략 칠십억이나 된다는 인류. 사람들 중에.... 이 글을 볼 수 있는 그대는 과연 무엇을 아는 사람인가?
자존심이 있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존귀하다고 생각한다면. 왜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존귀한 것일까?
설령 그대가 타인들보다 더 존귀하다면, 그 왜 존귀한 것인지 그 이유라도 분명히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말이다. 자존심이라는 말의 뜻이 '제 몸을 굽히지 않고 스스로 높이는 마음'이라는 설명이 사전적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학사전의 신비주의자에 대한 뜻을 보니. 이래와 같다.
국어
신비주의자 [神祕主義者]
뜻. 절대자나 신 등의 초월적 존재를 내적인 직관이나 영적인 체험에 의해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것을 믿고 따르는 사람
-절대자나 신 등의 초월적 존재-
-내적인 직관이나 영적인 체험-
-체험하는 것을 믿고 따르는 사람- 라는 말들....
사실 위 신비주의자라는 말에 대해서 달리 표현하자면.
인간들의 삶이 정신을 못차리고 사는 삶이라면, 그들 신비주의자들의 삶은 정신을 차리고 사는 삶이라는 것이다. 사실 인간지식이란 '정신 차리다'는 말은 있으되 '정신 차리다'는 말에 대한 분명한 뜻 조차도 이해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볼때.
인간은 누구나 -'절대자나 신 등의 초월적 존재'가 있다- 고 믿는 것 같다.
사실. '절대자나 신 등의 초월적 존재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신비주의자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서로가 자기들이 믿는 신이 '진리'라고 주장하기 위해서... 죽는 날까지 자기를 주장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광신자들이며, 맹신자들이다.
그리고 광신자나 맹신자가 아닌 사람들 또한 절대자나 신 등의 초월자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며, 또 다른 자신의 지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서로가 자기의 지식이 옳다고 주장하는 모든 학문들이 그러하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 수많은 살람들... 죽는 날까지 자기를 주장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 중에서 극 소수의 인물들만이 '절대자나 신 등의 초월자'가 본래 있는것이 아니라... '너 자신을 알면' 그 초월자가 그대 자신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초월적 존재'가 '네 밖에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네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단지 그 차이이다.
인간들은 누구나 '절대자나 신 등의 초월자'가 자신과는 절대로 가까이 있을 수 없는것이며, 분리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반면에 신비주의자들은 '초월자'가 '네 안에 있다'고. 본래 '너 자신과' 분리된 적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단지 주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치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분명한 이치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이다.
사실 두권의 책과 이곳의 모든 글들이 그러하다.
사실 이곳의 모든 글들이 '절대자나 신 등의 초월자'가 그대 자신과 상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대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이며, 그대의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사념=事念)이 모두 사라졌을때, 그때 드러나는 것이 곧 '절대자 신 등의 초월적 존재'라는 것이다' 는 말이다.
사실. 인간은 '절대자나 신 등의 초월적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초월적 존재'가 있다고 주장만 할 뿐,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다만,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만, '없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생각의 차이지만... 감히 없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있다는 가정하에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일 뿐, 누구도 그것을 증명할 수 없는 것 뿐이다.
증명할 방법 조차 알 수 없기 때문에 주장만 무성한 것이다. 그것도 올바른 앎이 아니라... 온갖 신비스러운 말들을 총 동원하여 '본래 없는 것'에 대해서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유인즉 인간이 인간이지만... 인생에 해답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이지만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올바른 앎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대가 스스로 확인된 앎이 아니라면 주장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대의 모든 주장들은 그대 스스로 확인된 앎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들어서 아는 앎에 대해서 스스로 각색하여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의 지식에 바탕을 둔 모든 주장들이 그러하다. 자신이 스스로 깨달아서 아는 앎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로부터 끌어모은 지식들에 대해서 자신의 것인냥 꾸미고, 그것에 대해서 '나라고, 내가 안다고,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주장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장들을 뒷받침하는 근거라는 것들... 겨우 겨우 옛날에 들었던 다른 사람들의 말들일 뿐, 자신 스스로 깨달아 아는 앎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의 모든 앎들, 주장들에 대해서 근거 없는 낭설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인간들은 '신비주의자' 라는 말에 대해서 -초월적 존재-에 대하여 '내적인 직관이나 영적인 체험'으로서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것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어불성설이다.
직관이나 영적 체험이 아니라, 생각의 원리를 깨달아 아는 앎이며, 사실적으로 아는 앎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앎은 모두 추상적인 앎인 반면에 그들의 앎은 추측이 아니라 사실을 사실 그대로 아는 앎이다.
그 하나만 비유를 들고 넘어가자.
인간은 누구나 '내가 사람이다' 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나는 사람이다' 라고 주장하며, 그 앎에 대해서 불변의 진리라고 여기듯이 당연하게 여기지만... '나는 사람이다'는 말은 '나는 사람이 아니다'는 말(앎, 뜻, 마음)과는 상대적인 말(앎, 뜻)이다.
만약에 '나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나는 사람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물론 '나는 사람이다'는 말에 대해서 깊이깊이 세뇌당한 사람들이라면... '나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에 대해서 '정신질환자' 쯤으로 여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인간들의... 아니.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의 '나는 사람이다'는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대는 '나는 사람이다' 라고 주장하겠지만, 다른 사람들 모두가 '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지 다른 사람들이 모두가 '나는 사람이다'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단지 다른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주장하기 때문에... 단지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람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나는 사람이다' 라는 앎에 대한 다른 근거는 없다.
단지 다른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주장하기 때문에 나 또한 '나는 사람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단지 다른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주장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나도 '나는 사람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인간들 모두가, 그대가... '나는 사람이다' 라고 주장하는 이유, 근거는 단지 그것 하나 뿐이다.
근거가 있는 주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모두가 주장하기 때문에 나 역시 '나는 사람이다' 라고 주장한다는 것. 그것 하나가 '나는 사람이다'라고 주장하는 이유이며, 근거고 주장하는 것이다.
달리, 다른 근거를 찾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 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나 또한 두려워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주장과 똑 같은 주장이다. 장날 다른 사람들이 장에 가니, 나도 장에 가야한다는 말과도 똑 같은 논리이다. 그렇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웃기 때문에 나도 따라 웃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이 슬퍼하기 때문에 나도 같이 슬퍼해야한다는 방식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살하면, 나도 자살해야 하는가?
그대는 이런 말에 대해서 어찌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어떤 사람들의 언행에 이끌려 다니는 사람인가를 묻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교회에 가니, 나도 가는 것인가?
다른 사람들이 절간에 가니, 나도 가는 것은 아닌가?
다른 사람들이 명상센타에 가니, 나도 덩덜아 가는 것은 아닌가?
다른 사람들이 마음수련에 가니, 나도 쫒아 가야 하는 것인가?
다른 사람들이 공부하기 때문에 나도 공부하는 것인가?
다른 사람들이 똑똑한 체 하니, 나도 그래야 하는가?
대체 그대의 나는 누구인가?
다른 사람들이 그러니... 나도 그래야 하는 것에 대해서 '내인생, 내 삶'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인가?
정말 그것이 그대의 삶이며, 인생인가?
겨우겨우 남들의 언행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면서... 내 인생이 어쩌고 저쩌고, 너는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주절거리는 일들에 대해서 '내인생'이라고 주절거릴 것인가말이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가?
도디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과연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이며, 검증된 삶인가?
남들이 간다고 그져 쫒아 다닐 일이 아니라.
그 길, 방법... 올바른 삶을 위해서 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말이다.
지금 이곳의 모든 글들... 귀하고 귀한 인연있는 자들에게 그 길을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지는 것이다.
사실. 인간세상에 '신비주의자'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데 사실은 인류가 성인으로 여기는 사람들... 그들 중에 셋이 인간들이 '신비주의자'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사실. 소크라테스, 석가모니, 예수가 인간들이 '신비주의자'라고 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더 신비스러운 것은. 그들의 말은 모두가 똑 같은 말이라는 것이다. 다만, 시대와 상황 조건에 따라서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표현하는 방법이 조금 다를 뿐이다. 책과 카페의 글들 또한 그들의 말과 같은 맥락이며, 다면 현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설명하므로써 누구나 지적으로나마 이해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지적으로써 이해 한다는 것은 역시 지식일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환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일념법 명상으로써 일념의 뜻에 대해서 분명히 이해 할 때, 그때 비로소 '생각의 이치와 속성'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한다는 것은, 인간지식의 한계를 초월한 앎이며, 그 앎만이 올바른 앎으로써 가치 있는 삶, 검증된 삶의 바탕이 확립되는 것이다.
그들. 신비주의자, 초월자들의 근본 가르침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하자면.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로써 '네 안에 하나님이 있다'는 말로 표현했던 예수의 말과 같은 뜻이며, 석가모니의 말은 좀더 구체적인 표현으로써... '나는 하늘, 땅, 바다의 용도 아니며, 더 나아가 '나는 사람도 아니다'는 방식으로 표현되었으나... '나는 사람도 아니다'는 말은 '다른 것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양변의 분별심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며, 이름하여 심해탈이라는 뜻으로써 '나는 사람이다 또는 사람이 아니다' 라는 분별이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허구적인 앎이라는 뜻이다.
사실. 인간은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이며, 그들은 인간의 경험에 바탕을 둔 사고방식이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은 '나는 사람이다' 라고 주장하지 않으며, '나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이다'는 말(앎)과 '나는 사람이 아니다' 라는 말이 상대적인 말(앎)로써 사실적인 앎이 아니라 허구적인 앎(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서실을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아는 올바른 앎(말,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앎에 대해서 분별된 앎이 아니라 '올바른 앎, 참된 이치, 진리' 라는 뜻으로서 '道' 라는 말(이름, 낱말)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 한글로 표현한다면 '올바른 삶의 길' 이며, '진리' 이며, '새생명' 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으며 또한 '진실된 말, 앎, 올바른 앎, 깨달음, 도를 깨달음, 득도, 해탈, 열반, 하나님 나라, 성령, 불성' 등의 말로 표현될 수 있다.
'본래 나는 사람도 아니며, 신도 아니며, 절대자도 아니다' 는 '올바른 앎'에 대해서...
이 카페의 이름이 '일념명상의 집 '도가' 이다.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은. 이곳 도가를 이루는 사람들에게는 위의 설명들이 그다지 신비스러운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가를 방문하는 사람들... 그들 중에서 일념을 깨닫고 더 나아가 많이 아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사람이다'는 말과 '나는 사람이 아니다'는 말은 추상적이며, 환상인 말이 아니라 사실적으로 이해 한다는 것이다.
그져 그럴 것이다는 추측이 아니라, '나는 사람이다'는 말이 올바른 앎이 아니라는 말에 대해서 사실적인 말로 이해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깨닫기 위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일념법 수행으로써 '유일한 선은 올바른 앎이며, 유일한 악은 지식이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대해서 그만큼 깊은 이해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원성이나 다양성 등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허구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하는 올바른 앎에 대해서 깊이 이해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념법, 일념명상법이 진리라고 하는 것이며,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서라면, 자유와 평화 그리고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그 길을 가라고 하는 것이다. 오직 그 길만이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삶에 있어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더 나아가 검증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소크라테스나 예수와 같이 죽음 앞에서도 '나는 기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올바른 앎에 대해서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며, 노자 장자와 같이 마누라의 죽음 조차도 축복으로 여길 수 있는 올바른 앎을 깨달아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들. 아니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의 모든 지식. 앎은 사실적인 것들이 아니라, 허구적인 것들이다. 왜냐하면,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원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무식자(無識者)들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인간이 본래 인간이라고 주장하지만... 인간의 근원이 무엇인지 조차 이해 할 수 없으면서 삶을 허비하는 꼭두각시 인형에 불과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육체에 깃든 무수히도 많은 불치병이나 난치병들...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들이며,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치유될 수 없는 것들이다.
'도가'와 인연있는 사람들이 의학, 한의학 등의 지식이라는 무지의 함정에서 벗어나 모든 질병에서 스스로 온전하게 치유할 수 있는 까닭은, 인체의 원리에 대해서 이해 하기 때문이며, 인간의 근원에 대해서 이해 하기 때문이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으로써 드러나는 올바른 앎에 의해서 '도가의 원리'에 바탕을 둔 원칙을 따를 수 있는 올바른 앎이 있기 때문이다.
그 올바른 앎을 증득하는 길, 방법이 있다.
일념법, 일념명상법이며, 유일한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가치 있는 삶의 길. 일념법이 진리이다.
야생동물들과 같은 건강한 몸, 도가의 약식 또한 진리이다.
귀하고 귀한 인연있는 사람들... 그대에게 영원한 평화 있기를...
일념명상의 집 '도가' 에서 ---> http://blog.daum.net/powwr116/?t__nil_login=my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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